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 이래 최대 재건축’으로 불리는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아파트 재건축 현장. ⓒ시사IN 신선영

2022년 연말, 경남 창원에 있는 중견 건설업체 D사가 최종 부도 처리됐다. D사는 2022년 11월로 예정되어 있던 어음 22억원을 결제하지 못했다. D사는 경남 지역 도급순위 18위 업체로 최근까지 창원시 일대에서 각종 상가 건물을 공사·계획 중이었다. 500억원이 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지만, 현금 사정이 넉넉하지 않았던 D사는 결국 22억원을 막지 못했다.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2022년 부도 처리된 건설업체는 5곳이다. 2021년 2곳에 비해 늘었지만, 절대적 숫자만 놓고 보면 많다고 보기 어렵다. 2017년 17곳, 2018년 10곳, 2019년 7곳, 2020년 6곳에 비하면 적은 숫자다. 하지만 무너진 업체들이 부도 과정에서 겪은 구조적 문제는 결코 이 숫자를 가볍게 여기지 못하게 한다.

D사는 공사대금 대부분을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에 의존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다수 건설사업은 ‘미래에 창출될 이익’을 기반에 둔 PF 구조로 자금을 동원한다. 하지만 이익의 기대감이 꺾일 때, 이 구조는 심각한 위기에 노출된다. 톱니바퀴 구조에서 한 곳이 무너지면 돈의 흐름은 연쇄적으로 멈춘다. 부동산 PF와 연계되어 있는 금융기관까지 어려움을 겪으리라는 걱정이 퍼지고 있다.

이 위기의 여파를 추정하고 대응책을 모색하려면 부동산 PF 사업의 구조를 이해해야 한다. 부동산 PF는 부동산 개발사업에 필요한 돈을 PF 방식으로 동원하는 금융 기법이다. 아파트를 한 채 짓는다고 가정해보자. 아파트를 지을 땅을 사고, 인허가를 받고, 공사 원자재를 구해 건물을 지어 올린다. 최종적으로 이 사업은 완성된 아파트를 판매해야 돈을 거두어들일 수 있다. ‘분양’까지 완료되어야 비용을 회수하고 이익을 기대할 수 있다.

이런 사업 과정에서 처음부터 자기 돈으로 비용을 충당하는 회사는 찾기 어렵다. 사업 전반에 대출이 필수적이다. 그래서 ‘브리지론’ ‘본PF’ ‘집단대출’이라는 3단계 자금이 동원되는 게 부동산 PF 구조다. 브리지론은 인허가 전 단계에, 본PF는 인허가 이후 분양 전까지, 마지막으로 중도금 대출 또는 잔금 대출 같은 집단대출이 뒤따른다. 이 중 브리지론과 본PF는 사업시행 주체가 금융기관으로부터 직접 빌린다. 상대적으로 위험도가 높은(인허가 단계에서 사업이 엎어질 수 있으니) 브리지론은 짧은 기간(3~6개월) 동안 이뤄지는 중·고금리(연리 10% 이상) 대출이고, 인허가까지 완료된 단계에서 빌리는 본PF 대출은 이보다 장기간을 저금리로 빌린다.

시간을 2020년으로 거슬러 가보자. 모두가 부동산이 계속 상승할 것이라 기대하고 실제로 집이나 상가 분양이 늘 완판되는 분위기라면? 브리지론이나 본PF 모두 자금을 구하는 데 어려움이 덜하다. 금리마저 낮았던 시절이다. 2010년대 중반부터 국내 부동산시장은 꾸준히 호황을 경험했다.

그래서 부동산 PF 사업은 인기가 높았다. 부동산과 거리가 멀어 보이는 증권사들마저도 ‘사업 다각화’를 명분으로 앞다투어 뛰어들었다. 한국은행이 2022년 12월에 발표한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금융기관의 부동산 PF 대출은 2012년부터 꾸준히 늘었다(〈그림 1〉 참조). 상대적으로 위험한 브리지론은 제2금융권(캐피털, 저축은행, 증권사 등)에서 취급하고, 본PF는 이보다 더 안정성을 추구하는 기관투자자나 은행 등이 참여해왔다. 금융기관들은 이 같은 부동산 PF 사업에 돈을 빌려주면서 이 채권을 다시 회사채나 기업어음(CP) 같은 유동화증권 상품으로 쪼개서 다른 투자자들에게 판매하기도 했다.

