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 산불로 전파된 집 앞에 세입자 이재민 강현철씨가 서 있다. 그는 이곳에서 20년간 살았다.ⓒ시사IN 조남진

집으로 돌아온 김숙란씨(61) 눈에 바싹 탄 생선들이 보였다. 친척 오빠가 두고 간 생선들이 겨우 흔적으로만 남아 있었다. 늘 마당에 말려놓고 요긴하게 반찬으로 먹곤 하던 것들이다. 냉장고도 시꺼먼 형체만 남아 있었다. 이웃이 매실 원액이나 간장이 필요하다고 하면 ‘냉장고에서 꺼내 갖다줄 테니 잠깐만 기다리라’고 했다. 그래서 지인들은 숙란씨에게 ‘우리 마을 제일가는 부자’라고 말하곤 했다. 두 딸과 막내아들이 사준 선물도, 아껴 쓰던 화장품도, 특별한 날이면 꺼내 입던 고운 옷도 어느 것 하나 남지 않은 걸 보고 이재민이 되었음을 실감했다. 마당에 심은 보라색 붓꽃만 덩그러니 살아남아 있었다.

3월4일 오전 11시17분, 경북 울진 북면 두천리에서 산불이 시작됐다. 12㎞ 떨어진 북면 고목리에 살던 숙란씨는 그 시각 집에 있었다. 정오 무렵, 탄내가 진동한다 싶더니 짙은 연기가 집 주변을 에워쌌다. 마을 방송은 없었다. 저 멀리 한울원자력본부에서 나오는 다급한 안내방송이 들릴 뿐이었다. “앞마당 바닥이 안 보일 정도로 연기가 자욱했어요. 그래도 우리 집이 불탈 거라곤 생각도 못했지. 근데 옆집 언니네가 짐도 다 싸고 대피했다가 나를 데리러 다시 돌아온 거예요. 연고도 없고 자식들도 타지에 사는데 나 혼자 어쩌겠냐고. 끌고 가다시피 해서 나를 자기네 친척 집에 데려다줬어요.”

숙란씨는 불길이 지나간 3월5일, 마을로 돌아갔다. 그날부터 임시주택에 입주한 3월31일까지, 숙란씨는 이재민 대피소였던 체육관이나 덕구온천호텔에 가지 않고 꼬박 27일간 마을을 지켰다. 그곳에서 거동이 불편한 마을 사람들을 위해 구호품으로 온 쌀과 반찬으로 식탁을 차렸다.

다 같은 밥을 먹고 둘러앉아 있을 때는 똑같은 이재민인 줄 알았다. 그런데 (컨테이너 형태의) 임시주택이 나오자 상황이 달라졌다. 세입자이던 숙란씨는 임시주택을 둘 땅이 없었다. 강원도 강릉에 사는 집주인에게는 전화 한번 오지 않았다. 연락이 안 되니 원래 있던 집터에 임시주택을 세울 수도 없었다. 자기 땅이 있는 사람들은 그곳에 임시주택을 세우면 됐지만 세입자인 숙란씨는 집주인의 허락 없인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숙란씨의 사정을 안 이웃들이 마을 입구 땅 주인을 설득해 그곳에 임시주택을 세울 터를 마련했다. 마을 깊숙한 곳에 살던 ‘자가(自家) 이재민’들도 그 터에 임시주택을 놓고 같이 살기로 했다. 도로변에 놓인 8평형 임시주택에서는 최장 2년 동안 살 수 있다. “자가인 사람들은 원래 살던 땅이 정리가 되면 새 집을 짓거나 임시주택을 옮겨놓을 수 있는데 나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요. 지원금으로 받은 건 성금 2500만원이 전부인데…. 집주인에게 땅을 사고 싶다고 이전부터 여러 번 얘길 했는데 안 팔더라고요. 지금도 제값을 쳐줄 테니 땅을 팔라고 연락을 해도 아무 답이 없어요.” 늦은 오후, 숙란씨는 임시주택 앞을 오가는 차들로 먼지가 앉은 빨래를 털었다. 멀리 보이는 나무들이 단풍이 든 것처럼 빨갛게 물들며 죽어가고 있었다.

