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이명익1958년 가동을 중단하고 폐허가 된파커드 자동차 공장의 전경.

유리창은 모조리 깨지고 벽돌 골격만 남았다. 32만5000㎡(약 9만8000평) 규모의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시의 파커드 자동차 생산 공장은 폭탄이라도 맞은 듯한 모습이었다. 그 안으로 들여다보이는 공장 내부는 마구잡이로 갈겨쓴 그래피티와 각종 잔해가 엉켜 있었다. 까맣게 그을린 물탱크가 건물 위로 머리를 내밀며 위태롭게 서 있었다. 무너진 옥상에는 잡목이 돋아났다.

물론 폭격을 당한 건 아니다. 다만 방치됐을 뿐이다. 1903년부터 파커드모터 사의 고급 차량 기종을 생산하며 디트로이트의 번영을 이끌었던 공장은 1958년 가동을 중단했다. 디트로이트에 있는 수많은 공장이 비슷한 운명을 맞았다. 1911년 ‘모델 T’를 생산하기 시작한 포드 사의 하이랜드파크 공장도 1974년 문을 닫았다. 컨베이어벨트를 최초로 도입해 대량생산 시대를 열었던 영광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이 공장 역시 40년이 넘도록 비어 있는 상태다.

텅 빈 건 공장만이 아니다. 파커드 공장 근처 주택가에도 버려진 집이 적지 않았다. 폐허처럼 변한 집을 둘러보던 기자에게 주민이 말을 걸었다. “시청에서 나왔나요? 저 집은 언제 철거될 건가요?” 한국에서 취재를 왔다고 하자 이 주민은 관심 없다는 듯 차를 타고 가버렸다. 2013년 조사에 따르면 디트로이트 전역에 있는 빈집은 7만8000채에 이른다. 시청과 디트로이트 토지은행에서 방치된 부동산을 철거하고 있다. 토지은행 제도는 미국의 여러 주에서 시행 중인데, 디트로이트 토지은행이 가장 적극적으로 활동 중이다. 그럼에도 수십 년간 쌓여온 빈집은 여전히 도시를 뒤덮고 있다.

디트로이트에도 빛나던 시절이 있었다. 미국 3대 자동차 회사인 포드, GM, 크라이슬러의 본사가 몰려 있어서 ‘모터시티’라는 별칭을 얻은 디트로이트는 1950년대 미국에서 다섯손가락 안에 꼽히던 도시였다. 185만명이 이 도시에 터를 잡았다. 한국의 대표적인 공업도시인 울산(115만명)보다도 큰 도시였다. 미국 제조업이 사양길에 접어들면서, 이제는 ‘러스트벨트(녹슨 지대)’라 불리게 된 미국 중서부와 북동부 일대 공업지대 도시들도 기울기 시작했다. 가장 큰 도시였던 디트로이트의 후퇴는 그만큼 더 극적이었다. 2010년 기준 디트로이트 인구는 한창때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71만명이다.

ⓒ시사IN 이명익디트로이트시에 방치된 빈집.

디트로이트는 성장을 멈춘 도시가 경로를 변경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보여준다. 디트로이트에서 빈집이 사회문제로 인식된 건 1980년대부터였지만 도시는 확장적인 부동산 정책을 멈추지 않았다. 투자를 하면 경기가 살아나고 사람들을 불러 모을 거라는 익숙한 믿음 때문이었다. 믿음과 달리 도시의 쇠퇴는 점점 더 뚜렷해졌다. 빈집은 늘어나고, 시 당국의 재정은 악화됐다. 오랫동안 지속된 지역 경기침체에 세계 금융위기 여파까지 겹치자 2013년 디트로이트는 연방파산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한다. 부채 규모는 미국 지자체 가운데 사상 최대인 180억 달러(약 19조3000억원)였다(2018년 디트로이트는 파산 상태에서 벗어났다).

세수 감소로 치안 유지가 어려운 도시에서 빈집은 범죄를 키우는 토양이 되었다. 본래 쓰임새를 잃은 건물은 방화와 쓰레기 무단 투기의 대상이 되었고, 마약 판매상들의 거래 장소로 이용되었다. 디트로이트의 강력범죄율은 미국 평균의 5배까지 치솟았다. 디트로이트는 4년 연속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로 선정되는 불명예를 얻었다.

