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현 금융위원장, 추경호 기재부장관, 원희룡 국토교통부장관(왼쪽부터)이 9월26일 주택공급 활성화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주현 금융위원장, 추경호 기재부장관, 원희룡 국토교통부장관(왼쪽부터)이 9월26일 주택공급 활성화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9월26일 주택 공급 활성화 방안(9·26 대책)을 발표했다. 3기 신도시 등 공공부문의 주택 공급량을 늘리고, 민간의 공급도 활성화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정부는 이번 정책 발표 배경에 대해 “최근 주택 공급(인허가·착공)의 위축으로 장래 수급불균형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언론에서 연일 ‘공급이 줄고 있다. 이대로 두면 2~3년 후에 부동산 가격이 폭등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대두되었는데, 이에 대한 정부의 응답이라는 것이다.

‘공급 부족’은 익숙한 말이다. 각종 부동산 규제정책이 발표되던 문재인 정부 초반에도,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유동성이 확대되어 집값이 폭등하던 2020~2021년에도 공급부족론이 제기됐다. 지난 대선에서 각 후보는 부동산 공급 계획을 주요 공약으로 내밀었고, 집권 후 윤석열 정부도 전국 270만 호 주택 공급을 약속했다. 그러나 가격이 오르든 내리든, 금리가 높든 낮든 ‘공급이 부족하다’는 주장은 변하지 않는다. 이 주장은 왜 반복되며 이번 대책에는 어떤 함의가 담겨 있을까?

9·26 대책 발표 전까지 부동산 시장은 혼란스러웠다. 정부 정책은 갈지(之)자 행보를 반복했다. 2022년 하반기부터 올해 초까지 주택시장은 급락을 경험했다. 거래가 끊기고 가격이 큰 폭으로 하락하자 정부는 연착륙을 유도한다는 명분으로 특례보금자리론을 확대하며 수요를 촉진시켰다. 그러자 ‘50년 주택담보대출’과 같은 ‘기형적인’ 금융상품까지 등장하며 시장이 과열 양상을 보였고, 5대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은 지난 5월부터 줄곧 증가했다.

9월13일, 정부는 뒤늦게 특례보금자리론을 축소하며 과열된 분위기를 식히려 했다. 하지만 올해 겪은 단기적 가격 반등은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일부 지역 아파트에 국한됐을 뿐이다. 지역별 불균형이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집값이 다시 회복하고 있으며 앞으로 오를 것’이라는 희망 섞인 전망과 ‘정책금융에 따른 단기적 반등에 불과하다’는 비관론이 뒤엉켜 있다. 9·26 대책이 이 같은 시장 분위기 속에서 공개됐다.

우선 정책 배경이 된 ‘장래 수급불균형’이 어떤 의미인지 살펴보자. 현 시점에 제기된 공급부족론의 핵심 근거는 신규 주택 공급의 선행지표인 ‘인허가’와 ‘착공’ 건수가 급감했다는 것이다. 부동산 개발사업은 인허가→착공→분양→준공(입주) 순으로 진행된다. 시행사가 토지 등을 확보한 뒤 인허가를 거쳐 착공할 경우, 보통 2~3년 이내에는 건물을 준공하고 입주자를 받아들인다. 그래서 인허가와 착공 건수는 향후 시장에 공급될 신규 주택의 수를 추정하게 한다.

2022년 하반기 부동산 시장이 급격히 침체되자 정부는 수요 진작 정책을 내세웠다. 사진은 공사 중단 위기에 처했던 올림픽파크포레온(둔촌주공 재건축 사업) 건설 현장. ⓒ시사IN 신선영
2022년 하반기 부동산 시장이 급격히 침체되자 정부는 수요 진작 정책을 내세웠다. 사진은 공사 중단 위기에 처했던 올림픽파크포레온(둔촌주공 재건축 사업) 건설 현장. ⓒ시사IN 신선영

매년 반복되는 ‘공급 부족’ 주장

지표만 놓고 보면 인허가와 착공 건이 대폭 줄어든 게 사실이다. 올해 8월까지 인허가 건수는 전년 동기 대비 39%가 감소했고, 착공 물량도 전년 동기 대비 56% 줄었다. 수치만 놓고 보면 2~3년 후 신규 주택 공급이 줄어들 것이라는 예상은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 ‘국가가 나서서 가격 폭등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인지는 확언하기 어렵다. 두 가지 때문이다.

