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처음 대두된 것은 2010년대 들어서다. 빈집의 정의부터 논란이었다. 허물어지고 버려진 폐가만 빈집일까? 별장처럼 사람이 가끔 드나드는 집은 빈집이라고 볼 수 있을까?
2017년 ‘빈집 및 소규모 주택 정비에 관한 특례법(이하 빈집 특례법)’이 제정되고 나서야 합의된 기준이 생겨났다. “자치단체장이 거주 또는 사용 여부를 확인한 날부터 1년 이상 아무도 거주 또는 사용하지 아니하는 주택”, 즉 지자체장이 집이 비어 있다는 것을 1년 동안 확인한 후에야 공인되는 개념이다.
빈집 특례법이 제정되면서 빈집 해결 및 정비를 위한 법률적인 틀은 마련할 수 있게 됐다. 빈집 특례법 아래서 빈집 해결 주체는 어디까지나 지방자치단체장이다. 시장이나 군수, 구청장 등이 빈집 여부를 판정하고 대책을 수립해야 하는데, 이는 빈집을 집계하고 판별하는 데 행정력(인력과 예산)을 쏟아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지자체장이 나서서 빈집을 지정하는 단계를 거쳐야 빈집 정비사업을 벌이고, 철거나 효율적 관리를 도모할 수 있다. 법은 근거만 제공할 뿐 사실상 빈집 대응 정책은 각 지자체의 행정 역량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지자체 재정은 열악하다. 철거나 리모델링 같은 정비사업을 벌이더라도 추가적인 재정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전라남도 영암군은 지난해 전라남도체육대회 개최를 앞두고 도시 미관을 해치는 구도심 빈집을 일부 정비했다. 영암군 영암읍 남문로 일대에는 과거 빈집이 방치되어 있었으나, 지금은 공터인 지역을 찾아볼 수 있다. 이 역시 제한적인 사업에 불과했다. 일부 빈집은 정비나 철거가 어려워 임시 가림막으로 가려놓았고, 이면도로 안쪽에 위치한 빈집은 여전히 수풀이 우거진 채 방치되어 있었다.
빈집 소유주의 동의와 협조를 구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소유주의 빈집 해결을 지자체가 유도할 만한 정책적 수단이 마땅치 않다. 가령 주택 보유세가 많이 드는 독일에서는 소유주가 집을 철거하기를 먼저 원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은 반대다. 집을 철거하는 게 더 큰 부담인 경우가 많다. 집을 철거하면 원래 집이 있던 땅은 ‘주택’에서 ‘토지’로 바뀌는데, 땅에 대한 공시지가가 단독주택 공시가격보다 높을 경우 더 많은 돈을 세금으로 내야 하기 때문이다. 세제 혜택만으로는 자발적인 빈집 해결을 유도하기 어려운 구조다.
오늘날 빈집은 한국의 중소도시에 이전과는 전혀 다른 숙제를 내민다. 선거 때마다 너나 할 것 없이 ‘최첨단 하이테크 시티’ ‘성장하고 역동하는 도시’를 내세우지만, 지방도시의 현실은 정치인의 비전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빈집은 도시계획의 전면 수정이라는 큰 과제를 부여한다. 그동안의 성장 중심 도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다.
성장과 개발 중심 정책 대신 도시재생이 주목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방 중소도시를 위한 도시재생 정책은 이제 막 태동한 단계다. 역설적이게도 지방도시는 너나 할 것 없이 서울을 닮아 필요 이상으로 비대해졌고, 그 해결책인 도시재생 사업 방식까지 서울을 닮아가는 경향을 보인다. 전국 지자체 가운데 서울이 도시재생에 가장 선구적인 움직임을 보였기 때문이다.
“도시 자체를 인위적으로 줄이자”
서울형 도시재생의 핵심은 분권(중앙정부 재정 지원과 서울시의 사업추진 조율)과 경제성(일자리 창출 등), 정주환경 개선, 사회통합 등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역민의 자발적인 협력과 커뮤니티 사업 활성화다. 아무리 지원책이 많아도 동네를 재생하려는 ‘사람’이 없으면 도시재생 사업 시행이 불가능하다.
