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25일 경기도 안산의 한 국숫집에서 캄보디아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노동인권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당신이 돈을 벌기 위해 고향을 떠난 이주노동자라고 가정해보자. 비행기로 여섯 시간, 열차로 다섯 시간을 이동해 도착한 곳은 낯선 나라, 낯선 지역이다. 문이 잠기지 않는 비닐하우스 숙소에 불쑥 들어온 사장이 계약서를 내민다. 월세는 20만원이지만 겨울에는 난방비로 달마다 60만원을 내야 한다. 서류에는 이곳이 딸기 농장이라고 적혀 있지만 사장은 마늘밭에서도, 고구마밭에서도 일해야 한다고 말한다. 일하는 시간도 6시간이 아니라 9시간이 될 수도, 12시간이 될 수도 있다. 이 나라에서는 정해진 양을 수확하는 데 걸린 시간이 기준이라고 사장은 주장한다. 원래 이게 맞는 건지, 혹시 잘못 알아들은 건 아닌지 망설이자 사장이 윽박지른다. “이 ××가 벌써 일하기 싫어?” 물어볼 곳도, 신고할 곳도 떠오르지 않는다. 전화를 해도 서툰 한국말로 이 상황을 전달할 수 있을지 막막하다. 당신이 있는 곳은 기차역까지 자동차로 한 시간 떨어진 논밭 한가운데다. 가진 돈조차 얼마 남지 않은 당신에게 어떤 선택지가 있을까?

지난 7월23일 경기도 이천의 한 식당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한 고용주 아래에서 동시에 여러 문제를 겪은 사람도 있었고, 마침내 옮긴 농장에서 똑같은 문제로 다시 사업장(근무지)을 바꾼 사람도 있었다. 현재 시행 중인 고용허가제에 따르면, 비전문 직종에 취업할 수 있는 E-9 비자를 통해 국내에 머무는 이주노동자는 최대 세 번 사업장을 바꿀 수 있다. 이때 반드시 고용주의 허가가 필요하기에 이주노동자가 사업장을 바꾸는 건 성공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주노동자가 사업장을 두 번 혹은 세 번 바꿨다는 건 그만큼 해당 사업장이 버티기 힘든 곳이었다는 걸 의미한다.

이날 식당에 둘러앉은 젊은이들을 향해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비영리 민간단체 ‘지구인의 정류장’에서 활동하는 김혜나 활동가가 또박또박 말했다. “2022년 최저시급은 9160원이에요. 최저시급이라는 건 여러분들이 한 시간 동안 밭에서 일을 하면 사장님이 최소한 9160원을 줘야 한다는 뜻이에요. 깻잎 한 박스를 따든 두 박스를 따든 상관없어요. 한 시간 동안 일을 했으면 9160원을 받아야 해요.” 김혜나 활동가는 ‘근로계약서 제대로 쓰는 법’도 또박또박 전했다.

일하다가 아프면 누구 잘못이에요?

그가 알려줘야 할 이야기가 너무나 많았다. “근로계약서에 적힌 주소가 아닌 다른 곳에서 일을 시키면 불법이에요.” “사장님이 근로계약서에 적힌 숙소비보다 더 많이 요구할 수 없어요.” “근무지를 옮기려면 녹음 파일이나 사진, 동영상 같은 증거가 꼭 필요해요.” 취업하기 이전에 누군가는 가르쳐줘야 했던, 하지만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던 노동권 상식이다. 한국에 입국한 이주노동자는 산업안전교육을 받도록 돼 있지만, 직종이나 직무에 상관없이 모두 모여 똑같은 교육 동영상 한 편을 보는 게 전부다.

〈시사IN〉은 지난 7월23일 이천, 9월25일 안산, 10월29일 수원까지 총 세 차례 ‘찾아가는 이주노동자 노동인권버스(이하 인권버스)’에 동행했다. 인권버스는 ‘인권재단 사람’의 재정 후원을 받아 진행되는 캠페인이다. ‘지구인의 정류장’ 활동가들과 캄보디아 노동자들이 만든 ‘크메르 노동권협회 활동가들이 한 달에 한 번 이주노동자들이 많이 모여 사는 지역의 식당을 찾아가 식사를 함께하며 노동인권 수업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캄보디아 언어인 크메르어 통역이 제공되기 때문에 캄보디아 출신 노동자가 대부분이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하는 ‘고용허가제 고용동향’ 통계를 보면, E-9 비자로 한국에 들어온 비전문직 이주노동자 중 캄보디아 국적의 노동자가 지난 3년 동안 가장 많은 비중(약 19.6%)을 차지했다.

인권버스에 참여하기 위해 이주노동자들은 한 달에 겨우 두 번 쉬는 주말을 비워둔다. 수도권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 사는 이주노동자들도 버스나 열차를 타고 올라와 인권버스 강의를 듣는다. 그만큼 이주노동자에게 산재 예방법이나 임금체불 대처법에 대해 알려주는 곳이 드물다. 김혜나 활동가, 홍정민 노무사(노무법인 상상), 이진우 직업환경의학 전문의(한일병원) 등이 강사로 나섰다.

7월23일 찾아가는 이주노동자 노동인권버스에서는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속헹 씨의 산재가 언급됐다. ⓒ시사IN 신선영

“일하다가 아프면 누구 잘못이에요?” 9월25일 안산의 한 식당에서 홍정민 노무사가 묻자 모두 서로의 눈치를 보며 대답하지 않았다. “여러분 책임이에요, 사장님 책임이에요?” ‘사장님 책임’이라는 말에 사람들이 고개를 좌우로 젓자 홍 노무사의 말문이 막혔다. “아이고 이런.” 마이크를 쥔 채 잠시 서 있던 그가 다시 물었다. “그럼 일하다가 아프면 여러분 책임이에요?”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홍 노무사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큰일이네.”

