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신도시를 개발한 지방도시일수록 구도심 빈집 문제는 심각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지방 혁신도시 사업(지방균형발전 사업)이다. 수도권에 밀집한 공공기관과 공기업 지방 이전을 통해 지역거점 형성과 균형발전을 노린다는 구상이었다. 하지만 데이터는 혁신도시를 품은 도시일수록 빈집 문제가 심각하다는 걸 보여준다. 혁신도시는 어떤 원리로 빈집 문제를 유발할까? 인위적으로 새롭게 지은 도시는 과연 수도권 인구 분산을 위한 효과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이를 점검하기 위해 이번에 분석한 빈집 데이터 외에 인구 전입·전출 데이터를 교차 분석해보았다.
보통 살 집을 구한 후, 계약과 동시에 전입신고를 한다. 살 집을 구하는 게 어려워서 그렇지, 집을 구했다면 이사와 행정절차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 과정에서 데이터가 기록된다. 전입신고서에는 전입 연월, 전입·전출지, 전입·전출 구분(세대 구성·편입·합가), 전입 사유(직업·가족·주택·교육·건강 등)와 전입자 생년월일을 쓰게 되는데, 이렇게 수기로 작성된 서류는 주민센터에서 전산화를 거쳐 중앙주민전산망센터(통칭 주민망)에 쌓인다. 주민망에 취합된 데이터는 통계청에 전송되어 비식별화(개인임을 확인할 수 있거나 여타 정보와 결합하여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정보를 삭제하는 과정)와 품질 검수(오기입이나 모순되는 데이터 등을 삭제)를 거쳐 통계자료로 만들어진다.
통계자료는 통계청 홈페이지 및 MDIS (마이크로데이터 서비스)를 통해 연구자 혹은 개인에게 공개된다. 이번 분석에서는 이 공개된 데이터를 활용했다. A 아파트에 살던 누군가가 B 주택으로 이사 갔는지를 알 수 없지만, ㄱ동에 살던 30대 가구주가 10대의 자녀와 함께 ㄴ행정동으로 이동했는지는 알 수 있다. 개인정보는 이 과정에서 드러나지 않는다. 미국의 경우 인구이동의 전수기록을 제공하지 않고(표본만 제공), 일본은 시구정촌(기초지자체 단위로 한국의 시군구와 비슷함) 이동 데이터만 취합해 공표한다. 전 세계를 통틀어 이런 형태로 인구이동 데이터가 수집·공개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2018년 전출입 마이크로데이터를 바탕으로, 혁신도시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어디서 왔는지 분석해봤다. 강원도 원주시에 위치한 원주혁신도시는 2018년 한 해 혁신도시 전입인구 6149명 중 1419명, 전체 25%가량이 서울·경기·인천에서 이주했다. 원주시가 경기도와 연접해 있고, 2020년 말 중앙선 복선전철이 개통될 예정임을 감안해야 하지만 결코 작은 수치는 아니다. 당초 혁신도시의 정책적 목표에서 완전히 유리된 결과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수도권과 떨어져 있는 도시의 상황은 어떨까? 수도권 출신 이주민 비율은 전북 전주시 7.6%, 전남 나주시 17.05%, 경북 김천시 17.06%, 경남 진주시 9.74%를 기록했다. 도시마다 다소간 차이는 있지만, 수도권에서 전입한 인구는 대개 20%를 넘지 못한다. 새로 생겨나는 도시들은 필연적으로 주변 지역에서 사람을 끌어당길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적게는 60%(충북 혁신도시)에서 많게는 85%(전북 혁신도시)가량이 인근 시도 및 시군에서 전입했다.
혁신도시의 원형이자 각종 기반시설의 규모가 가장 큰 세종시는 어떨까?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2018년 한 해 동안 세종시 밖에서 총 4만3576명이 세종시로 전입했다. 2만6000명가량이 대전(1만7294명), 충남(4882명), 충북(4325명)에서 전입한 인구다. 외부에서 온 인구의 60%가 충청권이라는 얘기다.