첫째, 신규 주택만 공급인 것은 아니다. 주택 수요와 주택 공급이 만나 시장에서 가격을 형성한다. 경제학의 간명한 논리다. 현재 공급부족론의 핵심은 2~3년 뒤에 신규 주택이 시장에 부족하기 때문에 공급이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전반적인 가격이 오른다는 것이다. 그런데 기존 주택 매물도 시장에서는 공급의 주축이 된다. 개별 주택 보유자들은 투자 관점에서 본인 집을 내놓는다. 다주택자뿐만 아니라 1주택 보유자라 해도 시장 상황과 개인의 재무적 판단에 따라 보유한 주택을 팔고 임차 생활을 할 수 있다. 신규 주택이 인기가 좋은 것은 사실이지만, 신규 주택 물량만으로 시장의 전체 공급량이 결정되진 않는다.

둘째, 공급이 가격을 결정짓는 단일 요인이 아니다. 공급이 부족하면 가격이 오른다는 논리는 공급이 넘치면 가격이 떨어진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그러나 실제 시장은 그렇게 움직이지 않았다. 수도권 아파트 입주 물량을 나타내는 아래 그래프를 살펴보자. 2018년은 ‘역대급’으로 입주 물량이 많았던 시절이다. 그러나 입주 물량이 많던 당시 부동산 가격은 오히려 상승했다. 흥미로운 것은 이때도 언론에는 ‘공급 부족’이 등장했고, 당시 문재인 정부는 ‘공급 확대를 위한 3기 신도시 정책’을 발표했다는 점이다.

공급은 민간 주체의 판단에 따라 들쭉날쭉하다. 다만 정부의 정책 기조가 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치긴 한다. 윤석열 정부의 ‘장기 공급 정책’은 확대 경향을 유지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추진된 3기 신도시 정책을 그대로 계승할 뿐만 아니라 신규 택지지구를 연이어 발표하고 있다. 이번 9·26 대책에서는 3기 신도시의 녹지 비율을 축소하면서까지 주택 수를 늘려 밀도를 높이겠다고 밝혔다.

정권의 공급 정책 기조가 끼치는 영향은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를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를 출범시킨 이명박 정부는 공공이 중심이 되는 보금자리주택 사업을 통해 수도권 그린벨트에 대규모 택지개발을 추진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동안 부동산 침체기가 이어졌고, ‘하우스 푸어’로 대표되는 가계부채 문제가 확대됐다. 뒤이은 박근혜 정부는 2014년 택지개발촉진법을 폐지하며 대규모 공공택지 지정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장기적인 공급 환경을 틀어막은 셈이다. 이후 문재인 정부에서는 다시 부동산 가격 상승에 직면하며 3기 신도시를 통해 ‘대규모 공급 기틀 마련’을 부활시켰다. 각 정부의 ‘큰 그림’이 연달아 후임 정부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다. 9·26 대책을 통해 확인 가능한 것은, 적어도 현재까지 윤석열 정부가 집권 초반에 설정한 ‘큰 그림’을 수정하진 않았다는 것이다.

9·26 대책에서 더 유심히 살펴봐야 하는 대목은 ‘민간 공급 활성화’라는 이름으로 제시된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 관련 대책이다. 이날 정부는 PF 대출 보증 규모를 15조원에서 25조원으로 늘리고, 보증 대출 한도도 총사업비의 50%에서 70%로 높이겠다고 밝혔다. 금융지원, PF 대주단 협약 지원 등을 통해 사업을 계속할 수 있는 현장(정상 사업장)은 최대한 분양까지 살리겠다는 태도다. 이번 공급 대책을 사실상 PF 대책이라고 봐야 하는 이유다.

