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동 전 KBS 사장은 “TV 수신료를 분리 징수하는 움직임은 민주주의의 퇴행”이라고 말했다.ⓒ시사IN 조남진
양승동 전 KBS 사장은 “TV 수신료를 분리 징수하는 움직임은 민주주의의 퇴행”이라고 말했다.ⓒ시사IN 조남진

TV 수신료를 전기요금과 분리해 납부하도록 하는 방송법 시행령 일부개정안이 본격 발효되자, KBS는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시행령이 공개적 토론이나 이해 조정 없이 통과됐고 헌법상 기본권인 ‘방송의 자유’를 본질적으로 침해한다는 주장이다. 졸속 추진, 방송 장악, 공영방송 흔들기 등 정부를 향한 비판이 쏟아지는 가운데, 국민 여론이 KBS에 달갑지만은 않다. ‘KBS를 안 보는데 왜 수신료를 내야 하느냐’는 주장이 그렇다. KBS는 구성원들도 '약한 고리'라 칭해온 재원 구조를 애초에 왜 손보지 않았나. 수신료란 ‘탄탄한’ 재원이 방만 경영을 부추긴 건 아닌가. 그에 앞서 KBS가 수신료의 가치를 보여주었나.

수신료 분리 논란으로 촉발된 날 선 질문들이 공영방송 KBS 앞에 놓여 있다. 양승동 전 KBS 사장은 2018년부터 3년8개월 동안 KBS를 이끌었다. 10년에 걸친 ‘언론 장악’ 끝에 공영방송 정상화라는 시대적 과제를 부여받은 자리였다. 2018년 2월 해임된 고대영 전 사장에 이어 KBS 사장으로 취임하며 “KBS를 국민의 품으로 돌려드리겠다”라고 그는 약속했다. 하지만 5년이 흐른 지금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임기 마지막에 추진한 수신료 인상안은 수신료 분리 징수안으로 바뀌었다. KBS 본사 앞에는 ‘KBS정상화범국민투쟁본부’ 등이 수신료 분리 징수와 김의철 KBS 사장 사퇴를 촉구하는 근조화환이 놓여 있다.

1989년 KBS 시사교양 PD로 입사한 양 전 사장은 이명박 정부 시절 ‘공영방송 사수를 위한 KBS 사원행동’ 공동대표로 언론 장악에 맞서 싸운 인물로 평가받는다. 2021년 12월 퇴임한 후로는 대외적 발언을 웬만하면 삼갔다. 1987년 이후 KBS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책을 쓰고 있었다. 언론 인터뷰에 응한 건 “조용히 있을 수만은 없어서”였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KBS가 여러 번 위기를 겪었지만 이번이 가장 큰 위기처럼 느껴진다. 2008년보다도 상황이 좋지 않다.” 7월19일 서울 양천구에 위치한 그의 서재에서 2시간가량 인터뷰를 진행했다. KBS를 둘러싼 비판과 TV 수신료의 쓰임에 대해 자세히 물었다.

수신료 분리 징수 사안을 어떻게 지켜보고 있나.

대통령실 국민제안이 시작된 3월부터 참담한 심정이다. 1987년 이후 35년간 힘겹게 쌓아온 공영방송의 민주화 역사를 상식적이지 않은 절차로 무너뜨리려고 한다. 40일로 규정된 입법예고 기간을 10일로 단축하고, 5인 체제인 방송통신위원회도 2인 출석만으로 안건을 처리했다. 공론화 과정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가는 게 민주주의 절차인데 현 정부의 접근 방식은 포퓰리즘적이다. KBS가 현 정권에 친화적인 보도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KBS의 국가수사본부장으로 임명된 정순신 변호사의 아들 학교폭력 보도가 ‘영향’을 준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개인적으로 그 사건이 결정적인 발화점이라고 생각한다. 2월24일 KBS 보도 이후 하루 만에 국가수사본부장이 낙마했다. KBS 전직 사장들을 만나는 자리가 있었는데 한 분이 ‘(정순신 국가수사본부장 아들 학교폭력 관련 보도에 대해) 좀 조정을 했어야지, 지금 수신료 분리 징수 이야기가 나온다’고 말하더라. 지금 KBS 보도 시스템이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리고 일주일 후쯤 대통령실에서 ‘국민제안’에 수신료 안건을 올렸다.