이를 뒷받침할 만한 자료는 ‘2018년 공무원총조사’ 보고서이다. 근무처 소재지별 통계를 살펴보면 세종시에서 근무하는 전체 공무원 수는 1만9216명으로, 채 2만명이 안 된다. 2018년 말 기준 세종시 인구는 32만명이었다. 아주 넓게 보아 세종시 인구 중 5만명이 공무원과 공공기관 종사자라 하더라도, ‘주말에는 서울 가는 공무원 행렬’ 혹은 ‘야간에 텅텅 비는 유령도시’ ‘서울에서 다니기 불편한 교통’ 등으로 세종시를 설명하려는 시도는 다분히 중앙·수도권 중심의 시각이라고 할 수 있다.
혁신도시 주변 지역 공가율 급격히 증가
김천시와 나주시의 사례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자. 김천 혁신도시가 위치한 율곡동에 전입한 사람 4045명 중 1764명이 김천시 내에서 이동해왔다. 율곡동을 제외한 김천시의 2017년 평균 공가율은 11.9%였다. 같은 기준으로 뽑아낸 2015년의 공가율은 9.95%였다. 나주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혁신도시가 위치한 빛가람동에 전입한 사람 7437명 중 1641명이 나주시에서, 2600명이 광주광역시에서 왔다. 빛가람동을 제외한 나주시의 2017년 평균 공가율은 23.62%, 역시 같은 기준으로 뽑아낸 2015년의 공가율은 15.17%였다. 몇 년 사이 혁신도시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의 공가율이 급격히 증가한 셈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수치들은 혁신도시가 인근 도시의 인구를 빨아들이고, 그 결과 주변 도시들의 빈집을 만드는 데 일조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사실 이런 상황을 우리가 몰랐을 리 없다. 도청이나 시청 이전을 통해 ‘행정복합타운’이 만들어지고, 기존 도심이 침체되는 경험을 한 도시가 한두 군데가 아니기 때문이다.
출생률 0%대를 이야기하는 것도 이제는 식상하다. 지방 인구의 자연증가가 향후 몇십 년간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국가적으로 심혈을 기울여 환경을 조성한 신도시마저도 인구 유입을 주변 지역에 기대는 상황에서 정말로 ‘수도권에서의 인구 유입’을 원한다면 조금 다른 방식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
2018년 통계청 인구이동 데이터를 살펴보면 시도 간 이동이 242만명, 시군구 간 이동이 209만명, 시군구 내 이동이 277만명으로 시군구 내 이동이 가장 많았다. 이런 패턴을 이동 규모(한 번에 움직이는 인구수)별로 분리하면 양상이 명확하게 보인다(〈그림 1〉 참조). 혼자 움직이는 사람의 경우 시군구 내 이동, 시군구 간 이동과 비교했을 때 시도 간 이동의 규모가 압도적으로 많다. 이를 연령별·시도별로 분리한 게 아래 〈그림 2〉다. 광역자치단체 단위의 이동을 결정짓는 특정한 연령대가 눈에 띈다. 20세부터 34세까지 인구가 사실상 ‘거점지역을 이동할 수 있는 인구집단’인 셈이다.
결국 ‘외부로부터의 유입’을 만들기 위해서는 시도 간 이동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1인 가구, 그중에서도 20~34세의 사람들이 자리를 잡을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2018년 기준으로 혁신도시에 혼자 전입한 사람의 평균연령은 38.4세로, 전국 시도 간 1인 이동의 절반을 차지하는 연령대인 20~34세 구간보다 높은 편이었다. 새로 짓는 도시마저도 34세 이하의 선택지에서는 비껴나 있다는 이야기이다. 지방도시의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결국 젊은 인구의 이동에 유인 동기를 제공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고는 새 도시를 지어봤자 비슷한 사람이 비슷한 지역에서만 이동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지방 개발, 특히 혁신도시는 주변을 흡수하지 않는 ‘어려운 길’을 과연 택할 수 있을까? 이는 그나마 거점을 자유롭게 옮길 수 있는 20~34세 1인 가구에게 어떤 유인책을 펼치느냐에 달려 있다.
※ ‘빈집 프로젝트 페이지(house.sisain.co.kr)’에서 더 많은 사진과 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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