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니 데스크 코리아의 첫 아티스트로 초대된 김창완 밴드가 공연을 하고 있다. ⓒ스튜디오X+U
타이니 데스크 코리아의 첫 아티스트로 초대된 김창완 밴드가 공연을 하고 있다. ⓒ스튜디오X+U

바에 앉아 있는데 농구 경기를 응원하는 소리 때문에 가수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미국 공영 라디오 방송 NPR 프로듀서 밥 보일런이 워싱턴 DC에 있던 자신의 ‘사무실’을 떠올린 순간이다. 2008년 4월, 음반과 책이 쌓여 있는 사무실 책상 뒤쪽에 작은 무대를 만들었다. 화려한 조명이나 음향 장비 없이 ‘날것의 음악’을 전달해보자는 시도였다. 튜닝 안 된 기타, 웃음소리, 딸꾹질까지 그대로 담긴 음악 영상에 반응이 좋았다. 독특한 친밀함을 바탕으로 차츰차츰 팬덤을 형성한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타이니 데스크)’는 아델, 존 레전드, 콜드플레이 같은 유명 가수들이 거쳐가는 무대가 되었다. 15년간 1000회 넘는 공연을 선보인 NPR의 간판 프로그램이다.

825만명이 구독하는 타이니 데스크 유튜브 계정에 앞으로 한국 가수들의 영상이 매주 업로드된다. 지난 8월25일 ‘타이니 데스크 코리아’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밥 보일런의 책상을 대체한 곳은 LG유플러스 본사 1층에 마련된 공용 도서관이다. 직원과 주민들이 이용하던 40평짜리 도서관 한쪽에 작은 무대를 만들었다. 첫 순서는 김창완 밴드. ‘아리랑’을 시작으로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너의 의미’ 등 다섯 곡을 부르는 동안 카메라 밖으로 환호성이 들린다. “사실 많은 밴드들이 수많은 관중 앞에서 공연하는 게 꿈이기도 한데요. 저는 이 ‘tiny’라는 말이 참 좋았어요. 작은 것 안에도 얼마든지 아름다움이 있으니까요.” 가수 김창완의 말이다.

타이니 데스크 코리아를 소개하는 첫 아티스트인 만큼 섭외에 고민이 많았다. “타이니 데스크에 나왔던 한국 아티스트를 보면 BTS와 박재범 같은 케이팝 가수도 있었지만, 그 전엔 씽씽이나 악단광칠, 잠비나이 등 국악 위주의 가수가 많았다. 북미 시장에서 바라보는 한국의 이미지가 고정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한국판 론칭을 담당한 ‘스튜디오X+U’ 콘텐츠IP사업담당 IP사업2팀 강소연 책임이 9월6일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LG유플러스의 콘텐츠 전문 브랜드다. 한창 기획회의를 하던 지난 4월 잠수교에서 열린 루이비통 야외 패션쇼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산울림의 ‘아니 벌써’가 울려 퍼졌다. 젊은 세대는 물론 해외 팬들에게도 김창완 밴드의 인기가 커져가던 시점이었다. “조심스럽게 섭외 요청을 드렸는데 흔쾌히 수락하셨다. '후배 가수들이 설 자리가 많이 없는데 내가 먼저 용기를 낸다면 노래할 수 있는 자리가 더 많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하더라.”

타이니 데스크 코리아 런칭을 담당한 김희원 선임(왼쪽)과 강소연 책임. ⓒ시사IN 박미소
타이니 데스크 코리아 런칭을 담당한 김희원 선임(왼쪽)과 강소연 책임. ⓒ시사IN 박미소

NPR이 타이니 데스크의 라이선스를 판매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다른 해외 사업자로부터 제의가 있었지만 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소연 책임은 라이선스 확보의 배경으로 “타이니 데스크만의 철학과 제작 방식을 온전히 유지해 ‘원팀으로 가겠다’는 의사를 수차례 전달했는데 그런 마음을 NPR이 알아준 것 같다”라고 말했다. 하이브 출신의 이상진 스튜디오X+U 콘텐츠IP사업담당(상무)이 기획·론칭을 주도했다. 올해 초 계약이 성사되기까지 3년이 걸렸다.

타이니 데스크라는 ‘대형 IP’를 한국이 처음 확보한 사실만으로도 음악업계에선 큰 화제가 되었다. 차우진 음악평론가는 “코로나19와 인플레이션 여파로 재정적 위기에 놓인 공영방송사들이 돈이 되지 않는 문화 콘텐츠 사업에 대해 재고하고 있던 시점이었다”라고 설명한다. 올해 2월 NPR은 직원의 10%인 100여 명을 해고하고 호평받던 팟캐스트 프로그램 3개를 폐지했다. 광고 수익 감소가 이유였다. 아마존 뮤직과 NPR 팟캐스트 프로그램 독점계약을 체결하는 등 수익사업을 확장해가고 있었다.

타이니 데스크의 첫 ‘지부’ 왜 한국일까?

