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병대 수사단을 향한 수사 외압이 끝이 아니었다. 채 상병 특검(특별검사 이명현)은 김진락 전 국방부 조사본부 수사단장(대령)이 2023년 8월에 작성한 수첩을 확보했다. 당초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수사 과정에서 획득한 자료다. 20여 쪽 분량의 수첩에는 채 상병 사건 외압 정황이 담긴 걸로 확인됐다. 당시 이종섭 국방부 장관의 비서실장 역할을 하던 박진희 군사보좌관이 김 전 단장에게 ‘임성근 전 사단장의 혐의가 너무 많다. 방어권을 보장해줘야 한다’는 등의 취지로 말한 내용이다.
어떻게 된 일일까. 김진락 대령은 ‘채 상병 순직사건’을 재검토한 전직 국방부 조사본부 수사단장이다. 국방부 검찰단은 2023년 8월2일 해병대 수사단(수사단장 박정훈 대령)이 경북경찰청에 이첩한 채 상병 순직사건 수사 기록을 ‘박정훈 대령 항명의 증거’라며 당일 회수했다. 엿새 뒤인 2023년 8월8일, 국방부 법무관리관실은 “해병대 수사단의 조사 결과는 여러 관점에서 미흡한 측면이 있고, (···) 해병대 수사단장이 항명죄로 수사를 받고 있어 조사를 공정하게 계속하기 어렵다(‘고 채 상병 사망사고 해병대 조사 결과에 대한 검토 보고’ 문건)”라며 사건 재검토를 건의했다.
여기서 ‘미흡하다’는 대목에 의문이 생긴다. 해병대 수사단은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을 포함한 8명에게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해 경찰에 사건을 넘겼다. 법무관리관실은 이 점을 문제 삼았다. “관련자 모두를 업무상과실치사로 이첩하는 경우”의 부작용을 자세하게 적었다. “진실규명의 책임을 경찰에 전가”하고 “경찰 수사 범위를 불필요하게 확장해 수사에 혼선을 초래”할 수 있다는 따위의 이유였다. 결론적으로 “구체적으로 혐의가 인정되는 관련자는 경찰에 사건을 이첩”하되, 나머지 관련자들은 혐의를 제외하고 “작전 중 과오에 대한 사실관계”만 정리해 경찰에 보내야 한다고 했다.
어딘가 익숙한 주장이다. 해병대 수사단이 경찰에 사건을 넘기기 하루 전인 2023년 8월1일, 박진희 당시 국방부 장관 군사보좌관은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조만간 이첩은 어려워 보인다(오전 10시17분).” “(박정훈) 수사단장은 (유재은) 법무관리관 개입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 같다(오전 10시27분).”
‘개입’이라는 걸 알면서도, 왜 경찰 이첩을 막아야 했을까. ‘빼내야 할’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확실한 혐의자는 수사 의뢰, 지휘 책임 관련 인원은 징계로 하는 것도 검토해달라(오후 12시6분).” 박진희 전 보좌관의 메시지는 법무관리관실의 재검토 건의 논리와 꼭 닮았다. 2023년 8월9일,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은 국방부 조사본부에 사건 재검토를 지시했다. 예정된 수순이었다.
앞서 채 상병 순직사건을 수사하던 해병대 수사단은 그야말로 ‘풍비박산’이 됐다. 국방부 장관은 해병대 수사단이 작성한 ‘채 상병 사망 원인 수사 및 사건처리 관련 보고’에 결재했다가 이튿날인 2023년 7월31일 돌연 결정을 뒤집어 경찰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 당일 예정된 언론 브리핑과 국회 국방위원회 보고도 모두 취소됐다. 수사를 이끌던 박정훈 해병대 수사단장은 2023년 8월2일 집단 항명 수괴 혐의(이후 항명으로 혐의 변경)로 입건됐다. 그 상황에서 국방부 조사본부는 김진락 수사단장을 포함해 15명 규모의 수사팀을 꾸리고, 해병대 수사단의 수사 기록을 넘겨받은 2023년 8월11일부터 사건을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막을 수 있는 인재’라는 같은 결론
사흘 뒤인 2023년 8월14일 국방부 조사본부 수사팀은 검토를 마치고, 그 결과를 국방부 검찰단과 국방부 법무관리관실에 통보했다. 〈시사IN〉은 당시 국방부 조사본부가 작성한 A4 용지 13쪽 분량의 ‘고 채 상병 사망사고 관계자별 사망의 원인이 되는 범죄의 단서가 되는 정황 판단(중간 보고서)’ 문건을 입수했다. 이 중간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본부는 채 상병의 죽음이 “수중 실종자 수색을 하지 않았거나, 수중 실종자 수색을 할 때 구명조끼를 입었거나 안전로프를 장착했다면” 막을 수 있는 인재(人災)였다고 결론 내렸다. 그리고 임성근 전 사단장도 ‘채 상병 사망의 원인이 되는 범죄’를 저지른 정황이 있다고 판단했다. 사실상 임 전 사단장에게도 업무상과실치사 혐의가 있다고 봤다. 해병대 수사단과 같은 결론이었다.
