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관 방통위원장은 최근 YTN 보도와 관련해 형사·민사 소송을 제기했다.ⓒ시사IN 이명익
이동관 방통위원장은 최근 YTN 보도와 관련해 형사·민사 소송을 제기했다.ⓒ시사IN 이명익

지난해 7월17일 권성동 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취임 100일을 맞아 연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일부 언론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언론을 장악하려고 한다는 의혹을 보내고 있는데, 제가 이 자리에서 약속드린다. 언론을 장악하겠다는 의도도, 계획도 없다. 그런 생각조차 해본 일이 없다.” 권 대표는 “지금 방통위원장이 누구냐, 한상혁씨 아니냐. ‘민주당 사람’이 방통위원장을 차지하고 있는데 어떻게 우리가 지금 방송을 장악할 수 있겠느냐”라며 이렇게 덧붙였다. “우리에게 방송 장악 의도가 있다는 비판을 하려면 한상혁씨가 사퇴하고 우리가 맡아야 그런 주장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1년3개월이 지난 2023년 10월 초의 언론계 상황을 점검해보자.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말하던 ‘언론 장악 비판’의 조건들이 '차고 넘칠 만큼' 충족되었다. 지난 5월30일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이 면직되었다. 방통위 감사, 검찰 조사, 관계자 압수수색과 구속(시도) 등 일련의 과정들이 1년여 동안 진행된 결과였다. 8월28일 새 방통위원장으로 취임한 인사는 이명박(MB) 정부 시절 청와대 홍보수석을 지낸 이동관 대통령실 대외협력특보다.

방통위를 필두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 한국언론진흥재단, KBS,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 EBS, TBS 등 정부(지자체)와 여당이 위원·이사 추천 몫을 지닌 언론사 및 기관들도 비슷한 과정을 밟았다. 먼저 감사, 고소·고발, 압수수색 등이 전방위로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국가기관이 전방위적으로 등장한다. 경찰·검찰뿐 아니라 감사원, 국세청, 국민권익위원회, 대통령실 등이 얽혀 있다. 이 과정에서 전 정부에서 임명되었거나 야권으로 분류되는 사람을 해임하고 그 자리에 친여 성향 인물을 임명한다. 새로 임명된 이사(위원)는 정부 비판적 언론사·보도에 대해 제재하는 결정에 참여한다. ‘언론 장악’으로 비판받는 흐름이다. 이런 일이 지난 1년5개월 간 차례차례 진행되었다.

3월21일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한 한상혁 당시 방송통신위원장. ⓒ시사IN 이명익
3월21일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한 한상혁 당시 방송통신위원장. ⓒ시사IN 이명익

잇따른 고소·고발과 압수수색

이번 정부와 여당은 특히 언론사나 언론인에 대한 고소·고발을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했다. 지난해 9월29일 국민의힘 ‘MBC 편파·조작 방송 진상규명 특별위원회(TF)’는 MBC 사장과 보도국장, 디지털뉴스국장, 취재기자 등을 무더기로 형사 고발했다. 윤 대통령 방미 기간 중 일어난 비속어(이른바 ‘바이든 날리면’ 발언) 보도 논란을 일으켜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였다. 외교부는 같은 사안으로 “한·미 동맹을 위태롭게 했다”라며 MBC에 정정보도 청구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2월3일에는 대통령실이 직접 나서 ‘천공 관저 개입’ 의혹을 보도한 〈뉴스토마토〉와 〈한국일보〉 기자들을 형사 고발했다. 2월15일에는 대선후보 검증 취재차 지난해 10월 윤석열 당시 후보의 40년 지기를 찾아간 UPI 기자들에게 주거침입죄 벌금형이 선고되었다. 4월12일에는 검찰이 최승호·박성제 전 MBC 사장 등을 노동조합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9월7일에는 국민의힘 의원들이 ‘김만배 녹취록’을 보도한 〈뉴스타파〉·MBC·JTBC 기자들을 고발했고, 검찰은 곧바로 ‘대선 개입 여론조작 사건 특별수사팀’을 구성했다.