부동산 PF는 한국 경제의 핵심 뇌관으로 지목받고 있다. 저금리 환경에서 시작된 부동산 PF가 고금리 환경에서 부실화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 한국에서 PF를 동원한 부동산 개발사업은 크게 3단계 자금이 동원된다. 브리지론(1차 대출)을 통해 토지를 구입하고, 인허가 후 본PF(2차 대출)로 대출을 갈아탄 뒤, 분양(판매)을 통해 공사비를 충당한다. 시행사가 처음부터 자기자본을 대거 투자하는 방식이 아니다.

이 같은 사업 구조가 유기적으로 굴러가기 위해서는 결국 시공사(건설사)의 ‘책임 준공’이 필요하다. 책임 준공이란 시공사가 시행사에 자금 문제가 생겨서 공사비를 지급하지 못하더라도 예정된 기간 내에 준공을 마치는 의무를 뜻한다. 시공사가 끝끝내 자기자본을 들여서라도 공사를 마쳐야 분양을 통해 최종적인 자금 회수가 가능하다. 이런 구조에서는 PF 위기가 건설사의 위기로 이어지기 쉽다.

앞서 설명한 ‘인허가’ ‘착공’과 PF 구조를 맞물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인허가 건수가 감소했다는 것은 브리지론(1차 대출)에서 본PF(2차 대출)로 넘어가지 못하는 사업장이 많다는 의미다. 브리지론은 본PF에 비해 이자율이 높다. 사업이 지체될수록 더 많은 이자비용이 들어간다. 지난해 인허가를 받았으나 올해 상반기까지 착공하지 않은 사업장, 이른바 ‘착공 대기물량’은 약 33만 호, ‘인허가 완료 대비 미착공 비율’은 63.3%에 달한다.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던 2021년에는 착공 대기물량이 19만 호, 비율은 41.8% 수준에 그쳤다.

만약 인허가까지 넘어가지 못하고 사업을 포기하면 어떻게 될까? 확보한 토지를 팔아도 브리지론을 갚기 어려울 수도 있다. 시중은행이 주축이 되는 본PF와 달리, 브리지론은 주로 제2금융권(증권사·캐피탈·저축은행)에서 조달하는 경우가 많다. 시행사가 브리지론을 갚지 못할 경우, 이는 금융권의 부실로 이어진다. 금융권에서 PF 문제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다.

다수 PF 사업이 멈춘 것은 사업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사업성이 나쁘다는 것은 예상보다 비용이 많이 들어가거나 판매가 이뤄지기 힘들어 보인다는 뜻이다. 주택 개발사업에서 사업비용은 토지 구매, 인건비, 공사 자재비 등에 소요된다. 부동산 상승기에 사업을 추진한 시행사들은 토지를 비싸게 구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인건비와 자재비가 인플레이션의 영향으로 꾸준히 상승했고, 결국 이윤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늘어난 비용을 분양가에 전가해 판매를 완료해야 한다.

분양가를 올려도 주택 수요가 많아서 이른바 ‘완판’된다면 문제가 없다. 그러나 수요 측면의 분위기도 심상치 않다. 미국 연준의 고금리 기조가 장기화되면서 각종 채권의 금리도 덩달아 오르고 있다. 10월5일 기준 5대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변동금리는 연 4.17%에서 6.28% 수준이다. 금융기관의 조달금리가 높아질수록 주택담보대출도 따라서 높아진다. 올해 5월4일 3.93%였던 은행채 5년물 금리는 5개월 만인 10월5일 4.51%까지 올랐다. 고금리는 주택 수요에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부동산PF 사업자의 브리지론, 본PF 이자 비용도 높인다. 시행사 입장에서는 버티자니 이자를 더 내야 하고, 바로 착공하자니 사업비 회수가 어렵다. 그래서 정부 발표에서 언급된 ‘PF 재구조화’를 유심히 살펴야 한다. 살릴 PF는 살리고, 그렇지 못한 PF는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향동지구. 아파트 단지 인근에 대규모 지식산업센터가 세워지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향동지구. 아파트 단지 인근에 대규모 지식산업센터가 세워지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부동산 PF를 재구조화하더라도 빈익빈 부익부가 존재한다. 현재 문제가 되는 PF의 절반 이상이 오피스텔, 생활형 숙박시설(생숙), 지식산업센터(지산), 근린생활시설(근생), 물류창고 같은 비주택 유형이다. 반면 정부가 PF 부실화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해 출범시킨 PF 대주단에서 논의 중인 사업장은 주거시설 비중이 높다. 9월12일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용도별 PF 대주단 협약 통계를 보면, 전체 187개 사업장 가운데 114개가 주거시설이다. 비수도권에 위치한 사업장도 미분양 위험이 높아 PF 재구조화가 쉽지 않다. 만기를 늘리는 것도 ‘기다리면 시장이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있어야 가능하다. 현 시점 수도권은 ‘그래도 분양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가능하지만 이미 미분양률이 높은 비수도권은 사정이 다르다.

