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훈 더 프라미스 상임이사(사진)는 일상화한 재난에 대응하기 위한 공동체의 상호 돌봄을 강조했다. ⓒ시사IN 이명익
김동훈 더 프라미스 상임이사(사진)는 일상화한 재난에 대응하기 위한 공동체의 상호 돌봄을 강조했다. ⓒ시사IN 이명익

김동훈 ‘더 프라미스’ 상임이사는 20여 년간 24개국에서 국제구호활동을 해왔다. ‘더 프라미스’는 2007년 설립된 국제구호 협력기구로 미얀마 대홍수를 비롯해 네팔·아이티·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이 발생할 때마다 구호활동에 나섰다. 김동훈 상임이사는 국제적 재난 현장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재난 전문가’가 됐다.

그는 스스로를 ‘재난사회복지사’라고 칭한다. 이재민의 일상을 복구하는 ‘돌봄’이 그의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기후위기 시대, 대형 재난은 ‘재앙’의 형태로 시민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그는 일상화한 재난 속에서 공적 재난 대응 시스템의 빈틈을 메울 수 있는 것은 공동체의 상호 돌봄이라고 말했다. 예방과 처벌에만 집중하고 있는 재난 인식에 변화가 필요하다고도 덧붙였다.

김동훈 상임이사와 인터뷰를 진행한 7월18일 오전 9시, 그는 이른 아침부터 각 지역 재난 현장에 흩어진 활동가들과 소통하고 있었다. “이번처럼 여기저기서 재난이 터지면 얼마만큼의 인원을 어느 지역에 투입할지를 정하는 데도 더 많은 시간을 쓰게 된다.” 달라진 재난은 달라진 대응을 요구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재난이 잦아졌다.

최근 몇 년 새 재난 관련 강연에서 해외 사례를 얘기할 필요가 없어졌다. 국내 사례만으로도 충분할 만큼 빈도가 잦고 강도가 강한 재난들이 등장하고 있다. 정부가 과거 기록을 바탕으로 ‘개연성 있는 재난’에 대비하는 게 큰 의미가 없어졌다는 거다. 이제 과거를 본다고 대응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산불·홍수·산사태 같은 과거의 ‘자연 재난’이 최근에는 ‘기후 재난’으로 불리는데.

그 단어를 사용하는 데 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첫째, 원인이 기후위기에만 있지 않다. 사람의 실수로 시작된 산불이 초대형·도심형 산불이 되는 현상을 기후위기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기후위기가 피해 양상을 변화시킨 중요한 원인일 수는 있지만 유일한 원인은 아니다. 난개발 같은 이슈와도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둘째, ‘기후 재난’이라는 단어가 면책의 빌미가 될 수도 있다. 2020년 부산 초량동 지하차도 침수 사건으로 시민 세 명이 숨졌다. 영장실질심사 때 부산시 동구청 공무원의 변호인은 ‘예상하기 어려운 기습 폭우로 발생한 불가피한 사고였다’는 점에 초점을 두고 변론했다. 기후 재난이 오히려 면죄부의 근거로 활용된 거다. 면죄부는, 오히려 공무원들이 안전 규정을 엄격하게 지키는 바람에 민원이 발생했을 때 줘야 하는 것 아닌가.

방재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우리나라는 방재 관련해서 기술에 중점을 둔다. IT 기술을 활용해 예측·진단하겠다는 것이다. 기술이 아무리 좋아도 실행 단위에서 활용을 안 하면 무슨 쓸모가 있나. 정부가 1조원 넘는 예산을 투입해 구축한 ‘재난안전 통신망’이 있지만 이태원 참사 때도, 이번 오송 참사 때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다. 예방이나 처벌 이야기만 할 게 아니라 재난이 발생했을 때 대응력을 높이는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어떤 대응력을 높여야 하나?

