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포천의 한 농가에서 시금치를 수확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 ⓒ시사IN 이명익

올해도 어김없이 고용노동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임금 체불 청산 지원대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추석, 올해 설을 앞두고 낸 보도자료와 판박이다. 고용노동부의 보도자료에 담긴 판박이 대책을 비웃기라도 하듯 임금 체불 문제는 나날이 심각해지고 있다. 2020년 기준 임금 체불 신고 건수는 19만6547건, 피해 노동자 수는 29만4312명, 체불 금액은 1조5830억원에 달한다. 사상 최대 금액이다.

우리나라에서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것을 ‘임금 체불’이라 부른다. 체불(滯拂)은 지급해야 할 것을 지급하지 못하고 미룬다는 뜻으로 철저히 사용자의 언어다. 노동자에게 임금은 생존의 문제다. 임금을 제때 지급하지 않는 건 단지 체불이 아니라 ‘임금 절도’, 더 나아가 ‘임금 강도’, 그것도 날강도다. 미국에서는 임금 체불을 ‘wage theft’, 곧 ‘임금 절도’라 부른다.

임금 체불의 법정 최고형은 징역 3년에 불과하고 대부분 벌금형으로 처벌되며, 그 벌금 액수도 임금 체불 액수에 훨씬 못 미치는 금액이다. 특별히 이주노동자에게 임금 체불은 정말 치명적이다. 고용허가제도를 통해 한국에서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는 기간 4년10개월, 그 기간이 지났지만 한국을 떠나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임금 체불 때문이다. 법무부는 이주노동자에게 임시 비자를 주지만 그 비자로는 합법적으로 일할 수 없다. 그나마 번 돈을 체류비로 소진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그냥 포기하고 한국을 떠난다. 이주노동자가 2020년 한 해 동안 체불임금으로 신고한 금액은 1500억원을 넘겼다.

추석을 보내며 아직도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쓸쓸히 명절을 맞이하는 이주노동자 한 명이 떠올랐다. 비닐하우스 기숙사에서 살며 4년10개월 동안 꼬박 일했던 그녀는 땅을 팔아서라도 임금을 지급하겠다는 ‘사장님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이제 집에 가야 하니 밀린 임금을 달라는 요청에 사장은 “법대로 하라”며 줄행랑을 쳤다. 법적 절차는 착착 진행되었다. 노동청은 체불임금을 3700만원으로 확인해주었고, 검찰은 약식기소했으며, 법원은 벌금 600만원을 선고했다. 2년 넘게 기다렸지만 그녀의 수중에 들어온 돈은 아직까지 단 한 푼도 없다.

밀린 임금을 달라고 할 때마다 그녀를 안심시켰던 사장의 땅은 이미 2019년 경매로 넘어간 상태였고, 사장의 다른 재산이 확보되지 않는 이상 판결문은 그저 종이 쪼가리에 불과하다. 2년 전 이 안타까운 사연이 언론 보도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을 때 고용노동부 외국인력담당관실도 호들갑을 떨었지만 그녀를 위해 해준 건 ‘체불임금 확인서’라는 종이 한 장 발급이었다. 그 외에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임금이 생존의 문제인 노동자에게 체불은 ‘임금 절도’

일제강점기 노동력 부족을 타개하기 위해 조선인을 일본 기업 공장에 강제동원하여 종사하게 한 일을 우리는 ‘강제징용’이라 부른다. 한국 농장과 공장의 노동력 부족을 타개하기 위해 16개국 외국 청년들을 한국 농장과 공장에서 일하게 하는 제도를 우리는 ‘고용허가제’라고 부른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직접 알선하여 일하게 한 농장과 공장에서 노동의 대가인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출국하는 외국 청년들은 이 제도를 무엇이라고 부를까? 일본의 강제징용을 비판하는 우리가 이제는 가해자가 되어 외국 청년들의 눈에 피눈물 흐르게 하는 건 아닌지 묻고 싶다.

기자명 최정규 (변호사·〈불량 판결문〉 저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