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가) 2개월 남았는데 왜 이런 절차를 밟고 있는지. 거꾸로 제가 여쭙고 싶다.” 5월24일 국회에 출석한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은 자신의 면직 절차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지난해 7월25일 감사원 감사를 시작으로 한 위원장에 대한 압박은 전방위적으로 쏟아졌다. 여당 주요 인사들은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 자체가 후안무치(지난해 6월16일, 권성동 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 “몰염치로 버티기에 급급하다. 뻔뻔함이 하늘을 찌를 듯하다(5월2일,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라는 말로 방통위원장 퇴진을 1년 넘게 외쳤다.
5월30일, 윤석열 대통령은 한상혁 방통위원장 면직안을 재가하며 지난 1년 넘게 지속된 ‘한상혁 찍어내기’에 마침표를 찍었다. 대통령실이 주장하는 한상혁 위원장 면직 사유는 ‘검찰의 기소’다. 검찰은 5월2일 한상혁 위원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2020년 TV조선 재승인 심사 과정에서 점수가 수정되었는데, 이것이 고의적으로 이뤄졌으며, 이 과정에 한 위원장이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것이다(〈시사IN〉 제805호 ‘윤석열 정부는 왜 방통위원장을 겨누나’ 기사 참조).
검찰은 공소장에서 한 위원장이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 양 아무개 방송정책국장 앞에서 TV조선 재승인 점수에 대해 “미치겠네”와 같은 부정적 반응을 보인 탓에 점수 수정이 이뤄졌다고 주장한다. 반면 한 위원장은 5월2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입장문에서 “객관적 확인이 어렵고 공소사실과 무관한 자극적 표현이 기재됐다”라며 검찰의 기소가 부당하다는 뜻을 밝혔다. 5월23일 한국기자협회 등 4개 언론단체도 기자회견을 열고 “방통위원을 면직할 수 있는 조건은 형사재판의 경우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았을 때이다. 형사재판의 시작인 검찰 기소로 면직 절차를 시작하는 것 자체가 부당하다. 이번 사태는 그 배경에 정치적인 의도가 있는 무리한 조처다”라며 한 위원장에 대한 면직 시도를 규탄했다. 6월1일, 한 위원장은 서울행정법원에 면직무효소송을 제기하고 효력정지가처분 신청을 했다고 밝혔다.
감사원 감사, 검찰 수사와 기소, 이후 대통령실의 면직 절차 돌입 등 지난 1년간 한상혁 위원장은 윤석열 정부의 언론 장악 논란의 최전선에 놓여 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방통위뿐 아니라 다양한 부문에서 정부·여당의 공세적 언론 대응이 강도를 높여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언론 보도에 대한 법적 대응이 잦아졌다. 대통령실은 지난 2월, 무속인 천공이 대통령 관저 후보지를 다녀갔다고 주장한 부승찬 전 국방부 대변인과 이를 보도한 〈한국일보〉 〈뉴스토마토〉 기자를 고발 조치했다. 지난해 9월, 유엔총회 참석차 미국을 방문할 당시 윤석열 대통령의 비속어 논란이 일었을 때에는 ‘바이든이라고 말한 게 아니라 날리면이라고 말한 것’이라며 외교부 등이 MBC를 상대로 정정보도 청구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개별 보도에 강하게 대응한다는 기조는 윤석열 대통령의 연이은 ‘가짜뉴스’ 언급에서도 확인해볼 수 있다. 윤 대통령은 올해 4월7일 신문의 날 축사, 4월19일 4·19혁명 기념식, 4월29일 민주주의 정상회의에서 연달아 “허위 정보·선동, 가짜뉴스가 민주주의를 위협한다”라는 말을 꺼냈다.
대통령의 연이은 주문에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도 4월20일 보도자료를 발표하며 “가짜뉴스는 ‘악성 정보 전염병’이다. 종합적인 퇴치를 위해 부처 내 관련 TF팀의 기능과 역할을 전면 강화·가동한다”라고 밝혔다. 구체적인 추진책으로 언론진흥재단에 ‘가짜뉴스 신고·상담 센터’를 설치하고, 인공지능(AI) 가짜뉴스 감지 시스템을 개발하겠다고 설명했다. 당시 문체부의 이 같은 발표는 여러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관련 부처인 방통위를 건너뛰고, 언론 지원 단체인 언론진흥재단에 언론 규제와 모니터링 역할을 맡긴다는 데 대한 비판도 뒤따랐다.
