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정책이 시장을 움직이기도 하지만 시장 상황에 따라 정책 방향이 바뀌기도 한다.ⓒ시사IN 이명익

윤석열 정부의 첫 부동산 대책이 발표되었다. 지난 8월16일 발표된 ‘국민 주거안정 실현방안’이다. 수도권 도심을 중심으로 공급 물량을 늘리고 재개발·재건축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 등을 담았다. 후보 시절 공약집과 취임 초 내놓은 ‘윤석열 정부 경제정책 방향’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충분한 주택 공급 및 시장기능 회복을 통한 부동산 시장 정상화’(2022년 6월 윤석열 정부 경제정책 방향)라는 큰 틀이 유지되었다.

한 정부의 임기는 5년이다. 처음 내놓은 정책 방향이 5년 내내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 여러 가지에 달려 있다. 정부 정책 흐름과 부동산 사이클은 함께 가기도, 엇갈리기도 한다. 지금 내놓는 정책이 바로 효과를 낼 때도 있지만 많은 경우 3~4년 뒤, 임기가 지난 뒤에나 시장 상황에 반영된다. 정책이 시장을 움직이기도 하지만 시장 상황에 따라 정책 방향이 바뀌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정부의 첫해, 첫 번째 부동산 정책은 깊이 들여다볼 만하다. 그 정책 패키지 안에 그 정부의 부동산 문제에 대한 철학과 기조, 즉 ‘초심’이 담겨 있다. 그 정부가 보호(지원)하고자 하는 대상, 싸우고자 하는 집단이 누군지도 드러난다. 이를테면 부동산 정책을 통해 노무현 정부는 투기세력을 벌주고자, 이명박 정부는 건설업계에 힘이 되고자, 박근혜 정부는 세입자가 집 사고 하우스푸어가 집 팔게끔, 문재인 정부는 실수요자를 투기세력으로부터 보호하고자 했다. 실제 그 목표를 달성했느냐는 별개이지만, 그 ‘초심’은 어느 시점, 어느 부문엔가는 분명 국민의 삶과 주거에 영향을 미친다.

노무현 정부:투기하면 벌 받는다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첫해부터 키워드가 ‘안정’이었다. 첫 종합판 대책이라 할 수 있는 ‘주택시장 안정 종합대책(2003년 10월29일)’ 보도자료에는 ‘안정’이라는 낱말이 총 19회 등장했다. ‘투기’는 54회, ‘강남’ 13회, ‘단속’은 7회다. 노무현 대통령 취임 전해인 2002년 전국 주택매매가격 증가율은 사상 최고인 16.4%였다.

노무현 정부는 부동산 시장 과열의 원인을 ‘투기 수요’로 보았다. 취임 100일 즈음 내놓은 첫 대책 ‘주택가격 안정대책(2003년 5월23일)’ 보도자료에서 시장의 과열 원인을 다음 세 가지로 요약 정리했다. ‘1. 구조 안전에 문제가 없음에도 자산가치 증식을 목적으로 하는 재건축 아파트에 대한 투자수익 기대로 수요 촉발 2. 투자 기회를 찾지 못한 부동자금 일부가 주택시장에 유입돼 투기수요 가세 3. 행정수도 건설, 신도시 개발 등에 대한 개발이익 기대감 고조.’ 따라서 투기과열지구를 지정하고 분양권 전매 제한과 비과세 요건을 강화하는 등 규제를 바짝 조이고 세금을 무겁게 매기면 과열된 부동산 시장이 안정되리라 보았다.

정부 정책을 거스르는 행위에 대해서는 단속과 처벌 의지를 강하게 나타냈다. “동원 가능한 모든 행정력을 투입해 투기 조짐이 있는 지역에 대하여는 초동 단계부터 집중 단속”하겠다고 첫 대책 때부터 엄포를 놓았다. ‘투기꾼’의 정의와 종류를 밝히고, 하면 안 되는 투기·탈법 행위 예시를 수십 가지 상세히 나열해놓았다. 부동산 단속반이 매일 중개업소·모델하우스·분양 현장을 오전·오후 정기적으로 순회하고, 상시 휴대 사진기로 불법·탈법 현장과 행위자를 촬영해 추후 형사고발 증빙자료로 쓰고, 세무조사에 총 3000명을 동원하겠다고 밝혔다. ‘투기하면 벌 받는다’로 요약되는 노무현 정부 첫해 부동산 정책 방향은 향후 임기 내내 이어졌다. 하지만 원하는 목적을 이루지는 못했다.