한파 몰아친 부동산시장

하지만 2022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급격히 기준금리를 인상했고, 덩달아 한국은행도 연초 1%에 불과하던 기준금리를 3.25%까지 끌어올리면서 부동산시장은 급랭기로 돌아섰다. 부동산 PF 시장에도 찬바람이 불어 계획 중이던 사업이 전면 백지화되었다. 문제는 ‘추진 중’이던 사업이다. 토지 잔금을 치르지 못하거나 D사처럼 어음을 막지 못하는 경우에는 사업 자체를 중단하거나 업체가 도산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한 시행사 관계자는 “하반기에 공매로 넘어간 PF 사업이 많았다”라고 말했다.

부동산 PF 사업은 고수익·고위험 사업으로 분류된다. ‘고위험’인 이유는 부동산 경기변동이라는 변수가 존재해서다. 경기변동의 위험을 감수하기 위해서는 사업자의 자기자본이 뒷받침되어야 하지만, D사처럼 상대적으로 영세한 사업자들은 작은 충격에도 큰 대가를 치르게 된다. 2022년 건설사 부도가 주로 지역 소재 중소·중견 업체에서 발생한 이유이기도 하다. 영세한 업체의 자발적인 폐업 신고도 2022년 하반기부터 늘어나고 있다. 국토교통부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KISCON)에 따르면, 2022년 7월1일부터 12월29일까지 폐업 신고한 종합건설사는 전국 202개사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년도 동기(127개사)에 비해 50% 이상 늘어난 수치다.

올해 전망은 더 어둡다. 분양시장부터 수요가 끊겼다. ‘완판’ 분위기는 과거가 됐다.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전국 미분양주택 현황에 따르면, 2022년 1월 전국 2만1727호에 불과하던 미분양주택은 2022년 10월 4만7217호로 두 배 넘게 늘었다(〈그림 2〉 참조). 미분양이 가장 심각한 지역은 대구·경북이다. 대구는 1만830호, 경북은 6369호가 미분양 상태다. 수도권도 2022년 들어 미분양주택이 꾸준히 늘어 1월 1325호에서 10월 7612호로 상승했다.

부동산 매수 심리가 얼어붙으면서 기존 주택의 가격도 떨어지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하는 전국 주택 매매가격지수를 살펴보면, 2022년 7월 104.8이던 ‘가격 지수’는 2022년 11월 101.7로 내려앉았다. 이 지수는 2021년 6월 가격을 100으로 놓고 월별 가격을 비교한 결과인데, 전국 주택 가격이 이미 1년6개월 전으로 되돌아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기존 부동산 가격의 하락은 신규 분양 수요에 영향을 미친다. 대표적인 예가 서울 강동구 올림픽파크포레온(둔촌주공 재건축)이다. 둔촌주공 재건축은 비용 문제로 공사가 한 차례 중단된 바 있다. 우여곡절 끝에 공사가 재개되고 일반 분양도 진행했지만, ‘과연 분양받은 사람들 중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실제 계약서에 도장을 찍을 것인가’를 두고 여러 전망이 오간다. 비교 잣대가 되는 다른 아파트의 매매가격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어서다.

둔촌주공 재건축과 비교되는 대상은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헬리오시티 아파트다. 부동산업계에서는 헬리오시티가 강남과 조금 더 가깝다는 점을 들어 둔촌주공 재건축에 비해 가격이 높을 수밖에 없다고 본다. 이 말은 곧, 둔촌주공 재건축의 시장가격을 헬리오시티와 비교해 파악해볼 수 있다는 의미다.

