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10일 윤석열 대통령이 주택 정책을 주제로 두 번째 민생 토론회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1월10일 윤석열 대통령이 주택 정책을 주제로 두 번째 민생 토론회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단어 하나가 정책의 맥락을 다르게 전할 때가 있다. 1월10일 상당수 언론이 그랬다. “30년 넘는 아파트, 안전진단 없이도 재건축”이라는 헤드라인이 포털 사이트를 뒤덮었다. 이날 윤석열 대통령은 직접 경기도 고양시 일산신도시를 찾아 노후 아파트 현장을 둘러본 뒤 주택정책 관련 ‘민생 토론회’를 주재했다. 토론회에 맞춰 정부는 이른바 ‘1·10 대책’으로 불리는 ‘주택공급 확대 및 건설경기 보완 방안’을 발표했다. 가장 주목받은 내용은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였다. 이날 민생 토론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안전진단 없이 바로 재건축에 착수할 수 있도록 하겠다”라고 말했다. 언론과 정치권은 대통령의 말에서 ‘안전진단 없이’ ‘가능’이라는 표현에 주목했다.

그러나 실제로 대통령이 한 말에는 한 가지 단어가 더 붙는다. 바로 ‘착수’다. ‘재건축 가능’이 아니라 ‘재건축 착수 가능’이다. 조삼모사다. 안전진단 폐지가 아니라, 안전진단을 ‘병행' 또는 '나중에 하도록 허용’한다는 의미다. 과거에는 재건축을 할 때 안전진단을 먼저 시행해 ‘이 아파트가 정말 다시 지어져야 하는가’에 대한 판단을 마친 후 재건축 입안 제안, 정비구역 지정 등을 진행했다. 반면 앞으로는 ‘일단 사업을 추진하고, 실제로 다시 지어져야 하는지는 천천히 평가받는’ 방식으로 바꾼다는 게 이번 정책의 골자다. 전체 사업이 빨라질 수도 있지만, 반대로 안전진단 결과에 따라 벌여놓은 재건축 사업이 중단될 가능성이 생기는 방식이다.

조삼모사는 그러나 정치적 효과를 발휘한다. 이른바 ‘1·10 대책’으로 불리는 이번 정책은 총선을 겨냥한 정치적 이벤트라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윤석열 대통령이 연이어 주재하고 있는 ‘민생 토론회’는 정부 부처의 신년 업무보고를 비틀어 만든 이벤트다. 물가안정, 소상공인 지원 정책을 주제로 한 1월4일 1차 민생 토론회 이후, 1월10일 주택정책(국토교통부), 1월15일 반도체산업 지원(산업통상자원부), 1월17일 금융정책(금융위, 기획재정부)으로 민생 토론회 일정이 이어졌다. 이 자리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는 마치 총선 공약을 내놓듯 각종 정책을 발표했다.

민생 토론회 방식의 정책 발표가 선거를 의식한 이벤트라는 것은 토론이 열리는 ‘공간’에서도 드러난다. 1~3차 토론은 각각 경기도 용인·고양·수원 세 특례시에서 열렸다. 수도권 선거에서 가장 의석이 많은 도시(기초자치단체)이자, 상대적으로 여권이 약세를 보인다고 평가받는 지역이다. 경기도 선거의 승패를 가르는 곳이기도 하다. 야당에서는 당장 반발했다. 박성준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1월16일 “이렇게 대놓고 관권선거를 획책한 대통령은 없었다. 방문한 지역마다 선심성 정책을 발표하며 여론을 뒤집어보려고 시도하고 있다”라고 논평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총선을 준비 중인 염태영 전 수원시장은 1월17일 “수원 지역 토론회에는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에 포함된 지자체 중 경기도나 수원·평택·화성 등 민주당 소속 단체장들은 참석이 배제됐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윤석열 정부의 민생 토론회 일정이 ‘수도권 선거만을 위한, 수도권 중심 관점’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2차 민생 토론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수도권 노후 계획도시의 수용 인구를 늘리겠다고 밝혔고, 3차 민생 토론회에서는 경기 남부지역 반도체 산업단지에 대대적인 투자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민생’이라는 말을 앞세우고 있지만, 실제로는 인구 감소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수도권 집중화를 더욱 가속화하는 정책을 연거푸 쏟아낸다는 비판이다.

