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에게 300만원을 줘야 하는 일을 외국인이 100만원 받고 한다면? 정부가 외국인 가사노동자 정책을 검토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싱가포르’ 모델을 언급했는데, 싱가포르는 외국인 가사노동자 평균임금이 월 100만원 이하인 곳이다. 현재 국내에서 일하는 가사노동자 월급은 주 5일에 종일 근무 기준으로 250만~300만원 정도다. 노인 돌봄이나 간병, 육아 등 전문 분야는 그 이상을 받는다. 동남아시아 국가로 취업비자 발급을 확대해 돌봄 서비스 비용을 낮추자는 제안이 나온 배경이다.

지난해 오세훈 서울시장은 홍콩과 싱가포르를 사례로 들며 외국인 육아 도우미 정책을 주장했다. ⓒ연합뉴스
지난해 오세훈 서울시장은 홍콩과 싱가포르를 사례로 들며 외국인 육아 도우미 정책을 주장했다. ⓒ연합뉴스

포문은 오세훈 서울시장이 열었다. 지난해 9월27일 오 시장은 ‘국무회의에서 외국인 육아 도우미 정책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한국은 합계출산율 0.81명이다. 홍콩과 싱가포르는 1970년대부터 이 제도를 도입했고 출산율 하향세가 둔화됐다. 한국 육아 도우미는 월 200만~300만원이 드는데 싱가포르 외국인 가사도우미는 월 38만~76만원 수준”이라고 자신의 페이스북에 썼다. 지난 3월에는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이 법안을 냈다.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가사근로자법)을 고쳐 외국인 가사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는 게 골자다. 이어서 윤석열 대통령도 언급했다. 지난 5월23일 대통령은 국무회의 비공개 발언에서 “싱가포르 등지의 외국인 가사도우미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 적극 진행되도록 관계 부처가 강하게 추진해달라”고 말했다. 오세훈 시장처럼 윤 대통령 역시 ‘저출생 타개책’ 관점에서 이 정책을 언급했다고 알려졌다.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은 지난 3월 외국인 가사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는 법안을 발의했다. ⓒ국회사진취재단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은 지난 3월 외국인 가사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는 법안을 발의했다. ⓒ국회사진취재단

현행법상 외국인 가사노동자는 불법이다. 정확히는 ‘가사노동자로 취업하려는 외국인’에게 비자를 발급하지 않는다. ‘동포’만 예외다. 출생 당시 대한민국 국적이었던 사람이나 대한민국 정부 수립 전 국외로 이주한 동포 등은 방문취업 비자(H-2), 동포 비자(F-4)를 받아 가사노동자로 일할 수 있다. 국내에서 일하는 가사노동자는 크게 한국인과 중국 동포(한국계 중국인)로 양분되어 있다. 업무 범위와 노동시간에 따라 다르지만 한국인은 시간당 평균 1만5000원, 중국 동포는 1만3000원쯤 받는다.

제도 도입 배경은 가사노동자의 규모 감소와 고령화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가사·육아 서비스 종사자 수는 2016년 약 18만6000명에서 2022년 11만4000명으로 꾸준히 줄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 기준 종사자 92.2%는 50대 이상이며, 60대 이상도 59%다. 공급은 줄어드는데 수요는 늘어난다. 맞벌이 가구 수는 2013년 517만5000가구에서 2021년 582만3000가구로 늘었다. 2021년 기준 혼인 가구 46.3%가 맞벌이다.

맞벌이 가구 평균소득은 월 760만원 정도다. 종일 육아나 노인 돌봄을 전담할 인력을 고용하는 데에는 가구소득 3분의 1에서 절반 가까이 든다. 중국 동포 가사노동자는 내국인보다 조금 저렴하지만 액수 차이가 크지 않다. 결국 맞벌이를 포기하는 가구가 생긴다. 일을 그만두는 쪽은 주로 여성이다. 2022년 여성가족부 조사에 따르면, 25~54세 여성 조사 대상자 42.6%가 경력 단절을 경험했다. 다시 일자리를 얻기까지는 평균 8.9년이 걸리고, 새로 얻은 일자리의 질(임금수준과 정규직 여부)은 이전보다 떨어졌다.