후임 방통위원장으로 이동관 전 홍보수석 물망
문제는 ‘무엇을 가짜로 규정하느냐’다. 정부·여당의 연이은 ‘가짜뉴스’ 언급은 과거 문재인 정부 시절 보수정당 인사들의 말을 다시 소환하게 했다. 문재인 정부 때에는 보수정당이 앞장서 ‘가짜뉴스를 정부가 규정하고 규제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논지를 펼쳤기 때문이다. 2018년 이태규 의원은 “공권력으로 (가짜뉴스를) 해결하겠다는 것은 민주주의와 거리가 멀다”라고 말했고, 같은 해 박성중 의원 역시 “국가가 나서지 말고 자율적으로 (가짜뉴스를 근절) 해야 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자 보수정당 인사들의 말은 뒤바뀐다. 박성중 의원은 5월16일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시행령을 통해서도 (가짜뉴스 규제 대책이) 가능하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언론단체들은 특히 정부·여당의 공영방송 장악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한상혁 방통위원장을 이토록 오랫동안 흔든 것도 방통위원장이 공영방송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 당시 대통령 최측근인 최시중 방통위원장을 통해 공영방송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한 바 있다. 그때 그 인사들이 다시 등장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초대 홍보수석이었던 이동관 전 수석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 직후 대외협력특별보좌관으로 위촉되었다. 이 전 수석은 면직된 한상혁 위원장 후임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 전 수석은 이명박 정부 시절 정연주 KBS 사장 해임, YTN 기자 해고 등 굵직한 언론 장악 시도의 중심에 있던 인물이다. 언론노조는 6월1일 성명서를 내고 이 전 수석의 ‘방통위원장 후임설’에 대해 “수많은 언론인이 해직되면서 한국 언론의 흑역사를 쓴 원흉이다. 이동관이 이끄는 6기 방통위는 한국의 공영언론 현장을 피비린내 나는 살육장으로 만들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고대영·김인규 전 KBS 사장과 김장겸 전 MBC 사장 역시 보수 언론단체인 공정언론국민연대 상임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특히 김장겸 전 사장은 국민의힘 언론 대응 채널 중 하나인 포털위원회 위원장을 맡으며 국민의힘이 마련한 방송법 개정 관련 토론회에 적극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중이다.
공영방송을 흔드는 또 다른 축은 재정적 위협이다. 지난 3월, 대통령실은 ‘국민제안’ 홈페이지를 통해 KBS TV 수신료를 전기요금과 분리해 징수하는 정책에 대한 의견 수렴에 들어갔고, 4월에 분리 징수 추진을 본격화했다. 이는 KBS 재정에 큰 위협이 된다. 그동안 한국전력에 위탁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수신료를 분리 징수하게 되면, 수신료 수입이 절반 이하로 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엄경철 KBS 공영미디어 연구소장은 5월11일 ‘윤석열 정권 1년, 추락하는 언론자유’ 토론회에서 “2월24일, KBS는 정순신 국가수사본부장 아들의 학교폭력과 소송전을 보도했다. 수신료 분리 징수가 현 정부에서 논의된 적 없다가 갑자기 등장한 것은 KBS 저널리즘의 권력 감시 기능을 약화시키기 위한 것이 아닌가”라며 의문을 제기했다.
최근 윤석열 정부의 언론 대응 기조가 강경해지고, 공영방송 장악 시도가 노골화되었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와는 상황이 다소 다르다는 분석도 있다. 이명박 정부는 2007년 대선에서 최다 표차로 정권을 거머쥐었고, 이듬해인 2008년 18대 총선에서도 여당인 한나라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했다. 대통령 측근인 최시중 위원장을 내세워 언론 장악에 노골적으로 나설 수 있었던 배경이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은 여소야대라는 환경과 낮은 지지율 때문에 임기 첫해에 이른바 '언론 장악'에 나서기 어려웠다.
이준형 언론노조 전문위원(언론학 박사)은 “윤석열 정부가 이명박 정부의 언론 장악을 당장 답습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정파적 미디어가 확산된 탓에 언론 역시 정부·여당의 언론 장악 시도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가 어렵다. 인물 중심의 팬덤정치가 일상화되면서 시민사회와 언론의 관계도 변화했다. 이명박 정부 때처럼 언론이 시민사회의 호응을 얻으며 투쟁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결국 정파성에서 벗어나 공공적이고 비판적인 저널리즘의 가치를 언론이 얼마나 회복하느냐가 관건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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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달아 (⟨기자협회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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