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지역을 대표했던 경기도 수원시 팔달문로터리 상권에 빈 점포가 늘고 있다. ⓒ시사IN 조남진
한때 지역을 대표했던 경기도 수원시 팔달문로터리 상권에 빈 점포가 늘고 있다. ⓒ시사IN 조남진

1988년 8월27일, 〈매일경제〉에 이런 기사가 실렸다. “동대문 상가 점포 부족, 갈수록 심각. 상권이 확장되면서 점포난이 가중되어 창고로 쓰이던 건물이 상가화될 움직임이다.” 고도성장기 상가는 늘 부족한 자원이었다. 활성화된 상권에는 장사할 만한 상가가 부족해 길목마다 노점이 들어섰고, 어지간한 상가는 임대료 외에 각종 권리금이 관습적으로 통용되었다. 목 좋은 곳에서 장사를 하려면 웃돈을 감수해야 했던 시절이다.

35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180도 바뀌었다. 상가가 넘쳐난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2023년 2분기 전국 상가 공실률은 9.3%다. 전국 상가 열 곳 중 한 곳은 비어 있다는 의미다. 점포가 개업과 폐업을 반복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리 심각해 보이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평균의 이면에는 ‘공실이 몰리는 지역이 따로 있다’는 현실이 존재한다.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한국 사회는 ‘거리두기가 해제되고 다시 사람들이 모이게 되면 자영업자들의 사정이 나아질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가졌다. 하지만 엔데믹 국면에서도 빈 상가 수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폐업한 사람들이 돌아오지 않은 것일까? 서울연구원과 서울신용보증재단은 2022년 12월, 흥미로운 공동 연구 보고서를 하나 발표한다. ‘코로나19 이후 서울시 자영업자 폐업의 특성 분석’이라는 이 보고서는 코로나19 시기에 숙박업, 음식점업 등 대부분 업종에서 폐업이 늘지 않았다고 분석한다. 자영업자들이 팬데믹 국면에서 과감하게 문을 닫은 게 아니라 보조금과 대출 등으로 겨우 버텼다는 것이다.

폐업이 늘지 않았는데도 공실은 확대됐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볼 필요가 있다. 팬데믹과 상관없이 지난 수년 동안 상가의 공급이 수요를 넘어섰다면 그 원인은 무엇일까. ‘빈 가게’가 늘어나는 지역의 특징은 무엇이며, 이런 상가 공실 문제가 사회적으로 끼치는 영향은 무엇이 있을까?

〈시사IN〉은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하는 ‘상업용부동산 임대동향조사’를 바탕으로 상가 공실 문제가 발생하는 주요 지역을 찾았다. 이 과정에서 공실 문제가 전국적으로 비슷한 경로로 발생한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상권에 대한 기존 상식에서 어긋나는 특징도 발견했다. 상가 공실 문제는 전국 지자체가 벌여온 도시의 확장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우리가 가진 세 가지 오해를 중심으로 2023년 상가 공실 문제의 현주소를 살펴보자.

오해 1. 광역시나 대학 근처는 괜찮겠지

광주광역시 동구 충장로에는 ‘충파’라고 불리는 작은 건물이 하나 있다. 과거 충장파출소로 불렸던 충장치안센터 건물이다. 충파에서 옛 광주우체국(현 충장로우체국)까지 이어지는 충장로 2·3가는 금남로와 함께 2000년대까지 광주의 중심 상권으로 기능했다. 광주시민들에게 충파는 파출소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시내 정중앙을 뜻하는 일종의 지표처럼 통용됐다.

그런 충파가 지난해 11월21일 문을 닫았다. 당시 광주경찰청은 2003년 이후 민원 처리 기능만 유지해왔던 충장치안센터를 폐쇄하고, 인근 금남지구대로 인력을 집중 배치한다고 설명했다. 폐쇄되기 전에도 이미 수년간 명맥만 유지해왔다는 것이다. 폐쇄의 배경에는 ‘상권 소멸’이 있다. 5·18 민주화운동의 성지와 같았던 금남로·충장로 일대가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빈 상가 지역’이 된 탓이다.

한국부동산원은 상가 시장을 소규모 상가(2층 이하, 연면적 330㎡ 이하)와 중대형 상가(3층 이상, 연면적 330㎡ 초과), 그리고 상가를 지어 분양하는 집합 상가로 나누어 분기마다 분석한다. 이 자료에는 각 지역 대표 상권을 표본조사한 공실률도 포함되어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 2분기 광주 금남로·충장로 상권의 공실률은 소규모 상가 15.4%, 중대형 상가 29.9%, 집합 상가 19% 수준이다. 이 지역에 중대형 상가가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가 세 곳 중 한 곳이 비었다는 의미가 된다.

