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 맨해튼에 있는 베드 배스 앤드 비욘드 매장. 이 회사는 전환사채를 발행한 이후 주가가 크게 출렁였다. ⓒREUTERS

베드 배스 앤드 비욘드(Bed Bath & Beyond: BBBY)는 침구류와 욕실용품 등 생활용품을 전시·판매하는 미국의 대표적 소매업체다. 이 회사가 파산 위기에 처했다. 지난 1월26일 제이피모건 체이스로부터 빌려온 돈에 대한 ‘채무불이행 경고(default notice)’를 받은 데 이어 2월 초엔 이자를 갚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고를 받은 날 주가는 2.52달러로 떨어졌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불과 10여 일 뒤인 2월6일 주가가 5.86달러로 두 배 넘게 치솟은 것이다.

주가가 오른 이유는 BBBY가 헤지펀드인 ‘허드슨 베이 캐피털’에 전환우선주(convertible preferred stocks)를 팔아 2.25억 달러를 조달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필요한 경우, 허드슨 측이 BBBY의 전환우선주를 더 매입할 수 있는 워런트(신주인수권)까지 발행해 추가로 8억 달러를 조달할 수 있는 계약도 맺었다. 다급한 불을 끄기에는 충분한 액수로 전해진다. 그런데 망해가는 회사에 1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한다니 도대체 허드슨 베이 캐피털은 무슨 생각을 한 것일까?

치솟은 주가는 불행히도 바로 다음 날부터 폭락하기 시작했다. 전환권이 부여된 증권(전환증권)을 발행한 탓에 주가가 계속 하락하는 ‘죽음의 소용돌이(death spiral)’에 빠질 가능성에 대한 경고가 즉각적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에게는 재수 없는 소리겠지만 전환증권이 갖는 이런 속성은 사실 오래전부터 지적되어왔다. BBBY 사태는 현재진행형이지만 전환증권의 장단점과 관련된 다양한 이슈들이 압축된 사례다.

주가에 따라 변하는 전환권의 가치

전환증권은 주식과 채권의 성질을 동시에 갖고 있는 금융상품이다. 미리 정해진 가격에 보통주로 ‘전환’할 수 있는 권리가 내재된 채권인 전환사채(CB), 보통주를 ‘매입’할 수 있는 권리(신주인수권)가 부여된 채권인 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을 일컫는다. 투자자가 채권을 보통주로 전환할 것을 요구(전환권 행사)하거나 신주인수권을 행사하면 발행사는 신주(새롭게 발행하는 증권)를 발행해 이들의 요구에 응해야 한다. (만약 이미 발행되어 있는 보통주(구주)와 교환되는 경우엔 교환사채(EB)라고 부른다.) 이들 전환증권은 ‘주식과 채권의 중간’이라는 의미에서 메자닌(mezzanine) 증권, 또는 둘의 혼합이라는 의미에서 하이브리드 증권이라고도 불린다. 한국의 메자닌 시장은 발행 규모로 볼 때 2019년에는 4조원을 조 밑돌았지만, 2020년에는 그 두 배인 8조원 이상으로 커졌고 2021년에는 11조8166억원으로 급성장했다.

메자닌 시장이 급성장한 이유를 알려면 CB를 보면 된다. 액면가가 1만원인 회사채가 있다고 하자. 이 회사채는 만기에 1만원을 받거나 혹은 1만원 대신 보통주를 미리 정해진 수만큼, 예를 들어 10주를 받을 수 있는 권리(옵션)를 갖고 있다(1주당 1000원의 ‘전환가격’을 내는 격). 즉 전환사채다. 권리이므로 전환하든 말든(전환권을 행사하든 말든) 투자자 마음이다. 지금 주가가 1100원이라고 치자. 사채를 주식으로 전환해 얻은 10주를 바로 시장에 내다 팔면 1만1000원을 받을 수 있다. 전환하지 않고 그냥 액면가(1만원)를 받는 것보다 이익이다. 따라서 이처럼 주가가 전환가격보다 높은 경우에는 CB를 주식으로 전환하는 것이 투자자에게 유리하다.

