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3일 제64회 그래미 어워드 무대에 선 방탄소년단.ⓒAP Photo

‘케이팝 업계 관계자들이 주의해야 할 영어단어 목록’ 같은 게 만들어진다면 아마도 ‘hiatus(중단)’가 먼저 추가되지 않을까. 6월14일 방탄소년단(BTS)의 단체 활동 중단 소식이 알려지면서 전 세계 팬들을 충격에 빠트렸기 때문이다. 이날 공식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찐 방탄회식’ 영상에서 멤버들은 “가사를 억지로 쥐어짜내고 있다(슈가)” “기조의 변화가 확실히 필요한 시점(제이홉)”이라며 개인 활동에 전념할 뜻을 내비쳤다. 데뷔 9주년을 기념하며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는 자리였다. 이 맥락이 활동 중단을 뜻하는 hiatus로 번역되면서 혼란이 시작된다.

북미에 거주하는 랜디 서 음악평론가는 초기에 국내보다 해외에서 ‘격렬한 반응’이 있었다고 짚는다. “팝의 역사에서 그룹들이 hiatus를 발표한 뒤 다시는 재결합하지 않는 경우가 훨씬 많았기 때문에 실제 표면상 의미보다 ‘불길한’ 뉘앙스로 해석된다.” 실제로 영국 일간지 〈더 타임스〉는 6월16일 3쪽 지면을 할애해 ‘세계 최대 보이밴드는 왜 갈라졌나’를 분석했다. 그중에는 ‘우리를 울게 만들었던 팝 가수들의 해체’란 기사도 있다. 비틀스, 더 스미스, 오아시스 등 돌연 해체를 선언한 밴드들이 거론된다. 〈가디언〉은 6월18일 ‘모두 진정하세요: 케이팝 슈퍼팬에 따르면 BTS의 활동 중단 선언은 큰일이 아닙니다’라는 기사를 냈다. 그러나 하이브 주가는 하루 만에 25% 가까이 폭락해 시가총액 약 2조원이 증발했다. 해당 영상 자막은 ‘temporary break(임시 휴식)’로 바뀌었다.

“각오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역시나 참 씁쓸하다.” 리더 RM은 팬 커뮤니티 ‘위버스’에 해체나 활동 중단이 아니라고 수습에 나섰다. 그러나 단순히 번역 오해로 불거진 해프닝으로 볼 수만은 없다. 당분간 BTS 전체를 무대에서 보기가 어려워진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소속사 하이브는 6월15일 “BTS는 팀 활동과 개별 활동을 병행하는 새로운 챕터를 시작한다”라고 밝혔다. 지난 9년간 그룹 활동이 ‘챕터 1’이었다면 ‘챕터 2’의 초점은 솔로 활동이다.

갑작스러운 그룹 활동 중단 소식에 분석이 쏟아졌다. 외신들은 가장 먼저 ‘한국의 병역제도’를 지목한다. 영상에서 직접 언급하진 않지만 BTS 멤버들은 군 입대를 순차적으로 앞두고 있다. 그중 1992년생인 맏형 진이 올해 말까지 군에 입대해야 하기 때문에 팬들 사이에선 ‘완전체’ 활동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관측이 짙어지고 있었다. 거기에다 6월10일 발매된 〈프루프(Proof)〉는 BTS 데뷔 9년간 활동을 집대성한 곡들로 채워진 앤솔로지(모음집) 형태였다. 눈치 빠른 팬들은 ‘거취의 변화가 있을 수도 있겠다’고 예감했다.

