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이 해병대수사단장으로 채 상병 순직 사건을 수사했던 박정훈 대령에 대한 체포영장 청구를 직접 지시한 사실이 새롭게 확인됐다. 박 대령이 TV 시사 프로그램에 출연해 공개적으로 수사 외압 관련 주장을 한 직후였다. 윤석열의 지시를 받은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과 군검찰단은 곧바로 체포영장을 청구했는데, 윤석열은 이 과정 전반을 모두 보고 받았다. 당시 체포영장은 총 두 차례 청구됐으나 군사법원에서 기각됐다. 군검찰단은 체포 시도 및 기각 사실을 숨기기 위해 영장 원본과 수사보고서 등 각종 기록을 은폐했다.

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 관련 의혹을 수사해 온 이명현 특별검사팀은 11월21일 윤석열과 사건 관련 핵심 피의자 12명을 재판에 넘겼다. 〈시사IN〉이 국회를 통해 확인한 특검 공소장을 보면, 2023년 채 상병 순직 사건에 대한 수사 외압이 이뤄질 당시 군검찰단이 박 대령에 대해 두 차례나 체포영장을 ‘은밀히’ 청구했는데, 이 영장 청구는 윤석열의 지시로 시작되었다.
공소장에 따르면 윤석열은 2023년 8월12일부터 13일까지 박정훈 대령에 대한 징계와 같은 ‘신속한 조치’가 어렵다는 사실을 이시원 당시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으로부터 확인했다. 하루 전인 8월11일, 박정훈 대령이 KBS 1TV의 시사 프로그램 〈사사건건〉에 출연해 공개적으로 ‘국방부 장관이 법무관리관 유재은을 통해 이첩 내용을 변경하려고 했다’라는 취지의 수사 외압을 폭로한 상황이었다. 군검찰단은 박 대령에게 항명 혐의를 적용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수사를 강행하고 있었지만 진전이 없었다.
앞서 윤석열은 이미 박 대령에 대한 신속한 조치를 지시한 바 있었다. 수사 외압 의혹이 막 불거진 시점이었던 2023년 8월2일 오후 1시30분께 신범철 당시 차관과 통화에서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데 여태 사태 파악이나 대응조치를 처리하지 않고 있느냐”라고 질책한 뒤 “국방부 장관과 함께 채 해병 사망 사건 이첩에 관한 신속한 대응조치를 취하고 결과를 보고하라”라고 지시했다. 당시 경찰로 넘어간 채 상병 수사기록 회수와 박 대령 항명 수사를 윤석열이 사실상 직접 지시하고 채근한 것이다.
2023년 8월14일 오전 10시9분과 17분,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은 이시원 당시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에게 두 차례 전화를 받았다. 통화에서 이 전 비서관은 ‘박정훈이 TV에 출연해 수사 외압을 주장해 논란을 증폭 시킨다. 박정훈에 대한 체포영장을 청구하라’는 취지의 윤석열의 지시를 전달했다. 박 대령에 대한 징계와 수사가 진전이 없고 신속하게 조치가 어렵다는 사실을 확인한 윤석열이 직접 수사 지휘를 한 셈이다. 윤석열의 지시를 전달받은 이종섭 장관은 같은 날 10시29분과 44분 김동혁 당시 군검찰단장에게 전화해 체포영장 청구를 지시했다. 이 지시는 박정훈 대령을 수사하던 군검찰단 관계자들에게 순차적으로 전달됐다. 군검찰단은 이날 오후 2시 중앙지역군사법원에 체포영장을 청구했다.
이날 체포영장 청구 과정과 결과는 모두 윤석열에게 상세하게 보고됐다. 윤석열의 체포영장 청구 지시를 받은 이종섭 당시 장관은 8월14일 오전 11시50분부터 오후 9시34분까지 김동혁 군검찰단장 또는 박진희 당시 군사보좌관을 통해 박정훈 대령에 대한 체포영장 청구 및 발부 여부를 확인했는데, 같은 날 오전 11시3분부터 오후 6시23분까지 이시원 전 비서관을 통해 윤석열에게 5차례에 걸쳐 체포영장 청구 및 발부 여부 등 관련 상황을 보고했다. 당시 군판사는 “체포의 필요성과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체포영장 청구를 기각했다. 다음날인 8월15일 김동혁 군검찰단장은 ‘외압은 없다’는 취지의 법리 검토 등 수사기밀을 보고서로 작성해 이시원 전 비서관을 통해 윤석열에게 보고하기도 했다.

