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현실적인 장면이었다. 서울 한복판에 헬기가 날아다녔다. 순식간에 몰려든 군이 국회 창문을 부수고 온몸을 욱여넣고 있었다. 눈물이 났다. 그렇다고 “저걸 어떡하지” 하고 발을 구른 건 아니었다. 충격을 받은 것도 아니었다. “드디어 저 사람이 이 짓거리까지 하는구나, 했어요.” 윤석열의 12·3 비상계엄 선포를 지켜본 ‘고발 사주’ 공익신고자 조성은 올마이티컴퍼니 대표(36)가 말했다.

2021년 9월, 대선 6개월 전 등장한 고발 사주 의혹은 처음으로 윤석열 개인을 직접 겨냥한 화살이었다. 조성은 대표는 제보자라는 사실을 처음 알릴 때, 스스로 불구덩이 속에 들어간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각오는 충분히 했다. 초연해진다는 말이 그대로 와닿을 때가 있다던데, 그때 분명히 그랬다.

윤석열 ‘고발 사주’ 의혹 공익신고자 조성은 올마이티컴퍼티 대표가 전혁수 KPI 기자와 함께 쓴 책 를 들고 있다. ⓒ시사IN 조남진
윤석열 ‘고발 사주’ 의혹 공익신고자 조성은 올마이티컴퍼티 대표가 전혁수 KPI 기자와 함께 쓴 책 〈정치검사〉를 들고 있다. ⓒ시사IN 조남진

그래도 고통스러웠다. 눈으로 보이지 않으니 ‘의혹’으로 불렸다. 수사기관들은 의혹의 정점으로 지목된 윤석열의 통신기록 한번 보지 못하고 그를 무혐의 처분했다. 검찰총장이라는 사정기관의 최고 권력자가, 주어진 권한을 남용해 선거에 개입하려 했다는 그 행위의 형태와 의도는 분명하게 느껴졌지만 윤석열에게는 끝내 닿지 않았다. 무언가가 부숴지고 산산조각 나는 느낌이었다. 이걸 나만 문제라고 생각하나? 법적으로 처벌되지 않으면 허용되는 행위인가? 내가 열심히 안 해서 그런가? 그렇다면 뭘 더 해야 하지? 꼬리를 무는 질문이 허탈과 분노로 이어졌다.

3년6개월이 지나고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검사 몇몇을 동원해서 할 수 있는 모든 행위를 통해 회피하고 망치고 뭉갰던 검찰 수장이, 이번에는 군을 움직여 국회를, 헌법을 부순 내란 수괴가 됐다. 고발 사주 의혹을 ‘무형의 어떤 것’이었다고 한다면, 계엄은 그것이 ‘드디어’ 실체화된 것이라고 느꼈다. 조성은 대표가 그날 밤, 군이 국회에 들어간 장면을 보고 울었던 건 그 느낌 때문이라고 했다.

조성은 대표는 고발 사주 의혹이 윤석열의 처음이자 마지막 제동장치였다고 말한다. 윤석열이 그때 단 한 번이라도 수사를 받는 ‘척’이라도 해봤다면, 법이 내 위에 있구나라는 걸 한 번이라도 경험해봤다면 그게 무서워서라도 “이 짓거리”까지는 안 했을 거라고 했다. 조 대표는 “단 한 번의 브레이크가 고발 사주 의혹이었어요. 거기서 제어가 안 됐던 거죠. 윤석열이 그때 학습을 했다고 생각해요. 위법적·위헌적 행위를 해도 제재받지 않고, 오히려 힘으로 뭉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던 거죠. 계엄 선포는 물론이고 오늘 이 순간까지도 당당히 ‘헛소리’를 할 수 있게 된 근본적 원인이자 동력이라고 봐요.”

조성은 대표는 비상계엄 선포 이후 몰랐던 감정들, 가치들에 대해 ‘발견’을 해나가고 있다.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된 날(2024년 12월14일) 국회 주변을 하염없이 걸었어요. 점점 어두워지니까 시민들이 응원봉을 꺼내 들더라고요.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 주황색같이 어떤 색깔이든 전부 섞으면 점점 어두워지고 나중에는 검은색이 돼요. 그런데 빛은 어떤 색이든 전부 합치면 투명해져요. 저는 고발 사주 의혹을 제보한 후로 평범한 선(善), 평범한 정의(正義) 이런 것들이 없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아니었어요. 투명해서 제가 못 봤던 거예요. 그걸 이제 봤어요. 늘 여기 있었는데. 국회가 부숴질 때 눈물이 났던 거랑 다른 의미로 벅차요. 그러면서 한편으론 저걸 부수려고 했던 사람은 뭐지? 나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랑 싸우고 있었던 거지?라는 생각도 들고요.”