신년 윤석열 대통령의 행보는 용산 대통령실이 ‘어떤 지역의 선거를 어떻게 보완하려 하는가’를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한 여권 인사는 연이은 민생 토론회의 배경에 대해 “(대통령실이) 정책 패키지를 통해 유권자의 이익을 축적시키면 선거에서 이길 것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하고 있다. 마치 ‘금투세 폐지는 청년들이 좋아하니까 수도권 청년층에서 우리에게 표를 줄 것’이라고 여기는 식이다”라고 설명했다.

법 개정 고려하지 않고 발표

‘선심성 정책’이라는 비판을 받는 개별 정책이 실제로 추진 가능한 것인지(추진 가능성), 정책을 추진한다 하더라도 기대하는 효과를 거둘 것인지(실효성)에 대해서도 논란이 따른다. 주택 분야 정책 패키지인 1·10 대책이 특히 그렇다. 정부 정책을 찬찬히 뜯어보면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대목이 많아서다.

1·10 대책의 목표는 ‘주택공급 확대’와 ‘건설경기 보완’ 두 가지다. 기본 골자는 지난해 9월26일에 발표한 ‘주택공급 활성화 방안(9·26 대책)’과 유사하다. 주택 인허가와 착공이 줄어들어 공급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문제의식이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라는 정책 대안으로 이어진다. 지난해 12월28일 태영건설 워크아웃 신청 당시 금융 당국이 발표한 ‘부동산 PF 대책’ 내용도 이번 1·10 대책에 담겼다. PF 부실과 각종 미분양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는 투기성 수요를 끌어올리는 내용을 이번 대책에 포함했다. 지방의 준공 후 미분양 아파트를 추가로 구매하거나 인구 감소 지역의 주택을 신규 취득하는 경우, 빌라·오피스텔 등 신축 저가 주택을 추가로 구입할 경우 다주택자 규제를 완화해주겠다는 내용이다. 공급과 수요 모두를 진작하겠다는, 적극적인 주택시장 부양책이 담겨 있다.

하지만 ‘실현 가능성’ 측면에서 의구심을 버리기 어렵다. 당장 법 개정이 필요한 대책이 많아서다.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는 도시정비법을 바꿔야 하고, 다주택자 규제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조세특례제한법과 소득세법, 종부세법 등을 개정해야 한다. 이 밖에 도시형생활주택 규제 완화를 위한 주택법 개정, 단기 등록임대 부활을 위한 민간임대주택법 개정, 소규모 정비사업 활성화를 위한 소규모주택정비법 개정 등 국회에서 논의해야 할 과제가 수두룩하다. 총선을 앞둔 21대 국회는 사실상 소강상태다. 정부는 올 3월까지 1·10 대책에 포함된 관련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했으나, 실제로는 22대 국회가 열리는 6월 이후에나 추진 가능한 정책들이다. 정부의 ‘정책’이 총선용 ‘공약’처럼 읽히는 데에는 이런 일정상의 이유가 있다.

22대 국회에 관련법 개정안을 제출한들 빠르게 통과될 것이라고 기대하긴 어렵다. 부동산 관련 정책, 특히 투기 수요 진작을 위한 정책은 국회에서 상당한 진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미 지난 1년간 경험한 바 있다. ‘실거주 의무 폐지’ 논란이 대표적이다. 2022년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올림픽파크포레온)이 멈출 위기에 처하자 정부는 이듬해인 2023년 1월3일 이른바 ‘1·3 대책’을 발표했다. 당시 정부는 분양권 전매제한 완화, 실거주 의무 폐지, 부동산 규제지역 해제 등을 발표하며 부동산 경기 부양책을 내놓았다. 1·3 대책은 ‘둔촌 일병 구하기’라고 불릴 만큼 정책의 초점이 둔촌주공 재건축에 맞춰져 있다. 국내 최대 규모 재건축 단지인 만큼, 이 사업이 무너지면 건설·금융 업계에 파장이 크리라 예상해서다.