주가가 내려가면 어떻게 될까? 주가가 900원이라고 해보자. 10주의 가치는 9000원이니 채권을 주식으로 전환하지 않고 만기에 1만원을 받는 것이 낫다. 다시 말해 주가가 전환가격보다 낮다면 전환권을 행사하지 않는 편이 유리하다.

이처럼 전환권의 가치는 주가에 따라 달라진다. 전환가격이 주가보다 낮다면 전환권 가치도 주가에 비례해 높아지지만 반대의 경우라면 전환권은 가치가 없어진다. 대부분의 CB는 전환가격이 주가보다 높은 수준으로 결정돼 발행된다. 발행 시점에 전환권 가치는 0이라는 말이다.

문제는 CB를 발행하는 회사가 재무적 곤경에 처해 있는 경우가 많아 주가 상승을 기대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사실, 회사가 잘나가는 상태라면 굳이 전환권까지 주어가며 채권을 발행할 이유가 없다. 전환권은 회사의 자금 사정이 좋지 않을 때 투자자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지급하는 미끼와도 같다.

그렇다면 투자자들은 왜 CB를 사는 것일까? 자금 사정이 좋지 않으면 주가 하락과 이에 따른 전환권 가치 훼손이 예상될 텐데 말이다. 그래서 생긴 것이 ‘리픽싱(refixing)’ 조항이다.

리픽싱 조항은 1997년 외환위기에 빠진 국내 기업들의 자금 조달을 돕기 위해 도입되었다. 한국에서 발행되는 CB는 대다수(2016년 이후는 모두)가 리픽싱 조항을 달고 있다. 리픽싱은 주가가 내리는 경우, 전환가격을 당초보다 낮추고 이에 맞춰 CB와 바꿀 발행주식 수를 늘릴 수 있도록 만든 장치다. 위의 사례에서 주가가 900원으로 떨어졌고 이에 따라 전환가격이 1000원에서 800원으로 하향 조정되었다고 치자. 이제 전환된 주식들의 가치가 회사채 액면가인 1만원과 같은 수준이 되려면 10주가 아니라 12.5주(=10000/800)여야 한다. 리픽싱은 이처럼 ‘고정된 금액(1만원)’을 지급하기 위해 ‘발행하는 신주의 수를 변동(10주에서 12.5주로)’시킨다. 이제 발행주식 수를 늘려 고정금액을 지급하게 되니 주가가 하락하더라도 전환권은 가치를 갖게 된다. 물론 늘어난 주식 수로 인해 지분이 희석되어 주가가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리픽싱 덕분에 CB 투자자들은 주가가 상승할 때뿐만 아니라 하락할 때에도 전환권을 행사해 이득을 챙길 기회를 갖게 된다. 당연히 투자자들에겐 리픽싱 조항이 있는 CB가 그렇지 않은 CB보다 매력적이다. 그러니 발행 회사는 ‘리픽싱 있는(리픽싱부) CB’를 ‘리픽싱 없는 CB’보다 비싼 가격에 팔아 더 많은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이처럼 리픽싱은 CB에 당근을 제공해 어려움에 빠진 기업들의 자금 조달을 돕는 장치다. 주가가 하락하는 회사의 경우 리픽싱이 없다면, 투자자들은 전환권을 행사하기보다 CB 발행 회사로부터 채무를 변제받으려 할 것이다. 충분한 현금을 갖고 있지 않은 CB 발행사들의 처지에선 채무상환 부담으로 인해 유동성 위기(부도)를 겪을 가능성이 대폭 커진다. 부도보다는 차라리 희석이 낫지 않겠는가.

그런데 이렇게 훌륭한 제도인 리픽싱에 대해 반대 목소리가 높은 까닭은 뭘까? 가장 큰 문제는 ‘주주와 채권자 간 갈등 유발’이다. 위의 사례에서 살펴본 것처럼 리픽싱 후 전환권이 행사되면 새 주식을 발행해야 한다. 주식 수가 늘면 기존 주주는 지분율 하락뿐 아니라 주가 하락으로 인한 재산상 손실도 떠안아야 한다. 혜택은 채권자가 누리고, 비용은 주주들이 내는 셈이다. 전형적인 주주와 채권자 간 ‘대리인 문제’다.

