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은 일찍부터 당대표 선거를 준비했다. 지난해 6월 김기현 의원은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뒷받침하는 당내 싱크탱크”를 표방하며 여당 의원 48명으로 구성된 모임 ‘혁신24 새로운 미래’를 만들었다. 당시 김 의원이 당권 경쟁을 시작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일찍 당권에 도전한 것치고 전당대회 초반 지지율은 높지 않았다. 장제원 의원과 ‘김장(김기현·장제원) 연대’를 공식화하고 ‘친윤(윤석열) 주자’라는 이미지를 굳힌 지난해 12월 말에도 김 의원의 지지율은 나경원 전 의원·안철수 의원에 이어 10%대 초중반에 머물렀다.
김기현 의원의 상대적으로 낮은 인지도가 저조한 지지율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당시 김기현 캠프는 ‘선거 구도’가 좁혀지길 기다렸다. 당대표 후보들이 친윤과 ‘비윤(윤석열)’으로 나뉜 상황에서, 친윤 후보군이 정리되면 지지율이 오를 거라고 분석했다. 김 의원은 ‘윤심(윤석열 대통령의 의중)’이 향했다고 알려진 후보다.
윤심은 왜 김기현 후보로 향했을까.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이 김기현 후보에게 ‘선배님’이라고 부를 만큼 김 후보에 대한 신뢰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비윤으로 분류되는 국민의힘의 한 관계자는 “김기현 후보가 대통령에게 제일 잘 숙일 것 같으니까 그런 거 아니겠냐”라고 말했다.
윤심이 쏠린 곳에 친윤계 등 국민의힘 의원들이 모였다. 1월9일 김기현 캠프 개소식에는 박수영·이철규 의원 등 국민의힘 현역 의원 40여 명이 참석했다. 갑작스레 바뀐 ‘당원 100%’ 선거 룰도 전국적 인지도가 낮고 조직력을 동원하기 쉬운 김기현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당원 100% 선거이기 때문에 과거에 ‘민심 30%’가 포함됐을 때와 전혀 다르다.” 김기현 캠프 측은 당원에게 호소할 수 있는 메시지·정책을 발표하고 전국의 당원들을 만나겠다는 계획이다. 김기현 후보는 각 지역 당협 당원 간담회나 보수 진영 시민단체 행사에 참석하는 방식의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김기현 캠프의 한 관계자는 “‘당원 100%’ 선거에선 선거운동 할 게 없다. (당협 방문도) 당선 이후를 생각해서 가는 거다. 행사에 오는 당원들이 그 당협의 당원 중에 몇 퍼센트나 되겠나. 열광적 환영에 호응하는 거지, 실제로 새로 얻는 표는 없다”라고 말했다.
김기현 캠프는 유권자인 국민의힘 당원들이 투표에서 여러 가지를 고려하겠지만 결국 대통령의 안정적 국정 운영에 방점을 둘 거라고 본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윤석열 대통령의 당무 개입·‘윤심 줄 세우기’ 등의 비판이 따른다고 해도 대통령과 여당 대표의 관계를 강조하는 게 득표에 유리하다.
김기현 후보는 지난해 국민의힘 원내대표로 대선 캠프에서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다. 이번 전당대회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대선 승리를 이끌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대통령과의 소통’을 강점으로 내세웠다. 안철수 후보를 겨냥해서는 “대선 욕심이 있는 사람은 당대표로 곤란하다”라며 당선될 경우 윤석열 대통령 탄핵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친윤계 의원들도 “당정이 하나 되고 같은 목소리를 내는 게 중요하다(장제원 의원)” “당과 대통령이 같은 방향을 보고 가야 한다(이철규 의원)”라며 힘을 보탰다.
관건은 투표율
김기현 후보는 윤석열 대통령과의 호흡과 더불어 자신이 “정통 보수의 뿌리를 지켜왔다”라는 점을 부각한다. 앞서 언급한 김기현 캠프 관계자의 말이다. “일반 유권자가 아니라 당원이라는 단일한 집단을 향해서 표를 얻어야 한다. 당원은 굉장히 특징적인 사람들이다. 적어도 당대표 선거에서 기준점은 아주 단일하다. 당원들은 당대표를 뽑을 때 ‘이 당에 얼마나 있었는지, 이 당의 정체성과 맞는지’를 중요하게 본다. 문중 선거에 비유하면 ‘아들’이면 되는 거다. 그런데 다른 후보들은 아들이 아니다. 당대표감으로 보수 정통성을 가진 후보는 황교안 후보를 제외하면 김기현 후보 혼자다.”