조성은 대표는 정당인이었던 8년 전, 국회 본청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을 지켜봤다. 공고해 보이던 최고 권력이 고작 몇 달 만에 무너지는 걸 가까이서 지켜봤다. 무서웠다고 했다. 그때 광장에서 타올랐던 촛불이, 횃불이 언제든 정치권에, 공직 사회에 옮겨붙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때 가진 책임감이 용기가 되고 족쇄가 되어 고발 사주 의혹 제보로까지 이어졌다고 했다. 같이 의혹을 제기한 전혁수 KPI뉴스 기자와 쓴 책 〈정치검사〉에도 이 내용을 담았다.

조성은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권력자 한 명이 저지른 일 하나로 인해서 수년, 수십년 쌓아 올린 게 순식간에 무너져요. 1~2년 지난다고 회복되는 것도 아니고요. 검찰이 다시 정의로운 집단으로 신뢰받을 수 있을 때까지 도대체 몇 년이나 걸릴까요? 이제는 행정부도, 군도, 심지어 여론조사마저도 의심받는 상황이 됐잖아요. 이번 계엄에 대해선 정치권이 타협이나 협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계엄 선포가 전두환 이후로 40년 정도 걸렸잖아요? 대통령 탄핵은 8년 만에 또 찾아왔어요. 이번에 유야무야 지나가면 더 빠른 시간 안에 이런 일이 또 찾아올 수도 있어요.”

조성은 대표는 고발 사주 의혹이 윤석열의 처음이자 마지막 제동장치였다고 말한다. ⓒ시사IN 조남진
조성은 대표는 고발 사주 의혹이 윤석열의 처음이자 마지막 제동장치였다고 말한다. ⓒ시사IN 조남진

조성은 대표는 다시 윤석열과 싸우는 걸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다. 최근 윤석열 부부와 명태균씨가 나눈 SNS 대화 내용이 담긴 검찰 수사보고서가 공개된 직후부터다. 윤석열 부부가 연루된 이른바 ‘고발 사주’ 의혹에 대해 명씨가 프레임 전환을 해야 한다고 말한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명태균씨 공천 개입 의혹을 수사 중인 창원지검이 작성한 보고서를 보면, 2021년 9월12일 명씨는 조성은 대표가 페이스북에 쓴 글을 김건희 여사에게 공유했다. 김 여사가 ‘어쩌죠ㅠ’ ‘괜찮을까요’라며 걱정하자, 명씨는 “보수 유튜버들의 용어 선택도 고발 사주 의혹 건이 아니라 박지원-조성은 게이트 건으로 바뀌어야 한다”라며 사건 명칭을 바꿔서 프레임을 전환하자는 취지로 제안했다. 실제로 같은 날 국민의힘 김기현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고 “박지원-조성은 사이의 커넥션, 이 ‘박지원 게이트’라고 부를 수 있는 사건이 벌어진 배경에 강한 의심이 간다”라며 “정치 공작, 선거 공작의 망령을 떠오르게 하는 대형 게이트로 번질 가능성이 농후하다”라고 주장했다.

조성은 대표는 당시 고발 사주 의혹을 박지원-조성은 게이트, 이른바 ‘제보 사주’라고 바꿔 부르며 공격한 김기현·권성동·장제원·윤한홍·이영 국민의힘 의원 등을 공직선거법 위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명예훼손, 협박, 공익신고자보호법 위반 등 혐의로 고소했지만 수사기관은 이들을 무혐의 처분했다. 국회의원들의 “제보 사주 의혹을 언론보도를 통해 알았고, 그걸 믿었다”라는 주장이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이번 창원지검 수사보고서를 보면, 김건희씨와 명태균씨의 대화가 김기현 의원 등의 주장으로 구체화됐고, 이후 언론보도로 이어진 사실이 확인된다. ‘제보 사주’ 프레임이 앞서 국회의원들의 주장과 정반대 순서로 세상에 나왔다는 뜻이다. 조성은 대표는 물었다. “윤석열, 김건희씨, 명태균씨 3명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낼까 해요. 얼마를 청구하면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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