자산시장에서는 이 때문에 오피스텔 같은 수익형 부동산과 비수도권을 위한 수요 대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흘러나오고 있다. 9·26 대책 발표를 앞두고 일각에서는 오피스텔을 주택 수에 포함하지 않고, 비수도권 지방 부동산을 가진 사람들은 ‘다주택 규제’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자는 주장이 제기됐다. 수익형 부동산과 비수도권 지방 부동산의 수요를 끌어올리자는 얘기다. 수요 없이는 비수도권·비주택 PF 문제 해결이 난망하다는 관점이 반영된 주장이다.

수요 진작 포기 못하는 윤석열 정부

정부도 이런 주장을 완전히 무시하지 않고 있다. 수요 진작을 위한 정책을 만지작거리는 모습이다. 9월21일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초청 토론회에 참석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농·산·어촌에 대해 1가구 1주택 규제를 풀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나흘은 도시에서, 사흘은 농·산·어촌에서 생활하는 ‘생활 인구’ 개념이 확대되어야 지역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언뜻 지방 소멸을 방지하기 위한 아이디어 같지만, 부동산 시장에서 이 말을 단순히 흘려 넘기기는 어려웠다. 이 발언이 나오기 직전, 국토교통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국토연구원이 ‘묘한’ 자료를 하나 발표했기 때문이다.

국토연구원은 9월6일 ‘다주택자 규제정책의 전환 필요성과 과제’라는 보고서를 공개한다. 부동산 시장 안정과 지방 소멸에 대처하기 위해 다주택자의 기준을 2주택에서 3주택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담겨 있다. 특히 이 보고서는 “다주택 소유와 다주택 거주는 다르다”라며 비수도권 지방 농어촌주택을 하나 더 갖는 개념을 ‘다주택자 개념 전환’의 예시로 들고 있는데, 앞선 원희룡 장관의 발언과 맞닿는다. 현금이 있는 사람들에게 비수도권 지역 수요를 열어주는 정책적 접근이다. 지난 8월23일, 윤석열 인수위 부동산TF 팀장을 맡았던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가 국토연구원 원장으로 선임되었다. 심 원장 선임 직후 발행한 첫 정책 자료가 ‘다주택자 확대’인 점은 의미심장하다. 현 정부의 정책 기조를 엿볼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러나 정부가 만지작거리는 수요 진작 카드가 고금리 시대에 제대로 작동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점도 있다. 〈부동산을 공부할 결심〉을 쓴 배문성 라이프자산운용 이사는 “이명박 정부 때에는 수도권은 규제를 유지하면서 비수도권 규제를 완화해 유동성이 비수도권으로 풀리는 경향이 나타났다. 수도권으로 흘러가는 유동성을 막는 장치가 없다면, (다주택 규제가 완화되더라도) 정책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 가계부채 증가를 정부가 여기서 더 용인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는 현금 부자들이 오피스텔이나 비수도권 주택을 구입하는 것인데, 국채만 사도 4% 넘게 받는 상황에서 현금 부자들이 수익형 부동산에 투자할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