역설적이게도 도시가 나락으로 떨어진 2013년은 변화를 향한 출발점이 되었다. 2013년 9월 오바마 행정부는 디트로이트 도시 재생을 위해 연방정부 예산 3억 달러(약 3590억원)를 편성한다. 디트로이트는 이 예산을 기반으로 도시에 퍼져 있는 빈집 전수조사에 나섰다. 디트로이트의 빈집 문제가 심각하다는 건 모두가 알았지만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이 프로젝트에는 ‘모터시티 매핑(이하 MCM)’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조사를 위해 디트로이트의 그림자를 제거한다는 뜻인 ‘디트로이트 블라이트 리무벌 태스크포스(이하 디트로이트 TF)’가 꾸려졌다. 공공기관과 민간 영역을 망라해 각계각층의 단체가 도시를 되살리기 위해 모였다.

러브랜드 테크놀로지의 CEO인 제리 파펜도르 씨도 그중 한 명이다. 러브랜드 테크놀로지는 지오그래픽 데이터를 전문으로 다루는 사회적 기업이다. 파펜도르 씨는 빈집 전수조사에 쓰인 애플리케이션 ‘블렉스팅’을 개발했다. 블렉스팅은 그림자, 폐허를 뜻하는 블라이트(blight)와 문자를 보낸다는 텍스팅(texting)의 합성어이다. 취재진은 디트로이트 다운타운에 있는 러브랜드 테크놀로지에서 파펜도르 씨를 만났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커다란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디트로이트의 상징인 로보캅, 로자 파크스, 녹색 거인과 연대한 시민들이 폐허가 된 주택을 둘러싸고 대결을 벌이는 모습이었다. 2013년부터 2014년까지 진행된 MCM 프로젝트를 기념하는 그림이었다.

ⓒ시사IN 이명익빈집 조사용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한 제리 파펜도르 CEO.

‘MCM’ 사이트 접속하면 빈집 정보 열람 가능

파펜도르 씨는 정보 수집의 중요성을 이렇게 말했다. “빈집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는 건, 어디에서 문제가 일어나는지 모른다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빈집의 정확한 위치와 규모를 파악하는 일은 예상외로 까다롭다. 빈집 찾기는 주로 수도나 전기 사용, 우편물 배송 등 간접적인 방식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정확도가 떨어진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사람이 직접 돌아다니면서 건물 상태를 하나하나 확인하는 것이다. MCM 프로젝트는 바로 이런 방식의 조사였다.

2013년 11월부터 조사원 200명과 그보다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10주간 디트로이트 전역을 돌아다니며 38만 필지를 전수조사했다. 조사원들은 블렉스팅 앱을 이용해 건물이 비어 있는지, 훼손 정도는 어떠한지, 방화 피해는 없는지, 소유주는 있는지 등 부동산 상태를 15가지 항목에 걸쳐 상세하게 기록했다. 해당 부동산의 사진을 찍어서 함께 올렸다. 블렉스팅 앱에 입력된 정보는 곧바로 ‘모터시티 매핑’ 사이트에 업로드되었다.

이렇게 수집된 정보가 모여 디트로이트 빈집 지도가 완성됐다. 디트로이트에 있는 빈집은 총 7만8000채로 집계됐다. 버려져 폐허가 된 부동산은 4만 채, 폐허가 될 위험이 높은 빈집은 3만8000채였다. 모터시티 매핑 사이트(motorcitymapping.org)에 접속하면 누구든지 디트로이트에 있는 빈집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다. 이는 디트로이트 구성원들에게 빈집 문제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방치된 부동산을 철거하기 위한 비용 모금으로 이어졌다.

ⓒ시사IN 이명익디트로이트 시내의 폐쇄된 빌딩 외벽에 가림막이 쳐져 있다.

그 뒤 디트로이트시는 빈집 문제와 적극적으로 싸우고 있다. 토지은행을 통해 빈집을 관리하고 ‘디트로이트 데몰리션 프로그램’이라는 이름 아래 대대적인 철거 작업을 벌인다. 또 빈집을 수리한 뒤 되파는 ‘리햅&레디’ 프로그램도 운영한다(39쪽 상자 기사 참조). 막대한 빈집 수에 비춰봤을 때 여전히 갈 길은 멀지만 MCM 조사는 빈집 문제를 풀어가는 든든한 자산이 되었다. 러브랜드 테크놀로지는 이 프로젝트 참여 이후 매핑(부동산 정보 지도) 작업을 미국 전역으로 확대했다. 파펜도르 씨는 “디트로이트는 미국에서 가장 풍부한 빈집 정보를 가진 도시”라며 이렇게 말했다. “빈집의 위치를 소유권, 주택압류, 세금납부 등 다른 데이터와 함께 보지 못한다면 이 문제를 해결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디트로이트는 그 첫 단추를 끼웠다.