9월11일 충장로에서 만난 한 지역 주민은 “상권이 죽은 지 꽤 됐다. 사람들도 상무지구나 수완지구에서 약속을 잡는다”라고 설명했다. 동쪽에 위치한 광주 원도심(구도심)과 달리, 2000년대 공공기관이 이전한 상무지구와 2010년대 대규모 주택개발이 이뤄진 수완지구 등 신도시는 모두 서쪽에 위치해 있다. 상권을 지탱하던 주요 요건, 요컨대 주택과 공공기관, 기업 등이 신도시로 옮겨가면 그 여파(원도심 공동화)는 수년에 걸쳐 나타난다. 원도심 상권도 한동안은 버티지만, 점차 상권의 에너지를 잃는다. 금남로·충장로 상권의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2013년부터 2019년까지 15~17% 수준을 유지했다. 그러나 2020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이 지역 공실률은 급격히 늘어나는 추세다. 지역 상인들과 지자체가 ‘카카오페이 5000원 페이백 이벤트’ 같은 상권 활성화 대책을 세우고 있지만 도시의 서쪽으로 발길을 돌린 사람들을 되돌려 세우기엔 역부족이다.

충장로에서 만난 다른 주민은 “그래도 젊은 친구들은 전남대 근처로 자주 간다”라고 말했다. 대학가 상권은 굳건하리라는 기대가 섞인 말이었다. 하지만 지역민들의 기대와 현실은 크게 달랐다. 이날 찾은 전남대 후문 인근 상가는 한 집 걸러 한 집꼴로 빈 점포를 찾을 수 있었다. 한 프랜차이즈 주점 간판에는 ‘비품 대금, 권리금 없음’이라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시설 설비 그대로 가게를 내놓겠다는 의미다.

호남에서 가장 큰 대학가인 전남대 인근은 단순 대학 배후상권이 아니다. 각종 공무원시험 학원 등도 이 일대에 몰려 있다. 그러나 지표로 나타난 대학 상권의 쇠락은 금남로·충장로보다 심각하다. 올해 2분기 전남대 인근 상권 공실률은 소규모 상가 17.1%, 중대형 상가 45.5%를 기록했다. 특히 중대형 상가 공실률 상승 폭이 가파르다.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1년 2분기에는 18.8%였지만, 지난해 3분기부터 공실률이 30%를 넘어서더니 올해 처음으로 50%에 육박하는 수준까지 올랐다. 지역 주민들은 젊은 세대들의 소비 패턴 변화와 젊은 인구 유출, 그리고 물가상승으로 인해 대학생들의 소비 여력이 떨어진 점을 상권 쇠퇴의 원인으로 보고 있었다.

상가가 과잉 공급된 수도권 신도시에서도 빈 점포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시사IN 조남진
상가가 과잉 공급된 수도권 신도시에서도 빈 점포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시사IN 조남진

원도심과 대학 인근 상권이 초토화되는 문제는 광주만 겪는 것이 아니다. 정도는 다르지만, 전국 비수도권 광역시에서 비슷한 풍경을 마주할 수 있다. 아무리 비수도권 지역이라고 해도 광역시는 빈 상가가 많지 않으리라는 기대, 아무리 사람이 없어도 이름난 대학가 근처에는 젊은 소비층이 많을 것이라는 편견이 무너지고 있다.

울산광역시도 비슷하다. 지난 2분기 울산 원도심 성남동·옥교동 상권의 공실률은 소규모 상가 7.9%, 중대형 상가 22.7%, 집합 상가 25.9%다.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공실 지역이다. 대학가도 마찬가지다. 이 지역에서 가장 큰 울산대 상권의 공실률은 소규모 상가 14.8%, 중대형 상가 29.6%다. 중대형 상가 공실만 놓고 보면, 부산 부산대(25.5%), 대구 계명대(24%), 대구 경북대(22.7%), 충북 청주 충북대(22.2%)에서도 모두 공실률이 치솟고 있다. 지역의 활기를 만들어주던 대학가가 오히려 인구 감소와 불경기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상권이 된 셈이다.