돌봄 영역에서의 수요-공급 불일치는 해결해야 할 과제다. 그러나 이 진단이 곧바로 ‘외국인 노동자가 필요하다’는 결론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6월16일 한국여성노동자회 등이 주최한 ‘이주 가사노동자의 현실과 노동권 보장방안 국회 토론회’에서 참가자들은 “공적 돌봄제도 정비가 우선”이라고 입을 모았다. 육아휴직이나 긴급휴가, 어린이집을 확충하는 등 공공성을 강화하는 게 더 나은 해결책이라는 것이다.

개발경제학자인 김현철 홍콩과기대 교수는 생각이 다르다. 홍콩에서 그는 필리핀과 미얀마 출신 가사노동자 200여 명을 인터뷰해 그들의 노동환경을 연구 중이다. 돌봄 부문의 ‘공공성 강화’는 필요하지만, 그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게 김 교수 주장이다. “공공성 확대는 옳은 방향이지만 한계도 없지 않다. 모든 가구의 서로 다른 돌봄 요구를 공적영역으로만 채우는 건 어렵다. 외국인 가사노동자는 공공영역이 닿지 않는 부문을 채워줄 수 있다.” ‘공공영역이 닿지 않는 경우’의 예시로 김현철 교수는 “아이가 아파서 공공 돌봄시설에 등원할 수 없을 때나 부모의 퇴근이 늦을 때”를 들었다.

여성 사회 진출엔 유효, 출산율엔 글쎄

이 정책을 도입하면 어떤 효과가 날까? 김 교수는 여성의 사회 진출 촉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한다. 제도를 저출생 타개책으로만 홍보하는 데에는 김 교수도 부정적이다. 실제로 싱가포르와 홍콩은 외국인 가사노동자 제도를 1970년대에 도입했는데, 출산율 감소 추세는 도입 이전과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반면 여성의 사회 진출에 주목하면 실증적 효과가 보인다.

홍콩의 외국인 가사도우미들이 한데 모여 휴식을 취하고 있다. ⓒAP Photo
홍콩의 외국인 가사도우미들이 한데 모여 휴식을 취하고 있다. ⓒAP Photo

퍼트리샤 코르테스 보스턴 대학 교수와 제시카 판 싱가포르 국립대학 교수는 2013년 ‘가계 생산 외주화:홍콩의 외국인 가사노동자와 내국인 노동력 공급’이라는 논문을 펴냈다. 외국인 가사노동자 제도가 여성의 사회 진출에 미치는 영향을 다뤘다. 1970년대 제도 도입 후 홍콩의 기혼 여성 고용률은 꾸준히 늘었다. 다른 요인, 예컨대 여권 신장이나 여타 성평등 정책 따위 변수를 통제하기 위해 연구자들은 ‘자녀가 어린 여성’과 ‘다른 나머지 여성’을 비교했다. 제도는 자녀가 어린 여성에게 특히 영향을 미쳤다.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들인 뒤 “자녀가 어린 어머니들의 고용률 증가 폭이 (자녀가 장성한 어머니들보다) 10~14%포인트 높았다.” 정책 목표 집단에 유효했다는 것이다.

‘내국인 편익을 위해 외국인을 착취하는 정책’이라는 비판에도 김현철 교수는 동의하지 않는다. “필리핀의 가사노동자 월급은 현지에서 평균 20만원쯤이다. 경제적으로 극한상황에 몰린 이들에게 월급 80만원인 홍콩 가사노동자는 ‘좋은 일자리’이며 기회다. 빈곤을 해결할 유일할 기회에 대해 ‘노예제’라고 표현하는 건 비약이다.” 한국 사회의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이 외국인 노동자에게도 반갑기만 할지 김현철 교수는 묻는다. “임금을 충분히 주겠다는 선한 의도가 꼭 그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임금을 덜 주더라도 쿼터(할당된 취업자 수)를 늘리는 게 저개발 국가의 평균적 노동자에게는 더 나을 수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빈곤 탈출의 기회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외국인 최저임금 제한에는 법리 문제가 있다. 국제협약이 국적에 따른 임금 차별을 금한다. 한국이 비준한 국제노동기구(ILO) 제110호 협약에는 인종·피부색·성별·정치적 견해 등과 함께, “출신국에 따른 차별, 배제 또는 우대로, 고용과 직업에 있어서 균등한 기회 또는 대우를 저해하는 효과가 있는 행위” 금지 조항이 있다. 쉽게 말해 ‘외국인 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법 조항은 ILO 협약 위반이다. 최저임금위원회가 발간한 ‘2022년 주요 국가의 최저임금 제도’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중국·독일·오스트레일리아 등 주요 22개국 가운데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최저임금을 차등 지급하는 국가는 없다.

