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9일 대통령실 ‘국민제안’ 홈페이지에 ‘대통령비서실님의 생각’으로 게시물이 올라왔다. 국민제안은 청와대 국민청원 폐지 후 만들어진 윤석열 정부의 대국민 소통 창구다. TV 수신료 징수 방식 개선에 대한 의견을 들려달라는 내용이었다. 이어지는 설명이다. ‘최근 대부분 가정에서 별도 요금을 내고 IPTV에 가입해서 시청하거나 넷플릭스 같은 OTT를 시청하는데, 전기요금 항목에 의무적으로 수신료를 납부하는 방식은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대통령실 국민제안을 통해 제기됐습니다.’ 4월9일까지 한 달간 진행된 설문조사에서 5만8251표 가운데 97%가 수신료 분리 징수 제안에 ‘추천’을 눌렀다. ‘좌파 편향 왜곡 방송은 안 본다’ ‘중립을 지키지 못하는 공영방송이라면 당연히 수신료는 폐지되어야 한다’ 등 댓글 6만4000여 건이 달렸다.
이 설문조사 결과는 두 달 후 대통령실이 TV 수신료 분리 징수를 추진하는 주된 근거로 쓰인다. 6월5일 대통령실 강승규 시민사회수석은 “국민참여 토론 과정에서 방송의 공정성, 방만 경영 등의 문제가 지적됐다”라면서 수신료 분리 징수를 위한 법 개정과 후속조치를 관계 부처에 권고했다. 국민참여 토론 과정이란 국민제안 게시판의 추천·비추천 투표와 댓글을 의미한다. 6월14일 방송통신위원회는 수신료 분리 징수를 위한 방송법 시행령 개정에 착수했다. 국회 입법 절차를 건너뛴다. 대통령실이 권고한 지 9일 만이다.
수신료 분리 징수제가 도입되면 매달 전기요금에 합산해 걷던 TV 수신료 2500원을 낼지 말지 선택할 수 있게 된다. KBS는 당장 재원구조에 타격을 입는다. 2022년 기준 KBS의 TV 수신료는 전체 수입의 45.3%(6934억원)을 차지한다. 분리 징수가 시행되면 절반 이하인 3000억원대로 감소할 것으로 추산된다. 1994년 10월 통합 징수 제도가 도입되기 전까지 KBS 징수원이 직접 수신료를 받으러 다녔는데 당시 징수율이 53%에 그쳤다. 그때보다 더 하락할 수 있다. 프로그램 제작 위축은 물론이고 구조조정도 뒤따를 수 있다. 2021년 6월까지만 해도 수신료를 월 3800원으로 인상하려 했던 KBS 이사회는 “공영방송의 근간을 훼손한다”라며 반발했다.
왜 하필 지금일까. 집권 1년, 갑작스러운 분리 징수 추진을 두고 ‘공영방송 길들이기’라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KBS가 2월24일 정순신 국가수사본부장 후보자 아들의 학교폭력 사건을 보도했고 그 여파로 정 후보자는 임명 하루 만에 자진 사퇴했다. 대통령실 국민제안이 올라온 건 그로부터 약 2주 뒤였다. 강성원 전국언론노동조합 KBS 지부장은 정부에 대한 비판 보도를 제약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근거를 찾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제도라면 고쳐야 한다. 다만 공영방송의 공적 재원에 관한 사회적 합의 없이 대통령실이 독단적으로 추진하는 과정이 온당한가.”
TV 수신료, 임시방편으로 박아둔 쐐기
TV 수신료는 수십 년간 풀지 못한 난제다. 공영방송 정치적 독립을 위해 마련된 재원이었지만, 실제 쓰임은 그 반대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한 언론학자는 “수신료 제도는 정치권력과 공영방송이 결탁하는 하나의 매개체였다”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국민의힘 전신인 한나라당은 참여정부 시절에 수신료 분리 징수 법안을 추진했다가 한나라당이 집권한 이명박 정부에서는 되려 수신료 인상을 추진했다. 당시 민주당은 “KBS를 사유화하려는 정치적 음모”라며 수신료 분리 징수안으로 맞섰다. 박근혜 정부에선 당시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중심으로, 문재인 정부에서는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중심으로 수신료 분리 징수 주장이 제기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여야가 공수만 바꿔온 셈이다. KBS 편향성과 방만 경영 문제는 야당 측의 주된 논거였다.