이 제도들은 한국에서 특히 대주주의 지분을 단숨에 올려줄 수단으로 악용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대주주 측은 CB를 대량으로 발행한 이후 인위적으로 주가를 띄우고 전환권을 행사해 큰돈을 챙기는 범죄행위로 주주들을 희생시킬 수 있다. 특히 주가를 하락시켜 리픽싱을 작동시키고 이후 주가가 오를 때 전환권을 행사하면 리픽싱이 없을 때보다 더 큰 이득을 챙기거나 더 쉽게 지분을 올릴 수 있다. 실제로 리픽싱 이전에 이익을 낮은 수준으로 조정해서 주가 하락을 유도한다는 실증연구도 이미 나와 있다. 그러니 리픽싱 조건을 둔 전환사채는 매우 특별한 경우에만 발행할 수 있게끔 만드는 것이 옳다. 그렇지 않으면 회사채 발행을 승인한 이사회 또한 주주의 부를 훼손하는 결정을 내렸다는 비난을 받게 될 것이다.

이처럼 리픽싱에 대한 의견은 극과 극으로 갈린다. 다만 그렇게 좋은 것이라면 도대체 왜 한국과 일본을 빼면 ‘리픽싱부 CB’를 미국·영국 등 다른 선진국들에서는 보기 힘든 것일까?

2021년 11월 국세청이 전환사채를 이용한 편법 승계 사례에 관해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2021년 11월 국세청이 전환사채를 이용한 편법 승계 사례에 관해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리픽싱이 불러올 죽음의 소용돌이

미국에서 리픽싱부 CB는 1990년대 후반 시장에 도입되었으나 악용 가능성을 우려한 결과, 시장에서 재빠르게 사라져 투자자들의 관심에서 거의 지워졌다. 지금은 일부 기업에 한해 사모발행(공개된 일반이 아닌 특정한 투자자 그룹을 상대로 발행)에만 제한적으로 허용하는데 ‘죽음의 소용돌이 CB’나 ‘독극물(toxic) CB’ 등 다분히 부정적인 이름으로 불린다.

죽음의 소용돌이로 불리게 된 내역은 이렇다. 주가가 하락하면 리픽싱에 의해 전환가격이 하향 조정된다. 그럼 더 많은 주식을 발행해야 한다. 이로써 주가가 희석되며 더 떨어지고, 주가 하락은 다시 리픽싱을 부른다. 이런 식의 악순환 때문에 이론적으론 주가가 0원이 될 때까지 리픽싱이 일어난다. 말 그대로 죽음의 소용돌이다.

상상만으로도 무섭다. 물론 한국에서는 최초 전환가격의 70%까지만 전환가격을 하향 조정할 수 있도록 제한한 덕분에 이런 소용돌이가 미국보다는 덜하다. 그러나 리픽싱 횟수 제한 규제가 없어서 추가 리픽싱이 많이 일어난다. 더구나 리픽싱으로 인해 주가가 하락할 것이 예상되면 공매도자들이 끼어들어 주가에 부정적 시그널을 준다. 주가 하락이 심화될 수 있다.

이런 악순환에서 벗어나는 단 하나의 방법은 리픽싱부 CB로 조달한 자금으로 회사가 영업력을 회복해 실제로 성과를 올리는 방법뿐이다.

리픽싱부 CB의 발행은 시장에서 대개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진다. 발행을 공표하거나 리픽싱이 실시되면 해당 기업의 주가가 떨어진다. 그런데도 영업 성과가 딱히 나쁘지 않아 굳이 리픽싱까지 포함시켜 전환사채를 발행할 필요가 없는 재벌기업들이 리픽싱부 CB를 발행하기도 한다. ‘긴급한 자본조달의 필요성’ 때문에 발행한다고 보기 힘들다. 차라리 대주주 지분의 편법 증가 등 기업지배구조의 이슈로 보는 것이 맞을 터이다.