둔촌주공 재건축사업의 분양가는 3.3㎡당 3829만원으로, 전용면적 59㎡ 세대의 분양가는 대략 9억~10억원이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데이터에 따르면, 동일 면적 헬리오시티 아파트는 최근 12억6500만원에 매매 거래가 됐다. 직전 거래액 20억9000만원에서 대폭 하락한 가격이다. 부동산 중개 플랫폼인 네이버 부동산에도 호가 14억원에 내놓은 매도 물량이 쌓여 있다. 부동산업계는 동일 면적 기준, 헬리오시티가 둔촌주공에 비해 2억~3억원 비쌀 것이라 가정하는데, 만약 헬리오시티 실거래 가격이 더 하락할 경우 둔촌주공 재건축의 시장가격은 분양가보다 하회하게 된다. 청약을 받은 사람들 가운데 계약을 포기하는 사람이 등장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퍼지고 있다.

둔촌주공 재건축사업은 2023년 1월19일, 약 7231억원 규모의 PF 대출 만기가 도래한다. 분양계약금을 통해 PF 대출을 상환하기 위해서는 1월17일까지 진행되는 청약 당첨자 계약이 원만하게 이뤄져야 한다. 7200억원 대출을 갚으려면 계약률이 80%는 넘어야 하는데, 만약 계약 포기자가 속출할 경우 재건축조합이 다른 대안을 통해 대출 상환 비용을 마련해야 한다. 이처럼 PF를 통한 부동산사업은 전반적인 부동산 경기변동에 상당히 취약한 구조다.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강남권역에 위치한 대단지 아파트 사업마저도 이렇다. 지방 도시일수록, 영세한 업체일수록, 아파트가 아닌 상가 부동산일수록 위기는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

부동산 PF 사업이 휘청이면서 금융권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특히 제2금융권의 부동산금융 위험이 주목받고 있다. 단기·고금리 대출인 브리지론을 많이 내어준 곳일수록 부담이 크다. 대표적인 업종이 캐피털 회사(여신전문 금융회사)다. 2022년 12월 한국신용평가가 발표한 산업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캐피털사 영업자산에서 부동산금융이 차지하는 비중은 과거에 비해 늘었다. 캐피털 회사의 전통적인 사업은 차량 할부나 리스 같은 자동차 금융이다. 2016년 12월만 해도 캐피털사의 영업자산 가운데 자동차 금융이 차지하는 비중은 44%, 기업·PF 대출 규모는 27% 수준이었다. 그러나 2021년 12월, 자동차 금융의 비중은 29%로 낮아진 반면, 기업·PF 대출은 40%로 높아졌다. 심지어 한 캐피털 업체(W사)는 자기자본의 264%가 브리지론에 묶여 있다. 한국신용평가는 이 보고서에서 “하반기에 만기가 도래하는 브리지론 중 상당수가 본PF 결성에 실패하여 기존 대주단(금융사) 그대로 연장하는 추세다”라고 평가했다.

이런 위기는 2011년 저축은행 사태를 떠올리게 한다. 부동산 PF 부실로 인해 저축은행 24곳이 문을 닫고, 공적자금 27조원이 투입된 사례다. 전개 과정도 유사하다. 금융위기 이후 부동산시장이 급랭했고, 부동산 PF에 대출해준 저축은행으로 위기가 전이되었다. 이번 위기 역시 저축은행을 비롯한 제2금융권의 부실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다만 저축은행 업계에서는 현 국면이 2011년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덜 위험하다고 평가한다. 2011년 부실 사태 이후 각종 규제 장치가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축은행은 PF 대출 외에 개인사업자 주택담보대출을 많이 내줬다는 점이 위험 요인으로 꼽힌다. ‘사업자 모기지론’으로 불리는 이 대출은 개인사업자가 아파트를 구입할 때 빌려주는 주택담보대출인데, 평균 매매가의 75% 정도를 대출해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LTV 75%). 부동산 투기 열풍이 한창이던 시절, 정부 규제를 피해 개인사업자 대출을 일으켜 ‘영끌’한 경우, 부동산 가격 하락은 저축은행의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이처럼 부동산시장의 급격한 침체는 부동산 PF 부실뿐 아니라 금융 건전성에 악영향을 미친다. 이 때문에 정부는 최대한 부동산시장의 위기가 금융위기로 옮겨붙는 것을 최소화하려 한다. 레고랜드 사태 직후 정부가 2022년 10월23일 시장안정대책, 11월11일 PF 시장 추가 지원 방안을 연이어 발표한 것도 금융시장의 위기만은 막겠다는 의도였다.

