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 클랜시 트위치 CEO가 2023년 12월6일 생방송에서 한국 시장 철수를 발표했다.ⓒ트위치 갈무리
댄 클랜시 트위치 CEO가 2023년 12월6일 생방송에서 한국 시장 철수를 발표했다.ⓒ트위치 갈무리

트위치는 세계 최대의 인터넷 방송 플랫폼이다. 주된 주제는 게임이다. ‘스트리머(방송인)’가 개인 방송을 켜 게임 화면을 보여주고, 시청자는 채팅으로 방송인과 소통한다. 트위치가 밝히는 전 세계 일평균 접속자는 3500만명. 월평균 방문자로 따지면 약 10억명에 달한다. 2015년 한국에 진출한 트위치는 국내에서도 시장점유율 1위 업체다. 그런데 이 플랫폼이 2023년 12월6일, 대한민국 사업 철수를 발표했다. 트위치가 그 이유로 ‘망사용료’를 거론하면서, 수년간 지속된 논쟁에 다시 불이 붙고 있다.

인터넷 방송에 밝은 이에게 이번 사건은 그리 갑작스럽지 않다. 트위치는 2022년 9월30일 최대 방송 화질을 낮췄다. 주된 방송 주제가 게임이기에 치명적인 조치였다. 트위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비용이 점점 더 높아지고 있는 상황”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해 11월에는 VOD 콘텐츠 기능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라이브 방송은 계속하되 방송 영상을 저장해 다시 볼 수 있는 기능은 없앴다. 트위치는 이 조치가 “네트워크 요금 및 시장의 비용 증가와 관련이 없다. (중략) 진화하는 규제 기준을 충족하기 위한 방안”이라고 밝혔다. 원인에 대한 설왕설래와 함께 트위치가 한국 사업을 접으려 한다는 추측이 나오기 시작했다. ‘VOD 다시 보기’ 역시 인터넷 방송의 핵심 기능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번 사업 철수는 댄 클랜시 트위치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생방송으로 발표했다. 클랜시 CEO는 이번 결정 이유를 망사용료 때문이라고 콕 집어 말했다. “현재 한국에서 트위치 운영 비용은 심각한 수준으로 높다. (중략) 대부분 다른 국가들에 비해 10배 이상인 한국의 네트워크 수수료로 인해 더 이상 운영이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렀다.” 그는 “한국 시장은 성장하면 할수록 트위치가 손실을 보는 구조다. 약간의 손해만 감내하는 수준이라면 운영을 계속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12월5일 트위치는 댄 클랜시 CEO의 발표와 거의 같은 내용의 공지를 올렸다. 영어 홈페이지에는 한국어 홈페이지에 없는 구절이 적혀 있다. “우리의 전 세계 커뮤니티에게 알리자면, 트위치는 이게 매우 특수한 상황이란 사실을 명확히 하고 싶다. 한국의 서비스 운영비는 다른 나라보다 월등히 높고, (그럼에도) 한동안 우리는 이 도전에 열려 있었다.”

한국 망사용료가 해외에 비해 매우 높다는 트위치의 주장은 사실일까. 각 콘텐츠 기업(CP)은 인터넷망을 이용하는 데에 어느 정도 돈을 쓰는지 공개하지 않는다. 통신사(ISP)와 기밀 유지 협약(NDA)을 체결하기 때문이다. 몇몇 증권사나 데이터 분석 기업이 트위치의 매출과 트래픽을 토대로 어림한 수치는 있으나 정확하지는 않다. 통신 3사나 이들이 소속된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도 이번 일에 별다른 대응은 내놓지 않고 있다. 다만 몇몇 언론은 “망사용료 부담은 경영 실적 악화를 가리기 위한 핑계일 뿐”이라는 익명 ‘통신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한다. 2021년 트위치가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에 제출한 국내 매출 18억원이라는 수치가 비현실적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많은 수익을 내면서 망사용료를 내기 싫어 엄살을 부린다는 것이다.