당시 정부 정책 가운데 ‘실거주 의무 폐지’는 국회에서 주택법을 개정해야 실현할 수 있었다. 야당은 “투기 수요를 그대로 인정해주는 꼴(홍익표 원내대표)”이라며 실거주 의무 폐지에 반대해왔다. 윤석열 대통령은 1월16일 “잔금 마련에 어려움을 겪는 무주택 실수요자들이 법을 어길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라면서 법안 통과를 재차 주문하고 있다. 여기서 윤 대통령이 지칭한 ‘법을 어길 수밖에 없는 이들’은 당장 거주할 능력이나 의사 없이, 꼭 실거주하지 않아도 된다는 정부의 말만 믿고 분양받은 경우다. 그러나 야당은 준비된 자금 없이, 실거주할 의향 없이 분양받은 이들을 도와야 한다는 것에 쉽게 납득하지 못한다. 여야 간 입장 차로 인해 실거주 의무 폐지는 국토위 법안심사소위에서 수개월 동안 논쟁이 일었다. 이처럼 투기 수요와 관련된 법 개정은 여야 간 첨예한 대립을 피하기 어렵다. 1·10 대책에 포함된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도 국회에서 장기간 논의가 이어질 수밖에 없는 문제다.

결국 중요한 건 사업성

경기도 고양시 일산신도시 일대. 평균 용적률 169%로 1기 신도시 가운데 그나마 밀도가 낮은 편이다. ⓒ시사IN 이명익
경기도 고양시 일산신도시 일대. 평균 용적률 169%로 1기 신도시 가운데 그나마 밀도가 낮은 편이다. ⓒ시사IN 이명익

1·10 대책의 실효성도 의문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가 발표한 대로 법을 바꾼들 기대만큼 재건축·재개발이 활발해지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도심 내 재건축·재개발 사업이 지지부진한 것은 ‘안전진단에 시간이 오래 걸려서’가 아니다. 사업성을 확보하기 어렵거나, 공공과 민간의 의견 차가 좁혀지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다.

특히 노후 아파트 재건축 사업은 근본적인 사업성 문제가 존재한다. 여기서 말하는 ‘사업성’이란 낡은 아파트를 신축 아파트로 바꿀 때 들어가는 비용보다 향후 얻을 것으로 기대되는 이익이 얼마나 클 것인지다. ‘아파트 재건축으로 집을 한 채 더 얻었다’는 일확천금 사례는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다. 5층짜리 아파트를 신축으로 바꾸던 시절에나 가능했던 이야기다. 현재 재건축 요구가 등장하는 노후 아파트는 1990년대에 지은, 이제 막 30년이 넘은 고층아파트가 대부분이다. 규정된 용적률을 이미 채운 고층 노후 아파트는 ‘추가 분담금’ 문제로 사업이 중단되기 일쑤다.

1990년대에 지어진 용적률 180%짜리 아파트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전용면적 85㎡ 의 시세가 6억원인데, 옆 동네 같은 평형 신축 아파트 시세가 10억원이라면 어떨까? 재건축을 추진하는 조합원들은 2억원 정도는 추가로 내고(분담금) 8억원에 새 아파트를 받아 2억원 차익을 남길 것이라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건축비가 상승하고 주택 경기 침체로 주변 신축 주택의 가격도 떨어질 경우 분담금 계산은 복잡해진다. 이미 제한된 용적률을 다 채운(서울시 2종 일반주거지역의 경우 200%) 경우라면, 재건축을 하더라도 일반분양 물량(조합원이 가져가는 집을 제외한, 시장에 내놓을 새집)이 적기 때문에 이익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즉 ‘사업성’이 나오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노후 아파트 재건축은 몇 가지 기로에 놓인다. 재건축보다 속도가 빠르고 비용이 저렴한 리모델링을 선택하거나, 새로 얻는 주택의 면적을 줄여 분담금을 줄이거나(마이너스 재건축), 지자체와 협의해 용적률 인센티브를 얻고 공공에 일정 수준의 이익(기부채납)을 내놓는 등 여러 선택지를 놓고 고심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조합원 간의 다툼이 일어나거나,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분담금이 발생할 경우 사업이 중단되고 이자비용이 늘어난다. 둔촌주공 재개발 역시 시공 비용과 분담금 문제가 위기의 원인이었다.