오해 2. 그래도 신도시는 괜찮겠지

원도심이나 역사가 오래된 대학 상권은 상대적으로 낡았다. 건물은 노후되었고, 주차 시설도 모자라기 일쑤다. 반면 지구단위로 계획된 신도시는 오래된 도시에서 겪는 불편을 최소화한다. 주차 공간도 넉넉하고 건물 노후에 따른 소방 안전 문제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그러나 이렇게 ‘계획된 신도시’는 원도심 공동화를 만들어 공실 증가의 원흉이 된다. 심지어 이들 신도시일수록, 공실이 쏟아지는 현상을 전국에서 확인해볼 수 있다.

아래 〈그림〉은 소규모 상가, 중대형 상가, 집합 상가별로 전국에서 가장 공실이 많은 상권을 정리한 표다. 이 가운데 집합 상가 공실률에서 유독 ‘도시’라는 단어가 붙은 상권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전국 각지에 분포된 혁신도시와 신도시 상권이다. KTX 김천(구미)역 인근에 자리한 경북김천혁신도시의 집합 상가 공실률은 44.4%로 전국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전남 나주에 위치한 광주전남혁신도시는 38.1%, 대구혁신도시는 37.1%, 경북 안동·예천에 위치한 경북도청신도시는 28.6%, 전북 전주에 있는 전북혁신도시는 27.9%다. 모두 2010년대 들어 대규모로 조성한 지역 신도시들이다.

이 분야의 정점은 세종시다. 지난 2분기 세종시 집합 상가의 평균 공실률은 15.7% 수준이었다. 세종시는 전국 혁신도시의 롤모델과 같은 곳이다. 아파트 단지마다 들어선 상가, 오피스텔 저층에 위치한 상가, 상업용지에 지어진 대형 상업용 빌딩까지 지역 내 상가 대부분이 ‘개발-분양-임대’ 수순을 밟은 집합 상가다. 그러나 세종시를 비롯한 지역 신도시 상권은 개발된 지 10년이 넘어도 공실률이 답보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이미 신도시 부지 내 아파트 개발이 끝난 상황에서 더 많은 수요를 창출하기란 쉽지 않다. 공실률 정체 현상은 이들 신도시의 공통된 고민거리다.

공실률 해소 방안을 두고 지역 내에서 갈등이 발생하기도 한다. 세종시는 현재 비어 있는 신도시 상가에 소규모 숙박시설(객실 20~29실 규모) 설치를 허용하려다가 지역 주민들에게 반발을 샀다. 지역 내 저렴한 숙박시설이 부족하다는 명분이었지만, 지역 내 상가 공실을 숙박업소로라도 채우자는 의도도 담겨 있었다. 그러나 지역 주민들은 먹자골목 상권에 숙박시설이 들어설 경우, 당초 도시계획과는 달리 상업지역이 유흥 단지처럼 바뀔 것을 우려하며 반대했다. 결국 세종시는 지난 8월28일, 반대 여론이 강한 나성동·어진동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 상가 공실에 소규모 숙박시설 설치를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어떤 식으로든 공실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자구책이다.

지역 신도시에 공실이 넘치는 것은 도시설계 단계부터 적정 상가 규모를 추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부동산원 산하 한국부동산연구원은 지난 3월10일에 발표한 ‘상가 공실 요인 및 정책방안’ 자료에서 상가 공실의 요인을 이렇게 설명했다. “상권의 공실률은 상권 내 집합 상가 비율이 높을수록, 상가가 과다 공급될수록, 지구단위 계획의 용도 규제가 강할수록 상승한다. 신도시 상업용지 비율은 지속적으로 축소 중이지만, 집합 상가 중심으로 개발되어 이해관계자가 다양하고 많아 공실 문제가 지역 현안으로 확대되는 경향이 있다.”

집합 상가는 아파트와 같다. 건물주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호’별로 투자자에게 분양한다. 신도시를 개발할 때에는 도시계획을 먼저 세운다. 여기에는 특정 땅을 상업용지·주택용지·학교·지원시설 등으로 구분해 용도를 지정하는데, 상업용지 대부분은 분양을 목적으로 시행사들이 대규모 상업 시설을 지어 올린다.