“망사용료 막대” vs “망사용료는 핑계”

그러나 한국은 작은 손해를 탓하며 포기하기에는 아까운 시장이다. 한국의 인터넷 이용 인구는 세계 16위에 달한다. 인터넷 생방송이라는 사업 특수성을 따지면 이 시장의 가치는 훨씬 크다. 초고속 인터넷망이 한국만큼 광범위하게 보급된 국가는 찾아보기 어렵다. 적지 않은 글로벌 콘텐츠 기업이 한국을 테스트 베드(시험 무대)로 삼는 이유다. 트위치 본사나 한국 내 입지가 위태로운 것도 아니다. 게임 스트리밍 분야에서 트위치의 세계 점유율은 굳건하다. 국내에는 2006년 서비스를 시작한 ‘아프리카TV’의 대중적 인지도가 더 높지만,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 기준 한국 스트리밍 시장 점유율 1위는 트위치다(2023년 1월 기준, 모바일인덱스). ‘이번 사건은 망사용료 탓이 아니라, 지난해 화질 제한 조치로 국내 방송인과 시청자가 떠난 결과’라는 주장은 이런 배경을 설명하기 어렵다. 시장의 이점을 뛰어넘는, 한국에서만 불거지는 큰 손해 발생 요인이 있다고 봐야 한다. 트위치는 그게 높은 망사용료라고 말하는 것이다.

2021년 6월25일 망사용료 소송에서 승소한 뒤 SK브로드밴드 측 변호인이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1년 6월25일 망사용료 소송에서 승소한 뒤 SK브로드밴드 측 변호인이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망사용료 분쟁은 복잡한 문제다. 인터넷망을 이용하는 기업 가운데 몇몇은 매우 높은 트래픽(데이터 이동량)을 일으킨다. 트위치나 넷플릭스, 유튜브 같은 동영상 서비스는 그 규모가 특히 크다. 구글이나 페이스북같이 대다수가 쓰는 서비스도 마찬가지다. 통신사는 이들 콘텐츠 기업이 망을 쓰는 만큼 비용을 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글로벌 콘텐츠 기업은 높은 망 점유율만큼의 대가를 국내 통신사에 지불하지 않고 있다. 이른바 무임승차론이다. 2020년 넷플릭스와의 소송전에서 SK브로드밴드가 이런 주장을 폈다(〈시사IN〉 제744호 ‘넷플릭스의 망사용료, 국회·법원은 “지불하라”’ 기사 참조). 1심과 2심 재판부 모두 SK브로드밴드 손을 들어줬는데, 2023년 9월18일 두 회사의 합의가 성사돼 소송이 취하됐다. 무임승차론은 ‘역차별론’과 연결된다. 국내 콘텐츠 대기업은 통신사에 막대한 망사용료를 내고 있는데, 글로벌 기업은 배짱을 부려 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2019년 국정감사에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네이버는 2017년 약 1141억원을 지불했다.

이 문제가 ‘빅테크 기업의 갑질’이라는 인식이 있다. 글로벌 기업은 이용자가 많아 협상력이 높고, 그래서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정치권 일각에도 이 생각은 퍼져 있다. 김병욱 국민의힘 의원은 2023년 10월26일 보도자료를 내 구글이 망사용료를 내지 않는 것은 “대한민국을 호구 취급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망사용료 관련 법안 8건을 발의했다. 2022년 9월8일 윤영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전기통신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정보통신망의 이용 또는 제공에 관한 계약 체결을 부당하게 지연·거부하거나 정당한 대가 지급을 거부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국내외 부가통신사업자 간 역차별’을 제안 이유로 들었다. 윤영찬 의원실 관계자는 “지금은 글로벌 콘텐츠 기업이 계약 체결을 거부해도 방통위에 재정(당사자들의 진술을 받고 중재하는 것) 신청밖에 할 수 없다. 법안이 통과되면 시정 조치를 명령하고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해외 기업의 망사용료 거부에는 ‘힘’ 외에도 나름의 논리가 있다. 각 기업은 이미 인터넷에 콘텐츠를 올리기 위해 ‘어딘가’에는 돈을 내고 있다. 미국에 서버를 둔 기업은 미국에 이용 대가를 지불한다. 한국 기업과는 사정이 다르다는 것이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인기협)의 김영규 정책1실장은 “무임승차나 역차별이라는 비판은 명확한 근거가 없다”라고 말했다. 인기협은 넷플릭스서비시스코리아, 구글코리아 등 글로벌 기업의 국내 지사와 함께 네이버와 카카오 등 국내 기업도 속한 단체다. 김 실장의 설명에 따르면, 한국 기업과 해외 기업의 차이는 지리적 여건뿐이다. “국내 콘텐츠 기업이 여건상 국내 통신사와 계약하는 것처럼 구글과 같은 해외 기업은 자사가 편한 통신사와 계약하는 것이다.” 물론 세계 각지에서 더 빠른 전송이나 높은 동영상 화질을 확보하기 위해 해외 통신사와 별도의 접속 계약을 맺는 경우도 있다. 특히 동영상 기반 서비스 기업은 이런 노력을 더 기울인다. 이것은 “자율”의 영역이며 국가가 강제할 일이 아니라고 김영규 실장은 말했다.

