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교란되고 인플레이션이 일어났다. 하지만 유가와 원자재 가격 하락 이후에도 인플레이션은 줄지 않고 있다. ⓒAFP PHOTO

인플레이션을 낮추는(잡는) 것은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지상 과제다. 적어도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여러 차례 밝혔던 바에 따르면 그렇다. 그의 말은 연준이 심지어 경제성장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인플레이션과 싸울 것이라는 의미로 들렸다. 물론 연준은 인플레이션과 싸우면서도 실업률(성장)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오히려 이 때문에 파월 의장은 물가를 잡는 것이 실업문제보다 더 중요한 목표라는 점을 확실히 다져두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최근 미국의 실업률은 3.7%로 당분간 물가에만 집중해도 되는 사정도 있겠다.

인플레이션과 실업률 중 ‘한 놈만 팬다’고 해서 싸움이 쉬워지는 건 아니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서라면 사실 연준은 실업률을 ‘늘려야만’ 할지도 모른다. 인플레이션 잡기가 ‘고약한 일’이 되는 이유다. 9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0.75%포인트 기준금리 인상 결정에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그 이유를 알려면, 일단 인플레이션의 원인부터 이해할 필요가 있다.

■ 인플레이션의 두 가지 원인 

물가가 오르는 건 대개 두 가지 때문이다. 수요가 너무 많거나 공급이 너무 적거나. 너도 나도 사고 싶어 하는 물건의 값은 그 물건의 공급이 크게 늘어나지 않는 이상 오르게 되어 있다. 그러니 물건값이 오르지 않도록 하려면 해당 재화(및 서비스)의 수요를 줄이거나 공급을 늘려야 한다. 공급 부족으로 물가가 오르는 현상을 ‘비용 상승에 의한(cost-push)’ 인플레이션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석유나 원자재 등의 공급이 원활치 않아 가격이 오르면, 이로 인한 추가 비용은 최종적으로 소비자가격 인상으로 반영된다. 반면 수요가 너무 많아 가격이 상승하면, ‘수요가 견인한(demand-pull)’ 인플레이션이다. 수요와 공급 중 어느 측면이 물가 상승에 더 큰 책임이 있는지 파악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 원인에 따라 인플레이션을 제어하기 위한 정책이 성장에 갖게 되는 함의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총생산물을 하나의 상품이 대표한다고 가정하고, 이 상품에 대한 수요와 공급을 각각 총수요와 총공급이라고 부르자. 이 경우 이 상품의 생산 수량은 국내총생산(GDP)이 된다. 그래프는 총수요나 총공급 중 하나를 고정하고 다른 하나를 변화시켰을 때 물가와 성장에 어떤 영향이 생기는지를 간단하고 분명하게 보여준다. 비용상승 인플레이션의 경우를 보자(〈그림 1〉 참조). 공급이 줄어 총공급곡선이 ‘총공급 0’에서 ‘총공급 1’로 이동하면 이로 인해 가격(물가)은 P0에서 P1으로 상승하고(인플레이션 발생) 동시에 총생산(GDP)은 Q0에서 Q1으로 줄어든다(성장 둔화). 만약 총공급을 늘릴 수 있다면, 즉 총공급곡선을 원래대로 ‘총공급 0’으로 옮길 수 있다면 반대로 물가는 하락하고 성장은 늘어날 것이다.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에서 굳이 성장을 희생시킬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수요견인 인플레이션의 경우는 다르다(〈그림 2〉 참조). 총수요곡선이 ‘총수요 0’에서 ‘총수요 1’로 이동하면(총수요 증가), 물가는 P0에서 P1으로 상승해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총생산은 Q0에서 Q1으로 상승한다(경제성장). 인플레이션이 경제성장과 같이 가는 경우다. 인플레이션을 줄일 목적으로 총수요곡선을 원래대로 ‘총수요 0’으로 돌려놓으면 물가는 내려가지만(P1에서 P0로), 성장도 둔화된다(Q1에서 Q0로).

