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샷 뒤의 여자들〉을 쓴 여성학 연구자 김지효씨는 청년 여성이 셀카 문화와 함께 성장해왔다고 말했다. ⓒ시사IN 신선영

절반은 버릴 걸 알면서도 설탕 범벅 레터링 케이크를 주문한다. 인기 있는 집은 한 달 전에 미리미리 DM을 보내 예약해야 한다. 친구들과 파자마를 맞춰 입은 채 초를 부는 사진 하나쯤 간직하고 싶었다. 수백 장 찍어 겨우 한 장 건진 사진을, 어쩌다 우연히 찍힌 사진인 양 올리곤 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어도 괜찮다. 손가락으로 화면 구석구석을 확대해가며 보정하면 된다. 실물보다 예쁘되 너무 다르지는 않게, 최대한 자연스럽게. 사진 아래로 ‘좋아요’와 댓글이 달린다. '인생샷'은 결코 홀로 완성되지 않는다.

인생샷은 오래도록 중독과 허영심의 증상처럼 그려져왔다. 비난은 주로 여성을 향했다. ‘관종’ 혹은 ‘심리적 결핍’을 겪는 존재로 폄하하는 경우는 흔하다. 셀카 찍는 여성들은 자존감이 너무 높거나 낮다고 오해받곤 했다. 하지만 무작정 비난하기엔 너무도 보편적인 일상이고, 하나의 문화로 옹호하기엔 문제적이다. 인생샷은 다루기 어려운 주제다. 1992년생 여성학 연구자가 이 민감한 주제를 건드렸다. “인생샷 문화는 일상이 되었는데 왜 제대로 연구되지 않는가?” 〈인생샷 뒤의 여자들〉을 쓴 김지효씨 이야기다.

그 또한 “인생샷을 찍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살던 때가 있었다. 비슷한 사진이 수십 장씩 담겨 있는 그의 사진첩이 유난스러운 것도 아니었다. 2010년대는 인스타그램이 대중화되던 시기였다. 카페 테이블은 음식 사진을 찍기 좋게 무릎까지 낮아지는가 하면 가장 사적인 공간인 집조차 ‘포토존화’하기 시작했다. 각 지방자치단체들은 여행 전문 SNS에 올라갈 만한 포토존을 제작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셀카 문화가 개개인의 삶을 넘어 산업과 도시 전반의 지형을 바꾼 셈이다.

‘셀카’가 올해의 단어로 선정되고 〈뉴욕타임스〉는 현대를 “한순간도 사진을 찍지 않은 채 흘러가지 않는 시대”라고 표현하는데 어째서 카메라 뒤의 여성들은 여전히 미움받는가. “셀카는 분명 시대의 문제이자 개인의 문제이지만 셀카 찍는 이들이 스스로의 내면에 침몰되어 갇힌 존재만은 아닐 것이다. 이들은 생각과 감정을 가지고 일상을 꾸려나가는 존재이자 얼굴과 몸을 지닌 생생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인생샷 문화의 당사자이자 연구자로서 김지효씨가 동료 여성들을 찾아 나선 까닭이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인생샷 연구도, 여성학 연구자가 된 것도 그랬다. 당시 김지효씨는 ‘한국 페미니즘의 산실’인 대학을 자퇴한 후 보수 개신교 재단이 운영하는 대학에 입학했다. 보수 개신교의 열렬한 지지자인 가족의 영향이 컸다. 대학가에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가 번질 때였는데 자신은 ‘우리는 안녕합니다’라는 반박 대자보를 쓰려 했다는 일화를 김씨가 웃으며 들려주었다. 어느 날 우연히 듣게 된 수업에서 여성학자 정희진의 〈페미니즘의 도전〉을 접하게 되었고 “신념 체계가 완전히 뒤바뀌는” 경험을 한다. 그에게 20대는 철석같이 믿고 있던 가치가 무너지는 격변기였다. 여성학 대학원에 진학하겠다고 했을 때 가족과 극한의 갈등을 겪어야 했다.

