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은 12·3 비상계엄 선포 관련 단전·단수 조치 대상이 된 언론사의 소방 도면들을 단독 입수했다. 이 도면을 보면 해당 언론사들의 핵심 시설과 공간 등이 한 눈에 확인된다. 앞서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이 12·3 비상계엄 선포 직후 허석곤 소방청장에게 “언론사에 대한 단전·단수에 협조하라”고 지시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바 있다. 단전·단수 업무에 직접적 관련이 없는 소방당국에 ‘언론사 단전·단수 협조’를 지시한 이유로 이 소방도면이 지목된다.
서울소방본부와 지역 소방서 등은 건물의 내부 구조를 알 수 있는 소방 도면을 의무적으로 보유하고 있다. 경찰청장과 소방청장을 지휘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던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이, 단전·단수를 비롯한 경찰의 언론사 ‘접수 작전’이 용이하도록 소방을 동원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나온다. 12·3 비상계엄 선포 직전 윤석열은 경찰 지휘부를 따로 불러 계엄 선포 시 ‘접수할 언론사’ 리스트를 넘겼다.

허석곤 소방청장은 1월13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현안질의에 출석해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계엄 선포 직후 이상민 전 장관으로부터 한겨레·경향·MBC에 대한 단전·단수 지시를 받았느냐”는 질문에 “몇몇 언론사에 대해 경찰청에서 단전·단수 요청이 있으면 협조하라는 전화를 받았다”고 답했다. 허 청장은 이후 조치 사항을 묻는 질의에 “과연 단전·단수가 소방 업무인지, 우리가 할 수 없는 부분이라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고 했다.
언론사 내부 구조 한 눈에 볼 수 있는 소방 도면
실제 단전·단수는 소방 업무가 아니다. 소방보다는 지자체 및 한국전력·수도사업소 업무 영역에 있다. 다만 소방당국은 건물 내부 구조를 한 눈에 알 수 있는 도면을 의무적으로 보유하고 있다. 소방시설법에 따르면, 400㎡이상 건축물의 신축·증축·개축·이전·용도변경 등이 이뤄지면, 이를 허가한 기관이 해당 건물의 내부구조를 알 수 있는 설계 도면을 소방본부나 관할 소방서에 제출해야 한다. 화재 예방 및 대응 등을 위해서다.
〈시사IN〉은 윤건영 의원실을 통해 서울소방재난본부로부터 단전·단수 대상 언론사(경향·한겨레·MBC·JTBC)의 소방 도면을 입수했다. 도면을 보면, 스프링클러와 방호 구역 등 건물 소방 시설 등과 해당 언론사들의 시설물들이 함께 표시되어 있다. 건물 설계도에 소방 시설을 추가해 그린 도면이라, 전기와 수도는 물론 각 언론사의 핵심 시설, 공간 등도 함께 나타나 있는 것이다. 만약 소방청이 이상민 전 장관의 지시대로 ‘협조’에 응했다면 이 소방도면이 ‘단전·단수’ 조치, 나아가 언론사 ‘접수 작전’에 도움이 될 만한 자료로 쓰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앞서 12·3 비상계엄 선포 직전 윤석열은 계엄 선포 직전 조지호 경찰청장(구속기소)과 김봉식 서울청장(구속기소)을 서울 삼청동 안가로 불러 ‘접수할 기관’ 10여 곳의 리스트를 넘겼다. 이번 단전·단수 조치 협조 대상 언론사들이 여기에 포함돼 있다. 소방에 언론사 단전·단수 협조를 지시한 이상민 전 장관은 경찰청장과 소방청장을 지휘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행정안전부 장관이었다. 소방시설법상 소방에 건축물 설계도를 제출할 의무가 있는 기관은 통상 지자체인데, 이 전 장관이 지자체보다는 자신이 신속하게 지휘할 수 있는 경찰과 소방에 먼저 전달했을 수 있다는 의혹도 나온다.
실제 이상민 전 장관으로부터 언론사 ‘단전·단수 협조’ 지시를 직접 받은 허석곤 소방청장은, 앞서의 언론사 도면을 보유하고 있던 서울소방재난본부에 직접 연락해 협조 지시를 전달했다. 윤건영 의원실이 공개한 서울소방재난본부 자료를 보면,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후인 지난해 12월3일 밤 11시50분께 허석곤 소방청장은 직접 서울소방재난본부에 연락해 “혹시 경찰로부터 협조 요청을 받은 사항이 있었느냐”고 물었다. “협조 요청을 받은 사항이 없다”고 답하자, 허 청장은 “서울에서 상황이 많을 수 있으니 발생 상황을 잘 챙겨달라”고 지시했다.