정리해보자. 인플레이션이 비용 상승에 의한 것이라면 공급을 늘려야 한다. 이때 물가는 내려가고 성장은 증진된다. 인플레이션이 수요 증가 때문이라면 총수요를 줄여야 한다. 물가는 하락하지만 성장률 또한 떨어진다. 이때는 물가와 성장,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지금의 인플레이션이 주로 어떤 원인에 의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과 미·중 패권싸움, 그리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글로벌 공급망이 교란되고 이에 따라 곡물, 원자재 및 석유 가격이 올라 비용상승 인플레이션이 나타났다는 의견은 비교적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최근 유가와 원자재 가격이 하락한 이후에도 인플레이션은 조금도 줄지 않고 있다. 9월 발표된 미국의 높은 인플레이션율은 소비자물가지수의 약 40%를 차지하는 주거비 급등에서 비롯되었다. 이는 코로나 국면에서의 회복과 함께 그동안 시장에 넘치도록 풀어놓은 현금을 통한 소비 증가로 발생한 수요 견인 형태의 인플레이션이 지속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만약 인플레이션이 주로 수요 견인에서 비롯되었다면 연준에겐 비용 상승의 경우보다 더 골치 아픈 문제가 될 수 있다. 이 경우, 물가를 잡기 위해 총수요를 줄이면 성장을 희생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설령 인플레이션의 원인이 공급망 붕괴에서 비롯되었다 해도 총수요를 공략할 필요성이 약해지지는 않는다. 공급망이 붕괴된 원인이 경제 영역이 아니라 정치 영역(국가 간 분쟁·전쟁)에 더 가까운 탓이다. 게다가 총공급이 부족한 상황에서 총수요를 공략해 인플레이션을 잡으려면 총공급이 부족하지 않은 상황에서보다 총수요를 훨씬 더 많이 떨어뜨려야 한다. 이래저래 총수요가 핵심 요소다.

■ 물가를 위해 성장을 희생시켜라

금융시장에서는 미국의 8월 물가상승률이 예상치인 8.0%를 웃도는 8.3%로 발표되자, 9월 FOMC에서 결정될 기준금리 상승폭을 최소 0.75%포인트, 최대 1%포인트로 예측하고 있었다. 연준은 0.75%포인트를 선택했다.

왜 그랬을까? FOMC 위원들의 미국 성장률 기대치가 대폭 낮아졌다. 지난 6월 위원들은 미국의 올해 성장률 기대치를 ‘1.5~1.9%’로 봤다. 이번엔 ‘0.0~0.2%’로 낮췄다. 내년 전망 역시 ‘1.3~2.0%’에서 ‘0.5~1.5%’로 줄였다. 불황에 대한 우려가 그만큼 커진 것이다. 이번 FOMC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0.75%포인트(1%포인트가 아니라)만 올린 것은 ‘성장에 대한 배려’ 때문에 살살 가려고 한 것이 아니냐는 의견들이 나온다. 그러나 FOMC가 정말 불황을 우려해서 0.75%포인트만 올렸다면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다. 파월 의장 스스로 지금은 물가를 잡는 것이 ‘무엇보다도’ 우선시되어야 한다고 몇 번이나 밝혀왔기 때문이다. 이 ‘무엇’은 당연히 성장을 포함한다.

살펴보았듯 총수요를 낮춰서 인플레이션과 싸울라치면 대개 성장을 ‘반드시’ 희생시켜야 한다. 그렇다면 ‘성장을 배려한 탓에’ 금리를 0.75%포인트만 올렸다는 것은 큰 실수가 될 수 있다. 이 정도의 금리 상승으로는 성장을 겨우 ‘조금만’ 둔화시키는 데 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당장 종식된다고 하더라도 글로벌 공급망이 갑자기 회복되리라 기대하기는 힘들다. 이미 유가와 원자재 가격은 전쟁이 한창 진행되는 와중에도 떨어지는 중이다. 집중할 곳은 총수요다. 총수요를 줄이려면 성장에 대한 기대치 또한 확 낮춰야 한다. 사람들은 ‘나’의 소득이 줄어들 것으로 예측할 때 소비보다는 저축에 나선다. 그럼 성장을 얼마나 희생시켜야 인플레이션을 잡을 수 있을까?

■ 누워버린 필립스곡선

논쟁이 진행 중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이코노미스트였던 올리비에 블랑샤르나 래리 서머스 하버드 대학 교수는 실업을 크게 늘려야, 즉 성장을 크게 후퇴시켜야 인플레이션을 잡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성장을 어지간하게 줄이면 인플레이션을 잡을 수 없다는, 이 같은 전망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필립스곡선(Phillips curve)이 ‘누워 있다’는 연구들과 긴밀히 연결된다.

필립스곡선은 인플레이션과 실업률이 서로 상반되게 움직이는 속성을 나타내는 그래프다. 물가를 내리려면 실업률을 늘려야(경제성장을 줄여야) 한다는 의미다(〈그림 3〉 그래프의 실선). 필립스곡선이 ‘누워 있다’는 것은 두 변수가 반대로 움직이기는 하지만 서로 그다지 민감하게 반응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그림 3〉 그래프의 점선). 

