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10일 이수만 전 SM 총괄프로듀서(사진)가 자신의 SM 주식을 하이브에 매각했다.SM 경영진은 하이브의 경영권 확보 시도를 적대적 M&A로 규정했다.ⓒ연합뉴스

“나무 한 그루가 시작이 될 것입니다.” 2023년 새해 첫날, 이수만 당시 SM엔터테인먼트(SM) 총괄프로듀서가 나무심기 운동을 제안했다. SM 소속 가수들이 등장하는 유튜브 라이브 콘서트를 앞두고 열린 ‘SM 서스테이너빌리티 포럼’에서였다. 기후위기 이슈에서 케이팝과 한류의 역할을 강조하는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행보가 눈길을 끌었다. 이수만 총괄프로듀서는 ‘나와 SM’도 지구를 살리는 지속가능성을 실현하는 데 동참하겠다며 올해 몽골에 ‘나무를 심고 지구를 살리는’ 음악 페스티벌을 열자고 제안했다.

불과 한 달 뒤 ‘나무심기’는 이수만의 전횡을 고발하는 상징적 단어가 되었다. 일부 케이팝 팬들은 SM의 지속가능성을 먼저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이수만이 말하던 ‘나와 SM’도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2월7일 카카오가 SM의 지분 9.05%를 확보한 데 이어 2월10일 하이브가 SM 창업자이자 1대 주주인 이수만 전 총괄프로듀서의 주식 14.8%를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고 2월22일 공식적으로 1대 주주가 됐다. ‘이수만 전 SM 총괄프로듀서와 하이브 vs 현 경영진과 카카오’로 요약되는 ‘SM 인수전’은 여론을 의식한 폭로전으로 비화되었다. SM 이성수 대표는 이수만이 SM 소속 가수들의 노랫말에 나무 심기를 투영하도록 강조한 배경으로 사적 이해관계(부동산 사업)가 있다고 주장했다. 해외 법인을 통한 역외 탈세 의혹도 제기했다.

이수만 전 SM 총괄프로듀서가 새해 첫날 강조한 내용은 또 있다. 그는 SM 초창기를 돌아보며 말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H.O.T.를 데뷔시키며 이런 신념을 말했다. 혼자 꿈을 꾸면 꿈에 불과하지만 다 같이 꿈을 꾸면 새로운 미래의 시작이다.” 또 이렇게 덧붙였다. “이때 꿈을 꾸었던 미래는 거의 달성했다. 프로듀싱 하는 문화를 통해 전 세계에 한국어도 알리고 경제도 살리고, 우리의 삶이 문화로 인해 풍요로워지는 데 기여했다.”

자찬이지만 과장은 아니다. 이수만에 대한 평가와 별개로 그와 SM은 케이팝의 시작이자, 상징이었다. 2월10일 이수만과 방시혁 명의로 작성된 ‘이수만과 하이브, SM엔터테인먼트 미래를 위한 공동 성명서’도 그 대목을 강조한다. “SM엔터는 변화가 심한 음악시장에서 한국 음악산업을 지속 성장이 가능한 산업군으로 진화시킨 입지전적인 기업”이고 “SM엔터가 이룩한 모든 업적의 중심에는 이수만 전 총괄프로듀서가 존재했다”라는 구절이 그렇다. “현재 케이팝에 종사하는 모든 이들이 이수만 전 총괄프로듀서의 영향을 받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작 이수만의 이니셜을 딴 사명으로 알려진 SM의 구성원들은 분노했다. 현 경영진이 하이브의 경영권 확보 시도를 적대적 M&A로 규정한 데 이어 2월17일 SM 평직원 208명으로 구성된 ‘SM 평직원 협의체’는 성명문을 통해 ‘SM 구성원들은 이수만 전 총괄프로듀서의 사익 편취와 탈세 등의 불법행위에 철저히 이용되어왔다’라고 밝혔다. “이수만은 SM과 Pink Blood(SM 팬덤을 의미하는 말)를 버리고 도망쳤지만, 우리는 서울숲에 남아 SM과 Pink Blood를 지킬 것이다.”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하이브 사옥. ⓒ김흥구