이보다 10분 앞선 밤 11시40분께에는 이영팔 소방청 차장이 황기석 서울소방재난본부장에게 전화를 걸어 “계엄 선포와 포고령이 발령됐고 그 내용을 아느냐”고 물었다. 황 본부장이 “뉴스 보도 내용을 보고 있다”고 답하자 이 차장은 “포고령과 관련해 경찰청에서 협조해 달라고 요청이 오면 잘 협력해 줬으면 좋겠다”고 반복해서 말했다. 황 본부장은 “알겠고, 알아서 하겠다”고 답변했다.
허석곤 소방청장이 이상민 전 장관에게 처음 단전·단수 협조 지시를 받은 시간은 지난해 12월3일 밤 11시37분이었다. 허석곤 소방청장은 앞서 국회에서 “단전·단수는 소방 업무가 아니라 지시를 받은 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 전 장관의 지시를 받은 직후, 언론사 도면을 가지고 있는 서울소방재난본부에 곧바로 직접 연락해 협력을 지시한 것이다.

소방에 언론사 단전·단수 협조를 지시한 이상민 전 장관은 지난해 12월3일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기 전 긴급 소집한 국무회의에 참석했다. 계엄 포고령에는 언론사 단전·단수 조치는 포함되지 않았다. 이 전 장관이 허 청장에게 단전·단수 지시를 한 시점은 계엄 선포 직후였다. 국무회의 이전에 이런 사실을 윤 대통령으로부터 전달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아무도 묻지 않은 ‘단전·단수’ 먼저 언급한 윤석열
실제 윤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2일 대국민 담화에서 “국회 기능을 마비시키려 했다면 국회 건물에 대한 단전·단수 조치부터 취했을 것이고 방송 송출도 제한했을 것이지만 어느 것도 하지 않았다”며 단전·단수 조치를 언급했다. 당시는 계엄과 관련한 여러 의혹들이 쏟아질 때였는데, 단전·단수 조치와 관련한 의혹은 불거진 바 없다. 윤석열이 아무도 묻지 않았던 이 조치를, 대국민 담화에서 스스로 먼저 언급했던 만큼 사전에 준비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계엄 선포 당일인 지난해 12월3일 울산에서 열린 중앙지방정책협의회에 참석했던 이상민 전 장관은 윤석열의 호출을 받고 예정된 일정을 갑자기 취소한 뒤 오후 5시40분께 KTX를 타고 용산 대통령실로 향했다. 이 전 장관은 기차 탑승 20여분 뒤 내란 중요임무종사 혐의를 받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구속기소)과 통화 했다. 김용현·이상민 전 장관은 충암고 선후배 사이다. 계엄법에 따라 계엄 선포를 대통령에게 건의할 수 있는 국무위원도 김용현 전 장관과 이상민 전 장관 두 사람이다.
이상민 전 장관은 12·3 비상계엄 해제 당일인 12월4일 새벽 서울 삼청동 대통령 안가에서 박성재 법무부 장관, 김주현 대통령실 민정수석, 이완규 법제처장과 따로 만났다. 안가 회동 목적을 두고 내란사태로 번진 계엄 선포에 대한 법적 대응을 논의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다. 계엄 해제 뒤에는 국회에 나와(12월5일) 이 전 장관은 “비상계엄은 고도의 통치 행위” “대통령은 헌법에 규정된 자신의 권한을 행사한 것” “국회 권한을 막고자 마음먹었다면 충분히 할 수 있었다”며 윤석열의 위헌·위법한 계엄 선포를 감쌌다. 그러면서도 언론사 단전·단수 조치 같은 자신이 내린 지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상민 전 장관은 국회에 탄핵소추안이 보고된 다음 날인 12월8일 사의를 밝혔다. 윤석열은 곧바로 면직을 재가했다. 현재 이 전 장관은 내란 혐의 등으로 고위공직자수사처(공수처) 수사를 받고 있다. 12월18일 검찰은 윤석열과 이 전 장관 수사를 공수처에 이첩했다.
윤건영 의원은 “소방청장과 차장은 이상민 전 장관의 언론사 단전·단수 협조 요청을 받은 후 서울소방재난본부장에게 별도 연락해 적극 협조를 당부하는 등 비상계엄과 내란에 동조한 정황이 드러났다. 국정조사를 통해 소방청이 비상계엄에 추가 가담한 사실이 없는지 철저히 규명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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