군검찰단이 체포영장을 청구한 당일,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박정훈 대령 변호인은 군검찰수사심의위원회 소집 신청서를 제출했다. 박 대령에 대한 항명 혐의 수사가 정당한지 위원회 판단을 받아보겠다는 취지였다. 이종섭 당시 장관은 당초 심의위원을 이시원 전 비서관의 제안에 따라 대검찰청에 추천을 받으려 했으나 법무부가 거부하면서 협조를 받지 못했다. 특검 공소장에는 이종섭 당시 장관은 유재은 당시 국방부 법무관리관에게 “너무 박정훈에게만 유리한 것 같다. 국방부 입장을 대변할 사람도 필요하다. 국방정책자문위원도 알아보라”라고 지시했다. 유재은 당시 법무관리관의 지시를 받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실 소속 관계자들은 국방부 입장을 대변할 3명을 추가 위촉했다. 이후 2023년 8월25일 열린 군검찰수사심의위원회에선 5명이 수사 중단 의견을 냈지만 이종섭 당시 장관의 요구로 위촉된 위원들이 수사 계속 의견을 제시하고, 1명이 기권하면서 어느 의견도 과반수에 이르지 못하고 위원회가 종료됐다.
영장 기각되자 은폐
군검찰수사심의위원회 결과에 따라 박정훈 대령 항명 사건을 계속 수사할 수 있게 된 군검찰단은, 위원회 종료 직후 이종섭 당시 장관에게 박 대령 신병을 재차 시도하겠다고 보고했다. 동시에 박정훈 대령에게는 8월28일 군검찰단에 소환 조사를 받으라고 요구했다. 그런데 2023년 8월27일 저녁, MBC 〈스트레이트〉에 이른바 ‘VIP 격노설’과 관련한 보도와 박정훈 대령 측 변호인의 인터뷰 등이 나오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군검찰단은 이튿날 오전 8시42분에 체포영장을 청구했다. 오후 2시 박 대령의 출석이 예정되어 있음에도 은밀히, 서둘러서 신병 확보를 시도한 것이다. 박 대령의 출석 조사가 예정된 사실을 언론보도로 확인한 군판사는 “피의자(박정훈 대령)가 정당한 이유 없이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았거나 그럴 우려가 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며 기각했다.
두 차례의 체포영장 청구가 모두 무산되자, 군검찰단은 체포 시도 및 기각 사실을 숨기기 위해 영장 원본과 사본, 경위 관련 수사보고서 등 체포영장 청구 및 기각 사실을 알 수 있는 자료를 모두 은폐했다. 이후 군검찰단은 8월30일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기각됐다. 10월6일에는 항명죄 등으로 박 대령을 기소했다. 특검은 이를 두고 ‘죄가 되지 않는 걸 알면서 강행한’ 직권남용감금, 직권남용 범죄라고 판단했다.
특검 공소장은 총 171쪽 분량이다. 채 상병 순직 사건 수사 외압 사건의 구체적인 전개 과정과 결과가 담겼다. 특검은 윤석열의 격노로 모든 일이 시작됐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윤석열은 수사 외압 대부분의 단계에 직접 개입했고, 윤석열의 지시를 받은 이종섭 당시 장관과 국방부 핵심 관계자들은 실무자들을 지속적으로 압박했다고도 봤다. 외압을 폭로한 박정훈 대령에 대해서는 ‘정부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보복 수사’를 했다고 판단했다.
다만 윤석열 격노, 수사 외압의 동기인 ‘임성근 구명 로비’ 내용은 공소장에 포함되지 않았다. 수사 종료 시한이 임박한 가운데 당사자들의 비협조 등으로 충분한 사실 규명이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부정한 동기’는 고의성을 확인할 수 있는 핵심 요소로, 법원은 직권남용 혐의에 유죄를 선고할 때 중요하게 고려한다. 비어있는 외압 행사의 목적은 향후 재판의 핵심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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