조정훈 의원이 제출한 법안은 싼값에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들이면서도 ILO 협약을 위반하지 않는 길을 찾으려 한다. 한국에서 ‘가사도우미’라 불리는 노동자들은 법적으로 둘로 나뉜다. ‘가사근로자’와 ‘가사사용인’이다. 고용노동부 장관 인증을 받은 가사 서비스 제공기관에 소속된 이들은 가사근로자다. 여기 속하지 않고 직업소개소 따위를 통해 일하는 노동자는 가사사용인이다. 가사근로자는 최저임금법 등 노동 관련 법안 적용을 받지만(가사근로자법 제6조) 가사사용인은 그렇지 않다(최저임금법 제3조). 조정훈 의원의 가사근로자법 개정안은 “외국인 근로자인 가사근로자는 최저임금법 적용이 제외되는 가사사용인으로 본다”라고 적는다. 이 법은 이런 논리에 기댄다. ‘외국인이라서 최저임금을 주지 않는 게 아니다. 이미 가사노동자 중 최저임금이 적용되지 않는 집단이 있고, 외국인 노동자를 여기에 넣자는 것이다. 이것은 국적에 따른 차별이 아니라 직역에 따른 차등이다.’

정부·헌재도 인정한 ‘관리의 어려움’

조정훈 의원 법안은 외국인에게 최저임금법을 적용하지 않기 위해 노동 법령이 적용되지 않는 가사노동자 직군(가사사용인)을 찾아냈다. 법을 이렇게 만들면 ILO 협약은 우회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현실의 암초까지 피해 가기는 어렵다. 외국인 가사노동자의 처우를 장담할 수 없다. 이들만의 최저임금이나 노동시간을 정한다고 해도 지켜질지 알 수 없고, 인권침해 소지가 다분하다. ‘국가가 관리에 신경 쓰면 될 일’이라고 넘어가기 어렵다. 가사노동자는 개인 거주지에서 일하기에 일반 사업장처럼 관리되지 않는다.

관리의 난점은 일부 시민단체만의 우려가 아니다. 정부 스스로 시인하고 헌법재판소도 지적하는 기정사실이다. 고용노동부는 2021년 주휴수당 지급 의무에 대한 질의 회신에서 “가사사용인은 주로 개인의 사생활과 관련되어 있어서 (…) 국가적 감독행정이 미치기 어렵기 때문에 근로기준법 적용에서 제외한다”라고 적었다. 지난해 헌법재판소도 가사사용인에게 퇴직급여를 지급하지 않는 법을 심판하며 같은 논리를 내세웠다. “가사가 개인의 사생활과 관련된 것이고 근로조건에 관하여 국가의 감독이 미치기 어려워 근로관계 법령을 적용하는 게 부적당하다(고 입법자는 봤다)”(2019헌바454). 결정문에서 헌재는 반복적으로 ‘국가 관리감독의 어려움’을 언급하며, 노동 관련 법을 적용하려면 “법 준수 여부를 감독할 행정인력 등의 대폭 증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 대목은 왜 가사노동자가 가사사용인과 가사근로자로 나뉘어 있는지, 어째서 가사사용인은 노동 관련 법안이 적용되지 않는지와 맞물려 있다. 기준은 행정감독의 용이성이다. 가사사용인에게 노동 법령을 적용하지 않는 까닭은 개별 가정을 국가가 관리감독하기 어려워서다. 반대로, 가사노동자 중 일부(가사근로자)에게 법이 적용되는 까닭은, 그들이 기관에 소속돼 국가의 감독이 비교적 쉽기 때문이다. 따라서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가사사용인으로 분류’하는 것과, ‘국가가 철저히 관리감독’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모순이다.