이번에 수신료 분리 징수를 꺼낸 건 대통령실이라는 점에서 이전과는 다르다. 황근 선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수신료 분리 징수를 100% 언론 장악의 관점으로 보기는 어렵다”라고 말했다. 2010년 여당 추천으로 KBS 이사를 지낸 그도 당시에는 수신료 인상에 찬성했다. “지금은 KBS 집행부가 현 정부와 대척점에 있지만, 집행부가 새로 바뀌게 되면 그다음엔 어떻게 되나. 장기적으로 KBS의 역할이 축소되면 결국 집권 여당이 누리던 ‘프리미엄’은 누리기 힘들게 된다. 어찌 보면 결탁의 끈을 끊으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다음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전처럼 수신료 분리 징수원이 각 가구를 돌아다닐 것인가? KBS에 시청 가구에 접근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이 부여되나? 2024년 12월까지 유효한 한전과의 위탁계약은 어떻게 되나? 무엇보다 상업광고를 하지 않는 KBS 1TV에 광고를 받을 것인가, 혹은 채널과 인력을 감축시킬 것인가? 재난방송이나 사회적 약자를 위한 프로그램 등 공적 책무가 약화되는 것은 아닐까? 수신료 분리 징수가 시행되면 당장 닥칠 질문들이다. 숱한 논쟁에도 불구하고 수신료 통합 징수가 30년째 지속되었던 건, 이처럼 뒤따르는 사회적 비용이 너무 컸기 때문이기도 하다.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미디어영상홍보학과 교수는 TV 수신료를 부실한 댐(공영방송의 공적 재원)에 임시방편으로 박아둔 ‘쐐기’에 비유했다. “공영방송 재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것인지부터 사회적 논의를 시작했어야 한다. 제도적 해결 방안 없이 분리 징수만 추진하면 쐐기만 뽑는 게 된다. 댐이 무너지듯 공영방송 전체가 다 붕괴할 수도 있는 결정이다.” 해외에서 수신료를 폐지하는 움직임은 공공미디어세나 공공기금처럼 공영방송의 재원을 마련해놓는다는 전환의 의미이지, 그걸 곡해하면 전혀 다른 결론이 나오게 된다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수신료 분리 징수안은) 바람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무책임한 행정행위에 불과하다.”
공영방송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 잇따르고 있다. YTN 지분 매각도 유사하다. 최대주주인 한전 KDN 이사회 일정에 따르면, 올 9월 안으로 매각 체결을 계획 중이다. 공적 소유 구조를 가진 보도전문채널에 사주가 들어설 가능성이 크다. 홍원식 동덕여대 교수(저널리즘)는 윤석열 정부의 언론관이 과거 보수 정부와 다른 점을 이렇게 설명한다. “TBS와 YTN, KBS 상황을 보면 방송의 직접적인 내용에 대해서 통제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방송의 돈줄을 통제함으로써 실제 방송 내용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간접적인 방식을 택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워온 MBC를 두고 박성중 국민의힘 의원은 MBC 간부가 전부 민주노총 언론노조 출신이라며 “MBC는 궁극적으로 민영화돼야 한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 시도되는 방송통신위원장 교체는 언론 장악 의혹에 불을 지핀다. 5월30일 윤석열 대통령은 TV조선 재승인 심사 과정에 부당하게 관여한 혐의로 기소된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의 면직안을 재가했다. 임기 두 달을 남긴 시점이었다. 일각에서는 “공영방송 장악 시나리오가 시작되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공영방송 이사진과 사장 선임이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를 거쳐야 하는 만큼, 총선을 앞두고 KBS와 MBC 사장을 여권 인사로 교체하려는 수순이라는 지적이다. “정권이 원하는 방통위원장을 앉히면 방통위가 여권에 유리한 구조로 바뀐다. 그 방통위가 다시 KBS 이사회 이사를 교체한 후 공영방송 사장을 들어내는 식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비슷한 전략이 쓰였다. 사장 교체는 시간문제다.” KBS 소속 기자의 말이다.
차기 방송통신위원장으로 거론되는 인물은 이동관 대통령실 대외협력특별보좌관이다. 이명박 정부 초대 홍보수석이었던 그는 정연주 KBS 사장 해임, YTN 기자 해고 등 공영방송 장악을 설계한 주요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MB 정권 언론 장악이 다시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감돈다. 2019년 6월6일 이동관 특보는 유튜브 채널 ‘신의한수’ 에 출연해 “보수 우파의 제대로 된 분들은 아예 지상파 방송을 안 본다”라고 말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공영방송 사장이 바뀐다고 보도 내용까지 바뀌게 될까? 고한석 언론노조 YTN지부장은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라 인사권으로 지배력을 행사하면 결국 보도국의 공기가 바뀔 수 있다”라고 말한다. 보도국장 임면동의제, 보도국 공정방송추진위원회처럼 KBS, MBC, YTN이 각각 파업을 거치면서 만들어온 제도적 장치가 있다. 다만 단체협약이기 때문에 한쪽이 파기하면 자칫 형해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당장 국민의힘이 편향성을 문제 삼았던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와 패널부터 교체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가 방송계 안팎에서 나온다.
