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첫 개각이 단행됐다. 장차관급 인사 15명이 교체됐다. 윤 대통령은 통일부 장관 후보자로 김영호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를 지명했고, 국민권익위원장(장관급)에 김홍일 전 부산고검장을,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장(차관급)에 김채환 전 서울사이버대학교 교수를 임명했다. 나머지 12명은 차관이다. 19개 정부 부처 중 11개 부처 차관이 새로 임명됐다.

흔히 개각이라고 하면 대규모 국무위원(장관) 교체가 먼저 떠오르지만, 바뀐 국무위원은 통일부 장관 한 명뿐이다. 그러나 대통령실도, 정치권도 이번 인사가 개각이라는 점에는 이견을 내지 않는다. 이번 인사를 전후해 윤석열 대통령이 직간접으로 낸 메시지를 종합하면 충분히 개각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7월3일 신임 차관급 인사 13명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 통상 차관급은 국무총리에게 임명장을 받지만 이례적으로 대통령이 직접 수여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7월3일 신임 차관급 인사 13명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 통상 차관급은 국무총리에게 임명장을 받지만 이례적으로 대통령이 직접 수여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이번 인사의 핵심은 차관 교체다. 특히 교체된 차관 12명 가운데 5명이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때부터 윤석열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해온 대통령실 비서관들이다. 김오진 관리비서관과 백원국 국토교통비서관은 각각 국토교통부(국토부) 1·2차관으로, 박성훈 국정기획비서관은 해양수산부(해수부) 차관, 임상준 국정과제비서관은 환경부 차관, 조성경 과학기술비서관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부) 차관으로 임명됐다.

새로 임명된 대통령실 비서관 출신 차관들은 인사 발표 전 내정자 신분으로 윤석열 대통령과 만찬(6월28일), 간담회(6월29일)를 연달아 가졌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이 자리에서 “공직사회에 나가서 자신의 업무와 관련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서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카르텔을 잘 주시하라”고 주문했다고 밝혔다. 7월3일에는 신임 장차관급 인사들이 윤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았다. 김홍일 국민권익위원장(장관급)을 제외하면 이날 임명장을 받은 인사는 모두 차관급(김채환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장 포함)이다.

통상 차관급은 국무총리에게 임명장을 받는다. 이례적으로 윤 대통령이 직접 임명장을 수여하고 오찬까지 함께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새로운 차관들에게 힘을 실어주려는 대통령의 의지”라고 설명했다. 대통령실이 인사 발표 전에 만찬(6월28일)과 간담회(6월29일), 임명장 수여(7월3일) 일정 및 이 자리에서 나온 윤석열 대통령의 메시지를 모두 공개한 사실을 두고, 이번에 임명된 차관들이 ‘대통령의 차관’임을 강조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책임 장관 대신 ‘실세 차관’ 투하

대통령실 안팎에선 이번 인사를 무게추가 용산(대통령실)에 쏠린 ‘다목적 가성비 인사’라고 평가한다. 2024년 총선을 고려하면 대통령실로서는 올해 하반기부터 윤석열 정부의 색깔을 입혀 선명한 성과를 내야 한다. 이를 위해 대통령실 비서관들을 정부 부처에 내려보내 국정 장악력을 극대화한 뒤 속도감 있게 국정과제를 달성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대통령과 호흡을 맞춰온 대통령실 비서관 출신 차관들에게 자연스럽게 힘이 실릴 수밖에 없고, 정부 부처 내에는 대통령 의중과 국정 철학이 빠르게 전파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사실상 ‘대통령의 차관’을 통한 대통령실 직할 체제다.

대통령실 비서관들이 차관으로 옮긴 부처에는 굵직한 국정 현안들이 걸려 있다. 해수부는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를 처리해야 한다. 환경부는 4대강, 태양광 사업과 경북 성주 주한미군 사드기지에 대한 환경영향평가 소관 부처다. 국토부는 부동산 문제, 전세 사기 현안과 화물연대, 건설노조 대처 등의 이슈를 안고 있다. 과기부는 윤 대통령이 취임 초부터 강조한 우주·과학기술, 에너지 등의 연구개발 등 숙원 사업과 함께 환경부·해수부와 협조해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에 대한 ‘과학적 대응’을 다뤄야 한다. 현안 모두 정치적 쟁점과 얽혀 있고, 민생과도 밀접하게 연결됐다. 결과에 따라 내년 총선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장관급 인선과 달리 차관은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 정부·여당 처지에선 ‘가성비’ 높은 인사다. 청문회가 열리면 대통령실은 물론 후보자도 예상치 못한 각종 의혹과 논란 등이 불거질 수 있다. 이 경우 정국 주도권을 야권에 뺏길 가능성이 있다. 장관급 인선을 최소화하고 차관 배치로 우회하면, 내년 총선에 영향을 미칠 올해 하반기를 청문회 방어로 보내지 않아도 된다는 대통령실 판단이 깔려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차관으로 발탁된 비서관 대부분은 총선 출마가 거론되기도 했다. 선거 출마 명분을 위한 영전이라는 관측도 있다.