디트로이트가 빠졌던 함정은 이곳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 아니다. 미국이든 한국이든 ‘도시가 예전처럼 성장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은 여간해서 벌어지지 않는다. 오하이오주 영스타운은 그 일을 해낸 도시다. 스마트 축소(Smart Decline)이라는 도시재생 방식은 영스타운을 도시계획 분야에서 일약 스타로 만들었다. 이 한적한 소도시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디트로이트에서 370㎞를 달려 오하이오주 영스타운을 찾았다. ‘영스타운 마을개발공사’에서 지역 플래너로 일하는 토머스 헤트릭 씨가 취재진을 맞이했다.

디트로이트처럼 러스트벨트에 속하는 영스타운은 철강산업 중심지로 명성을 떨쳤다. 1977년 대형 철강기업인 영스타운 시트&튜브가 문을 닫자 인구 유출에 시달리게 된다. 17만명이 거주하던 도시는 인구의 60%가량을 잃었다. 마지막 인구조사가 이루어진 2010년 통계에 따르면 영스타운 인구는 6만5000명이다. 도심은 황폐해지고 버려진 주택은 일상적인 풍경이 되어갔다. 2000년 영스타운의 주택 공가율은 13.4%로 미국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과거에 갇혀 녹슬어가던 도시는 2000년대 초반 전환을 꾀하게 된다. 영스타운 주립대학과 영스타운시가 주축이 돼 수립한 ‘영스타운 2010 플랜’은 새로운 관점에서 도시를 바라봤다. “영스타운의 규모는 과거에 비해 훨씬 줄어들었고 다시 인구가 늘어나기도 어렵다는 것을 인정한 거죠.” 헤트릭 씨는 냉정한 현실 인식이 먼저였다고 말했다. “더 작은 도시가 되더라도 우리는 더 깨끗하고 친환경적인 도시가 될 수 있다는 게 영스타운 2010 플랜의 핵심입니다.”

영스타운 2010 플랜에는 4가지 기본 원칙이 담겼다. ‘영스타운이 작은 도시라는 것을 받아들이자. 새로운 지역경제하에서 영스타운의 역할을 정의하자. 영스타운의 이미지를 개선하고 삶의 질을 향상하자. 행동으로 실행하자.’ 이 원칙의 중심에는 더 작지만 더 나은 도시가 될 수 있다는 스마트 축소 개념이 놓였다.

ⓒ시사IN 이명익오하이오주 영스타운 맥거피 지역의 전경. 빈집이 철거된 곳이 잔디밭으로 바뀌었다.

성장과 번영을 약속하지 않는 정책에 주민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영스타운 2010 플랜이 발표된 2002년 12월16일 공청회에 많은 주민이 몰렸다. 200명만 모여도 성공적이라고 여겼던 공청회에 1400명이 참석해 새로운 비전에 귀를 기울였다. 이날 참석자 가운데 100명 이상이 자원봉사를 신청했다. 주민들은 도시가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점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지지는 이후로도 계획을 추진하는 주요 동력이 되었다. 커뮤니티 개발 소장으로 영스타운 2010 플랜을 주도한 제이 윌리엄 씨는 그 성과에 힘입어 2005년 영스타운 시장으로 선출됐다.

영스타운 마을개발공사(이하 YNDC)는 영스타운 2010 플랜을 수행하기 위해 2009년 설립됐다. 민간 비영리기구지만 정부로부터 운영 기금을 지원받는다. 영스타운 2010 플랜은 큰 그림을 그리는 작업이므로 구체적인 계획이 뒤따라야 했다. YNDC에서 지역 플래너인 헤트릭 씨가 맡은 업무가 바로 이행 계획을 세우는 일이었다. 2014년 YNDC는 영스타운에 있는 13개 마을을 선정해 세부적인 정비 계획을 발표했다.