그럼에도 BTS의 솔로 활동 소식이 전 세계 팬들에게 ‘충격 선언’으로 다가왔다. 왜 그럴까. 음악평론가들이 보기에도 BTS가 고수한 단체 활동 기조는 “유별난” 것이었다. 랜디 서 평론가는 BTS가 인기를 얻기 시작한 시기가, 무조건적인 그룹 팬보다는 개별 멤버를 응원하는 정서가 퍼지던 때와 맞물린다는 점에 주목한다. “엠넷의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이 개인 팬덤을 형성하며 큰 인기를 끌 때도 BTS는 솔로곡을 그룹의 앨범에 수록하거나, 그룹 콘서트의 일부로 솔로 무대를 하는 식으로 개별 활동을 그룹 활동 속에 녹여내는 방식을 택했다. 멤버 본인들이 나서서 그룹으로서 BTS를 사랑해달라는 말을 자주 하기도 했다.”

아이돌 산업에는 ‘7년 고비’라는 말이 있다. 소속사 계약이 종료되는 7년 차에 사실상 해체되는 그룹이 많아서다. 아이돌의 짧은 생명을 드러낸다. 이처럼 전 세계적으로도 인기 많은 그룹이 10년간 멤버 이탈 없이 지속되는 경우는 드물다. 긴 시간 동안 ‘따로 또 같이’ 모드에 돌입하지 않은 경우는 더 드물다. 이런 상황에서 BTS의 성공은 매우 이례적 현상이었다.

아이돌 ‘병역 리스크’만으로 설명 어려워

팬들은 군 입대보다 그룹 활동에 쉼표가 찍히는 것에 더욱 아쉬움을 표했다. ‘아미(ARMY)’로 활동 중인 한 팬은 “다른 그룹은 멤버가 군 입대를 하더라도 남은 멤버들끼리 앨범을 내는데 BTS는 단체 앨범을 내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보였다”라고 말했다. 하이브 측은 자체 제작 예능인 ‘달려라 방탄’ 촬영을 비주기적으로 계속할 계획이라고 발표했지만, 음반 활동이 없는 이상 그룹 활동 중단으로 봐야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그래서 단순히 아이돌의 ‘병역 리스크’만으로 BTS의 결정을 설명하기 어렵다. BTS 멤버들이 전례 없이 솔직한 고민들을 털어놓았기 때문이다. 김윤하 대중음악 평론가에게는 “케이팝 아이돌 시스템 자체가 사람을 숙성하게 놔두지 않는다”는 리더 RM의 메시지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들은 가장 화려한 아이돌이지만 동시에 싱어송라이터이기도 하다. 더 이상 주체적인 메시지를 만들어낼 수 없을 때 맞닥뜨린 허탈감이 꽤 컸을 것 같다. 그 진솔한 고민을 자연스럽게 드러냈다.”

원래 멤버들의 계획대로라면 2020년 초 발표된 네 번째 정규 음반 〈맵 오브 더 솔(MAP OF THE SOUL): 7〉을 끝으로 시즌 1을 마무리하고자 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코로나19 팬데믹이 발생하면서 대규모 월드 투어가 취소되고 솔로 활동도 덩달아 유예되었다. 메가 히트곡인 ‘다이너마이트(Dynamite)’를 그 시기에 만났다. 한국 가수 최초로 빌보드 싱글 차트 ‘핫 100’ 1위를 차지한 영어 싱글이다. 그러나 RM은 그 당시를 이렇게 회고한다. “다이너마이트까지는 우리 팀이 (내 손) 위에 있었던 느낌인데 그 뒤 버터, 퍼미션 투 댄스를 하며 우리가 어떤 팀인지 모르겠더라.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더라.” 다른 멤버들도 쉴 틈 없이 이어진 활동 속에 음악적 고민이 컸음을 털어놓았다.