국민제안 플랫폼에 대한 신뢰성 문제가 제기되지만, TV 수신료 제도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도 상당하다.

준조세 성격을 지닌 수신료를 인상하자는 데 찬성 여론이 많이 나오기 어렵다. 영국 BBC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 조사에서 영국 국민 3분의 2가 수신료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단순히 찬반을 묻는 게 아니라, KBS가 공영방송으로서 하고 있는 일을 종합해서 설명할 필요가 있다. 그런 문제의식으로 진행된 2021년 5월 수신료 공론조사 결과는 조금 다르게 나왔다(국민참여단 209명을 대상으로 1박2일 동안 진행). 자구책을 마련하겠다는 약속을 전제로 인상된 수신료를 부담할 의향이 있다는 의견에 국민참여단 79.9%가 동의했다. KBS가 공영방송으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동의 의견이 42.6%에 불과했지만, 91.9%는 KBS 같은 공영방송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KBS의 잘못이 크지만 가능성을 인정해준 것이다.

재임 중에 왜 수신료 인상을 추진했나.

취임 후로 KBS 적자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했는데 사업 손익 적자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미디어 환경이 변화하면서 지상파 광고 수입이 급격히 줄어들면서다. 공영방송 사장으로서 광고 영업에 몰두하는 것도 한계가 있고,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구조적 적자라는 생각이 컸다. 점점 고품질 프로그램을 제작하기 어려워졌다. 정통 대하사극을 부활시키고 제2의, 제3의 나훈아쇼를 계속 만들고 싶었다. 일일드라마에도 좀 더 많은 제작비를 투자하고 싶었다. 2021년 6월 KBS 이사회에서 인상안을 의결했지만 국회 과방위에서 계속 추진되지 못해서 아쉽다. 그해 12월에 사장직 임기도 종료됐다.

그 당시에도 KBS가 자구 노력을 먼저 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일었는데.

수신료 현실화를 추진하는 것이 내부 혁신의 동력이 될 수 있다고 봤다. 그간 임금 인상을 최소화하거나 동결해왔다. 구성원들에게 수신료 현실화에 대한 비전을 구체적으로 제시할 수 있다면 보직 감축, 임금 삭감 같은 강력한 자구책을 실행하는 게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무엇보다 KBS 수신료가 전체 재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5%인데 영국, 독일 등 앞서가는 공영방송사들의 수신료 비중은 대체로 70%를 넘는다. 공영방송의 경쟁력은 수신료라는 공적 재원의 힘에서 나온다. KBS도 최소한 60% 이상으로 올려야 한다고 봤다.

영국에서도 수신료 폐지론이 부상한 가운데 2028년까지 대안을 찾기로 했다. 스마트폰으로 OTT를 보는 시대에 TV 수신료까지 내야 한다.

독일은 현재 TV 수상기 보유 여부와 관계없이 전 가구가 수신료를 내고 있다. TV 수상기 외에도 스마트폰이나 PC로 공영방송사의 콘텐츠를 수신하는 현실을 반영해서 수신료 징수 관련법을 개정한 것이다. 이렇게 징수하는 것이 모두에게 형평성 있는 조치라고 봤다. 영국이나 일본도 법적으로는 TV 수상기 미소지자라 하더라도 스마트폰 소지자에게 수신료를 부과할 수 있는 법이 있는 걸로 안다. 우리도 방송법 개정을 통해 이런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 공론화를 거쳐 정리돼야 할 사안이지, 단순 여론조사를 통한 찬반 투표로 결정될 수는 없다.

KBS 수신료 수입이 연간 6000억원이 넘는다. 이 수신료는 공영방송의 업무에 어떻게 사용돼왔나.

KBS에서 하는 일 중에 수신료가 안 들어가는 게 없다고 봐야 한다. KBS의 모든 프로그램과 사업은 방송법 44조와 54조에 따라 공적 책무로 규정돼 있고, 이에 소요되는 경비는 원칙적으로 수신료로 충당하도록 방송법(56조)으로 규정해 놓았기 때문이다. KBS는 지상파 2개 채널을 포함해 라디오 6개 채널, 18개 지역총국, KBS월드TV 같은 국제 방송, 디지털 플랫폼, 지상파 DMB를 운영해야 한다. 전체 채널의 하루 편성시간을 따져보니 327시간에 육박하더라. 그런데 KBS의 한 해 예산 1조5600억원 중 방송 제작비가 7042억원이다. 수신료 총수입은 6900억원(2022년)인데, 여기에서 EBS 지원금과 한전에 지불하는 위탁징수비 등을 제외하면 6200억원으로 방송 제작비에 못 미치는 셈이다. 수신료 수입이 줄어들면 방송 제작에 어느 정도 타격을 받을지 가늠하기 어렵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건가. KBS는 비상경영을 선포하면서 클래식FM이 폐지될 거란 소문이 돌기도 했는데.

