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에 밭에 나가려고 하는데 바람에 불이 겅실겅실(겅정겅정의 방언) 날아서 뚝 떨어지고 또 뚝 떨어지고 집을 뺑 돌려가며 다 붙더라고. 옷도 다 못 챙겨 입고 나만 이래 나왔어.” 4월11일 오후 강원도 강릉시 산불 이재민 대피소(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만난 김정임씨(70·가명)는 다시 한번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손쓸 틈도 없이 번진 산불에 집은 삽시간에 주저앉았고 버선에 털신만 겨우 구겨 신고 나왔다.
4월11일 오전 8시22분, 강릉시 난곡동 일원에서 발생한 산불은 강풍을 타고 순식간에 번졌다. 소방 당국은 소방대응 3단계를 발령하며 최고 수위 대응에 나섰고, 8시간 만에 주불 진화를 마쳤다. 하지만 이번 산불로 인해 축구장 면적(0.714㏊) 530배에 이르는 산림 379㏊가 불에 탔고 주택 59채, 펜션 34채, 호텔 세 곳, 상가 두 곳, 교회 한 곳, 문화재 한 곳 등 총 100개소가 전소되거나 일부가 탔다. 한 명이 숨지고 세 명이 화상을 입었다.
1996년 강원도 고성군 산불 때부터 산불을 관찰해온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은 이번 강릉 산불처럼 강풍때문에 낮에 헬기를 띄우지 못한 경우는 처음이라고 했다. 그는 “최근 산불의 양상이 ‘관측 이래 최대, 최고’라는 말이 붙을 정도로 크다. 기후변화와 맞닿아 있다. 이번 강릉 산불은 대응 가능한 수준을 뛰어넘는 산불이 주민들의 터전을 앗아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이제는 진화보다는 예방 중심의 체계로 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강릉·이명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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