울진군 북면 고목리에 마련된 임시주택에서 생활하는 김숙란씨가 빨래를 널고 있다. ⓒ시사IN 조남진

3월4일 시작된 울진 산불은 213시간(8일 21시간) 만인 3월13일에 주불이 진화됐다. 역대 최장 기록이었다. 피해 면적은 약 2만523㏊로 서울 면적의 약 3분의 1에 달했다. 울진에서만 총 331세대·468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이날 전찬걸 울진군수는 “한 명도 소외되는 이재민들이 없도록 피해 상황을 살펴 최대한 지원하겠다”라고 말했다.

울진국민체육센터로 대피한 세입자 정태광(59)·홍성희(53) 부부는 군수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여기 체육관을 찾아와서는, 세입자도 차별 없이 지원하겠다, 3인 가구면 임시주택 두 채를 주겠다고 약속했는데요. 아무것도 지켜진 게 없어요. 나라에서 말하는 ‘이재민’에 세입자들은 빠져 있었나 봐요.”

홍성희씨는 3월4일 정오 무렵, 외지에 사는 두 아들에게 보낼 밑반찬을 만들다 급히 피신했다. 반려견 가을이가 그날따라 몸을 둥글게 말고 무서운 듯 떨었다. “‘아줌마 빨리 귀중품 챙겨서 나가세요.’ 한울원자력본부를 왔다 갔다 하던 아저씨들이 밖에서 소리를 치더라고요. 마당에 나가 보니 하늘이 시꺼멓다가 퍼렇다가 시뻘겋게 막 변해요. 제가 ‘장롱면허’인데요. 가을이 방석이랑 남편 잠옷, 제가 쓰는 로션, 그런 잡동사니를 챙겨서는 정신없이 차를 몰아 논두렁길을 빠져나온 거예요.”

운전을 하는 동안 차 밖으로 불덩이가 우박처럼 떨어졌다. 마을 사람들이 모인 버스정류장에 차를 세우고 성희씨는 그제야 숨을 골랐다. 손에는 언제 다쳤는지 기억도 안 나는 상처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가을이를 안고 차 안에서 마냥 울었다. 기지국에도 불이 붙어 휴대전화가 먹통이었다. 남편 정태광씨를 만난 건 오후 5시가 넘은 저녁이었다. “그날 밤엔 울진 읍내에 있는 친정집에서 잤는데요. 거기 있으니 너무 눈물이 나서 안 되겠더라고요. 부모님도 계속 우시고. 그래서 다음 날 짐을 챙겨 체육센터로 갔어요.”

살지 않는 집주인에게 선지급

그렇게 단체생활이 시작됐다. 동네 이웃이던 또 다른 세입자 강현철(57)·전순덕(55) 부부와도 그곳에서 다시 만났다. 전순덕씨는 임시주택에서 지내는 지금도 몸에 불이 붙는 악몽을 자주 꾼다. 불이 난 이후에는 읍내 식당에서 하던 일도 그만뒀다. 일을 할 수 없을 만큼 불안했다. 강현철씨는 응어리가 진 것처럼 명치가 아파 수시로 병원을 다닌다. 8평짜리 집에 두 사람이 앉아 있으면 금방 숨이 막혔다. 도무지 견딜 수가 없어서 세입자들이 있는, 다른 임시주택을 이리저리 찾아다녔다.

4월12일 1차 성금이 지급됐다. 그날 덕구온천호텔은 고요했다. 처음으로 목돈이 지원된 날이었지만 얼마가 입금됐는지, 정확히 무슨 명분으로 들어온 돈인지 서로 말을 하지 않았다. 군청에서는 주민들을 상대로 단 한 번도 간담회를 열지 않았다. 이날 홍성희씨는 동네 언니가 입주할 임시주택을 치워주고 있었다. “이거 좀 봐봐라, 내 눈이 이상한갑다.” 은행 입금 알람을 확인한 언니가 휴대전화 화면을 성희씨에게 보여주며 계좌 잔액을 확인해보라고 했다. 구호단체 세 곳에서 5200만원이 들어와 있었다. 국민성금이었다. 30분이 지나자 성희씨에게도 입금 알람이 울렸다. 희망브릿지 전국재해구호협회 1500만원, 대한적십자사 350만원, 사회복지공동모금회 650만원. 모두 합쳐 2500만원이었다. 차이는 하나뿐이었다. 동네 언니는 ‘자가 이재민’이고 성희씨는 30년 된 ‘세입자 이재민’이었다. 실거주자가 아닌 성희씨네 집주인에게도 5200만원이 지급됐다. 국민성금은 ‘살 곳을 잃은 사람’이 아니라 ‘집을 잃은 사람’을 기준으로 차등 지급됐다.