여기서 세 가지 문제가 생긴다. 첫째, 상업용지에만 상가가 있는 게 아니다. 아파트에도 상가가 있고, 오피스텔에도 상가가 있고, 지식산업센터와 같은 지원시설에도 상가가 있다. 애초 계획보다 상가가 넘치게 공급되기 일쑤다. 둘째, 집합 상가를 지어 올리는 시행사들은 상가가 추후 어떻게 운영되는지보다 지어 올린 상가를 빠르게 분양(완판)하는 걸 목표로 삼는다. 상권의 특성에 맞게 임차를 내주는 게 아니라, 상권과 상관 없이 판매에 열을 올린다. 셋째, 신도시에서 지구단위 계획을 세우고 나면, 특정 상가, 특정 층수에 특정 업종만 입주할 수 있다는 제약도 생긴다. 가령 세종시 보람동 강변의 경우 휴게음식점 등 요식업만 점포를 낼 수 있어 실제로 공실률이 높은 상황이다. 한번 고착화된 공실률을 획기적으로 줄이기 어려운 이유다.

오해 3. 수도권은 그나마 안전하겠지

상가 공실 문제는 흔히 지방 소멸 위기에 처한 비수도권 지역의 문제로 인식된다. 인구가 늘어나는 수도권 지역에서는 상권이 확대되고 도시가 계속 성장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실제로 서울과 수도권의 공실률은 전국 평균에 비해서는 낮은 편이다. 하지만 특정 지역, 특정 상권에서 그동안 수도권 도시가 겪지 못한 대규모 공실 사태가 펼쳐지고 있다.

2015년 11월, BTS는 ‘마 시티(Ma City)’라는 곡을 발표한다. 각 멤버들이 자신이 나고 자란 도시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 노래에서 리더 RM은 경기도 고양시 일산신도시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일산. 내가 죽어도 묻히고픈 곳. (…) 집 같던 라페스타 또 웨스턴돔.” 1994년생인 RM은 1기 신도시를 ‘고향’이라고 표현하는 1세대 ‘신도시 키즈’다. RM은 2018년 유엔 총회에서 일산에 대해 “호수와 언덕, 매년 아름다운 꽃축제가 열리는 곳입니다. 저는 일산에서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라고 말했을 정도다.

2003년 개장한 라페스타와 2007년에 문을 연 웨스턴돔은 일산신도시 한가운데 위치한 대규모 집합 상가다. 영화관이 있는 종합 쇼핑 공간으로 기능하면서 일산 거주민들에게는 일종의 ‘시내’ 역할을 했다.

그러나 개장한 지 20년이 지난 올해 9월11일, 라페스타와 웨스턴돔에서는 ‘임대’ 스티커와 현수막이 붙은 1층 상가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대로변에 맞닿아 있는 음식점들은 영업 중이었지만, 상가 안쪽에 위치한 옷 가게, 액세서리 가게 등 유통 점포들은 임차인을 구한다는 안내문만 붙어 있을 뿐이었다. 한국부동산원 통계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일산 라페스타 상권의 공실률은 9.7%다. 전국 평균 수준이다. 그러나 이곳의 공실은 주로 임대료가 비싼 1층 상가에 몰려 있었다. 상권의 쇠락을 수치보다 더 크게 체감할 수 있었다. RM은 라페스타 상권이 정점일 때 유년 시절을 보냈지만, 지금 이 지역에서 유년기를 보내는 청소년들이 이곳을 ‘집 같다’고 여기긴 어려워 보인다.

경기도 수원과 안양에서도 비슷한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한국부동산원 조사에 따르면, 안양역 일대 상권 공실률은 소규모 상가 17.1%, 중대형 상가 11.4%, 집합 상가 24.8%를 기록했다. 수원시 팔달문로터리 상권의 공실률도 비슷하다. 소규모 상가는 20.9%, 중대형 상가는 21.3%, 집합 상가는 10.6%다. 안양역 일대는 지하상가의 대규모 공실이, 수원 팔달문로터리 일대는 작은 점포의 공실 문제가 지역에서 대두되고 있다.

수원시 팔달문로터리와 안양시 ‘안양1번가’는 2000년대까지 지역의 대표 상권이었으나 지금은 ‘원도심(구도심)’으로 취급받는다. 안양은 1기 신도시가 들어선 이래로 평촌역과 범계역에 상권이 확장됐고, 인근 광명역에 코스트코와 이케아 등 대형 쇼핑 시설이 들어서며 광명에서 찾아오던 발길도 줄어들었다. 수원은 수원역에서 팔달문로터리로 이어지는 원도심 전역에서 공실이 늘어나고 있는데, 경기도청이 이전한 광교신도시 상권에 유동인구를 빼앗기고 있는 상황이다. 경기도에서 가장 이름난 상권이던 이 두 곳은 이제 경기도에서도 원도심 공동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로 꼽힌다.