예컨대, 인플레이션을 X%포인트 낮추고자 할 때 증가시켜야 하는 실업률의 크기를 보자. 기울기가 평평한 아래쪽 점선으로 된 곡선(편의상 직선으로 그렸다)의 경우엔 기울기가 가파른 위쪽 곡선보다 훨씬 더 실업률을 크게 증대시켜야 한다. 그래프로 알 수 있듯이 필립스곡선이 많이 누운 경우(점선)라면 실업률을 크게 줄여도 인플레이션이 급증하진 않는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인플레이션을 한 단위 낮추기 위해서는 실업률을 아주 많이 늘려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성장을 아주 많이 희생해야 한다는 의미이고, 따라서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에서 이기더라도 그만큼 불황의 골이 더 깊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연준은 인플레이션을 열심히 ‘쫓아가고’ 있다. 아직 실업률이 발목을 잡고 있지는 않은 듯하지만 언제까지 그럴지는 모른다. 연준이 성장에 타격을 입히면서까지 인플레이션과 싸울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연준이 정치권으로부터 독립된 기관이라고는 하지만, 미국 하원 435석(전체 의석)과 상원 100석 중 35석을 뽑는 11월8일 중간선거에 전력을 다하는 정치권이 실업률 급증을 그냥 두고 볼 가능성 또한 희박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공은 이미 정치로 넘어간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주도권은 아직 인플레이션의 손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폴 볼커 전 연준 의장은 1980년대 초, 기준금리를 20%까지 끌어올리는 대담한 인상으로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에서 주도권을 움켜쥘 수 있었다. 쉬운 싸움은 아니었다. 농민들이 트랙터를 몰고 와 연준 건물을 봉쇄해 농성하는 등 격렬한 시위가 있었고, 볼커가 호신용으로 권총까지 갖고 다녔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느슨한 금리인상으로 싸움에서 주도권을 쥘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런 식으로는 총수요를 충분히 줄일 수 없을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다. 돈은 아직도 시장에 많이 풀려 있고 투자자들은 이리저리 눈치를 보기는 하지만 현금을 잔뜩 쥐고 언제든 시장에 뛰어들 준비가 되어 있다. 유동성을 흡수하기 위한 양적긴축(QT)은 진행이 느리기 짝이 없다. 학자금 대출금 탕감은 그 자체에 대한 찬반과 관계없이 많든 적든 시장에 추가적인 유동성을 제공하는 효과가 있어 적어도 총수요 감축의 방향으로는 작용할 수 없는 정책이다. 바이든 정부에서 증세를 들고나왔지만 얼마나 유동성을 흡수해 총수요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또한 물음표다.

미국 금리인상의 폭탄은 사실 다른 나라들이 얻어맞는 중이다. 금리인상으로 달러화가 초강세가 되면서 각국 통화는 달러 대비 가치가 크게 하락하고 있다. 이는 수입물가를 밀어 올려 해당 국가에 인플레이션을 불러온다. 미국이 금리인상을 통해 인플레이션을 세계 각국으로 수출하고 있는 셈이다. 미국이야 오히려 타격이 덜할 수 있다. 강달러로 수출시장에서 큰 재미를 못 볼 수는 있겠지만 브레턴우즈 시대를 거친 이후 미국이 수출로 먹고산 적이 과연 있기나 했던가 말이다.

폴 볼커 전 연준 의장(사진)은 1980년대 초 기준금리를 20%까지 끌어올린 적이 있다. ⓒEPA

■ 뒤쫓으면 잡을 수 없다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에서 더 근본적으로 주목해야 할 것은 기대인플레이션의 변화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안정적이었던 인플레이션은 사람들의 기대인플레이션을 낮은 수준에 성공적으로 묶어놓았다. 어쩌다 높은 인플레이션이 진행된다 해도 이를 지속적 현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연준의 적극적 역할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일시적인 현상으로 여겨온 결과다. 

그러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으로 촉발되어 지난해부터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높은 수준의 인플레이션은 경제주체들이 인플레이션 기대치를 더 높은 수준으로 수정하도록 만들고 있다. 높아지는 기대인플레이션은 시장의 기대를 벗어난 ‘충격’이 있어야 낮출 수 있다. 

지금은 기대인플레이션이 실제 인플레이션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시기다. 날아오르는 인플레이션을 하염없이 뒤쫓기만 하다가는 커지는 기대인플레이션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더구나 기대인플레이션은 자기충족적(self-fulfilling)이다. 인플레이션이 심해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순간, 가격은 그 기대를 반영해 높게 형성되고 이렇게 결정된 높은 인플레이션은 다시 인플레이션 기대치를 끌어올릴 것이다.

이번 미팅 이후 증시는 폭락 중이다. 어차피 FOMC 위원들이 성장률 전망을 대폭 낮춘 것이 시장에 알려졌을 테니 당분간 시장의 혼란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농담 삼아 이번에 2% 포인트를 올리는 게 어떨까 주위를 떠보기도 했지만 미팅이 끝나 결과가 나온 지금, 아예 이참에 적어도 1%포인트 또는 그 이상의 금리인상으로 갔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시장이 뻔히 기대하고 있는 수준을 따라가 충족시키는 정도로는 잡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총을 쏴서 잡을 수 없다면 바주카포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 맞다. 기꺼이 인정한다. 이거 뒷북이다. 

기자명 이관휘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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