훼손 정도가 심한 마을이 선정되었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비교적 주거 여건이 괜찮은 지역이 선별됐다. “우리가 정비 계획을 세운 13개 마을은 인구가 꽤 밀집돼 있고 부동산 거래가 아직 죽지 않은 곳입니다. 빈집이 하나 생기면 마을 전체로 번지는 게 일반적인 현상이에요. 옆집에 살던 사람들까지 떠나버리는 거죠. 그래서 상태가 심각한 곳보다는, 빈집이 있지만 그 수가 비교적 적은 지역에 개입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2008년 약 5000채였던 영스타운의 빈집 수는 올해 상반기 1300채 수준으로 감소했다.

YNDC는 계획을 세우기에 앞서 마을별로 주민 공청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주민 의견을 집중적으로 청취했다. 이런 논의를 통해 해당 마을에서 우선 해결해야 할 사안이 구체적으로 파악됐다. 그 뒤 YNDC 직원들은 마을을 직접 돌아다니며 주택과 부동산마다 개별적인 상태를 체크했다. 문제가 있는 부동산에는 훼손 정도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구체적으로 결정했다. 예산이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중에서도 먼저 개입해야 할 부동산을 다시 선별했다. 이를 토대로 마을별 계획이 세워졌다. 이 내용은 모두 보고서로 만들어져 주민에게 공개됐다.

취재진은 구체적인 정비 계획이 수립된 13개 마을 가운데 한 곳인 맥거피 지역을 방문했다. 영스타운 북동부에 있는 이곳은 1990년부터 2010년까지 20년 동안 인구의 20%를 잃었다. 공가율은 9%에서 21%로 치솟았다. 맥거피 지역 정비 계획 보고서인 〈그레이트 맥거피 코리도 액션 플랜〉(Greater Mcguffey Corridor Action Plan·이하 액션 플랜)에는 맥거피 마을 지도를 바탕으로 문제 부동산마다 ‘철거’ ‘보드 업’ ‘코드 강화 명령’ 등의 조치가 표시돼 있다. 보드 업은 빈집의 출입구와 창문을 판자로 막아놓는다는 뜻이다. 코드 강화 명령은 집주인에게 영스타운 시 주택 규정에 맞도록 집을 정비하라고 통보하는 조치이다. 30일 기간 내에 시정하지 않으면 벌금을 부과하거나 심한 경우 구속까지 할 수 있다.

ⓒ시사IN 이명익영스타운 마을개발공사(YNDC)에서 지역 플래너로 일하는 토머스 헤트릭 씨.

직접 찾아간 맥거피 지역은 인적이 드물었지만 깔끔해 보였다. 액션 플랜에 나온 대로 주택이 철거돼 잔디밭으로 바뀐 지점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몇몇 도로는 폐쇄돼 구글 지도에만 남아 있다. 더 이상 쓰지 않는 도로는 없애야 정비에 드는 세금도 아끼고 쓰레기 무단 투기도 막을 수 있다. 액션 플랜에는 ‘철거’라고 표시돼 있지만 아직 철거하지 못한 채 출입구와 창문만 판자로 막아놓은 집들도 눈에 띄었다.

마을 주민 지미 보이킨 씨는 출입구를 판자로 막은 주택 하나를 가리키며 “15년째 비어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영스타운시와 YNDC가 추진하는 도시 정비 계획에 대해 알고 있다고 말했다. “맥거피 지역에서 20년 동안 살고 있어요. 마을이 예전보다 나아진 건 분명하지만 아직도 더 해야 합니다.”

3개월마다 공청회 열어 진행 상황 공유

액션 플랜을 비롯해 13개 마을 정비 계획은 2020년을 완료 시점으로 잡았다. 2015년 계획을 추진하기 시작한 뒤로 YNDC는 3개월마다 공청회를 열어 주민들과 진행 상황을 공유한다. 이행 속도는 본래 예정했던 것보다 더딘 편이다. 그래도 YNDC는 주민과의 소통을 미루지 않는다. 헤트릭 씨는 그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영스타운 주민들은 긴 시간 시를 신뢰하지 못했어요. 그만큼 오랫동안 실패의 기억이 쌓여온 거죠. 그래서 주민들에게 시와 YNDC가 하고 있는 일을 정확히 알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러스트벨트에서 빈집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다. 영스타운은 지난해 인근에 있는 GM 자동차 공장이 문을 닫으며 일자리 1000여 개를 추가로 잃었다. 스마트 축소라는 개념이 크게 각광받았지만 버려진 건물과 공터를 정비하는 선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 디트로이트에는 주택을 압류당해 집을 떠나야 하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도시를 거듭나게 하려는 수많은 노력과, 빈집과 싸워온 수십 년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해결책은 뚜렷하지 않다.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했다. 적어도 이들 도시에서 경기가 살아나기만을 바라며 빈집을 방치하는 일은 더 이상 없다.