그러나 건설업계에서는 더 적극적인 지원을 주문한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지난해 11월에 발표한 ‘부동산 PF 위기 원인 진단과 정책적 대응방안’ 보고서에는 건설업계의 바람이 상당 부분 반영되어 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이 보고서에서 “국내 부동산 PF의 운영 방식을 들여다보면 시공사가 제공한 신용보강 장치가 모든 금융거래의 기초적인 담보로 활용된다”라고 지적한다. 즉 시공사인 대형 건설사들의 ‘책임준공’ ‘연대보증’ 등이 부동산 PF 사업의 ‘기초 담보’가 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래서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정부의 정책적 대응이 금융에만 초점을 맞출 게 아니라, 시공사 보호(건설사 보호)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건설업계의 출연을 통해 만든 민간 연구기관임을 감안하면, 이는 건설업계 전반의 목소리를 어느 정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보고서에는 다음과 같은 정책적 제안이 담겨 있다. “가장 큰 위험을 초래하고 있는 것은 바로 부동산시장(분양시장)의 냉각 문제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시장의 정상적 기능을 저해하고 있는 각종 부동산 거래 및 보유 규제에 대한 완화·개선 조치가 이뤄지는 것이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 당시 도입한 각종 부동산 관련 규제를 완화해 부동산시장에서 수요를 일으키는 것이 근본적인 대책이라는 주장이다.

다주택자 규제완화로 해결될까?

이 같은 주장을 윤석열 정부는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려는 모습이다. 지난해 12월21일에 발표한 ‘2023년 경제정책방향’에서 정부는 다주택자에게 물리던 취득세 중과세를 완화하겠다고 밝혔다. 조정대상지역에서 2주택째 구입할 경우 8%였던 세율을 1~3%로 낮추는 식이다. 다주택자의 주택 구입 부담을 낮춰서 매입 수요를 끌어올리겠다는 의향이 담겨 있다. 다주택자 수요를 회복시키려는 시도는 2023년에도 계속 이어질 수 있다. 취득세 외에도 양도소득세, 보유세(재산세·종합부동산세)에서도 다주택자에 대한 규제가 완화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그러나 다주택자를 통해 부동산시장의 붕괴를 막고 지탱한다는 정부와 건설업계의 논리가 한국 경제에 긍정적일지는 미지수다. 다주택자 규제를 마냥 풀다가는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2022년 12월 ‘금융안정보고서’에서 최근 부동산시장과 주택임대차 시장의 변화가 전세자금 대출의 증가 속도를 둔화시키고, 기존 전세자금 대출의 상환도 촉진했다고 설명한다. 이는 곧 가계부채의 증가를 억제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러나 부동산시장을 다시 억지로 끌어올리면 이 같은 가계부채 억제 효과도 희석될 수밖에 없다. 다주택자 규제완화를 주장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리포트조차 “규제완화가 가계부채 증가로 이어지거나, 투기성 자본에 대한 이익 획득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라며 부작용이 존재한다는 것을 언급했다.

정부의 다주택자 친화 정책이 얼마나 부동산 매수 심리를 끌어올릴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지금처럼 부동산 매수 심리가 얼어붙은 것은 금리 인상의 영향이 크다. 금리가 계속 상승 기조를 유지하는 가운데 세금만 조절한다고 해서 다주택자들이 주택 매수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부동산 PF로 촉발된 각종 위기는 도미노처럼 번져가고 있지만, 우리는 당장 과거처럼 ‘유동성이 풍부한 시대’로 돌아갈 수 없다. 결국 정책 당국의 ‘섬세한 접근’이 중요한 시기다. 가계부채 감소와 부동산 PF 부실 여파 최소화라는 두 가지 목표를 잡아야 하는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는 일단 ‘다주택자 카드’를 빠르게 꺼내들었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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