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의 산사태로 피해를 입은 윤제순씨(69)가 자택을 둘러보고 있다.ⓒ시사IN 박미소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의 산사태로 피해를 입은 윤제순씨(69)가 자택을 둘러보고 있다.ⓒ시사IN 박미소

온 집 안에 물이 들어차고 벽에 흙탕물이 튄 사진. 박미소 사진기자가 경북 예천의 수해 현장을 촬영한 사진을 보다가 꽤 오래전 기억을 떠올렸다. 나는 물난리를 세 번 겪었다. 목동 아파트가 인근에 들어서기 전 서울 영등포 인근은 상습 침수지역이었다. ‘국민학교’ 때는 자다가 새벽에 허벅지까지 차오르는 물을 헤치고 부모님 동네 친구분의 15층 아파트로 ‘피난’을 갔다. 복도식 아파트 복도에서, 사람들이 스티로폼을 배처럼 타고 다니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세 번째 수해 때는 낮에 집에 혼자 있었다. 방으로 물이 들어차 가전제품을 부리나케 장롱 위로 올렸다. 어디로 대피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물이 빠진 뒤 방 안의 모습은 처참했다. 온통 진흙투성이였다. 벽지를 다 뜯어내고 여름을 보냈다. 물 먹은 벽에서 습기가 빠지도록. 그 여름 내내 벽에 핀 곰팡이가 선명했다. 일흔을 바라보는 할머니가 방 안에서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는 박미소 기자의 글을 읽으며, 남 일 같지 않았다.

청주 오송 궁평2지하차도 참사 소식은 더 기가 막힌다. 기적을 바랐지만, 결국 아까운 생명이 스러졌다. ‘홍수경보’를 했다는데, 왜 지하차도 통행을 막지 않았을까.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청 등 관리 책임이 있을 만한 기관들은 변명만 하고 있다. 경북 예천에서 구명조끼도 없이 수색 작업을 하다 채수근 해병대원이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에 할 말을 잃는다. 현직 소방관인 그의 아버지는 이렇게 절규했다고 한다. “구명조끼, 그게 그렇게 비쌉니까.”

지난해 8월8일에는 서울에 큰비가 왔다. 서울 신림동의 반지하 주택에 물이 차올라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가족 4명이 숨졌다. 그때도 위기 시 비상 대응 컨트롤타워가 제대로 작동했는지에 대해서 비판이 많았다. 연이은 수해에 정부는 더더욱 긴장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들리는 말은 기가 막힌다. 해외 순방 도중 수해 소식을 듣고도 우크라이나로 간 것에 대한 평가는 다를 수 있다 치자. 귀국 후에 윤석열 대통령은 7월18일 국무회의에서 “이권 카르텔에 대한 보조금을 전부 폐지하고, 그 재원을 수해 복구와 피해 보전에 투입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민간단체 보조금 폐지와 수해 복구 지원이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 의아하다. 보조금을 없애고 그 돈을 수해 복구 재원으로 쓰는 게 가능한지도 모르겠다. 리투아니아 방문 중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명품숍 방문을 두고 ‘호객 행위’ 때문에 들어갔다느니, ‘하나의 외교라고 판단한다’느니 하는 여권의 ‘쉴드’성 발언에 헛웃음이 나오는데 여기에 대통령의 ‘이권 카르텔’ 타령까지. 그해 여름의 곰팡이처럼, 한숨이 터져 나온다.

기자명 차형석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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