2003년 5월, 서울 가락동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를 방문한 서울 송파세무서 직원들. ⓒ사진공동취재단

이명박 정부:토건이 죽으면 부동산도 죽는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던 2008년은 높았던 산만큼 깊은 골이 시작되는 시기였다. 이전 7~8년간 날뛰었던 부동산 시장이 숨을 고르던 와중에 리먼 사태 등 금융위기가 터졌다. 이 정부의 첫 부동산 정책은 미분양 아파트 대책이었다. 2008년 3월 당시 전국 미분양 아파트는 13만2000호, 1998년 외환위기 때의 10만3000호를 훌쩍 넘었다. 시장이 과열되던 시기 마구잡이로 지은 아파트들이 지방 비인기 지역에서부터 소화가 안 되기 시작하는 상황이었다. 정부는 규제 완화로 ‘수요 감소’라는 위기에 대응하고자 했다. 일부 지역에 대해 분양권 전매 제한을 풀고, 담보인정비율(LTV)을 올리고, 취등록세를 깎아줬다(2008년 6월1일 ‘현 지방 미분양 상황평가 및 정책 대응방향’).

다만 이 정부는 부동산 시장 못지않게 건설 경기의 ‘온기’ 또한 중요하게 여겼다. ‘토건’ 대통령의 면모에 걸맞게 거의 모든 부동산 정책에 건설업 침체와 건설업체 경영난을 막기 위한 정책을 결합시켰다. 건설업계가 힘들어지면 신규 주택 투자가 위축돼 공급 불안을 초래하고, 향후 수급 불균형에 따른 가격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논리였다. 이는 취임 이후 첫 종합판 부동산 대책인 ‘주택공급 기반강화 및 건설경기 보완방안(2008년 8월21일)’의 명칭과 내용에 잘 담겨 있다. “건설업계를 살리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부동산 ‘공급’ 정책이 필요하고 이는 부동산 시장의 ‘근본적인 안정’을 이룩한다.” 이 정책 방향의 결정체가 2008년 9월19일 발표한 ‘국민 주거안정을 위한 도심공급 활성화 및 보금자리주택 건설방안’이었다. 매매 수요가 높은 서울·수도권 요지를 중심으로 주택 150만 호 이상 건설을 계획했다. 이후 10년 가까이 부동산 시장을 하향 안정화(혹은 침체)시켰다고 칭찬(혹은 비판)받는, 보수 정부의 ‘아이러니한’ 공급 정책이기도 했다.

ⓒ시사IN 최예린

박근혜 정부:집 사면 상 줄게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하기 직전인 2012년은 전국 주택매매가격 증가율이 0%를 기록하던 해였다. 대출이자와 원리금 상환에 힘겨워하는 ‘하우스푸어’와 그런 집들에서 전세보증금 미상환의 위험을 떠안고 세를 사는 ‘렌트푸어’가 사회문제로 떠오르던 시기였다.

박 정부는 “거래가 극도로 위축되고 주택 구입 수요가 대거 전세 수요로 전환된” 당시 부동산 시장 상황을 ‘비정상’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그 원인을 가격상승기에 짜인 정책, 그러니까 “과거 정부 시절 잘못 짜여 고착된 수요 억제·공급 확대의 틀”로 지목했다(2013년 4월1일 ‘서민 주거안정을 위한 주택시장 정상화 종합대책’).

‘수요 억제’ 정책이란 노무현 정부 시기 도입된 각종 규제를 가리킨다. 이명박 정부 시기 이미 많이 풀었지만 남은 것까지 더 풀었다. 분양가상한제, 토지거래허가구역, 주택 정비사업 규제 등을 완화하거나 폐지했다. 취득세와 양도소득세는 낮추다 못해 아예 어떤 조건하에서는 화끈하게 면제해줬다. 불과 10년 전 잠재적 단속 혹은 징벌 대상이던 주택 구입자와 소유자는 이제 각종 세제와 금융 ‘지원’ 대상이 되었다.