‘대통령의 차관’ 공식화가 정부 부처들에 전하는 경고 메시지 성격을 띠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통령실은 정권 교체 이후에도 윤석열 정부 코드에 맞춘 각 부처의 변화 속도가 더디다고 판단한다. 대통령실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일부 부처들이 부진한 성과를 낸 것은 지금까지 ‘한 지붕 두 가족’ 형태였기 때문이다. 일부 정부 부처들이 전 정부 사람, 현 정부 사람으로 나뉘어 내부 알력을 벌이는가 하면, 국정 기조에 발맞추지 않고 복지부동하기도 했다. 공직사회 분위기 자체를 바꾸고 윤석열 정부의 색깔을 확실히 드러내겠다는 게 이번 인사의 또 다른 취지로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차관 중심 인사로 윤석열 대통령의 ‘책임 장관제’ 약속이 퇴색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장관에게 전권을 부여하되 결과에 책임지도록 하는 ‘책임 장관제’를 강조해왔다. 장관은 그대로 두고 차관만 바꾼 만큼 결과에 책임질 사람은 누가 될 것이냐는 질문이 뒤따른다. 각 부처에서 장관의 영(令) 자체가 서지 않을 것이라는 관가 안팎의 비판도 있다. 공무원들이 ‘책임 장관’의 말보다 실세 차관 뒤에 있는 대통령실 눈치를 살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다.

전문성 지적도 나온다. 차관은 부처의 정책 조율과 조직관리 등을 총괄한다. 그 역할이 크기에 업무 전문성과 함께 부처 안팎 사정을 잘 아는 내부 출신이 주로 맡아왔다. 그러나 대통령실에서 차관으로 옮긴 비서관 대부분은 관련 업무 경험이 없다. 국토부에서 주택 및 부동산 정책, 도시계획 등을 총괄하는 자리에 임명된 김오진 1차관은 정치권 출신이다. 국회 보좌관을 거쳐 국민의힘 전신인 한나라당 상근부대변인, 이명박 정부 청와대 총무1비서관 등을 지냈다. 박성훈 해수부 차관도 해양수산 업무와 접점이 없다. 행정고시 37회로 기획예산처에서 공직을 시작해 기재부 기획조정과 세제실, 박근혜 정부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실 선임행정관 등을 거쳤다. 임상준 환경부 차관은 국무총리실에서만 30년 가까이 근무한 정통 관료 출신이다. 환경 관련 경력은 없다. 국정 장악력에 치중한 나머지 업무 전문성이 부족한 인사라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번 차관 인사 발표 한 달 전부터 인사 대상 부처와 명단이 여러 차례 바뀌었다. 막판까지 명단 교체 작업이 이뤄진 정황이 있고 이에 따른 ‘국제적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통계청장이었던 한훈 신임 농림부 차관은 인사 발표 전날(6월28일), 아시아 국가 통계청장 중 유일하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정책위원회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의장단 위원에 선정됐다. 의장단 위원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선출된 개인이 통계청장에 재임하고 있어야 하지만, 차관 임명으로 통계청장을 그만두게 되면서 선출 하루 만에 국제기구 의장단에서 사퇴했다. 통계청 관계자는 “새 청장이 부임하면 다시 의장단 선거에 나설 것이다”라고 밝혔다. 그 밖에 과기부와 중소벤처기업부는 전임 차관이 해외 출장 중인 상태에서 명단 교체를 통보받았다.

관가에 불어닥칠 칼바람

신임 차관이 배치된 부처를 시작으로 관가 전체에 대규모 인사가 단행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대통령실은 차관급 이하 고위 공무원들에 대해 사실상 수시 인사 기조를 이어갈 방침이다. 국정과제 이행 의지나 성과가 부진할 경우 아무 때나 인사를 단행할 수 있다는 취지다. 수시 인사는 고위직에 대한 업무평가 강화를 바탕으로 하기로 했다. 평가 강화 역할은 신임 차관들이 맡는다. 윤 대통령은 앞서 차관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면서 “제일 중요한 것이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다. 업무능력 평가를 정확히 해달라”고 당부한 바 있다. 현 정부 들어 사실상 민정수석실 역할을 하고 있는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실이 각 부처 차관들이 보낸 업무평가를 참고하게 된다. 이 경우 자연스럽게 대통령실의 부처 장악력도 강해지리라 관측된다.

다만 윤석열 정부 공직기강비서관실은 과거 민정수석실과 달리 사정 기능이 약화됐다. 이 때문에 관가에서는 ‘감사원발 칼바람’을 우려한다. 최근 감사원과 기재부가 감사원 직원 50명 이상 증원을 추진한다고 알려졌다. 2016년 이후 7년 만이다. 감사원 인력 증원은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지속적으로 ‘이권 카르텔’ 문제와 ‘정권 교체 이후에도 복지부동한 부처’를 지적하는 것과 맞닿아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의 공개 지적 및 고위급 인사 단행에 이어 감찰로 행정부 압박과 장악력을 동시에 높이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실제 증원되는 감사관들은 공직사회 부조리, 세금과 보조금 부정 수급·사용 등 공직사회 전반을 집중 감사할 것이라고 전해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6월28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효과 분석 없이 추진된 예산, 돈을 썼는데 아무런 효과도 나타나지 않는, 왜 썼는지 모르는 그런 예산들은 완전히 제로베이스에서 재점검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 발언 직후 감사원 재정경제2과는 ‘국가연구개발사업 과제선정 및 관리실태’ 감사에 착수했다. 과기부와 산하기관 등 10여 곳이 감사 대상에 올랐다. 오는 10월까지 감사를 받는다. 과기부는 이번 인사로 차관도 교체됐다.

기자명 문상현 기자 다른기사 보기 moo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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