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음모론이 최근 사람들 사이에서 다시 오르내리고 있다. 배우 이선균씨의 마약 투약 의혹과 전 펜싱 국가대표 남현희씨의 사기 결혼 관련 기사는 김승희 비서관 자녀의 학교폭력, 강서구청장 선거 패배 등 정치 현안을 덮기 위해 현 정권이 일부러 터뜨렸다는 소리다. 뚜렷한 근거도 없는데 어떤 이유로 사람들은 이 음모론을 믿는 것일까?
정권이 연예 기사를 통해 주요 정치 이슈를 덮는다는 주장의 근거는 단 하나, 정권에 불리한 대형 정치적 사건이 발생하는 시기와 주요 연예 스캔들이 발생하는 시기가 우연히 겹친다는 점뿐이다. 이 같은 음모론에 불을 지폈던 연예 전문매체 〈디스패치〉의 2013년 기사(아시나요, 2013?... 연예 7대 뉴스에 파묻힌 7대 뉴스)가 제시했던 유일한 근거도 시기적 일치다. 인과관계가 성립할 조건은 첫째 상관관계, 둘째 선후관계, 셋째 외부 영향의 부재인 터라 약간의 상관관계만으로 이 음모론을 입증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 상관관계조차 명확하지 않다. 2020년 팩트체크 전문 미디어인 〈뉴스톱〉은 소위 '물타기'가 정말 존재한다면 큰 정치적 사건이 있을 때마다 대형 연예 스캔들이 발생해야 한다는 점에 주목해 2010년부터 2017년까지 가장 많이 기사화된 정치·연예 스캔들을 골라 시기적 일치 정도를 비교했다. 하지만 주요 정치·경제 사건과 주요 연예계 사건의 발생 시점은 일치하지 않았다.
이 음모론의 검증이 큰 의미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엄밀한 방법론을 동원한 학술적 분석이 존재하지 않는 것도 입증 자체가 크게 의미 있는 작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질문해야 할 점은 왜 유독 한국에서 이 같은 음모론이 존재하는지다.
익숙한 음모론에 정말로 물어야 할 것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본다. 첫 번째는 권언유착, 즉 한국 언론과 정치권력의 뿌리 깊은 병행 관계(parallelism) 때문일 것이다. 군부독재를 거치면서 권력이 필요에 따라 어떤 기사를 내보내고 내보내지 않을지 좌지우지할 수 있음을 경험했고, 민주주의 정권하에서도 언론과 정치권력의 긴밀한 관계는 여전하다. 2015년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청문회를 앞두고 “뭐 올려봐. 그럼 나는 데스크로 전화하는 거지… 그럼 (기사를) 뺄 수밖에 더 있어?"라고 한 발언이 공개되면서 정치권의 언론 외압이 실재한다는 사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적도 있다.
두 번째는 정말로 연예 기사가 중요한 정치 의제를 덮어버릴 수 있는 뉴스 생태계 구조 때문일 것이다. 큰 국가적 사건이 발생하면 이는 소위 킬러 어젠다로 작용해 다른 소소한 의제를 다 집어삼키곤 한다. 그런데 국내 뉴스 생태계에서는 도리어 연예 뉴스가 너무 자주 킬러 어젠다로 작용해 주요 국가적 이슈를 집어삼킨다. 포털은 기본적으로 중요한 뉴스보다 사람들이 흥미를 느끼는 뉴스를 더 많이 노출시키는 터라 연예계 스캔들이 터지면 다른 중요 의제를 덮을 만큼 과도하게 생산되고 배포된다. 이는 포털만의 문제가 아니고 뉴스를 생산하는 개별 언론사도 마찬가지다. 주요 언론사가 스스로 타블로이드화한 뉴스를 포털에 많이 제공하고 있음이 최근 연구(이나연·김창숙, 2023)에서 드러난 바 있다.
그래서 음모론을 반박하는 실증적 자료를 제시한다고 해서 그 주장이 해소되는 게 아닐 수 있다. 권언유착을 완화할 방안, 중요한 국가적 의제와 관련한 뉴스가 묻히지 않고 전달되는 뉴스 환경을 만들 방안을 마련하는 게 정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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