일본도 '방재'가 아니라 ‘감재’라는 개념을 강조한다. 방재가 미연에 사고를 방지해 피해를 0으로 만드는 것이 목적이라면, 감재는 피해를 최소로 억제하는 걸 목표로 한다. 피난 동선을 미리 훈련해 몸에 익히고, 자력 피난이 어려운 사람들은 이웃에 어떻게 도움을 요청할지 등을 미리 약속하는 것이다. 이웃 마을 간에 재난이 발생하면 어떻게 도울지 꼼꼼하게 협정을 만들어두기도 한다. 대응할 준비가 돼 있다는 건 예방이 돼 있다는 것과 같은 의미다. 사건이 터졌을 때 정해진 대로, 몸에 익은 대로만 해도 문제없는 상태가 되는 게 대응이다. 예측 불가능한 재난이 빈번해지는 기후위기 시대에 알맞은 접근이다.

그 기준에서 현재의 재난 대비 시민교육을 평가한다면?

자연재해와 세월호·이태원 참사 등 사회적 재난을 거치면서 안전교육 횟수는 늘었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의 재난 교육은 심폐소생술이나 소화기 사용법 같은 데 치중해 있다. 처음에는 강당에 모아놓고 강연하다가 나중에는 동영상을 제작해 보여주더니 지금은 VR(가상현실)로 한다. 형식만 새로울 뿐 내용은 다 똑같다.

그렇다면 어떤 교육이 필요할까?

수요에 맞는 맞춤형 교육을 해야 한다. 재난 취약계층인 장애인, 임산부, 치매 환자, 요양병원 환자 등이 실제 재난에서 겪을 일을 예측하고 그에 맞는 개별화 교육을 해야 한다. 특히 ‘자조’와 ‘협조’의 방식을 가르쳐야 한다. 1995년 일본 한신 대지진 때 살아남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어떻게 살아남았느냐’고 설문조사를 했다. 자조, 즉 ‘스스로 살아남았다’는 답이 가장 많았고(66.8%), 그다음은 협조, 즉 ‘사람들이 도와줘서 살아남았다’였다(30.7%). 119 같은 구조대의 도움(공조)이라고 답한 비율은 2% 미만에 불과했다. 거대한 재난일수록 정부의 구조 작업에는 빈틈이 커진다. 재난이 일상화할수록 가까운 관계를 통한 구호가 생존율을 높이는 방법이다.

7월17일 서울 양천구 봉영여중 2학년 학생들이 협동 대피 훈련을 하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7월17일 서울 양천구 봉영여중 2학년 학생들이 협동 대피 훈련을 하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봉영여중 학생들이 연기 체험관에서 재난 대비 훈련을 하고 있다. 얼마나 빨리 탈출하느냐가 아니라 팀원과 함께 탈출할 수 있느냐를 훈련한다. ⓒ시사IN 이명익

구체적으로 어떻게 교육해야 하나?

7월17일 서울 양천구 봉영여자중학교에서 140여 명이 참여하는 재난 대비 훈련을 진행했다. 이런 훈련이 실효성 있으려면 첫째, 일상의 공간에서 주변 물품을 이용하는 대처법을 가르쳐야 한다. 정부에선 재난 체험관에서 재난 ‘체험’을 하라고 하는데, 그건 실제 상황에서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둘째, 팀으로 들어가서 팀으로 복귀하게 해야 한다. 얼마나 빨리 빠져나오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재난을 당할 때 우리는 대부분 누군가와 엮여 있다. 아이는 부모와, 장애인은 비장애인(활동보조인 등)과, 학교·직장에서는 동료와 함께 있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재난 대응의 기본 단위는 개인이 아니라 가족·이웃·옆 사람이다.

위기 상황에서는 자연스럽게 서로 돕게 되지 않나. 교육이 필요할까?

집에 엄마와 아이가 있는데 지진이 나서 엄마가 다친 상황을 가정해보자. 힘이 약한 사람(아이)이 자기보다 크고 무거운 사람(엄마)을 어떻게 안전한 공간으로 옮길 수 있을까? 정답은 이사할 때 무거운 짐을 옮기는 것처럼 이불을 밑에 깔고 그걸 당기는 거다. 그런데 이런 방법은 알려주지 않고 무조건 ‘1층이나 옥상으로 데려가라’고만 알려주고 있다. 몸이 건강한 성인 남성을 기준으로 한 교육이 일반적이라서 그렇다.