6월14일 늦은 저녁, 방탄소년단의 공식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찐 방탄회식’ 영상.ⓒBANGTANTV 유튜브 갈무리

일부 팬들은 소속사의 행보에 누적된 불만도 터트렸다. 하이브는 2020년 주식시장에 상장된 후 사업 규모를 단시간에 확장해갔다. 이 과정에서 BTS를 앞세워 웹툰, 웹소설, NFT 등 수익사업을 추진하며 일부 팬들로부터 반발을 샀다. 또 다른 ‘아미’는 “군대 가기 전 마지막 단체 정규 앨범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올해 첫 활동이 굿즈 판매였다. 노래와 무대가 본업인 아티스트에게 기획사가 음악적인 투자를 하지 않고 이윤만 극대화한다는 인상을 계속 받았다”라며 팬덤 분위기를 전했다. 멤버 진이 제작에 참여한 잠옷이 10만원이 넘는 고가로 책정되거나, BTS를 주인공으로 한 웹툰이 무성의하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팬들도 이해하고 있다”

평론가들은 이런 상황에서 BTS가 팬들에게 ‘텅 빈 음악’을 선보이고 싶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지영 한국외대 세미오시스 연구센터 HK연구교수는 2018년 〈BTS 예술혁명〉을 썼다. 흔히 BTS의 정체성 중 하나로 ‘멤버 자신의 이야기’를 꼽는다. 이 교수는 데뷔 초창기 BTS의 가사가 사회비판적 성격에서 점차 인종·성별·국적에 관계없이 나를 사랑하고 폭력을 끝내자는 메시지로 ‘성장’했다고 본다. 실제로 〈화양연화〉 〈러브 유어셀프(LOVE YOURSELF)〉 〈맵 오브 더 솔〉 등 앨범을 거치면서 BTS의 메시지는 음악 이상의 가치로 확장되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달에는 미국 백악관에서 아시아계 증오범죄 근절을 이야기했다. “데뷔 초기에는 중소 기획사 출신, 힙합 아이돌로서 ‘증명’을 요구받는 위치였다가 이제는 주류가 되어 막강한 영향력을 가졌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포지션으로 음악을 해야 할지 깊은 고민과 혼란이 생겼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BTS마저 지치게 만든’ 케이팝 시스템에 대해 조명한다. 랜디 서 평론가는 “주체성 박탈에서 오는 방향성 상실과 번아웃 문제가 비단 케이팝 산업만의 문제는 아니다”라고 지적한다. 그 예로 최근 은퇴를 예고한 미국 가수 도자 캣을 들었다. 인디 래퍼로 활동하다가 스타덤에 오른 그는 유명해진 후 전과 달라진 일상에 대한 염증, 악플로 인한 피로감을 자주 언급했다. BTS와 컬래버레이션을 했던 가수 할시도 최근 틱톡을 통해 ‘레이블이 내 곡을 발표해주지 않으려 한다’ ‘발표 전에 틱톡 바이럴을 만들어오라는 무리한 요구를 한다’고 고발한 바 있다.

혼란 속에서 전 세계 ‘아미’들은 SNS를 통해 응원과 지지를 보낸다. 〈BTS와 아미 컬처〉를 쓴 문화연구자 이지행 박사는 지난 9년에 대한 성찰과 탐색이 팬들에게도 함께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봤다. “댓글을 보면 ‘행복해지는 것에 죄책감을 갖지 마라’ ‘네가 소진되는 걸 바라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아티스트의 오랜 활동을 위해서 성장할 시간과 여유가 주어져야 한다는 것을 팬들도 이해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최정상에 선 케이팝 아티스트의 휴식 선언은 많은 질문을 남겼다. 멤버 슈가는 2018년 한 인터뷰에서 “추락은 두려우나 착륙은 두렵지 않다”라고 말했다. 6월10일 발매된 신곡 ‘옛 투 컴(Yet To Come)’에는 멤버들의 심경이 좀 더 도드라진다. ‘다들 언제부턴가 말하네 우릴 최고라고. 온통 알 수 없는 names 이젠 무겁기만 해.’ BTS가 준비하는 것은 착륙일까, 또 다른 이륙일까. BTS의 시즌 2를 둘러싼 이야기가 ‘활동 중단’으로만 축약되기엔 복잡하고 심도 깊다.

기자명 김영화 기자 다른기사 보기 you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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