기후위기의 ‘서른 살’, 나이테처럼 쌓여간 이산화탄소 [데이터로 보는 기후위기]

※과학 저널리스트 윤신영 기자가 데이터를 통해 ‘기후위기’를 제보합니다. 데이터와 이를 기반으로 직접 제작한 그래픽은 위태로운 지구를 과장 없이 드러냅니다.

6월이 되면 기후위기의 ‘생일’을 생각한다. 1988년 6월23일, 미국 상원 에너지 및 천연자원위원회에 과학자 한 명이 참석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연구소장이자 금성 연구자인 제임스 핸슨 박사였다. 핸슨 박사는 지구보다 지구 밖 행성이 더 친숙하고 사람보다 숫자가 더 익숙한 천생 연구자였는데, 지구 대기의 성분 변화를 조사한 데이터를 살펴보다 한 가지 수상한 사실을 발견했다. 지구의 대기 중 이산화탄소(CO₂)농도가 올라가고 있었다.

핸슨 박사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극단적으로 올라간 행성의 운명을 지구에서 가장 잘 아는 사람이었다. 지표 온도가 460℃에 이르고 기압은 지구의 90배가 넘는 지옥, 바로 금성이었다. 물론 지구 대기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금성처럼 극단적으로 높아지지는 않겠지만(금성은 대기 성분 대부분이 이산화탄소다), 이산화탄소 농도 증가가 온실효과를 일으켜 대기를 가열시킨다는 사실을 참고하기에는 충분했다. 그는 자신의 직을 걸고 이 사실을 알리기 시작했고, 결국 상원에서 증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다음 날 〈뉴욕타임스〉는 ‘“지구온난화가 이미 시작됐다” 전문가, 의회에서 증언’이라는 기사를 실었다. 1면 톱이었다. 연도가 지남에 따라 급격히 오르는 기온 그래프도 곁들였다. 지금은 기후변화 또는 기후위기라는 말로 더 널리 알려진 지구온난화를 전 세계에 본격적으로 각인시킨 사건이었다.

물론 이 사건과 기사 하나로 기후변화 담론이 갑작스럽게 탄생한 것은 아니다. 기후변화 현상을 이론으로 예상한 과학자는 19세기 말부터 있었고, 1950년대부터는 이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매일 묵묵히 대기를 채집해 성분을 분석하고 데이터를 쌓는 연구자도 생겨났다. 1970년대부터는 기후변화의 실체와 위험을 구체적으로 경고하는 과학자와 환경 활동가, 정치인이 등장했다. 이들의 주장은 대중의 무관심과 화석연료 산업계의 방해로 처음에는 큰 주목을 끌지 못했다. 그럼에도 이들은 10년에 걸쳐 끈질기게 대중과 정치인들을 설득했고, 그 결과 기후변화를 과학적 사실로 확립하고 이를 세계에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 정점이 바로 1988년 6월 상원에서의 증언이었다. 이 노력은 정치와 외교로도 이어져, 이듬해에 네덜란드 노르트베이크에서 세계 61개국 장관이 참석하는 최초의 국제 기후 회의가 개최되었다. 비록 최종 합의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각국은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구속력 있는 협정이 필요하다는 사실에 공감했다. 이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위원회(IPCC) 창설, 기후변화협약 체결(1992년), 교토의정서 채택(1997년), 파리협정 채택(2015년)으로 이어지는 국제적 노력의 기틀이 됐다.

이런 노력도 성과가 없다면 무용하다. 1988년으로부터 30년이 지난 2018년, 미국 작가 너새니얼 리치는 기후변화 담론이 탄생하던 시기의 막후 이야기를 상세히 파헤친 장문의 르포르타주 기사를 〈뉴욕타임스〉 일요판 매거진에 발표했다. 〈잃어버린 지구〉라는 책으로도 발간된 이 기사의 원문은 인상적인 세 문장으로 시작한다. “30년 전, 우리에게는 지구를 구할 기회가 있었다. 기후변화의 과학은 거의 확립됐고, 세계는 행동할 준비가 돼 있었다. 우리를 방해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 자신만 빼고는.”

그 문장을 읽고 진은영 시인의 시 ‘서른 살’의 마지막 문단이 떠올랐다. “단지 무언가의 절반만큼 네가 왔다는 것/ 돌아가든 나아가든 모든 것은 너의 결정에 달렸다는 듯/ 지금부터 저지른 악덕은/ 죽을 때까지 기억난다.”