KBS 예산의 3분의 1 정도가 줄어들 수 있어서 감당하기 어려운 혼란이 예상된다. 비상체제에 돌입한 경영진이 준비하고 있다고 전해 듣고 있는데 딜레마가 상당할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KBS의 핵심적 프로그램 제작과 공적 책무에 소홀해서는 안 된다. 당분간 고통 분담을 해야 하는 시기다. 그럼에도 기본적으로 '하후상박' 원칙을 지켜야 한다. 재임 중에 임금 인상이든 고통 분담이든 저연차·하위 직급 직원들을 고연차·상위 직급 직원들보다 더 배려했다. 물론 노사 합의를 통해서 방송작가, 프리랜서, 자료조사원 등 비정규직의 처우 개선도 후퇴하지 않아야 한다.

수신료 분리 징수에 찬성하는 여론의 한 축이 KBS의 편파성이다.

양극화, 확증편향이 심화되면서 KBS는 양측에서 비판받을 때가 많다. 공정성 면에서 KBS 보도나 시사 프로그램들이 큰 틀에서 괜찮다고 본다. 물론 수준 높은 공정 방송은 추구해야 할 과제이지만, 내가 봐도 과한 부분이 가끔 있긴 했다. 사장직에 있을 땐 보도본부장이나 라디오센터장을 통해 의견을 전달했다. 경우에 따라서 라디오 진행자가 사과한 적도 있었다. 재임 초반에는 보도와 관련해 실수도 여럿 있었다. 2008년 이후 내부적으로 갈등과 파업이 많았기 때문에 기자와 PD들의 전문성이 축적되기엔 내부가 너무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편파성 논란에 대해서는 내부적으로 구축된 장치를 통해 견제하고 시정해갈 수 있다고 본다.

어떤 장치인가.

2018년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제작 자율성을 탄탄하게 보장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원래 KBS 편성 규약에 따라 보도와 시사 부문에 편성위원회를 두게 돼 있는데, 2008년부터 편성위원회를 열지 않거나 무시하는 행태들이 반복됐다. 2019년부터 편성위원회를 정례화해서 부당한 간섭이 있었는지, 보도가 편파적인지 등을 논의할 수 있도록 했다. 국장임명동의제도 KBS 사상 최초로 도입했다. 사장 인사권을 제한하면서도 제작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6월30일 KBS 주변에 수신료 분리 징수를 촉구하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시사IN 조남진
6월30일 KBS 주변에 수신료 분리 징수를 촉구하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시사IN 조남진

KBS 노동조합과 보수 단체는 문재인 정부하에서도 기존 사장을 몰아내는 식의 언론 장악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2008년 정연주 사장 해임과 2018년 고대영 사장 해임 모두 법적으로는 위법하다는 판결이 나왔는데.

정권 차원의 방송 장악이 있었는가 혹은 내부 구성원 절대 다수의 강력한 퇴진 요구가 있었는가 하는 차이다. 결국 제작 자율성을 둘러싼 문제다. 2008년 이명박 정권에서는 명확하게 방송 장악 시도가 있었고 임기가 보장된 공영방송 사장을 강제로 축출해서 KBS를 길들이려고 했다. 이 시도에 맞선 KBS 구성원들의 저항이 2017년 파업까지 9년간 계속되었다. 2018년 고대영 사장 해임 때는 달랐다. 촛불의 힘을 바탕으로 142일간 파업을 했고 그것이 해임의 결정적인 동력이 되었다. 문재인 정부나 여권에서 KBS 사장을 강압적으로 바꾸려는 시도는 없었다고 본다. 상당히 자제했다고 본다. 2008년과 비슷하게 지금도 정권에 의한 방송 장악, 사장 교체 수순으로 가고 있다고 보인다.

정권 교체기마다 공영방송이 크게 흔들린다.