그가 띄워놓은 화면에는 한국어로 ‘산업재해’라고 쓰여 있었다. ‘산업재해’ 혹은 ‘산재’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 있느냐고 묻자 50여 명 중에 단 한 사람만 손을 들었다. “여러분이 일을 하다 다치면, 그건 그 일을 시킨 사장님 책임이에요. 산업재해라는 게 그런 의미예요. 사장님이 ‘산재 신청 하지 마!’ 하고 화를 내도 노동자가 근로복지공단에 신청하면 그만이에요. 혹시 사장님이 무서워서 다쳤을 때 바로 신청을 못했더라도 괜찮아요. 이미 거길 그만뒀어도 괜찮아요. 3년 안에 신청하면 돼요.” 홍 노무사는 종이에 메모를 하는 사람들을 향해 거듭 말했다. “일을 하다가 아프거나 다치면 일을 멈춰야 해요. 그리고 병원에 가야 해요. 오늘 여기에 오지 못한 친구들에게도 꼭 알려주세요.”

강의를 끝낸 홍정민 노무사가 저녁 식사를 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주노동자 산재 상담을 많이 할 때는 깻잎 같은 걸 못 먹기도 했어요. 그 깻잎을 누가 어떻게 땄는지 너무 잘 알게 되니까, 차마 목에 안 넘어가더라고요.” 이날 저녁 메뉴는 캄보디아 전통 음식이었다. 젊은 노동자들은 음식을 먹으며 자신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토로했다.

2020년 12월, 캄보디아 국적의 여성 이주노동자 속헹 씨가 경기도 포천의 한 비닐하우스에서 잠을 자다 영하 18℃의 추위를 견디다 못해 사망했다. 속헹 씨는 비닐하우스에 사는 대가로 월 30만원씩 숙소비를 내고 있었지만 난방시설조차 없었다. 이진우 직업환경의학 전문의는 속헹 씨의 사망을 산재로 인정받기 위해 지원한 ‘이주노동자 기숙사 산재사망 대책위원회’에서 활동했다. 이번 인권버스에도 함께한 이진우 전문의는 속헹 씨 사망사건을 통해 산재 개념을 설명했다. “속헹 씨는 원래 간이 좋지 않았어요. 그래서 고용노동부는 제대로 조사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우리는 속헹 씨가 날마다 오랜 시간 일했다는 점, 추운 숙소에서 지냈다는 점이 속헹 씨의 건강을 악화시켰다고 봤어요. 그러니까 원래 아팠어도 일하다가 더 아파졌다면, 그것도 산재예요.”

10월29일 수원의 한 식당에서 이진우 전문의의 강의가 끝나자 젊은 남성 노동자가 손을 들고 질문했다. “저는 원래 폐렴이 있었는데 캄보디아에서 치료받아서 괜찮아졌어요. 그런데 한국에 와서 다시 폐가 아파요.” 이 전문의는 “안타깝게도 아직까지는 노동자가 직접 질병이 생긴 원인이 업무 때문이라는 사실을 입증해야 해요. 그런데 폐렴에 걸릴 수 있는 이유는 다양해서 산재로 인정받기가 어려워요. 그래도 이게 산재라고 생각한다면 지구인의 정류장이나 크메르 노동권협회에 전화해서 꼭 상담을 받아보세요”라고 답했다. 사람들이 휴대전화를 꺼내 상담 전화번호를 저장했다.

인권버스는 강의로만 끝나지 않는다. 각자 사업장에서 고립되어 있던 이주노동자들은 인권버스 강의를 통해 다른 이주노동자와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서로를 돕는다. 이른 아침부터 경북 청도에서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수원까지 올라왔다는 여성 노동자 보파 씨(27·가명)는 매번 인권버스에 참여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전에 일했던 농장은 숙소가 정말 안 좋고 일하는 시간도 사장님 마음대로였어요. 지금은 팽이버섯 농장에서 하루 8시간만 일해요. 옛날의 저처럼 부당한 일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당신도 해결할 수 있다’는 걸 알려주려고 와요.”

올해 마지막 인권버스 강의가 끝난 10월29일 밤에는 지구인의 정류장과 크메르 노동권협회를 후원하는 이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다른 이주노동자를 위해 선뜻 월급을 쪼개 후원하는 노동자들이었다. 2013년 담양에 있는 딸기 농장에서 일하다 지구인의 정류장의 도움을 받았던 한 여성 이주노동자는 빈손으로 올 수 없었다며 콩나물 한 상자를 내밀었다. 그사이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렸다는 이야기를 듣자 모두가 박수를 치며 기뻐했다. 지금은 용인의 한 버섯 농장에서 일하고 있다는 그는 함께 온 동료를 소개했다. “이 친구도 다른 농장에서 일하다가 월급을 못 받아서 지구인의 정류장 도움을 받았다던데요?” 박수와 웃음소리가 더욱 커졌다. 김이찬 지구인의 정류장 대표가 반가움과 씁쓸함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10년 전에 월급 떼인 사람이랑 작년에 월급 떼인 사람이 같이 손을 잡고 왔네요. 한국 사회는 그동안 변한 게 없는 거 같기도 해요.”

기자명 이천·안산·수원/나경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didi@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