대부분의 이재민이 임시주택에 흩어져 살고 있던 4월29일, 집을 가지고 있는 모든 이재민에게 주거지원금 3800만원이 추가로 입금됐다. 앞선 구호협회의 성금과 별도로 국·도·군비 예산으로 나오는, 세금으로 마련된 지원금이었다. 그러나 세입자 이재민들에게는 한 푼도 입금되지 않았다. 세입자들은 새로 이사할 집의 임대차계약서가 있어야 최대 900만원의 주거지원금을 받을 수 있었다. 이번에도 3800만원은 실거주자가 아닌 ‘임대인 집주인’에게 지원됐다. 그렇다고 이들에게 세입자들이 다시 살아갈 집을 복구시켜줄 책임이 부과된 것도 아니었다.

‘자가 이재민’ 중심으로 이루어진 ‘울진 산불피해 이재민대책위원회’ 장도영 위원장 역시 이런 주거지원금 지급 방식에 문제를 제기했다. 장 위원장은 특히 ‘순서가 틀렸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이곳에 살지 않는 집주인들(임대인)에게도 주거지원금이 선지급돼버렸어요. 이분들이 살 곳이 없어졌나요? 그렇지 않거든요. 이런 경우엔 ‘자가 이재민’과 달리 ‘세입자들’에게 살 곳을 마련해주면 주거지원금을 지급하겠다 하는 기준이 있어야 했다고 봐요. 실제로 삶의 기반을 잃은 건 세입자들이잖아요. 그런데 이런 관계를 하나도 안 살피고 지원금을 무작정 다 줘버렸어요. 그런 식이니 이제 와서 누가 세입자를 위해 집을 지어주겠어요?”

산불로 마을이 불타버린 울진군 북면 화성2리 마을 입구에 14가구의 임시주택이 지어졌다. ⓒ시사IN 조남진

자연재난과 사회재난(산불)이 벌어졌을 때 이재민이 국가로부터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규모의 지원금은 ‘주거비’다. 주택이 전파(전부 파손)되어 거주가 불가능한 경우 자가 소유자가 받을 수 있는 지원금은 1600만원이다. 이번 울진 산불피해의 경우 특별보조금이 추가돼 약 2.3배 증액된 3800만원이 지급됐다. 주택이 반파(절반 파손)되어 거주가 불가능해진 자가 소유자도 규정에 적힌 800만원에서 2.3배 증액된 1900만원을 받았다. 모두 물가상승 등을 고려한 추가 지원이었다.

세입자의 경우는 어떨까? 우선 증액 비율이 다르다. 기존 600만원에서 900만원으로 1.5배 늘었다. 비율만 다른 것이 아니라 지급 조건도 달랐다. 자가 소유자는 임시주택에서 계속 살거나 새집을 짓든 짓지 않든 아무런 조건 없이 지원금을 일괄 지급받은 반면, 세입자는 ‘조건부’ 수령이었다. 울진군청 기획예산실의 업무 담당 공무원에 따르면 “돈만 받고 집을 구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세입자는 새집의 임대차계약서를 제시해야만 지원금을 받을 수 있었다.

게다가 세입자의 주거지원금 최대 수령액은 900만원으로 산정되어 있다. 이는 이사할 주택의 입주 보증금과 6개월간의 월세 임대료를 비교해 더 높은 금액을 900만원 이하로 지원한다는 뜻이다. 홍성희씨의 집을 예로 들어보자. 성희씨네 집은 한울원자력본부에서 차로 10분 거리인 나곡리에 위치해 있어 상당히 높은 월세를 냈다. 보증금 300만원에 월세 30만원(6개월×30만원=180만원)이었다. 만약 같은 가격의 집을 새로 계약한다면 성희씨는 보증금과 6개월 임차료 중 더 큰 금액인 300만원만 지원받게 된다. 물론 실제 임대차계약을 할 때는 보증금과 임차료 둘 다 모두 필요하다.

이렇게 주거지원금을 차등해 지급하는 법적 근거는 ‘사회재난 구호 및 복구 비용 부담기준 등에 관한 규정(대통령령)’이다. 해당 규정 제3조 ‘구호 및 복구사업 비용의 부담 등 조항’에는 1)주택이 파손되거나 유실된 사람 2)사회재난으로 피해가 예상되어 주거하던 곳에서 주거가 불가능하게 된 사람 3)재난 수습을 위하여 주된 거주지에서 이주하게 된 사람에게 주거비 지원이 가능하다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진짜 ‘거주가 불가능하게 된 사람’이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남는다. 재난 지역에 거주하지 않는 집 소유주인가, 그 집에 살고 있던 세입자인가.