김지효씨도 20대 초반 "인생샷을 찍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살았다고 말했다. ⓒ김지효씨 제공

어렵사리 들어간 대학원에서의 화두는 디지털 페미니즘이었다. 지난 몇 년 메갈리아, 탈코르셋으로 대표되는 페미니즘 운동이 활발했다. 디지털 페미니즘 운동에 참여하는 20대 여성에 주목하는 연구가 급부상했는데, 주된 SNS 통로는 트위터 내지는 페이스북인 것처럼 보였다. 인스타그램의 존재감은 상대적으로 미약했다. 텍스트보다 이미지 기반이었고 ‘온라인 자기 전시’의 장으로 쓰였기 때문이다. 한쪽은 K뷰티의 본거지로, 다른 한쪽에는 이를 거세게 비판하는 페미니즘 진영으로 양분된 담론을 보며 김지효씨는 의아했다. 그조차도 미래에 대한 불안이 깊어질 때마다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곤 했기 때문이다. ‘열혈 인스타그래머’였다. “희망이 없어 보이는 시기에 ‘좋아요’를 눌러주는 사람들이 그곳에 있었다.”

‘알파걸’과 ‘페미 전사’를 넘어서

인생샷 뒤의 여자들을 ‘변호’하겠다는 마음만으로 시작한 건 아니었다. “삶의 축이 온라인으로 넘어간 것 같은 사람들”에 대한 미움도 하나의 동력이었다고 그는 고백한다. 의외였던 건, 혼자만의 혼란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인스타그램 인생샷을 주제로 한 여성학 석사 논문을 준비 중이라는 게시글을 SNS에 올리자마자, 인터뷰 참여 요청이 쇄도했다. “이런 연구를 정말 기다려왔다.” 인터뷰에 지원한 한 여성 참가자의 말이다.

인생샷은 20대 여성의 삶을 들여다보는 숨겨진 ‘치트키’였다. 이대녀, MZ 세대 따위 수식어로 뭉뚱그려진 이들이 인생샷이라는 익숙한 소재 앞에서 저마다의 생애사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기본 일곱 시간을 훌쩍 넘기는 인터뷰를 하며 김지효씨도 깜짝 놀랐다. 외모 평가로 인한 상처 혹은 화려한 외모 때문에 오해를 샀던 경험, 소속 집단에서 인정받고 싶은 마음 혹은 그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복잡다단한 마음이 온라인 자아에 투영되었다. “결국 온라인에서 내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나에게 중요한 타자는 누구인가라는 질문과 맞닿아 있더라.” 인생샷을 찍는 이유에서 시작해 생애사 인터뷰로 흘러갈 수밖에 없었다.

지역을 다르게 선별한 인터뷰이 12명은 모두 20대 여성이었다. 여성으로 한정한 건 한국의 청년 여성들이 ‘하두리캠’ ‘얼짱 카페’ 같은 셀카 문화와 함께 성장해온 주체라고 봤기 때문이다. 인터뷰이 12명은 의외로 모두 페미니스트라고 소개하거나 페미니즘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활동 중이었다. 이 중에는 인스타그램 팔로어 수가 7000명에 이르는 인플루언서도 있었다. 디지털 페미니즘 운동을 맹렬히 주도하던 이들이, 사실은 외모 지상주의와 소비주의라 비판받는 인생샷 문화의 가담자이기도 한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김지효씨는 20대 여성을 설명하는 언어가 빈곤했음을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20대 여성을 설명하는 계보에는 두 가지가 있다. 외모 관리, 운동 등 자기계발을 인스타그램에 전시하는 이른바 ‘알파걸’과 그 대척점에서 맹렬히 싸우는 ‘페미 전사’들이다. “이런 이분법은 20대 여성을 보고 싶은 방식으로 나눌 뿐, 실제 20대 여성의 삶과는 괴리되어 있다. 무해하거나 과격하거나 둘 중 하나로 설명되지 않는다.”

인생샷을 찍는 여자들은 다양한 얼굴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인스타그램에 인생샷을 올리지만 트위터에서는 우울증에 관한 계정을 운영하거나, 여성학자 SNS 유명인을 팔로하면서도 “인스타그램은 하나의 스펙” “숫자가 일종의 계급”이라고 말했다. 친구의 보정 사진을 검사해주지만 성폭력범을 처벌하자는 청원 링크를 뿌리고, ‘럽스타그램(커플 사진)’을 올리면서 한국 남성이 저지른 폭력 사건을 비난했다. 탈코르셋 운동에 참여한 후 내적 갈등을 겪지만, 인스타그램에 조금이라도 균열이 생기길 바라며 머리를 짧게 자르고 화장품을 부순 이미지를 업로드한다. 모순과 혼란이 뒤엉켜 있다.