케이팝 원조가 신흥 세력에 흡수되면

이들에게 이수만은 하루아침에 ‘선생님’에서 ‘도망자’가 되었다. 하이브 역시 이수만의 SM 경영 참여는 없을 예정이라고 선을 그었다. 경영권 다툼의 향방이 어떻든 이수만의 퇴장은 불가피해 보인다. ‘케이팝의 아버지’로 불리던 이수만의 퇴장을 바라보는 업계의 시각은 복잡하다. 김윤하 음악평론가는 이번 사태를 보며 ‘케이팝 원조’의 힘을 실감했다. “SM의 상징성이 대단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케이팝의 시초와 같은 SM이 하이브라는 신흥 세력에 매각될 수도 있다는 현실이 주는 임팩트가 크다. 카카오나 CJ가 SM에 관심을 보인다는 소식이 알려졌을 때에는 이 정도 분위기는 아니었는데 (동종 업계 1위인) 하이브가 등판하자 논의가 뜨거워졌다. 케이팝 팬들 사이에서는 오랫동안 3대 기획사(SM, JYP, YG) 중심으로 판이 짜이다가 하이브가 우세를 점하면서 이제 정말 한 시대가 저문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이번 일로 정점을 찍은 것 같다.”

김 평론가는 최근 케이팝을 세대, 아티스트, 팬덤, 미디어의 관점에서 분석한 8부작 다큐멘터리 〈케이팝 제너레이션〉(티빙) 작업에도 참여했다. SM에서도 강타, 슈퍼주니어, 샤이니, 엑소 등이 출연한다. 출연자를 비롯해 SM에 할애하는 분량이 적지 않다. “케이팝 역사만을 다루는 기획은 아니지만 전반적인 흐름을 설명하려면 어쨌든 시작부터 출발하게 되는데 그러다 보면 SM에 닿을 수밖에 없다.”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업계 사람들은 ‘○○을 처음 만든 게 SM’이라고 증언한다.

널리 알려졌듯이 이수만은 국내 첫 아이돌로 꼽히는 H.O.T.를 기획했다. 1952년생으로 70대에 접어든 그는 1975년 가요계에 데뷔해 가수와 MC로 활발하게 활동하다가 군사정권 시절 미국 유학을 갔다. 미국에서 MTV를 접하며 ‘듣는 음악’에서 비주얼 중심, 즉 ‘보는 음악’으로의 패러다임 변화를 목격했다. 미국 음반 산업의 분업화·전문화에도 영감을 받은 그는 귀국한 뒤 1995년 2월 자본금 5000만원으로 SM기획을 설립했다.

현진영 매니지먼트를 통해 짧은 성공과 좌절을 경험한 이수만은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 1990년대 대중문화의 주 소비자가 10대 청소년이라는 점에 착안해 이들을 타깃으로 H.O.T.를 데뷔시킨다. S.E.S.(1997), 신화(1998)를 연달아 성공시킨 데 이어 1998년 중국 시장 진출에 나서며 한류 열풍을 일으켰다. 연습생 제도, 외국 출신 멤버 영입, 각종 굿즈 등 지금도 케이팝의 기본으로 여겨지는 기틀을 마련했다. 기획사와 협력하는 동시에 긴장 관계인 팬덤 문화도 자리를 잡아갔다. 2000년, SM은 재수 끝에 코스닥에 상장된다.

2003년은 보아가 데뷔 3년 만에 일본 오리콘 앨범 차트에 오른 해이자 동방신기가 데뷔한 해이기도 하다. 일본의 아이돌 시스템을 들여와 변형한 뒤 이를 다시 수출해 성공을 거둔 셈이다. 이후 매년 멤버가 업데이트되는 콘셉트의 프로젝트 그룹 슈퍼주니어(2005)가 데뷔했고 SM을 대표하는 소녀시대(2007), 샤이니(2008), 에프엑스(2009), 엑소(2012), 레드벨벳(2014) 등이 SM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이 시기 아이돌의 세대 구분, 그 시작점에 SM이 있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한다. 랜디 서 음악평론가는 “보통 케이팝 아이돌의 세대를 나눌 때, 1세대의 시작을 H.O.T., 2세대 시작을 동방신기, 3세대 시작을 엑소로 본다. 여태까지는 세대를 가를 정도로 새롭고 성공적인 아이돌은 전부 SM에서 나왔다는 의미다”라고 말했다. 그만큼 SM 아이돌은 여러 그룹 중에서도 선두에 서 있었다. 인기만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미묘 음악평론가는 “SM이 가진 가장 큰 힘은 시장의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남들이 따라오게 만드는 데 있었다”라고 말했다.