이때 지역 유권자들은 ‘사업성’을 정부나 지자체가 보완해달라고 요구한다. 종 상향 등을 통해 용적률 규제를 완화해달라는 요구가 대표적이다. 용적률 200% 규제가 있던 지역을 300%로 풀어줄 경우, 그만큼 일반분양으로 내놓을 집이 늘어나 분담금이 줄어든다. 그러나 공공이 허용해주는 추가 용적률은 그 자체로 공공의 자산이자 추후 공공이 감당해야 할 부담이 된다. 더 많은 용적률을 허용할 경우, 공공은 더 많은 인구를 위한 기반 시설을 확충해야 한다. 늘어난 세대로 인한 각종 교통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도 지자체의 예산이 소요된다.

그래서 공공이 용적률 상향 인센티브를 제공해 사업성을 보강해준다면, 개별 사업장 역시 공공에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관점이 오늘날 도시계획에서 중요한 원칙이 되고 있다. 재건축·재개발 과정에서 공공성을 어떻게 확보하느냐에 따라 작게는 건물 하나의 외형이, 크게는 도시 전체의 기능이 변한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은 이러한 ‘공공 기여분’에 대해서는 발언을 아끼고 있다. 오히려 현 정부의 정책이 철저히 시장 중심적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지난 1월10일 민생 토론회에서 윤 대통령은 “주민들이 집합적인 자기 재산권을 행사하겠다는데 그것을 가로막는다면 정부가 한심한 것이다”라며 부동산을 시장원리에 따라 작동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1월18일 서울시 노원구의 한 아파트 입구. 안전진단 비용을 모금한다는 플래카드가 붙었다.ⓒ시사IN 박미소
1월18일 서울시 노원구의 한 아파트 입구. 안전진단 비용을 모금한다는 플래카드가 붙었다.ⓒ시사IN 박미소

만약 대통령의 주장대로 시장원리만 따른다면, 용적률 상향이라는 인센티브 없이 재건축·재개발은 자연스럽게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15층이 넘는 노후 고층아파트가 넘치는 현실에서, 시장원리에만 의존하는 재개발·재건축은 쉽지 않다. 무엇보다 난개발을 우려하고 도시 기능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지자체장들은 공공의 자원인 용적률을 지렛대 삼아 재개발·재건축 과정을 통제하려 한다. 이는 국민의힘 소속인 오세훈 서울시장 역시 마찬가지다.

게다가 한국 사회의 인구구조 변화 역시 향후 재개발·재건축 환경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의 핵심은 원주민의 사업 참여 의지다. 그러나 거주민이 고령화될수록, 재개발·재건축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높아진다. 재건축 사업은 통상 십수 년이 걸리기 일쑤고, 고령층일수록 추가 분담금에 대한 부담감도 커진다.

1990년대는 고층아파트가 단기간에 우후죽순 들어선 시기다. 30년을 넘긴 노후 고층아파트 문제는 지난 대선에서도 쟁점이 되었다. 당시 낙선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역시 후보 시절 ‘용적률 500%가 적용되는 4종 주거지역을 신설하고 재건축·재개발 안전진단 절차를 완화’하는 공약을 발표했다. 다만 이 공약을 발표하던 당시 이 대표 역시 “과도한 개발이익이 발생하는 사업구역은 적절히 공공환수를 해서 지역사회에 환원될 수 있도록 하겠다”라며 ‘공공의 몫’을 강조했다. 공공과 나누지 않는, 조합원만 이익을 보는 재건축·재개발 사업은 어떤 정부든 어떤 지자체장이든 허용하기 어렵다.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의 이번 발표는 이 지점을 간과하거나, 또는 숨기고 있다. 1·10 대책이 ‘선거용’이라고 비판받는 이유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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