장애인 같은 취약계층은 어떤 대응책이 필요한가?

장애인 인권 단체에서 재난 교육을 요청해 강연을 한 적이 있다. 휠체어 장애인 20명이 있었는데, 불이 나면 어떻게 대피할 거냐고 물었더니 “엘리베이터도 못 타는데 죽어야지” 이렇게 답하더라. 화재가 나면 엘리베이터를 타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장애인은 엘리베이터가 없으면 이동 자체가 안 되니까 자조적으로 저런 말을 한 거다. 어떻게 해야 하나 궁리했다. 소방관이 올 때까지 기다리면 생존율이 낮아진다. 건물을 살펴보니 아래층에 편의점과 스터디카페가 있었다. 나는 장애인에게 편의점·스터디카페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친해지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들이 위급 상황 때 장애인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관계를 만들어주는 게 생존율을 높이는 핵심 기술이다.

그 밖에도 우리가 지금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에 재난이 발생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 같나? 이재민 대피소에 가서 어떤 일을 겪게 될지, 어떤 절차를 통해 보상·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재난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아무도 모른다. 재난 피해자로서 갖는 권리라는 게 있는데 이것을 가르쳐주는 사람도, 말해주는 사람도 없다. 정부가 지정해준 대피소에서 자지 않아도 된다. 무료 밥차의 밥을 똑같이 먹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정부가 이재민을 관리·통제의 방식으로 대할 때 일상을 영위하던 사람으로서 존엄을 어떻게 지키고 주장할 수 있는지, 대부분은 모른다. 이 권리를 정확하게 알도록 교육해야 한다.

지난 4월 강원도 강릉 산불 피해 이재민들이 강릉 아이스아레나에 마련된 임시 대피소로 대피했다. 김동훈 상임이사는 이곳에 어린이와 노인을 위한 사랑방을 임시로 만들어 운영했다. ⓒ시사IN 이명익
지난 4월 강원도 강릉 산불 피해 이재민들이 강릉 아이스아레나에 마련된 임시 대피소로 대피했다. 김동훈 상임이사는 이곳에 어린이와 노인을 위한 사랑방을 임시로 만들어 운영했다. ⓒ시사IN 이명익

정부는 뭘 해야 하나?

기초지자체장 교육부터 시작해야 한다. 자신에게 무슨 권한이 있는지를 정확히 모르면 혼란만 생긴다. 자주 하는 말이 있다. “가용자원을 총동원하라.” 이때의 ‘가용’이란 건 기준이 뭔가? 굉장히 주관적인 단어다. 또 지금처럼 일선 담당자 징계에 그칠 게 아니라 피해를 최소화하고 재발을 방지해야 한다. 그러려면 재난의 원인 분석부터 방지책 논의까지 정확하게 기록으로 남기는 상설·독립기구로서 재난조사위원회가 필요하다. ‘수사’와는 별개로 재난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 과정에 참사 피해자의 유가족도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강연에 가면 이렇게 말한다. 민주주의가 시민들이 흘린 피로 성장한 것처럼, 재난 역시 그래 왔다고. 사고가 난 뒤에 피해자와 유가족들이 계속해서 싸웠기 때문에 하나라도 바뀐 거고, 우리는 그 변화에 무임승차하고 있는 거라고. 우리처럼 재난에 대한 인식 수준이 낮은 사회에서는 당사자들이 조직화되고 목소리를 낼 수 있게끔 해줘야 한다. 시민들이 이 과정을 많이 지지해줘야 한다. 끝까지 싸우는 사람들이 그들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태원 참사 후 올해 최초로 전국 기초지방자치단체장 대상 재난안전교육이 진행됐다. 자원자만을 대상으로 했지만,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싸우지 않았으면 이런 변화조차 없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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