케이팝 저널리스트 태양비는 저서 〈케이팝의 시간〉에서 케이팝 역사를 사조로 나눈다. 첫 번째가 초창기의 아이돌로 대표되는 시스템주의, 두 번째는 빅뱅 등으로 대표되는 뮤지션주의, 세 번째는 방탄소년단(BTS)으로 대표되는 커뮤니티주의다. 시스템주의 아래 아이돌은 기획사의 ‘기획 상품’ 느낌이 강했다. 2000년대 중반 들어 그 한계를 넘어서는 그룹이 나타났다. YG의 빅뱅을 중심으로 ‘셀프 프로듀싱’이 필수 요소로 자리 잡던 시기, 여전히 시스템주의를 고집한 곳이 SM이었다고 태양비는 설명한다. “최고의 기획자가 기획하고 최고의 작곡가가 곡을 쓰고 최고의 작사가가 가사를 쓰고 최고의 영상 제작자가 영상을 만들고 최고의 퍼포머가 무대에 서자는 것이다. 그러자면 이를 뒷받침할 수 있도록 시스템 전체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성장해야 했다. 세계 최고의 하이엔드 음악을 지속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SM 인사 두 사람이 있다. 현 SM의 대표이사 이성수와 비주얼 디렉터 민희진이다. 이성수 대표는 SM의 A&R을 이끌었다. A&R(artists and repertoire)은 ‘음악을 기획하고 작곡가·작사가·연주자 등을 조합해 음악 만드는 업무를 담당’하는 자리다. SM은 매년 전 세계 작곡가들을 한자리에 모아 작업물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는 송캠프를 열기도 했다. 해외 작곡가의 곡을 타이틀로 가져오는 일이 드물 때 과감하게 시도했고, 히치하이커를 영입해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실험하기도 했다. ‘평론가들이 좋아하는 레이블’이라는 수식어는 이런 배경에 기대고 있다. 걸그룹 뉴진스를 탄생시킨 어도어의 대표 민희진 역시 SM의 비주얼 디렉터로 있는 동안 소녀시대, 샤이니, 에프엑스, 엑소, 레드벨벳의 비주얼과 콘셉트를 책임지며 새로운 케이팝의 정체성을 만드는 데 영향을 미쳤다.

SM 걸그룹 에스파는 메타버스의 개념을 세계관에 녹여냈다. SM은 에스파를 통해 ‘광야’라는 가상 국가를 소개했다. ⓒ연합뉴스

BTS에 밀려 ‘팔로어 포지션’으로

케이팝 기획사 중 가장 시스템을 갖추었다고 여겨지던 SM이 그 어느 곳보다 이수만 1인에 기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점은 아이러니다. 2010년 이수만이 SM 최고경영자 자리에서 내려온 이후로도 프로듀서로서의 영향력이 공고했다. 랜디 서 평론가는 “이수만 전 총괄프로듀서에게 최종 권한이 있었다고는 알려져 있지만 실은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그의 공인지, 불분명하다”라고 말했다. 요즘 케이팝 업계는 대부분 협업으로 프로젝트가 돌아가는데, 과거에는 대표가 아닌 실무자들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SM도 오랜 시간 이수만의 카리스마에, 혹은 그의 이름값에 기대왔던 것처럼 보인다.” 2000년대 초, 횡령 및 탈세로 문제를 일으키고 ‘노예계약’ 논란이 있었지만 그의 입지는 굳건했다.