비수도권 소도시, 비수도권 광역시에서 생겨나는 ‘상가 공실 경로’는 이제 수도권 대도시로 번지는 모습이다. 원도심 공동화뿐만 아니라 2010년대 이후 지어진 서울 인접 수도권 신도시에서도 세종시나 혁신도시에서 볼 법한 공실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성남 분당, 수원 광교, 용인 수지, 화성 동탄 같은 경부축 신도시는 아직 상대적으로 공실 문제가 대두되고 있지 않다. 반면 인천 송도, 시흥 배곧, 김포 한강, 파주 운정, 하남 미사, 남양주 다산 등지에서는 상가 과잉 공급 문제가 지역 내에서 심각하게 언급되기 시작했다.

통상 수도권 신도시 상가는 ‘상권 안정기 동안에는 공실 문제가 어쩔 수 없다.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것’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처음에는 공실이 조금 발생하지만, 사람이 늘고 도시가 완성되어가면 상가 임차인이 늘어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실제로 서울 송파구와 성남에 위치한 위례신도시는 2010년대 후반부터 공실 문제가 제기되었지만, 2023년 2분기 집합 상가 공실률은 5.9%까지 낮아졌다. 그러나 서울에서 상대적으로 멀수록, 추가 인구 유입이 정체될수록 높았던 공실률이 계속 유지되는 경향이 나타난다. 남양주 다산신도시는 집합 상가 공실률이 여전히 15%를 넘고 김포 한강신도시 구래역 인근도 10~11% 공실률이 더 이상 낮아지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신도시 개발 과정에서 상업용 토지를 공급하는 LH에 공실 문제의 책임이 있다고 지적한다. 9월11일 허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LH가 지난 6년 동안 매각 예정금액(감정평가 금액)보다 더 비싸게 상업용 토지를 팔아 큰 수익을 얻었다고 발표했다. 허 의원에 따르면, LH는 2018년부터 전국 86개 사업지구(신도시)에서 약 188만㎡를 상업용지로 팔았는데, 이들 용지를 감정평가 금액(7조7815억원)보다 비싼 10조4119억원에 매각했다고 알려졌다. 예를 들어 인천 검단지구는 예정된 상업용 토지 가격이 약 7000억원이었지만, 실제로는 1조2242억원에 상업용지를 팔았고, 파주운정3지구는 7390억원으로 평가받던 토지를 1조1877억원에 팔아 초과수익을 얻었다.

LH는 그동안 상업용지 등을 팔아서 임대아파트 등 주거복지에 소요되는 비용을 충당한다고 주장해왔다. 돈을 벌 수 있는 곳에서 확실하게 벌어야 임대주택 공급이 원활하다는 논리다. 하지만 허영 의원은 “LH의 택지개발 사업이 인구, 주변 상거래 환경을 고려하지 않아 상가 공실 문제가 지속되고, 원도심 공동화로 이어지고 있다”라며 상업용지 공급에 따른 상권영향평가 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수도권 도시마저 공실 현상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면, 서울은 괜찮을까? 서울은 대규모 택지지구 개발도 어렵고(신규 상가 공급이 제한적이고), 전국 상권의 유행 흐름을 선도하는 지역이다. 청년 인구도 어느 지역보다 넉넉하다. 하지만 서울에서도 상권에 따른 공실 문제는 점차 심각해지고 있다. 무엇보다 상가를 둘러싼 소비시장 전반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상점을 찾지 않는 시대

서울에서 가장 대조적인 풍경을 보려면 가로수길과 성수동을 찾으면 된다. 팬데믹 직전까지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은 한국에서 가장 활발한 상권으로 꼽혔다. 2018년 이곳에 애플스토어 1호점이 개장했을 때만 해도 가로수길의 영광은 한동안 지속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비싼 임차료를 버티지 못한 임차인들이 하나둘 가로수길을 빠져나가면서, 가로수길은 ‘급속도로 쇠락하는 상권’의 대표 주자가 되었다. 부동산 컨설팅업체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의 발표에 따르면, 이른바 ‘가로수길 상권’의 공실률은 올해 2분기 36.5%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9월8일 서울 강남구 가로수길에 방치되어 있는 한 공실 상가의 모습. 이 지역 공실률은 35%가 넘는다.ⓒ시사IN 박미소
9월8일 서울 강남구 가로수길에 방치되어 있는 한 공실 상가의 모습. 이 지역 공실률은 35%가 넘는다.ⓒ시사IN 박미소

반면 성동구 성수동 일대는 서울에서 청년층 유동인구가 가장 크게 늘어나는 지역이다. 이 일대 폐공장과 오래된 상가를 고쳐 만든 상점은 물론이고 각종 브랜드의 팝업 스토어도 인기다. 젊은 층 사이에서 새로운 경험에 대한 가치를 중시하는 ‘경험 소비’ 경향이 강해지면서 성수동 상권의 인기가 크게 늘었다.