서울형 도시재생의 핵심 동력은 젊은 인구다. 젊은 인구는 서울이 확보한 자산이다. 도시에 생기를 불어넣을 만한 젊은 층이 수도권에는 많지만, 지방도시에는 희소하다. 이 지점에서 최근 지방도시의 도시정비 및 도시재생 사업은 도전과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 마을 커뮤니티를 만들어도 이를 유지할 만한 자발적 인력이 부족하다. 일부 지방도시가 ‘도시의 과거’를 관광 상품화하지만, 너나 할 것 없이 비슷한 방식으로 과거를 재현하고 있다. ‘추억의 거리’를 만들고, 근대 문화유산을 지정하며, 맛집 골목을 홍보한다. 하지만 외부 여행객을 끌어올 만한 과거를 가진 도시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차라리 도시를 응축시키면 해결되지 않을까? 지방 빈집 문제가 제기되면서 함께 논의되는 주제가 바로 ‘축소도시’이다. 축소도시란 듬성듬성 떨어져 있는 주민들을 밀도 높게 재배치하는 도시정책이다. 도시가 더 이상 확대되는 것이 아니라, 도시 자체를 인위적으로 줄여서 행정력 낭비를 없애고 주거환경도 개선하자는 아이디어다.
2017년까지 한국국토정보공사에서 빈집 실태조사를 지휘했고, 지금은 도시재생 현장에서 일하는 임현성 센터장(안양시 석수 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은 추후 축소도시가 지방도시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임 센터장은 “도시가 규모를 유지하려면 인구와 도시의 자생력(경쟁력), 이 두 요소를 갖춰야 한다. 둘 다 허약해질 경우 도시를 유지할 예산이 없어서 결국 파산을 피하기 위해 축소도시화가 진행될 수 있다. 실제로 일본 홋카이도의 일부 도시는 인프라를 끊어가면서까지 도시 축소를 유도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반대도 만만찮다. 축소도시의 핵심은 사람을 이주시키는 일인데, 여전히 부동산 가치 상승을 포기하지 못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걸림돌이다. 지자체가 선뜻 도시를 줄이자는 구호를 외치기도 어렵다.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개발 공약 경쟁이 몰아칠 경우 축소도시 논의는 물론 도시재생 논의도 뒷전으로 밀릴 가능성이 크다.
빈집으로 대표되는 지방 인구문제는 국토 균형발전에 대한 새로운 논쟁도 야기한다. 현실론에 입각한 일부는 빈집이 발생하는 현실에서 아예 서울 집중론을 주장하기도 한다. 서울에 기회와 자원이 많으니 차라리 서울의 밀도를 더 높이자는 주장이다. 나름 근거도 있다. 더 많은 기회를 얻고 싶은 사람들의 욕망을 억누를 게 아니라 공공임대가 중심이 되어 서울 가까이에 더 높은 건물을 세워 올리자는 주장이다. 정부가 핵심 과제로 꼽고 있는 지방 균형발전과는 정반대이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자’고 주장한다.
이와 반대로 ‘수도권 대항축’을 만들자고 말하는 쪽도 있다. 여당 내 영남권 인사들이 특히 이 같은 주장에 힘을 쏟는다(〈시사IN〉 제628호 ‘노무현의 균형발전 1.0, 김경수의 균형발전 2.0’ 기사 참조). 집중화 현상은 피할 수 없으니 차라리 부산·울산·경남을 중심으로 자원을 집중시켜 수도권의 인구 흡수를 견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이 전략 역시 나머지 지역의 빈집 발생을 ‘어쩔 수 없는 일’로 간주하는 경향이 강하다. 현 정부가 지방분권과 국토 균형발전을 추진하는 것과는 별개로 빈집 논쟁은 이미 진행되고 있다.
※ ‘빈집 프로젝트 페이지(house.sisain.co.kr)’에서 더 많은 사진과 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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