이명박 정부에서 내세운 ‘공급 확대’ 기조도 뒤집었다. 단순히 늘리지 않을 뿐 아니라 “줄이겠다”고까지 선언했다. “공공분양주택의 공급 물량을 기존 연 7만 호에서 2만 호로 축소하고, 수도권 그린벨트 내에서 새로운 보금자리 지구를 더 이상 지정하지 않겠다”라고 약속했다. ‘신규 물량이 너무 많아 집값이 안 오른다’는 세간의 요구를 받아들인 것이다.

박 정부 취임 첫해에 두 번째로 나온 부동산 정책은 ‘서민·중산층 주거안정을 위한 전월세 대책(2013년 8월28일)’이었다. 하지만 사실상 앞서와 같은 주택 매매 수요 증대 정책이었다. 취득세 부과 대상과 세율을 더욱더 좁히고 주택 구입자에게 1% 저리로 돈을 빌려주는 신규 대출상품을 만들어 소개했다. 2013년 8월28일 전월세 대책 발표 시 국토교통부가 내놓은 ‘예상 질의응답’ 자료에 박 정부가 당시 부동산 시장을 바라보던 관점이 잘 담겨 있다. “Q:전세시장 대책인데, 왜 매매시장 활성화가 중요한지?” “A:지금 전세시장의 가장 큰 문제는 주택 구입 능력이 있는 사람들마저 낮은 집값 상승 기대감과 전세 거주 비용에 비해 월등히 높은 주택 구입·소유 비용 때문에 전세 수요로 몰리는 상황에서 비롯.”

문재인 정부:실수요자를 보호하라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시행한 규제 완화·집값 부양 정책들은 2014~2015년도부터 효과(?)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도에는 이미 서울 강남, 목동, 마포, 용산 등지에서 시장 과열 현상이 나타나고 있었다. 문 정부의 첫 부동산 대책 보도자료에 다시 ‘안정’이라는 낱말이 여러 번 나타났다. ‘투기’ ‘시세차익’ ‘전매’ ‘엄정한’ ‘질서’ ‘현장점검’ 같은 단어들도 함께 등장했다.

다만 문 정부는 과거 노무현 정부와 달리, 정책을 짤 때 주택 구입 수요를 두 부류로 나눠 상정했다. ‘실수요’와 ‘투기 수요’다. 주로 ‘다주택자’로 호명된 후자는 노무현 정부 때처럼 단속과 징벌, 그리고 과세의 대상이 되었다. 이들과 명백히 다른 실수요자야말로 진정 주택을 구매할 자격과 명분을 갖춘, 정부의 ‘보호’ 대상이었다. 이들 실수요자를 위협하는 건 투기 목적으로 주택 사고팔기를 반복하며 한껏 집값을 올린 다주택자(투기자)다. 그래서 이 두 부류에 대해 선별적·맞춤형으로 각각 제어하거나 보호하는 방안을 임기 첫해에 집중적으로 발표했다.

또한 문 정부는 부동산 정책을 오로지 ‘집값 문제’로 바라보겠다고 선언했다. 경기부양의 수단으로 삼지 않겠다는 것이다. 2017년 8월2일 이른바 8·2 대책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김현미 당시 국토교통부 장관은 말했다. “더 이상 주택시장을 경기부양의 수단으로 이용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원칙을 세웠습니다. 서민 주거가 불안정한 상태에서 내수시장이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은 환상입니다. 집값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경제성장률은 숫자에 불과할 뿐입니다.” 이는 이후에도 한참 동안 대규모 부동산 공급 정책을 펴지 않는 정책 기조로 이어졌다. ‘주요 요지에서 공급이 부족해 집값이 계속 오른다’는 주장 또한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다가, 임기 말기인 2021년 2월4일 ‘공공주도 3080+대도시권 주택공급 획기적 확대방안’에서 최초로 다소 입장을 바꾸었다.

2009년 3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이명박 정부 부동산 정책 수혜자 분석’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시사IN 포토

윤석열 정부는?