SM 직원들과 팬덤은 케이팝의 역사를 만들어온 자부심을 공유하고 있다. SM 팬덤을 두고 슴덕(SM+덕후), ‘핑크 블러드(SM 로고 색인 핑크색 피가 흐른다는 의미에서)’라 부르기도 한다. 개별 아이돌의 팬이라기보다 SM 소속 아티스트의 팬을 자처하기도 한다. 이러한 팬덤이 SM의 힘이기도 하지만 자부심이 지나쳐 팬덤 내 갈등 요소가 되기도 했다. 2013년, 그룹 인피니트와 러블리즈가 소속된 울림엔터테인먼트가 SM의 자회사인 SM C&C에 인수됐을 때 SM 팬들이 울림 그룹을 ‘서자돌’이라고 부른 게 대표적이다. 하이브에 인수될 가능성이 높은 지금 그 말이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 이번 일을 한일합병에 빗대며 굴욕적이라고 반응하는 팬들도 있다.

SM의 자부심은 3세대 아이돌 엑소로 정점을 찍었다가, 2013년 데뷔한 방탄소년단의 등장으로 주춤한 모양새다. 당시 중소 기획사였던 빅히트엔터테인먼트는 훗날 하이브라는 업계 톱이 된다. 랜디 서 평론가는 “사람들이 보통 방탄소년단의 언더독 서사(경쟁에서 열세에 있는 약자를 더 응원하고 지지하는 심리 현상)를 좋아한다고 하는데, 언더독 앞에는 장벽이 되는 톱독이 있기 마련이다. 일반적으로는 3대 기획사(SM, JYP, YG)가 그 대상이었다고는 하지만, 당시 가장 잘나가던 남자 아이돌은 SM의 엑소였기에 ‘방탄소년단이 엑소를 꺾었다’는 의미가 컸다”라고 말했다. 이후 SM은 샤이니의 태민, 엑소의 카이, NCT의 태용이나 마크 등 인기 멤버를 모아 슈퍼엠이라는 ‘유닛’을 만들었다. ‘케이팝 어벤저스’라 불렸지만 기대만큼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랜디 서 평론가는 “한국은 물론 해외의 케이팝 팬들에게도 ‘BTS 게 섰거라’라는 느낌을 주는 팀이다. 유닛이 등장함으로써 SM이 드디어 ‘팔로어 포지션’이 되었다는 것을 인정한 그림이 되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2020년에는 걸그룹 에스파가 데뷔한다. 메타버스의 개념을 세계관에 녹여낸 아이돌이었다. SMCU(SM Culture Universe, 에스파를 시작으로 SM의 모든 아티스트들을 연결해서 하나의 세계관으로 확장하는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광야(SM의 가상 국가)라는 개념이 소개되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에스파야말로 이수만이 아니고서는 등장하기 어려운 기획이라고 입을 모은다. 미묘 평론가는 “어떤 사람이 고집을 부려 밀어붙인 결과가 아니면 이런 세계관의 아이돌이 나오기는 어렵다. 다른 누구도 할 수 없는 시도를 설득력 있게 보여주었다는 면에서 시장을 선도하는 힘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라고 말했다. 에스파의 두 번째 미니앨범 ‘걸스(Girls)’의 선주문량만 100만 장을 돌파하기도 했다.

상업적 성과와 별개로 다소 난해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도헌 음악평론가는 “NCT나 에스파 모두 상업적으로 좋은 성과를 거둔 것은 맞지만 위상이나 결과물에 의문을 품는 분위기가 있었던 것 같다. 에스파의 세계관은 어떻게 보면 난해하다. 앨범에서 이야기하는 사상이나 메시지, 기술적인 지점이 현재 그들이 보여주는 음악과 일치하지 못한 인상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낯설고 과감한 시도가 새로운 조류를 이끌어내던 과거와는 사뭇 달라진 풍경이었다.