국방부 조사본부는 임성근 전 사단장의 혐의 내용을 3쪽에 걸쳐 구체적으로 중간 보고서에 담았다. 주된 내용은 이렇다. “작전 병력들이 물에 들어가지 않고 도로 위주 수색 활동을 하던 모습을 본 뒤, ‘(수변에) 내려가서 수풀을 헤치고 찔러보아야 한다. (물가에 들어가는) 그런 방법으로 71대대가 실종자를 찾은 것 아니냐? 내려가는 사람은 가슴 장화를 신어라’는 등 구체적인 수색 방법을 거론하는 바람에 결국, 고 채 상병이 장화를 신고 수중 실종자 수색을 하게끔 함.” “위험성 평가 여건을 보장하지 않으면서 오로지 작전 전개를 재촉.” “무릎 높이까지 입수해 위험하게 수색 중인 사실을 알게 됐지만, 외적 군기에만 관심을 둘 뿐 안전한 수색을 위한 주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
박정훈 대령의 변호인인 김정민 변호사는, 중간 보고서에 적힌 ‘조사본부 법무실장 의견’에 주목했다. 당시 조사본부 법무실장은 보고서 맨 마지막 단락에 법리검토 결과를 작성했다. “인지한 범죄사실 또는 범죄의 단서를 신속히 민간으로 이첩해 신속하고 공정한 수사가 진행되도록 하는 것이 개정 군사법원법의 취지에 부합함.” 김 변호사는 이 내용을 두고 “임성근 전 사단장의 혐의가 어느 정도 포착됐으니, 더 손대지 말고 바로 경찰에 넘기라는 취지를 박아둔 것”이라고 설명했다. “확실한 혐의자는 수사 의뢰, 지휘 책임 관련 인원은 징계”라는 국방부 의견과 전혀 다른 내용이 조사본부 중간 보고서에도 담긴 셈이다.
국방부 법무관리관실과 국방부 검찰단은 곧장 반대 의견을 냈다. 임성근 전 사단장을 포함한 4명에 대해 “과실은 있으나 사망과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고(법무관리관실)”, “과실은 인정된다고 보이나 정확한 관여 정도와 과실의 직간접성, 상당인과관계의 성립 여부 등에 판단이 제한(검찰단)”되니 업무상과실치사 혐의자에서 빼야 한다고 했다.

재검토 결과 발표를 나흘 앞둔 2023년 8월17일, 이종섭 전 장관은 국방부 조사본부, 법무관리관, 검찰단을 불러 모았다. 박경훈 당시 조사본부장 직무대리, 김진락 조사본부 수사단장, 유재은 법무관리관, 김동혁 검찰단장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임 전 사단장이 혐의자로 포함된 조사본부 중간 보고와 반대 의견이 오갔을 가능성이 크지만, 당시 국방부는 “중간 보고는 실시하지 않았다”라고 주장했다.
특검은 이즈음 박진희 전 군사보좌관이 김진락 전 단장에게 “(상부가) 원하는 대로 해주면 안 되냐” “혐의자를 6명으로 했는데, 2명만 하는 게 맞지 않냐”라고 말한 녹취록도 최근 확보했다. 해병대 수사단에 이어 조사본부에도 혐의자를 축소하라는 지시가 내려간 정황이다. 김 전 단장이 “장관의 지시냐”라고 묻자 박 전 보좌관은 “장관의 지시가 맞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종섭 전 장관 측은 이에 대해 “애초 이 전 장관이 국방부 조사본부에 재검토를 지시할 당시 국방부 검찰단 등의 의견도 들어보라고 지시한 바 있다. 이후 법무관리관실과 국방부 검찰단 의견(혐의자 2명)을 받아본 결과, 그 의견이 조사본부가 제시한 의견(혐의자 6명)보다 타당성이 있다고 판단해 군사보좌관과 관련 대화를 나눈 바 있다. ‘혐의자를 2명만 하라’고 구체적으로 지시한 사실은 없다”라고 주장했다.
“군사경찰 다 죽게 생겼다”
김정민 변호사는 “처음에는 조사본부에서 (해병대 수사단에) ‘걱정하지 마라. 우리도 무조건 사단장은 넘긴다’라고 하다가 어느 시점이 되니까 ‘군사경찰 다 죽게 생겼다’라는 불만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라고 이야기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시사IN〉은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2023년 8월 작성된 A4 용지 6쪽 분량의 ‘군 수사조직 개편 계획’ 문건을 확보했다. 해당 문건에 따르면 당시 국방부는 해병대 수사단 등 각 군 수사단을 해체해 조사본부로 일원화하는 동시에 전체 수사 인력을 799명에서 절반(399명)으로 줄이는 조직개편을 구상했다. 김 변호사는 “조사본부도 처음엔 버티려 한 걸로 알고 있다. 그런데 조직을 반으로 날려버리겠다는 압박을 견디긴 어렵진 않았겠나”라고 말했다. 국방부의 군 수사조직 개편 계획은, 조사본부가 최종 결과를 발표한 이후 실행이 무산됐다.
결과적으로 조사본부는 임성근 전 사단장에게 혐의가 있다는 판단을 철회했다. 재검토 열흘째인 2023년 8월20일, A4 용지 7쪽 분량의 ‘해병대 사망 件 재검토 결과(최종 보고서)’를 작성해 장관에게 보고했다. 중간 보고서에 임성근 전 사단장 등 6명의 업무상과실치사 혐의가 구체적으로 적힌 것과 달리, 최종 보고서에는 대대장 2명만 혐의자로 적시됐다.
특검은 조사본부에 대한 외압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최종 보고서가 나오기까지 여섯 차례 수정된 보고서를 모두 확보해 들여다보고 있다. 특검 관계자는 7월30일 “조사본부 재검토와 관련해 중점적으로 국방부 관계자들을 조사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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