경험 소비의 요소가 떨어지는 단순한 상권은 인기가 떨어진다. 가로수길뿐 아니라 서울 명동도 내수 소비 패턴의 변화에 취약하다. 명동은 팬데믹 초반인 2020년 3분기까지 중대형 상가 공실률이 10% 이하를 기록하며 그럭저럭 버티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팬데믹이 장기화되면서 2021년 4분기 공실률이 50.1%까지 치솟았고, 올해 2분기에도 35.8%를 기록하며 회복이 더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중국 관광객 수요가 점차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지만, 돌아오는 ‘유커(중국인 관광객)’가 다시 명동을 찾을지는 미지수다. 최근 일본인 관광객 사이에서 성수동 카페 방문이 유행으로 번진 것처럼, 관광 소비 역시 내국인 소비의 변화에 시차를 두고 따라가는 경향이 있다.

팬데믹 동안 온라인 상거래가 전 세대에서 보편적으로 확대된 것도 서울에서 공실이 늘어나는 원인이 된다. 서울 영등포역 일대는 서남권에서 가장 대표적인 소매 유통 상권이다. 영등포역 상권의 집합 상가 공실률은 27.4%로 점차 높아지고 있다. 앞서 언급한 안양역 인근 상권보다 심각한 수준이다. 노후한 지하상가가 많은 지역일수록, 요식업보다는 유통업에 의존하는 상권일수록 공실 위험이 커진다. 서울이라고 해서 시대적 변화를 피하기란 어렵다.

상가 공실 문제는 언뜻 ‘가진 자의 문제’로 여겨진다. 상가에 임차인이 없다는 것은 월세를 낼 사람이 없다는 뜻이고, 그 손해는 상가를 소유한 건물주에게 갈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전국 평균 임대료는 점차 떨어지고 있다. 중대형 상가 기준, 2010년 제곱미터(㎡)당 4만2000원이던 월평균 임대료는 2023년 2분기 2만5600원으로 떨어졌다. 서울만 놓고 보아도 같은 기간 6만원에서 5만2200원으로 하락했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유행어가 조금은 무색해지는 모습이다.

서울에서도 특정 상권에만 사람이 몰린다. 9월9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은 주말 나들이를 나온 인파로 가득했다.ⓒ시사IN 이명익
서울에서도 특정 상권에만 사람이 몰린다. 9월9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은 주말 나들이를 나온 인파로 가득했다.ⓒ시사IN 이명익

그러나 상가 공급 과잉으로 인해 원도심과 신도시 모두에 빈 상가가 늘어나는 현상은 지역 주민 모두에게 피해로 돌아간다. 쇠락하기 시작한 상권은 발길이 끊기고, 빈 상가가 많은 상권을 유지하는 데에 더 많은 공적 자원이 투입된다. 한번 공실이 방치되기 시작한 상권은 매력이 떨어져 다시 소비자들을 불러오기 어렵다. 무엇보다 어떻게든 상권에서 버티는 소상공인·자영업자에게 매출 피해가 전가된다. ‘페이백 이벤트’ 같은 궁여지책을 여러 지자체에서 내놓고 있지만 효과는 한시적이다.

한국에서 모든 도시는 서울을 닮아간다. 강남이라는 신도시를 만들고 확대한 것처럼 광역시를 비롯한 지방 도시 대부분이 ‘멀찍이 떨어진 곳에 신도시를 개발한다’는 기조로 도시를 확대해왔다. 상가 공실 문제는 이런 한국식 도시 성장이 더 이상 지속되기 어렵다는 경고를 보내고 있다. 넘치도록 지어 올린 상가는 이제 각 지역의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큰 도시면, 대학가 근처면, 신도시면, 수도권이면 그래도 괜찮을 것이라는 막연한 안도감은 더 이상 현실에서 실재하지 않는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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