삶의 전환기에서, 시인은 악덕을 생각했다. 우리는 누구나 악덕을 저지를 수 있다. 반성하고 마음에 새겼을 수도 있지만, 개의치 않고 살거나 심지어 잊었을 수도 있다. 그나마 삶의 전반기에는 이런 악덕을 불완전하고 평범한 사람의 흔한 과오로 치부할 여지가 있다. 하지만 전환기 이후의 삶에서는 지울 수 없는 잘못이다. 적어도 아무 일 아니라는 듯 개의치 않거나, 잊어서는 안 된다.

너새니얼 리치가 회고한 서른 살의 기후변화가 그랬다. 1988년에 비해 나아진 게 아무것도 없었다. 기후변화는 멈추지 않았다. 기온은 올랐고 이산화탄소 배출도 늘었다.

기후변화 입증한 상징적 데이터

이때부터 다시 7년이 지난 2025년 6월에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기후변화를 입증한 상징적인 데이터로 이를 짚었다. 1980년대에 기후변화가 과학적 사실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던 것은 기온이 상승한다는 사실과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급격히 증가한다는 사실을 직접 입증한 데이터 덕분이었다. 이 가운데 이산화탄소 농도는 1950년대부터 하와이 빅아일랜드의 마우나로아산 3400m 지점에서 매일 묵묵히 대기를 채집해 이산화탄소 농도를 기록한 한 과학자의 노력 덕분에 본격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미국 스크립스 해양연구소 찰스 데이비드 킬링 연구원이 1958년부터 2005년까지 꾸준히 기록한 데이터였다. 지금은 아들 랠프 킬링이 대를 이어 기록 중이다.

이 데이터를 가로축이 시간, 세로축이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인 그래프로 그리면 전반적으로 매년 꾸준히 상승하는 이산화탄소 농도 그래프를 얻을 수 있다(〈그림 2〉 참조). 기후변화에 관심이 있다면 한 번쯤 접했을 이 그래프를, 관측자의 이름을 따 ‘킬링 곡선’이라 부른다. 킬링 곡선은 1958년 이후 지금까지 일관되게 우상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킬링 곡선을 조금 변형해서 표현하면 그래프(〈그림 1〉)가 된다. 데이터를 연도별로 쪼갠 뒤 같은 날짜별로 정렬해 서로 겹쳤다. 연도는 선의 색으로 구분했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가을과 겨울에 육상의 식물이 부패하며 내뿜는 탄소로 점차 높아지고, 5월 연중 최고치를 기록한 뒤, 식물이 광합성으로 이산화탄소를 다시 흡수하는 여름 이후 줄어드는 패턴을 반복한다. 이 때문에 계절에 따라 연중 오르내리는 패턴을 지닌다. 그래프를 연도별로 쪼개면, 이런 계절에 따른 변동과 함께 연도별 증가 추세까지 선명히 확인할 수 있다.

만약 농도가 꾸준히 증가한다면, 이산화탄소 농도는 마치 시루떡이나 지층처럼 차곡차곡 위로 쌓이는 형태로 그려진다. 선 사이의 간격을 보면, 마치 나무의 나이테처럼 농도가 증가한 정도를 추정할 수 있다. 기온이나 해수면 온도 같은 다른 데이터를 보여줄 때에도 자주 이용하는 방식으로, 이 연재에서 앞으로 종종 보게 될 것이다.

이 그래프를 봐도, 인류가 측정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1950년대는 물론이고 세계가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본격적으로 인지한 1988년 이후에도 이산화탄소 농도는 전혀 줄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서른 해가 지난 2018년에도, 서른일곱 해가 지난 올해도 마찬가지다. 급기야 올봄에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역사상 처음으로 430ppm을 넘는 날이 나왔다. 〈그림 2〉에서 빨간 점으로 표시한 구간이다. 3월에 처음 등장하더니 5월에는 대다수의 날이 430㏙을 넘었다. 1988년의 약 350㏙보다는 80㏙, 기록을 처음 재기 시작한 1958년의 약 315㏙보다는 115㏙ 증가한 수치다. 5월10일에는 431㏙을 돌파했다. 최근 100만 년 사이에 가장 높은 수치다.

그동안 우리에겐 지구를 구할 기회가 있었고 행동할 준비도 돼 있었다. 우리를 막을 그 어떤 장애물도 없었다. 우리 자신의 무위(無爲)라는 악덕만 빼고. 죽을 때까지 기억하게 될까. 오직 우리만 결정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