어느 한쪽에 공감하거나 가치 판단을 하지 않으려 애를 썼다. ‘탈코 셀럽’ ‘페미 셀럽’과의 적정 거리를 유지하려고도 했다. 탈코르셋 실천의 경우 ‘사랑받음’의 기준을 바꾸는 과정이지만, 그만큼 성차별적 주류 집단과 거리를 둘 조건이 마련되어 있는지 여부가 중요했다. 어떤 여성들에겐 선택하기 어려운 실천이었다. 반면 긍정적이고 힙한 페미니스트 이미지를 확장하는 ‘인스타그램 페미니즘’은 성차별적 사회를 바꾸기보다 각자는 얼마나 올바르고 무해하게 살고 있는지 증명하는 일에 치중했다. 마치 셀카를 보정하듯 페미니즘도 보정한다고 김씨는 지적한다.

인터뷰를 하며 여러 번 연구 방향이 바뀌었다. 속시원한 정답을 내놓고 싶었는데 애초에 정답이 없는 이야기였다. 연구자로서 한 가지 알게 된 사실은 있다. 여성 청년들이 놓인 다양한 조건과 인정욕구를 구체적으로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이다. 성찰과 윤리만을 강조하는 학계와, 완전무결함과 자기 검열로 분투하는 동료 여성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했다. “성차별적 구조의 피해자이자 가해자로서, 또 인정욕구를 지닌 인간으로서 모습을 인정하자고 말하고 싶었다. 갈팡질팡 흔들리면서 나아갈 수밖에 없지 않을까.”

SNS는 왜 여성에게 기회가 되었나

대중 페미니즘 운동이 사실상 소강상태에 접어든 지금, 책의 메시지가 오독될 가능성에 대해 연구자는 염려했다. 여전히 온라인에서 여성들은 공격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인스타 허세녀’ ‘셀기꾼’ 같은 신조어처럼, 주로 남성 개그맨들에 의해 희화화되는 소재로 쓰인다. “SNS에 여성 인플루언서가 많은 건 그만큼 오프라인에서 다른 기회를 얻기 어렵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김지효씨는 SNS가 왜 여성에게 기회의 장이 되었는가 질문해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왜 오프라인에서 여성은 있는 모습 그대로 지지받지 못하는가? 왜 여성은 온라인에서 자기 과시를 할 수밖에 없는가? SNS 중독 현상은 결국 성차별적 공간인 오프라인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그래서인지 매체 뒤의 여성들에게 자꾸만 관심이 간다. 그는 요즘 랜덤 채팅 앱을 들여다본다. 익명성을 기반으로 한 플랫폼의 주 이용층은 여성 청소년이다. 당장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할 때 ‘긴급 수혈’하듯 위로받는 공간처럼 보였다. 성인 남성이 저지르는 성폭력 범죄의 매개가 되는 곳이기도 하다. “이미 오프라인에 친밀한 관계가 있고 온라인은 공적 공간으로만 여기는 기성 세대에게 SNS 자기 전시는 한심한 일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1020 세대에겐 친밀성을 형성하는 장이 온라인으로 옮겨온 지 오래다.” 많은 이들에게 온라인은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거주지가 되었다. SNS 중독과 인정욕구에 대한 꾸짖음보다는 우리 모두가 혼란스럽다는 사실을 그대로 보여주고자 했던 이유다.

어떤 날에는 인스타그램 중독자였다가 어떤 날에는 그 사람들을 비판함으로써 인기를 얻고 싶었다. 매일매일 분열하며 글을 썼다는 그는 ‘인생샷 뒤의 여자들’을 통해 배우고 성장했다고 말한다. 여성들은 온라인 공간에서 친밀성을 형성하고 때론 취약해지고 나름의 방식대로 싸워나가고 있었다. “우리는 어떻게 기존의 세계를 미워하며 닮아가지 않고 새로운 세계로 이행할 수 있을까?” 책은 마침표가 아닌 물음표로 끝난다.

기자명 김영화 기자 다른기사 보기 you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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