공영방송 사장의 임기는 보장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고대영 사장 때도 처음에는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적절한 견제와 균형이 보장돼야 공영방송과 민주주의 발전에도 바람직할 것이다. 문제는 공영방송이 늘 (정권이 바뀔 때마다 경영진이 교체되는) 정치적 '후견주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는 것이다. 정치권에서 여야 방통위원을 선임하고 이 방통위원들이 KBS 이사를 선임하는 구조 탓이다. 후견주의적 요소를 없애는 방향으로 방송법 개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KBS 직원 절반 가까이 연봉 1억원을 받는다. 김효재 방송통신위원장 직무대행이 방만 경영을 문제 삼으며 “KBS는 수신료 문제에 있어 개혁 대상이지 결코 주체가 될 수 없다”라고 비판했는데.

KBS 인력구조 문제는 늘 받아왔던 비판이다. 88서울올림픽과 1990년대 중반 위성방송 실시를 계기로 대규모 채용을 했다. 하지만 계속되는 재정압박으로 신규 채용을 억제한 결과 장기근속자 비율이 늘어난 인력구조를 가지게 되었다. 2021년부터 2025년까지 5년간 장기근속자 1000여 명이 정년퇴직을 한다. 인건비 비중도 민간 기업에 비해 높은 편인데 앞으로 점점 낮아질 전망이다.

2008년 7월22일 KBS 앞에서 시민들이 ‘이명박 정부의 방송 장악 저지’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시사IN 포토
2008년 7월22일 KBS 앞에서 시민들이 ‘이명박 정부의 방송 장악 저지’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시사IN 포토

OTT 시대 우리에게 공영방송이 왜 필요한가.

KBS는 공영방송 50년의 역사를 가진 사회문화적 자산이다. 현대사, 자연 다큐멘터리 등 엄청난 양의 콘텐츠도 보유하고 있다. 그 콘텐츠를 시민들이 무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지난해 3월 개방형 아카이브 ‘KBS 바다’를 만들었는데 콘텐츠 수를 점점 늘려갈 예정이다. 디지털 시대 공영방송이 할 수 있는 역할 중 하나가 아닐까. 2000년대 초반 한류를 확산시키는 데 KBS를 포함한 지상파의 역할이 컸던 것처럼, 글로벌 시대 경쟁력의 한 축은 탄탄한 공영방송에서 나온다.

공영방송은 사실 끊임없이 논란의 대상이다. 하지만 공영방송은 그때마다 위기를 계속해서 극복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레이엄 머독이라는 영국의 커뮤니케이션 정치경제학자는 “디지털 시대를 맞아 공영방송이 마침내 때를 만났다”라고 말했다. 디지털 시대에는 양극화, 확증편향, 파편화 같은 부작용이 있는데 그 분열을 통합시키는 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역할은 여전히 공영방송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코로나19 때 KBS 뉴스 시청률이 올라가는 것만 봐도 ‘신뢰할 수 있는 정보’에 대한 필요가 크다는 걸 알 수 있다. 해마다 집중호우, 태풍, 폭설이 계속된다. 재난 시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는 게 재난방송 주관 방송사로서 KBS의 일이다.

수신료 분리 징수 이후 KBS는 앞으로 어떻게 되리라 보나.

수신료 분리 징수 문제는 헌법재판소에 두 번, 대법원에 두 번 갔던 이슈다. 수신료 전기요금 통합징수 제도는 법적 안정성을 갖고 있다. 헌법소원 청구는 KBS의 승소율이 아주 높다고 본다. 다만 헌재 판결이 나오더라도 그사이에 경영진을 교체하고 입맛에 맞는 사장을 만들어놓으면 수신료 문제도 유야무야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사회적 혼란은 더 커질 것이다. KBS 내부에 제작 자율성 억압에 저항해온 역사가 있는 만큼 그 DNA가 많은 직원들에게 체화돼 있다. 위기 때마다 KBS가 순종하지만은 않았다. KBS 경영진이 바뀌더라도 예전처럼 쉽게 주무를 수는 없을 것이다.

한 가지 강조하고 싶은 건 1987년 이후 민주주의 역사와 KBS가 같이 왔다는 것이다. KBS의 지난 35년은 한국 민주주의의 공론장 역할을 하면서 내부 민주화를 추구해온 역사라고 볼 수 있다. KBS가 다시 장악이 된다는 건 민주주의의 퇴행이다.

기자명 김영화 기자 다른기사 보기 you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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