일단 지금까지 윤석열 정부는 다른 부문에서처럼 부동산에 대해서도 ‘시장 자유주의’와 ‘작은 정부’를 천명한다. 지나친 집값 급등은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충분치 않기 때문이고 인위적 개입, 그러니까 문재인 정부가 다시 되살리거나 새로 만든 각종 규제들이 그 문제를 더 심화시킨다고 본다. 이런 기조에 따라 8월16일 내놓은 첫 대책도 공급 확대·규제 완화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특히 재개발·재건축 사업 관련 규제를 풀고 도심 내 주택 공급에 민간업체가 활발히 참여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향후 5년간 270만 호 주택 공급이라는 목표도 제시했다.

그런데 이 모든 계획의 토대는 ‘현재 집값이 오르고 있다’는 전제였다. 그 전제는 전 정권에게 선거 패인의 요인이자 윤 정부에게 정권 창출의 디딤돌이었다. ‘집값은 끌어내리지 않되 세금은 내려주겠지’ 기대하는 다주택자와 ‘나를 상대적 빈자로 만든 문재인 정부를 용서할 수 없다’고 분노한 무주택자, 두 정반대 부류의 지지자들이 윤석열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그 전제가 지금 흔들리고 있다. 지난 6월부터 전국 아파트 매매가격지수 변동률은 마이너스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수억 원씩 떨어진 실거래가가 속출하고 중개업소에 매물이 쌓이고 있다. 불과 몇 년 전의 과열기가 무색하게 부동산 시장은 급속히 얼어붙고 있다. 윤 정부는 정권 초기부터 ‘부동산 딜레마’에 직면하게 되었다.

윤 정부는 어떤 기대를 먼저 배반하게 될까? 주택 소유자와 부동산 투자(투기)자들을 위해서라면 세금을 더욱 낮추되 공급은 조절할 수도 있다. 홍춘욱 리치고 인베스트먼트 대표는 이번 윤 정부의 부동산 대책 내용을 보면서 ‘계획(공약)대로 못 가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생각보다 부동산 시장이 빨리 식고 있는 상황에서 조만간 공급 물량과 시기 조절을 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수요 증진 쪽으로 돌아설 수도 있다. 부동산 정책을 어떤 신념과 철학으로 밀고 나간 정부들이 몇 번 있었지만 이번 정부는 그러진 않을 것 같다. ‘시장 상황 봐서 유연하게’라는 표현이 곧 등장할 것이다.”

시장 침체 못지않게 시장 과열도 아직까지 윤 정부가 두려워하는 시나리오 중 하나다. 재건축 안전진단 규제 완화 플랜을 이야기하면서 “다만 어렵게 어렵게 찾은 최근의 시장 안정 기조가 유지될 수 있도록, 시장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하여 적용범위·시행시기 등에 대한 최적 대안을 연말까지 제시”한다거나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큰 과제이니만큼 단계적으로 신중하게 추진”하겠다며 공급촉진지역 지정 시기를 늦춘 것이 대표적이다.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경제금융부동산학과 교수는 아직은 유지하는 이 최소한의 조심성을 윤 정부가 조만간 잃을까 봐 우려했다. “한국 부동산 시장이 굉장히 덩치가 커져서 이제 부양책을 쓴다고 바로 반응하고 그러지 않는다. 시장에 잘 먹히지 않는다며 이명박 정부 때부터 마구잡이로 강도를 높여 내놓은 규제 완화 정책들이 결국 2014~2015년 이후 부동산 가격을 폭등하게 만들었다. 윤 정부 때도 똑같은 과오가 반복될 위험이 적지 않다.”

이제 첫 대책이다. 재건축 부담금 감면 대책(9월), 신규 택지 발표(10월), 민간분양 신모델 택지 공모(12월) 등 진짜 시장에 영향을 미칠 구체적인 정책 발표는 대부분 연말로 미뤄졌다. 과거 부동산 침체기를 맞은 보수 정부는 같은 듯 다른 정책을 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모두 규제는 완화했지만 이명박 정부는 애초의 공급 확대 방안을 밀고 나갔고 박근혜 정부는 공급 축소로 돌아섰다. 윤석열 정부는 부동산 정책의 역사에서 제2의 이명박 정부가 될 것인가, 박근혜 정부가 될 것인가. 혹은 그보다 더 낫거나 더 나쁜 정부가 될 것인가. 내밀 수 있는 카드는 아직 여러 개 남아 있고 시장 상황은 속속 변하고 있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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