“제철소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시사IN 이명익

마거릿 드워 교수(미시간 대학 건축·도시계획과·사진)는 러스트벨트 지역을 중심으로 도시의 쇠퇴와 방치된 부동산 문제를 연구해왔다. 미시간주 앤아버 미시간 대학 캠퍼스에서 드워 교수를 만났다.

러스트벨트에서 빈집 문제가 심각해진 까닭은 무엇인가?
인구와 일자리 감소가 주요 원인이다. 디트로이트는 미국 제조업 최전성기였던 2차 세계대전 이후 제조업 일자리의 95%를 잃었다. 소매업 일자리 감소는 그보다 더 많다. 최고점과 비교해 인구는 60%가 줄었다.

디트로이트의 빈집은 언제부터 발생했나?
1980년대 초에 빈집이 문제라는 것이 분명해졌다. 1989년에는 도시에 빈집이 너무 많다는 기사가 나오기 시작했다. 인구가 최고점을 찍은 건 1950년이었지만, 주택 수가 최고치에 도달한 건 10년 뒤인 1960년이었다. 그때부터 빈집이 쌓였고 20~30년이 지나 가시화된 셈이다.

1980년대부터였다면 왜 그때 빈집 확산을 막지 못했나?
초점이 계속해서 성장 위주의 도시정책에 맞춰져 있었다. 디트로이트 경기가 수년째 좋지 않았지만 재개발과 재성장에 대한 믿음이 남아 있었다. 스타디움과 컨벤션센터 건설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기업에 막대한 자금을 지원했다. 일자리와 사람들이 디트로이트로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1980년대 초 새로 지어진 GM 공장이 대표적인 사례다. 디트로이트시는 이 공장을 유치하기 위해 커뮤니티 개발 예산 중 4분의 1을 보조금으로 지급했다. 기대와 달리 새로 들어선 GM 공장은 당초 약속한 규모의 일자리를 창출하지 못했다. 이 공장에 고용된 노동자들도 디트로이트의 빈집 수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비교적 높은 수준의 임금을 받는 이들은 삭막한 디트로이트 대신 주거 여건이 훨씬 나은 교외에 집을 구했다. 중산층 백인과 중산층 흑인이 차례로 디트로이트 시내에서 교외 지역으로 이동했다.

영스타운은 이런 접근법에서 벗어나 도시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더 작고, 더 나은 도시를 추구한 영스타운은 훌륭한 모델이다. ‘이제 제철소가 돌아와야 한다는 얘기는 그만합시다’라고 한 셈인데 이는 중요한 전환이다. 다만 계획과 이행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최근 미국도시학회에 소개된 기사에 따르면 영스타운 2010 플랜이 세웠던 원칙(스마트 축소)이 완전히 지켜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계속해서 그 방향을 추구하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 영스타운은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 큰 문제에 큰 답을 내놓으려 하면 풀리지 않는다. 작지만 다양한 해결책으로 빈집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

 

단돈 1000달러에 집 한 채를?

디트로이트 내 빈집을 전수조사한 2013년 ‘모터시티 매핑 프로젝트’ 이후 디트로이트시는 문제 해결을 위해 두 팔을 걷어붙였다. 그 중심에 디트로이트 토지은행이 있다. 디트로이트에 있는 빈집 중 상당수는 가압류된 부동산이다. 미국은 한국에 비해 재산세가 훨씬 높아 주정부가 주택을 압류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렇게 압류한 주택을 경매에 부치지만 팔리지 않은 부동산은 토지은행으로 가게 된다. 토지은행 제도는 여러 주에서 시행되고 있지만 디트로이트 토지은행만큼 적극적으로 주택 관리를 수행하는 곳은 드물다. 규모 면에서도 가장 크다. 디트로이트 토지은행이 보유한 부동산 수는 약 9만 채이다.