현재 케이팝을 선도하는 또 다른 걸그룹은 스타쉽의 아이브, 하이브 자회사인 어도어의 뉴진스, 역시 하이브 자회사인 쏘스뮤직의 르세라핌이다. 특히 뉴진스는 S.E.S.가 등장했을 때처럼 패러다임을 바꿨다는 평가를 들으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옛날로 치면 SM 아이돌이 받던 평가다(랜디 서).” 여기에 지난 1월 보아를 비롯해 태연, 효연, 슬기 등 SM 걸그룹 출신으로 구성된 유닛 갓더비트가 미니앨범 ‘스탬프 온 잇’을 발표했지만 기대만큼 좋은 반응을 얻지는 못했다. 특히 ‘SM의 음악 세계를 대표하는 SMP(SM Music Performance, 역동적인 퍼포먼스와 사회 비판적인 내용의 노랫말 등 SM 특유의 스타일을 일컫는 말)’를 이끌어온 유영진 이사가 참여한 기획이었다는 점에서 상징적이다. “갓더비트의 실패는 이수만 중심 프로듀싱의 한계를 증명하는 결정타로 작용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김도헌).”

SM이 케이팝을 선도하는 자리에서 조금씩 멀어지는 와중에 경영 문제도 점차 불안 요소로 부각되었다. 상장회사이면서 리조트, 요식업 등 이수만 총괄프로듀서 개인의 취향으로 의심되는 사업 분야를 문어발식으로 확장하는 데 대한 비판적인 시선이 있었다. 2019년에는 SM의 3대 주주인 KB자산운용이 라이크기획과 SM의 합병을 주장하는 주주 서한을 발표했다.

서울 성동구 SM엔터테인먼트 본사 전광판에 소속 가수들 광고가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2대 주주로 떠오른 카카오

이수만이 본인 지분 100%인 라이크기획을 통해 아티스트 프로듀싱 명목으로 SM 매출의 6%를 가져가는 부분이 문제가 되었다. 회사에 대한 애정인지, 개인 호주머니에 대한 집착인지 헷갈리는 상황이 지속됐고 문제의식을 가진 얼라인 인베스트먼트라는 행동주의 펀드의 개입으로 카카오가 SM에서 발행한 신주와 전환사채를 사들이면서 2대 주주로 떠올랐다.

이번 사태의 조짐은 2월3일 SM이 발표한 ‘SM 3.0’에서도 드러났다. 김도헌 음악평론가는 이날의 발표를 ‘멀티 제작센터, 멀티 레이블, 음악 퍼블리싱 전문 자회사 확립’으로 요약한다. 이수만 중심의 의사결정 구조를 탈피하려는 목적이었다는 해석이다. “음반 퍼블리싱 회사를 100% SM 자본으로 만들겠다는 건 이수만 총괄프로듀서와의 결별을 선언한다는 의미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수만 총괄프로듀서가 멀티 레이블 체제에 들어가 하나의 파트를 맡는 그런 그림을 상상했다.” 하지만 며칠 뒤 이수만은 하이브와 손을 잡으며 다른 선택을 했다. 모두가 예상치 못한 결말이었다.

케이팝이라는 지식재산권(IP)이 중요해진 시대, SM의 향방은 케이팝 역사, 혹은 글로벌 콘텐츠 시장의 새로운 변곡점이 될 수도 있다. 남은 변수들이 있다. 이수만이 SM을 상대로 낸 신주·전환사채 발행금지 가처분 신청에 대한 법원의 결정이 곧 나온다. 3월 주주총회 역시 모두 주목하고 있다.

그와 별개로 이수만 없는 SM의 미래는 어떠할까. 미묘 평론가는 SM이 곧 이수만이었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상대적으로 덜 민주적인 의사결정 구조와 어떤 비전을 가진 사람의 조합에 의해서 SM이 굴러갔고 그것이 케이팝 산업을 선도하고 바꾸는 결과를 낳았다. 그 시대에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비전들을 내놓았는데 앞으로도 누구의 독재 없이 그런 행보가 가능할 것인가 하는 질문이 남는다.” 기대감도 있다. 김도헌 평론가는 “SM이 실적에 비해 비정상적 경영 구조 때문에 손해를 보는 부분이 많았는데 이번 계기로 경영이 개선된다면 좀 더 치고 올라갈 여건이 마련되지 않을까 싶다”라고 말했다. ‘SM타운’이라는 가상 국가를 건설하고 팬들에게 여권까지 발급했던 이수만의 ‘망명’을 지켜보는 케이팝 팬들은 한 시대가 저물었다는 사실을 잔혹하게 실감하고 있다.

기자명 임지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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