그 시점에 문을 두드린 게 LG유플러스다. 통신사가 왜 음악 공연 콘텐츠에 투자하게 된 것일까? 차 평론가는 몇 년 전부터 시작된 통신 3사의 ‘체질 개선’ 흐름을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IPTV나 망 사업은 이미 포화상태인 데다 가구수가 늘어나지 않는 한 전망이 없다. 과거에 사람들을 끌어모아 인터넷 유료 가입시키는 게 중요했다면 이제 콘텐츠 제작사가 되어 국내외 OTT에 팔고자 한다. 시장 타깃을 국내에서 글로벌로 바꾸는 것이다.” KT 스튜디오지니에서 제작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성공이 콘텐츠 경쟁을 부추기게 된 하나의 계기였다. SK텔레콤도 자사 OTT 웨이브를 바탕으로 해외 콘텐츠 독점계약에 나섰다.

지난해 10월 LG유플러스가 출시한 스튜디오X+U도 비슷한 흐름이다. 하지만 자체 OTT가 없는 데다 ‘우영우’ 같은 대표 오리지널 콘텐츠가 나오지 않아 후발주자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스튜디오X+U가 공략한 ‘틈’은 음악 콘텐츠였다. IP사업2팀의 경우 애초부터 음악 콘텐츠 IP 사업을 위해 꾸려졌다. 페스티벌, 공연, 뮤지컬 투자 위주로 해오다 직접 콘텐츠를 제작한 건 타이니 데스크 코리아가 처음이다. “(팀에서) 작년부터 음악 공연 콘텐츠에 대한 시도를 계속해왔다. 타이니 데스크는 회당 30분 이내의 ‘미드폼’ 콘텐츠인 데다 팬층이 있는 검증된 IP라는 지점이 중요했다.” 같은 팀 김희원 선임의 말이다.

2022년 8월19일 국악 밴드 ‘악단광칠’이 타이니 데스크에 출연했다. ⓒ타이니 데스크 유튜브 갈무리
2022년 8월19일 국악 밴드 ‘악단광칠’이 타이니 데스크에 출연했다. ⓒ타이니 데스크 유튜브 갈무리

지금까지 선우정아, 윤석철 트리오 등이 타이니 데스크 코리아 무대에 섰다. 모든 공연은 ‘원테이크’로 간다. 날것의 음악을 최대한 살려낸다는 원작의 철학을 반영하려고 했다. 인이어와 공연장용 스피커도 없다. “실수하면 실수한 대로 길거리에서 버스킹하는 수준의 환경이라 뮤지션들에겐 사실 엄청난 도전이기도 하다(강소연 책임).” 촬영 땐 본사 직원 일부가 관객으로 참여한다. 소규모 공연장 느낌이어서 가수들도 ‘기억에 남을 것 같다’는 반응이 많았다. 유튜브 채널이 잘 안착하면 일본, 타이완 등 아시아 뮤지션들도 소개할 계획이다.

차우진 평론가는 타이니 데스크의 첫 ‘지부’가 왜 한국인지에 관심을 두고 있다. “장기적으로 봤을 땐 아시아 음악시장을 염두에 두는 것 같다. 미국 입장에서도 내수시장으론 한계가 있으니 글로벌 시장이 중요하다. 새롭게 뜨는 음악시장이 남미와 아시아인데, 시장 규모는 남미가 크지만 성장 속도로 보면 아시아가 빠르다. 다들 아시아에서 뭔가를 하고 싶어 하는 이유다.” 타이니 데스크는 인디록부터 힙합, 재즈 등 장르를 넘나드는 전문적인 음악 큐레이션이 인기 요인이었다. 이제 음악 큐레이션 역할을 현지에 직접 맡긴 셈이다. “NPR 유튜브를 통해 한국 아티스트뿐만 아니라 아시아 음악을 북미 시장에 소개하는 허브 역할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단순히 케이팝의 영향력 때문만이 아니라, 아시아 시장 진출의 거점으로 한국을 잡았다는 데 의의가 있다.”

밥 보일런은 2008년 타이니 데스크를 시작하면서 “아마도 이것은 무언가의 시작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그로부터 15년간 이어져온 이 ‘작은 무대’는 한국으로 넘어왔다. “지난달 NPR에서 플라잉 PD(제작 연출에 대한 지도 자문을 맡은 프로듀서)가 와서 선우정아, 윤석철 트리오 공연을 직접 봤는데 가창력과 퀄리티에 굉장히 놀라워했다. ‘한국에 케이팝 말고도 이렇게나 다양한 뮤지션이 있다니’ 하는 반응이었다. 아시아 뮤지션들을 글로벌 팬들에게 소개하는 거점이 되었으면 한다.” 강소연 책임의 바람이다. 한국판 슬로건은 ‘작은 책상 앞, 한계 없는 음악의 세계(Tiny But Not So Tiny)’다. 타이니 데스크 코리아는 ‘케이팝’ 너머로 아시아 음악의 세계를 넓힐 수 있을까?

가수 김창완은 “작은 것(tiny) 안에도 얼마든지 아름다움이 있다”라고 말했다. ⓒ스튜디오X+U
가수 김창완은 “작은 것(tiny) 안에도 얼마든지 아름다움이 있다”라고 말했다. ⓒ스튜디오X+U

 

기자명 김영화 기자 다른기사 보기 you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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