일요일이던 9월8일 디트로이트 북서쪽에 있는 세인트메리스 16800번지의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1938년 지어진 2층짜리 벽돌 주택은 구글 스트리트뷰로 확인한 것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얼마 전 3개월에 걸쳐 리모델링을 마친 덕분이다. “우리가 이 집의 소유권을 갖게 된 게 2007년이니까 최소 12년 동안은 비어 있었던 집이에요.” 디트로이트 토지은행의 홍보 담당관 얼리샤 스트릭랜드 씨가 집에 대해 설명했다.
디트로이트 토지은행은 빈집을 수리한 뒤 되파는 ‘리햅&레디(Rehabbed& Ready)’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날은 수리가 끝난 집을 판매하기 전에 공개하는 오픈하우스 데이였다. 낮 12시부터 오후 4시까지 관심 있는 이들은 누구라도 집을 둘러볼 수 있었다. “바닥과 벽 이외에 모든 부분을 전부 고쳤습니다. 오래 비어 있었기 때문에 배선, 배관도 새로 해야 했어요.” 오픈하우스 기간이 끝난 뒤 이 주택은 8만9900달러(약 1억700만원)로 판매가가 정해졌다.

디트로이트 토지은행은 수리하지 않은 집을 경매로도 판매한다. 이 회사 홈페이지를 통해 참여할 수 있다. ‘오운 잇 나우(당장 소유하세요)’라는 프로그램으로 단돈 1000달러에 빈집을 팔기도 한다. 대신 경매나 ‘오운 잇 나우’를 통해 주택을 구입한 사람은 디트로이트 토지은행이 부과하는 규정을 준수해야 한다. 매매 계약 이후 6개월에서 9개월 내에 주택 상태를 디트로이트시의 주택 규제에 맞는 수준으로 개선해야 한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토지은행은 계약을 취소해버린다.

 

ⓒ시사IN 이명익디트로이트 토지은행은 방치된 주택을 수리해 되파는 ‘리햅&레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마거릿 드워 교수(미시간 대학 건축·도시계획과)는 이런 점을 들어 토지은행 제도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디트로이트처럼 주택 시장이 침체된 도시에는 싼값에 부동산을 대거 사들이는 투기 세력들이 있습니다. 이들에게 빈집이 넘어가면 그대로 방치됩니다. 토지은행 제도를 이용하면 ‘관리된 거래’가 가능합니다.” 디트로이트 토지은행은 빈집이 철거된 공터를 그 옆에 사는 주민에 한해 100달러에 판매한다.

무엇보다도 디트로이트의 풍경을 가장 크게 바꾼 건 주택 철거다. 2014년부터 디트로이트시와 토지은행은 버려진 건물을 제거하는 작업에 돌입했다. ‘디트로이트 데몰리션 프로그램’이라는 이름으로 2019년 9월까지 철거된 부동산은 1만9000채에 달한다. 철거 정보와 현황은 디트로이트시 웹사이트를 통해 신속하게 제공된다. 철거된 부동산은 철거일과 철거 업체가 빠짐없이 기록으로 남기고, 철거 예정인 건물은 예정일을 확인할 수 있다. 2015년 디트로이트시가 철거 프로그램의 효과를 분석한 보고서에 따르면 철거 작업이 진행된 지역에서 그 주변 부동산의 자산가치가 평균 4.2% 높아졌다.

지난 8월에는 빈집 철거가 범죄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되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시간 대학과 하버드 대학 연구팀은 디트로이트 데몰리션 프로그램이 적용된 지역에서 방치된 건물을 제거한 뒤 총기로 인한 살인, 부상 등 강력범죄가 11% 감소했다고 밝혔다. 연구에 참여한 마크 짐머먼(미시간 대학 공공위생대) 연구원은 학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빈집 제거는 사람들에게 그 지역이 관리된다는 인상을 준다. 주민들은 안정감을 느끼고 지역의 미래에 대해서도 좀 더 낙관하게 된다. 그 덕분에 주민들은 야외 활동을 늘리고 이웃과 더 활발하게 교류한다.”

 

 

※ ‘빈집 프로젝트 페이지(house.sisain.co.kr)’에서 더 많은 사진과 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소리없이 번지는 도시의 질병 〈빈집〉

〈시사IN〉 특별기획 ‘빈집’ 바로가기 

 

 

 

 

 

 

기자명 미국 디트로이트·영스타운/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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