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12월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계엄 관련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질의를 듣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12월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계엄 관련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질의를 듣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내란 수괴 혐의로 구속돼 재판에 넘겨진 윤석열이 계엄 선포 직후 언론사 단전·단수 지시가 담긴 문건을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보여준 것으로 확인됐다. 지시를 받은 이 전 장관은 허석곤 소방청장에게 연락해 윤석열의 지시 사항을 전달했다. 앞서 경찰 수사 과정에서 비상계엄에 반대했다고 진술했던 이 전 장관이 계엄 직후 윤석열 지시를 그대로 이행했다는 뜻이다.

〈시사IN〉이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윤석열에 대한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본부장 박세현 고검장) 공소장을 보면, 윤석열은 지난해 12월3일 비상계엄 선포 직전 대통령 집무실에서 이 전 장관에게 ‘24시께 한겨레와 경향신문, MBC, JTBC, 여론조사 꽃을 봉쇄하고 소방청을 통해 단전, 단수를 하라'는 내용이 기재된 문건을 보여주고 비상계엄 선포 이후 조치 사항을 직접 지시했다. 언론사 단전·단수 관련 문건이 존재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건 처음이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검찰 공소장에 적힌 언론사 단전·단수 지시 문건 관련 내용. ⓒ검찰 공소장 갈무리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검찰 공소장에 적힌 언론사 단전·단수 지시 문건 관련 내용. ⓒ검찰 공소장 갈무리

윤석열의 지시를 받은 이상민 전 장관은 비상계엄 포고령 발령 직후인 지난해 12월3일 밤 11시34분께 조지호 당시 경찰청장에게 연락해 경찰의 조치 상황을 확인했다. 3분 뒤인 11시37분에는 허석곤 소방청장에게 전화해 “한겨레와 경향신문, MBC, JTBC, 여론조사 꽃에 경찰이 투입될 것이다. 경찰청에서 단전, 단수 협조 요청이 오면 조치해 줘라”고 지시했다. 이후 허 청장은 이를 이영팔 소방청 차장에게 전달하는 등 비슷한 지시가 아래로 하달됐다는 게 검찰 판단이다.

이 같은 지시는 비상계엄 선포를 앞두고 윤석열이 국무회의를 소집한 직후 이뤄졌다. 윤석열은 12월3일 오후 8시20분~10시 사이 소집 지시를 받고 출석한 국무위원 숫자가 회의 정족수에 이르지 못한 상황에서, 한덕수 국무총리, 최상목 당시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 등의 만류를 뿌리치고 미리 준비한 지시 사항이 담긴 문건을 일부 국무위원에게 건넸다. 이 시점에 지시 사항이 담긴 문건을 받은 건 이상민 전 장관과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에게 전달된 문건에는 ‘재외공관을 통해 대외 관계를 안정화시켜라’라는 내용이 적혔다.

앞서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은 지난해 12월16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에 출석해 비상계엄 선포 직전 윤석열에게 “국무위원 전원이 반대하고 있다”고 말하며 비상계엄 선포를 말렸다고 진술했다. 이 전 장관은 당시 국무회의에서 ‘안건 제안, 제안 이유 설명, 안건 토의, 의결 과정이 있었느냐’는 경찰의 질문에 모두 “없었다”고 답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 전 장관은 경찰 조사에서 국무회의 성립 여부에 대해 “사법적 판단을 받아야 할 사안”이라고도 진술했다.

다만 이 전 장관은 경찰 조사에서 12·3 비상계엄 당시 언론사에 단전·단수를 지시한 사실은 부인했다. ‘비상계엄 선포 직후 허석곤 소방청장과 통화하며 무엇을 지시했느냐’는 경찰의 추궁에 이 전 장관은 “사건사고 들어온 것이 있냐, 국민들 안전을 각별히 챙겨달라고 말한 것”이라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검찰은 윤석열 공소장에서 이 전 장관이 단전·단수 지시를 이행했다고 판단했다. 경찰 조사에서 비상계엄을 반대했다던 이 전 장관이 계엄 선포 직후 지시 사항을 그대로 이행했지만, 이에 대해 진술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윤석열을 대리하는 윤갑근 변호사도 언론사 단전·단수 지시에 대해 부인한 바 있다. “언론사 단전·단수 지시를 이상민 장관이 소방청장에게 했다는 의혹이 있는데 윤석열 대통령의 지시인가”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1월21일 윤 변호사는 “전혀 대통령 지시가 아니다. 이상민 장관도 그런 지시한 적 없다고 하는 걸로 알고 있다. 분명한 것은 대통령이나 국방부 장관 등 계엄의 결정권자들로부터는 그런 지시가 내려간 적 없다는 걸 말씀드린다”라고 주장했다.

1월22일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가 1차 청문회를 열었다. 한덕수 국무총리를 비롯해 이날 출석한 증인들이 증인 선서를 하고 있다. 이상민 전 행안부 장관(왼쪽 두 번째)은 증인 선서를 거부했다. ⓒ시사IN 신선영
1월22일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가 1차 청문회를 열었다. 한덕수 국무총리를 비롯해 이날 출석한 증인들이 증인 선서를 하고 있다. 이상민 전 행안부 장관(왼쪽 두 번째)은 증인 선서를 거부했다. ⓒ시사IN 신선영

이상민 전 장관은 현재 경찰이 피의자로 입건해 수사 중이다. 공수처가 사건을 검찰부터 이첩받아 수사하다가, 이 사건을 다시 경찰로 넘겼다. 공범을 폭넓게 인정하는 내란죄 특성상 모의를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거나, 소극적으로 동조한 사람도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특히 부화수행(줏대 없이 다른 사람 주장을 따라 행동함)이나 단순 가담자도 5년 이하 징역 또는 금고에 처해진다.

한편 윤석열 형사재판은 오는 2월20일 오전 10시에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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