기업별노조인 KBS 노동조합과 MBC 노동조합, YTN 방송노조 등은 이를 ‘내로남불’이라고 주장한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정권교체 이후 기존 이사와 사장들을 몰아내고, 새로운 사장을 앉히며 언론 장악을 했다는 것이다. “민주당과 민노총 언론노조가 문재인 정권 시절 어떻게 방송을 장악했고, 선후배 동료 방송인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했는지 국민에게 폭로할 것이다.” 실제 자유한국당 추천으로 임명된 강규형 KBS 전 이사는 문재인 대통령 취임 후 해임되었다. 고대영 사장 해임의 도화선이 되었는데, 이후 강 전 이사가 해임무효소송에서 최종 승소했다. 감사원에서 적발한 업무추진비 유용의 문제는 있었지만, 임기 만료 전에 해임할 정도의 잘못은 없었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한국 방송정책은 복수혈전이었다”
물론 2017년 당시 방송 장악에 관여한 경영진 퇴진과 방송 정상화를 요구하는 KBS, MBC 총파업이 장기화되었던 점을 감안하면, 2008년 MB 정부와 같은 선상에 놓을 수는 없다. 그럼에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인적 청산이 반복된다. 황근 교수는 “우리나라 방송정책은 와신상담, 복수혈전이었다”라고 지적한다. “어느 정권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지난 20년 동안, 누가 더 세게 쥐었는가를 두고 싸울 순 있어도 근본적으로 언론을 장악하려는 시도는 보수, 진보가 똑같았다.”
공영방송 이사회와 사장 임명 과정이 승자독식 구조이기 때문이다. KBS 이사회는 여야 7대 4, 방문진(MBC)은 여야 6대 3 구조다. '정치적 후견주의'가 작용할 수밖에 없다.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혁이 언론노조를 비롯한 언론단체의 오랜 숙원이었던 이유다.
그렇기 때문에 문재인 정부 5년이 언론계에 중요한 시기였다고 언론단체는 입을 모은다. 언론개혁 열망 속에 집권한 정부였던 만큼, 공영방송에 대한 정치권의 후견주의를 끊어낼 적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주당이 박근혜 정부 시절 발의했던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법(방송법)은 끝내 처리되지 못했다. 2017년 8월 문재인 대통령이 “기계적 중립을 지키는 사람을 공영방송 사장으로 뽑는 것이 도움이 되겠는가”라며 재검토를 지시한 후, 사실상 좌초되었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은 “그때 대승적 양보를 하고 결단을 내렸어야 했다. 그때 책임을 회피했던 것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라고 지적했다. 과거 보수 정부처럼 보도 개입이나 언론 통제 시도는 없었지만, 근본적 제도 개선에 소극적이었다는 평가다.
그리고 다시 정권이 바뀌었다. 민주당은 뒤늦게 공영방송을 국민께 돌려드리겠다며 지난 4월 방송 3법 개정안의 본회의 부의 요구안을 단독 의결하자 국민의힘은 “왜곡·편파 보도를 자행하는 민노총 언론노조의 공영방송 영구장악법”이라 비판하며 논의 자리를 떴다. 공영방송 이사 수를 21명으로 늘리고 국회, 방송·미디어 관련 학회, 직능단체가 이사 추천권을 가지는 게 골자인데 이 학회와 단체들이 좌편향이라는 이유다. 야당 시절 공영방송 이사 추천 수를 늘리기 위한 방송법을 발의했던 국민의힘 과방위 의원들도 여당이 되자 태도가 달라졌다. 심영섭 교수는 “결국 법안은 하나인데 10년 동안 크게 다르지 않은 방송법이 계속 돌고 돈다”라고 지적했다.
제도적 개선이 하염없이 미뤄진 채, 공영방송은 다시 편향 보도 시비에 휘말리고 있다. 박성중 의원은 민주노총 산하 언론노조가 공영방송을 장악했으며 그로 인해 검증과 견제 없이 편파 보도를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MBC가 난방비 상승의 원인을 제대로 알리지 않고 ‘윤 정부 탓’만 하고 있다(1월27일)”라거나 “민노총 방송으로 전락한 KBS, MBC, YTN 라디오의 정상화가 시급하다(5월2일)”라는 발언이 대표적이다. 집권 세력을 충분히 견제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있다. 홍성철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는 “2017년 문재인 정권하에서 공영방송이 중립적인 인사를 기용했는지, 정치적 중립성을 유지했는지에 대해 되짚어봐야 한다. 역대 공영방송은 정권친화적일 수밖에 없었다”라고 말했다.