콘텐츠 기업 중 역차별을 말하는 곳도 있다. 그러나 역차별이 아니라 기업의 국적을 가리지 않고 높은 한국의 망사용료가 문제라는 주장이 우세하다. 2020년 비디오 스트리밍 기업 ‘왓챠’ 박대훈 대표는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무임승차하는 외국 기업, 돈 못 받는 불쌍한 한국 통신사’라는 주장은 통신사가 원하는 프레임이다. 핵심은 역차별이 아니라 지나치게 높은 비용이다. 비용만 저렴하면 역차별은 큰 문제가 안 된다”라고 말했다.

핵심은 역차별 아니라 비용 자체

왜 한국의 망사용료는 높을까? 인기협은 2016년 개정된 ‘전기통신설비의 상호접속기준(상호접속고시)’을 원인으로 꼽는다. 상호접속고시는 통신 3사가 주고받는 데이터 비용을 정산하는 제도다. 트래픽을 많이 일으키는 기업이 다른 두 회사에 ‘데이터 전송비’를 내는 방식이다. 이 환경은 통신사의 콘텐츠 기업 유치 경쟁을 느슨하게 만든다. 통신사로서는 데이터 전송비를 충당하고 남을 만한, 많은 망사용료를 내는 콘텐츠 기업만 고객으로 받는 게 낫다. 반면 ‘해외에서는 망사용료를 내지 않거나 소액만 부담한다’고 주장하는 글로벌 콘텐츠 기업은 통신사의 제시 조건을 수용할 의사가 없다. 단순히 갑을 관계나 힘의 논리가 아니라 양자의 환경과 입장이 극명하게 달라서 협상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사단법인 오픈넷이 주도한 망이용료 법안 반대 서명운동에 28만6000여 명이 찬성했다.
사단법인 오픈넷이 주도한 망이용료 법안 반대 서명운동에 28만6000여 명이 찬성했다.

망사용료 분쟁이 한국만의 제도적 결함이나 통신사의 탐욕 탓에 벌어지는 일만은 아니다. 유럽통신사업자협회(ETNO)는 ‘페어 셰어(Fair Share·공정 부담)’라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홈페이지에서 이 단체는 “소수의 대규모 디지털 플랫폼이 유럽 전체 인터넷 데이터 트래픽의 거의 절반을 생성한다. 이들은 고객에게 지연 없는 실시간 고화질 경험을 약속하지만, 그런 경험을 제공하는 데 필요한 망 업그레이드 비용에는 기여하지 않는다”라고 적었다. 그러나 이들의 요구가 제도화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유럽 통신업계는 꾸준히 법률 발의를 요구해왔지만 2023년 10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이를 거부했다. 미국 〈블룸버그〉는 11월9일 ‘빅 테크가 유럽에서 큰 정책 승리를 거두다’라는 기사에서 “페어 셰어는 늘 논란이 있는 아이디어였다. (중략) 소비자 가격 인상의 위험을 해소할 수 없다. 지난 6월 룩셈부르크 회의에 참석한 유럽 국가 다수가 페어 셰어에 반대했다”라고 적었다.

사단법인 오픈넷의 박경신 이사(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망사용료 강제가 표현의 자유를 해친다고 주장했다. “인터넷은 표현의 자유 2.0을 불러온 매체다. ‘어떤 말이든 할 수 있다’는 게 종래의 표현의 자유라면, 2.0은 말을 듣고 싶어 하는 사람 모두에게 전달되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접속료 외에, 데이터 양에 따른 ‘전송료’를 부과하는 제도는 표현의 자유에 해롭다.” 최근 네이버는 트위치와 유사한 ‘치지직’을 출시하겠다고 밝혔다. 트위치와 같은 글로벌 콘텐츠 기업의 자리를 한국 기업이 가져간다면 그것은 이점이 아닐까? 박 이사는 ‘근시안적 시각’이라고 말했다. “한국인이 중국처럼 한국 서비스만 이용할 수는 없다. 게다가 국내 사업자들도 엄청난 접속료를 내야 하고, 장기적으로 소규모 업체가 뛰어들기 힘든 환경이 된다. 혁신이 일어나질 않는다.” 무임승차를 막으려다 인터넷 갈라파고스가 된다는 것이다.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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