대통령뿐 아니라 한동훈 법무부 장관도 언론 보도로 인한 피해를 자주 호소한 단골 ‘피해자’이자 ‘고소인’이다. 한 장관은 지난해 9월28일과 12월2일 두 차례 〈시민언론 더탐사〉(〈더 탐사〉) 기자들을 명예훼손, 스토킹 혐의 등으로 형사 고소했다. 지난 1월5일에는 2020년 7월 한동훈 당시 검사장이 연루된 검언 유착 의혹을 보도한 KBS 기자가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기소되었다. 5월30일에는 한 장관의 개인정보를 유출한 혐의로 MBC 기자 자택과 휴대전화를 압수수색했다.

최근에는 이동관 방통위원장이 8월16일과 8월20일 두 차례 연이어 YTN에 대해 형사·민사 소송을 제기했다. 8월16일에는 분당 흉기난동 사건을 보도하면서 이 위원장의 얼굴을 배경화면으로 띄운 YTN의 실수에 대해 명예훼손 형사 고발과 함께 3억원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8월20일에는 부인의 인사 청탁 의혹을 보도한 YTN 보도에 대해 명예훼손 고소와 함께 5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9월14일 검찰 관계자들이 서울 중구 〈뉴스타파〉 본사를 압수수색하기 위해 진입하려다 직원들과 대치하고 있다. ⓒ시사IN 조남진
9월14일 검찰 관계자들이 서울 중구 〈뉴스타파〉 본사를 압수수색하기 위해 진입하려다 직원들과 대치하고 있다. ⓒ시사IN 조남진

윤석열 정부 취임 후부터 지금까지는 그 어느 때보다 언론 관련 기관과 인사에 대한 압수수색과 구속이 자주 시도된 시기이기도 했다. 지난해 8월25일과 12월7일에는 〈더탐사〉, 지난해 9월23일에는 방통위 전 심사위원, 5월30일에는 MBC, 9월1일에는 신학림 전 언론노조 위원장, 9월14일에는 〈뉴스타파〉·JTBC 본사와 소속 기자들에 대한 압수수색이 이어졌다. 이동관 방통위원장이 고소한 ‘YTN 방송사고 수사’에서도 압수수색 영장이 신청되었으나 9월19일 법원에서 기각했다.

2월2일과 3월8일에는 전 방통위 국장과 심사위원(현직 교수)이 ‘TV조선 재승인 점수 조작’ 혐의로 구속되었다. 한상혁 당시 방통위원장에 대해서도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3월29일 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더탐사〉 소속 관계자들에게도 지난해 12월29일과 올 2월22일 검찰이 두 차례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가 모두 기각되었다.

특정 언론사나 기자들이 명확한 기준과 원칙 없이 취재나 지원 사업에서 배제되거나 제한을 받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지난해 11월9일 대통령실이 MBC 취재진에게 대통령 전용기 탑승을 불허한 일이 대표적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11월18일 이에 대해 “대통령의 헌법 수호 책임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4월12일에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언론인 해외연수 사업에 참여하기로 결정되었던 KBS 기자가 돌연 ‘연수 취소’ 통보를 받았다. 윤 대통령에 관련된 오보를 냈던 기자였다. 이제껏 오보 등을 이유로 연수 취소 결정이 내려진 전례는 없다.

6월30일 서울 여의도 KBS 본사 근처에서 보수단체와 유튜버들이 김의철 사장 사퇴와 수신료 분리징수를 촉구하고 있다. ⓒ시사IN 조남진
6월30일 서울 여의도 KBS 본사 근처에서 보수단체와 유튜버들이 김의철 사장 사퇴와 수신료 분리징수를 촉구하고 있다. ⓒ시사IN 조남진

'돈줄'을 조이는 방법도 언론사들을 위축시킨다. KBS는 ‘수신료 분리징수’로 경영상 타격이 예상된다. 3월9일 대통령실은 ‘국민제안’이라는 형식으로 KBS 수신료 분리징수에 대한 여론 수렴에 나섰다. 여당측 위원들로 다수 구성된 방통위는 7월5일 KBS 수신료 분리징수 시행령을 의결했다. 정부는 언론 공공성을 위한 예산은 대폭 줄이고 정권 홍보성 예산은 크게 늘렸다. 8월29일 방통위는 KBS와 EBS, 공동체라디오와 YTN 사이언스에 지원해오던 예산을 내년도에 대거 삭감하는 안을 내놓았다. 정부가 국가기간통신사 지원 명목으로 연합뉴스에 지원해오던 예산도 내년도에 80%가 삭감되었다.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을 풍자한 작품 ‘윤석열차’를 전시해 정부로부터 경고를 받은 한국만화영상진흥원도 예산이 절반 가까이 깎였다.