이호찬 언론노조 MBC본부장은 편향성 논란에 대해 “사안에 대한 공정성을 따질 때 공영방송의 관점 없이 5대 5의 기계적 균형만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MBC가 보수 여당과 극우 세력에게 공격받는 이유는 윤석열 정권에 대한 비판적 보도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언론노조 장악론도 마찬가지다. 강성원 언론노조 KBS본부장은 이렇게 말했다. “이명박-박근혜 체제 때 KBS는 말 그대로 장악과 부역이었다. 거기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조합원이 300명에서 2800명으로 늘었다. 과거와 같은 폐단이 반복되지 않도록 내부에서 나름 치열하게 자율성 확보를 위한 싸움을 계속해왔다. 적어도 제작 자율성 부분에서는 꽃피는 시기였다고 생각한다.”
편파 보도인가 권력 감시인가
‘공영방송 노동조합의 자율성 투쟁’(2018)을 연구한 조항제 부산대 신문방송학 교수에 따르면, 한국의 공영방송 노동조합은 권력과의 투쟁을 통해 정체성을 형성해왔다. 그는 파업이 정치성을 띠는 것은 어느 정도 불가피했고, 그 때문에 특정한 정파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행위로 확대해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논문의 마지막은 다음과 같다. “이런 노조의 위기는 오히려 후견주의의 노골성이 일정하게 극복될 때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불가피하게 닥치는 시장의 문제로 노동조직으로서 갖는 경향적 진보성이 대정부 관계에서 친화적인 매개로 작용해 오히려 필요한 비판조차 하지 못할 때, 민주적 전문직주의의 책임성을 스스로 유지하지 못하고 엘리트주의의 폐해를 노정할 때, 노조는 자칫 지금까지의 역사를 부정당할 수도 있다.”
공영방송의 편향성 논란은 분명 과거와는 다른 자장 안에 들어와 있다. 정파적 미디어가 확산된 탓에 언론 역시 언론 장악 시도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워졌다. 또 미디어 시장에서 공영방송이 가지는 존재감도 과거와 같지 않다. 김동찬 정책위원장은 윤석열 정부 1년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문재인 정부 5년을 바라봐야 한다고 말한다. “언론 규범의 부정, 자유주의의 부재라는 포퓰리즘적 현상이 이 정부에서 새롭게 나타난 게 아니라 전 정부에서부터 이어져오고 있다. 두 정치세력이 적대하면서도 동질적인 언론관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우리 편’에 불리한 보도를 편파 보도로 규정하거나, 가짜뉴스 퇴치 대책이 언론정책의 화두가 된 건 지난 정부와 현 정부에서 모두 있었던 일이다.
무엇보다 큰 위기는 언론사 내부에 있다. KBS의 한 시사교양 PD A씨는 “과거엔 권력에 맞서 싸웠던 선배들의 무용담이 내려오는데 지금은 그때만큼 나서는 분위기가 잘 느껴지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외풍이 반복되면서 냉소가 심화된 탓이다. “예전에는 ‘마봉춘을 구하자’ ‘고봉순을 돌려달라’는 구호처럼 사람들이 별명도 지어주고 공영방송을 지켜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있었다면 지금은 그런 분위기가 아니다. OTT 시장이 커지면서 ‘KBS 안 보는데 수신료를 왜 내야 하냐’는 불만 여론도 높다. 공영방송이 사람들에게 효능감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은 뼈아프다.”
수신료 분리 징수안을 앞두고 당장 프로그램 제작 압박을 느낀다. “제작자로서 〈나는 신이다〉처럼 자극적 아이템을 다뤄야 하나, 그런 걸 잘 만드는 PD가 되어야 하나 고민스럽다. 누군가는 외국인 노동자, 발달장애인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 시청률이 저조하고 악플이 더 많이 달릴 걸 알면서도 다뤄야 하는 주제들이 있다. 재원이 사라지고 오로지 시장성 있는 아이템으로 평가받게 된다면 그런 이야기들을 다룰 수 있을까.” A씨의 말이다.
한 해 한 해 쌓여온 언론 위기 앞에 다시 보수 정부이 등장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이런 정도로 공영방송이 편향돼 있다면 정말 민영화가 답이 아닌가 생각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정치적 후견주의 대신 민영화인 셈이다. 한 진보 언론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언론의 사영화가 계속돼왔다. 유일하게 남은 공적 영역이 공영방송이었다. 민영화된 언론시장은 보수화될 가능성이 크다. 시장 민영화를 통한 보수 공론장화가 함께 추진되어온 셈이다.“ 그 시절과는 또 달라진 정치적 자장 안에서 공영방송이 다시, 흔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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