이번 울진 산불 이재민 331가구 중 세입자는 46가구다. 최소 10년에서 최대 50년 동안 세입자로 살아온 이들이다. 빈집이 많은 시골에서 세를 들어 살게 된 데는 지역사회의 특성이 반영되어 있다.

전이수씨(90)는 50년을 사는 동안 ‘임차인’이라는 개념도 없이 지금까지 지냈다고 말했다. “아는 형님 집이었는데 어차피 본인이 살진 않는다고 해서 내가 들어와 살게 됐지. 집이 워낙 오래됐으니까 지붕 함석이 낡아서 만날 비가 새. 수리를 해야 한다고 했는데 집주인은 들은 체를 안 하더라고. 그러니 별수 있나. 400만원 빚을 내서 함석도 새로 하고 살림을 채우며 살았지. 소도 키우고 밭일도 하고 과일나무도 심으면서. 근데 계속 살려니까 손댈 게 너무 많아서 몇천만 원 빚을 더 내고 창문하고 문도 고치고 여기저기 수리하면서 산 거야. 우리 시골 사람들은 다 그래. 사실 집값은 헐값이야. 근데 농기구며 장비며 살림살이도 많은데 새로 이사 가려고 하니 보통 힘이 드나? 그래서 그렇게 계속 살았지. 이런 날벼락이 올 줄 누가 알았나.”

세입자 개념 도시와 전혀 달라

울진사회정책연구소 김신애 소장은 시골의 ‘세입자’ 개념은 도시와 매우 다르다고 말한다. “지역의 농가주택은 대개 부모님이 남긴 전답이나 토지, 집을 물려받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자기가 살지도 않고, 값이 나가는 건 아니지만 ‘우리 가족 땅’이라는 정서가 있어서 외지인에게 팔지 않는 집들이 많죠. 대신 장기 임대를 내주거나 아주 저렴하게 월세를 받거나, 문중 땅을 관리해주는 대신 임대료를 안 받기도 합니다. 그러니 집값과 살림살이의 값을 비교해보면 후자가 훨씬 더 높은 거죠. 재난으로부터 삶을 복원시킬 때 단순히 ‘주택’을 누가 가지고 있느냐는 것만을 기준으로 삼을 수 없는 곳이 시골입니다.”

30년간 울진에서 세입자로 살아온 정태광·홍성희씨 부부. ⓒ시사IN 조남진

국민 성금액이 세입자와 자가 소유자 간에 2배 이상 차등 지급된 까닭도 ‘주택’ 가치를 평가하는 정부 기준 때문이다. 희망브릿지 전국재해구호협회 담당자는 〈시사IN〉에 “협회는 산불 발생 초기부터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한적십자사, 행정안전부 및 울진군과 함께 기부금 협의체를 구성해 1차 지원 금액을 결정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세입자의 경우 추후 주택을 소유한 임대인으로부터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기 때문에 자가 보유자와 다른 기준으로 위로금이 산정되었다”라고 말했다. 많은 세입자들이 소액의 ‘보증금’ 혹은 ‘월세’를 지급하고 집주인과 구두로 집을 계약하는 지역의 특수성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셈이다.

울진군은 ‘사정은 딱하지만 관련 법이 그러하니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세입자 이재민과의 면담 자리에서 전찬걸 울진군수는 ‘이곳은 법을 집행하는 곳이지 법을 만드는 곳이 아니다.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에게 따지라’고 말했다고, 주민들은 전했다. 세입자 이재민 전종률씨(48)는 ‘법대로 지급하는 것’이라는 주장에 질문을 던졌다. “지자체에서도 현실을 반영해 융통성 있게 행정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건물에 대한 소유권 말고도 실제로 그 지역에서 살아온 주민들의 삶을 소중하게 다루어주는 보상체계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울진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언젠가 재난이 발생할 때, 그곳에 사는 세입자들을 위해서라도 앞으로 고민을 해달라는 겁니다.”

기자명 울진/글 김다은 기자·사진 조남진 기자 다른기사 보기 midnightblu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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