정부는 왜 ‘가짜뉴스 퇴치’를 들고나왔나

대신 문체부는 내년도 예산안 가운데 대통령 해외순방 취재 지원·외신 오보 대응 등 미디어홍보 사업 분야 예산을 36.6% 늘렸다. 국정홍보 방송인 KTV 예산도 25% 증액했다. ‘가짜뉴스 대응’을 명분으로 보수 언론단체 지원도 늘렸다. 행정안전부는 보수 언론단체 공정언론국민연대의 ‘공영방송 가짜뉴스 팩트체크 사업’에 3100만원을 지원했다. 언론재단은 보수 성향 단체 자유언론국민연합이 개최한 ‘2023 상반기 10대 가짜뉴스 시상식&기념토론회’에 3000만원을 지원했다.

정부·여당이 내는 언론 정책 대다수는 '가짜뉴스 타도'를 표방한다. 4월20일 문체부는 ‘가짜뉴스 퇴치’를 범정부적 대응을 선포하고 5월9일 언론재단 내에 가짜뉴스 신고·상담 센터를 설치했다. 7월26일 국민의힘은 ‘가짜뉴스·괴담 방지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김장겸 전 MBC 사장을 위원장으로 앉혔다. 정부·여당이 지목하는 '가짜뉴스'의 사례를 보면 대다수가 정부 비판, 대통령 측근과 권력 실세들에 대한 의혹 제기 보도들이다. 정부가 규정하는 '가짜뉴스'의 정의와 범위가 너무 자의적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최근 〈뉴스타파〉의 ‘김만배 녹취록’ 검찰 수사를 기점으로 이른바 '가짜뉴스'에 대한 대응은 더욱 강해졌다. 9월6일 문체부는 “‘윤석열 커피 가짜뉴스’의 생산·유통 과정 추적·분석, 대응 조치를 위해 지난 4월 만든 가짜뉴스 퇴치 TF를 가동했다”라고 밝혔다. 방통위는 같은 날 “고의, 중대 과실 등에 의한 악의적인 허위 정보를 방송 통신망을 이용해 유포할 경우 ‘원스트라이크 아웃’이 가능한 통합 심의 법제’ 도입을 검토하겠다”라고 밝혔다. 이튿날 서울시는 “〈뉴스타파〉의 신문법상 위반 행위가 확인될 경우 발행 정지명령이나 신문등록 취소심판 청구를 신청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겠다”라고 밝혔다.

9월25일에는 방심위가 〈뉴스타파〉의 인터뷰를 인용 보도한 KBS·JTBC·YTN에 최고 징계 수위인 ‘과징금 부과’ 결정을 내렸다. 더불어 9월18일 방통위는 가짜뉴스 근절 종합대책을 발표했는데, 그 가운데에는 방심위가 인터넷에 올라오는 모든 뉴스를 심의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이 방안이 실현되면 앞으로는 방송사뿐 아니라 사실상 모든 언론사가 방심위의 심의 대상 안으로 들어간다. 포털 등 온라인 기사에 대해 방통위와 방심위가 ‘가짜뉴스’인지 아닌지를 규정하고 제재하겠다는 것이다.

뉴스 유통 플랫폼인 포털사이트도 본격적으로 도마 위에 올라왔다. 5월12일 국민의힘은 정부가 포털의 기사 배열 기준을 들여다보고 개입할 수 있는 법안을 발의했다. 방통위는 9월25일 네이버 ‘사실 조사’에 들어갔다. 지난 7월5일부터 실시해온 네이버 뉴스 서비스 실태점검 결과 언론사 제휴와 관련해 전기통신사업법 위반 사항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방송·신문·인터넷 뉴스 그리고 포털사이트까지, 임기 2년 차 윤석열 정부의 ‘언론 장악 의혹’ 타임라인이 숨 가쁘게 전개되고 있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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