6월16일 가사노동자들이 2023 국제 가사노동자의 날 기념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6월16일 가사노동자들이 2023 국제 가사노동자의 날 기념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가가 ‘관리감독이 미치지 않는 영역’이라고 인정한 판에서 외국인 노동자는 또 하나의 위험 요소를 떠안는다. 이들의 취업은 고용허가제를 통할 가능성이 큰데, 고용허가제의 전제조건은 ‘한국인 고용주와의 고용관계 유지’다. 노동자 처지에서 한국에 머물려면 불합리한 상황도 견뎌야 한다. 법적으로는 근로조건 위반, 임금체불, 성적 학대 등 사유가 있으면 횟수 제한 없이 이직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언어의 벽과 까다로운 법률 절차, 입증 과정의 난점 탓에 사각지대가 생긴다. 이런 이유 외에 고용주 동의 없는 이직(사업장 변경)은 최대 3회로 제한한다. 국가가 제대로 들여다볼 수 없는 영역에서, 한국인 고용주가 사실상 노동자의 체류 여부를 결정하게 되는 셈이다.

김양숙 플로리다애틀랜틱 대학 사회학과 교수는 외국인 가사노동자들이 프로그램을 이탈할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학대 금지나 (제한적) 이직의 자유가 현장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기에 노동자들도 정부 예측을 벗어난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2015년부터 국내 중국 동포 가사노동자들을 연구했다. 고용과 체류가 연계된 고용허가제에 비해 이들은 이직이 자유로운 편임에도 제도권을 벗어나려는 경향이 있다. ‘사적 영역’이 제대로 관리·감독되지 않아서 벌어지는 일이다. 김 교수의 말이다. “중국 동포 가사노동자들은 성희롱이나 임금체불, 학대, 위험한 서비스 요구 등 고용주와의 문제가 발생할 때 자신들을 제도적으로 보호할 수단이 없다고 인식한다. 그래서 전략적 이탈을 택한다. 계약서를 쓰지 않고, 말없이 그만두며, 아프면 한국 병원에 가는 대신 중국에 다녀온다.” 이것은 노동자 인권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서비스의 질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더 장기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회문제는 외국인 노동자의 정주화다. 고용허가제는 외국인 노동자의 값싼 노동력을 단기간 활용한 뒤 본국으로 돌려보내도록 고안된 제도인데, 이런 구상은 실패 사례가 많다. 이미 중국 동포 가사노동자들이 이런 예시를 보여준다. 김 교수가 만난, “몇 년 잠깐 한국에서 돈을 벌고 중국으로 돌아가려 입국한 ‘조선족 이모’들” 다수가 점차 생각을 바꿔, 십수 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한국에서 지낸다. 멀게는 2차 세계대전 후 미국 역시 짧은 기간 멕시코 남성 노동력만 수급하려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멕시코인들은 곧 비공식 가사 서비스 등에 진출하는 방식으로 생계를 꾸리고, 가족 전체가 미국에 눌러앉게 됐다.

프로그램 이탈 가능성을 고려하면 ‘한국에서 생활할 수 없을 만큼 적은 임금’도 정주화를 막지는 못한다. 예컨대 외국인 가사노동자 최저임금을 100만원쯤으로 설정한다면, 미등록 상태가 되더라도 임금이 더 높은 제조업으로 옮겨가는 게 합리적 선택이라고 여길 수도 있다. 이것은 가사노동 영역에 온전히 미치지 못하는 행정력이나 한국에 정착할 합법적 경로를 열어두지 않는 고용허가제 탓이기도 하지만, 모든 외국인 유입 정책이 유발하는 근원적 부작용이기도 하다. 김양숙 교수는 “정부가 이주민의 노동력만 원한다고 해서 이들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으리라는 것은 착각이다. 단기적이든 장기적이든 한국 사회의 일원이 될 이주민들이 생기고, 사회통합 과정에 비용이 발생한다”라고 말했다.

정부는 부처 간 협의를 거쳐 7월 중 외국인 가사노동자 시범사업 계획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올해 하반기부터 외국인 가사노동자 100명을 고용하는 안이 추진되고 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최저임금 지급 여부 등 세부 사항에 대해서 답변할 수 없다고 말했다. 7월3일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은 “(임금을) 월 100만원으로 하면 좋은데 현행법상 어렵다. 홍콩·싱가포르처럼 100만원을 넘지 않아야 도움이 된다. 시범사업을 하면서 논의를 계속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국 사회와 외국인 노동자들의 동상이몽 속에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알 수 없는 새로운 사업이 올 하반기 진행될 예정이다.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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