리픽싱 이외에 또 ‘핫한’ 주제는 ‘매도청구권부 CB’다. 매도청구권(콜옵션)은, 발행 회사 측이 ‘만기 이전에 CB를 매도하라고 투자자에게 요구할 수 있는 권리’다. 발행사가 자사에 CB를 팔라고 투자자에게 청구할 수 있는 매도청구권부 CB는 다른 나라에도 흔하다. 그러나 발행사가 아니라 발행사가 지정하는 제3자(대개 대주주나 대주주의 자녀 등 특수관계인)에게 CB를 팔라고 청구할 권리를 부여한 ‘제3자 매도청구권부 CB(콜옵션부 CB)’는 전 세계 주요국 중 오직 한국에만 존재한다.

2021년 11월 국세청은 제3자 매도청구권부 CB를 이용한 편법승계 사례를 공개한 바 있다. 그 내용은 이렇다. 회사가 콜옵션부 CB를 발행한다. 회사는 자신에게 부여된 콜옵션을 포기하고 대신 최대주주나 그 자녀들 등 제3자에게 콜옵션을 무상으로 양도한다. 콜옵션을 받은 제3자는 옵션을 행사하여 시가보다 낮은 가격에 CB를 인수한다. 이후 주가가 오르는 시점에 전환권을 행사해 시가보다 낮은 전환가격으로 주식을 취득하고 다시 이를 높은 가격에 매도해 시세차익을 얻는다. 악용될 소지가 너무 많은 반면, 장점이 무엇인지는 이해하기 어려운 제도다.

2월22일 SM엔터테인먼트의 이수만 전 총괄프로듀서가 법원에 낸 SM 신주·전환사채 발행금지 가처분신청 심문을 위해 이수만씨 변호인단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2월22일 SM엔터테인먼트의 이수만 전 총괄프로듀서가 법원에 낸 SM 신주·전환사채 발행금지 가처분신청 심문을 위해 이수만씨 변호인단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CB 시장이 혼탁한 이유

한국에서는 상당수 기업이 전환증권을 ‘사모’ 방식으로 발행한다. 한국의 메자닌 시장이 혼탁한 이유다.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회사들이 공모시장에 접근하기 어렵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사모 방식에선 리픽싱, 제3자 콜옵션 등을 덕지덕지 붙여놓은 CB를 신용평가조차 없이 발행 가능하다. 이런 문제점에 대해 자본시장연구원 김필규 위원은 미국처럼 CB를 적격기관투자자 (Qualified Institutional Buyers)에게 직접 판매하는 시장을 키우자고 제안한다. 전문 투자자들만의 리그로 만들자는 것이다.

정반대로 금융시장 분석가인 박용철 트레이더는 아예 CB를 기존 주주를 대상으로 공모하게 하자는 의견을 낸다. 이렇게 하면 주주가 주주임과 동시에 CB 투자자로서 채권자가 되는 셈이니 주주와 채권자 사이 이해 갈등인 ‘대리인 문제’를 유의하게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일각에선 리픽싱 등의 특혜라도 있으니까 투자자들이 CB를 사는 것이고 그에 따라 어려운 기업들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주주들에게 해를 끼치고 특수관계인에게 특혜를 주더라도 자금 조달만 하면 된다는 주장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특혜로만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회사라면 굳이 그렇게까지 해서 ‘연명’하게 만드는 것이 과연 올바른 일인지에 대한 회의도 든다. 더구나 탈세나 편법 증여, 주가조작에 쓰이는 예가 하도 많아서 헤아릴 수도 없을 정도라면 자금 조달의 이점만으로 이 모든 것을 덮을 수는 없다. 리픽싱부 CB 발행으로 자금 조달에 성공했지만 BBBY의 주가가 연일 폭락하는 이유가 다른 데 있지는 않을 터이다.

현재 지배권 분쟁이 벌어지고 있는 SM엔터테인먼트 경영진이 CB를 발행코자 하는 이유 역시 정말 긴급한 자본 조달을 위해서라고 믿어야 하는 것일까.

기자명 이관휘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