김기현 후보는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에서 정치를 시작한 뒤 지금껏 당적을 유지했다. 2004년 총선(울산 남구을)에서 승리해 국회에 입성한 후 같은 지역에서 내리 3선에 성공했다. 2014년에는 지방선거에 출마해 울산광역시장에 당선됐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직후 2018년 치러진 선거에서 울산광역시장 재선에 실패했다. 이후 제21대 총선(울산 남구을)에서 승리해 국회로 돌아왔다. 광역지자체장을 지낸 4선 국회의원이지만 지지 기반이 부산·울산·경남(PK) 지역에 한정돼 있다. 상대 후보들에게 2024년 총선을 지휘해야 할 국민의힘 당대표로서 확장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는 이유다.
김기현 후보는 낮은 인지도를 당내 조직 표를 확보해 돌파하려고 한다. 각 캠프는 새로운 당원들이 많이 유입되면서 당협위원장들의 표 장악력이 이전보다 줄었을 거라고 입을 모은다. 주목하는 건 투표율이다. 현역 의원들과 당협위원장에게 영향을 받는 당원들이 투표율이 높고, 그렇지 않은 당원들의 투표율은 낮으리라고 예측한다. 전체 투표율이 낮을수록 김기현 후보에게 유리하고, 반대로 전체 투표율이 높을수록 조직 표의 영향이 떨어져 김 후보에게 불리할 거라는 의미다.
‘김장 연대’, 다수 현역 의원들의 지지로 몸집을 불린 김기현 의원은 2월7일 나경원 전 의원과도 손을 잡았다. 나경원 의원 측 한 관계자는 이로 인한 지지율 상승효과가 크지 않다고 평가했다. “표라는 게 지지하는 후보가 불출마하면 어디로 갈지 모른다. 김기현 후보는 표를 끌 수 있는 매력이 없다. 왜 대표가 되어야 하는지 명확하지 않다. 스스로 인지도를 높일 수 있는 능력이 없고 대통령, 장제원·박수영·김정재 의원에게 기댄다. 당원들에겐 대통령이 시키는 대로 할 사람,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핵심 관계자)에게 휘둘릴 사람처럼 보인다. 나 전 의원의 불출마를 기억하며 이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안철수 후보나 천하람 후보 쪽으로 갈 수도 있다.”
3·8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선 득표율 50%가 넘는 당대표 후보자가 없을 경우, 1·2위가 결선투표를 실시한다. 김기현 캠프 측은 1차 투표에서 과반을 달성해 결선투표 없이 당선하겠다는 목표다. 2월15일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자 TV 토론이 시작되자 천하람 후보는 공언한 대로 김기현 후보를 향해 대통령과 윤핵관의 공천 개입 문제를 강하게 지적했다.
막판 변수로 떠오른 건 황교안 후보다. 지난 세 차례 TV 토론회에서 김기현 후보의 ‘울산KTX 역세권 부동산 투기’ 의혹을 연달아 제기하며, 후보 사퇴를 촉구했다. 황교안 후보는 울산KTX 연결도로가 당초 계획과 달리 김기현 후보 소유 임야를 지나면서 김 후보가 시세차익을 얻었다고 주장했다. 김기현 후보는 “가짜뉴스다. 내가 땅을 사고 8년 후에야 도로계획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게다가 내 땅 밑으로 터널이 지나게 돼 있다. 터널은 보상도 안 된다”라고 반박했다.
국민의힘 각 캠프에서는 김기현 후보를 향한 황교안 후보의 공세를 예상하지 못했다는 반응이 나왔다. 김기현 후보 측은 당혹스럽다는 입장이다. 황교안 캠프 측 한 관계자는 “선거 공학적으로 이기기 위해 이러는 게 아니다. 김기현 후보가 부동산 문제와 관련해 아주 큰 문제를 가지고 있다. 김기현 후보가 당대표가 되면 민주당의 공격으로 당이 만신창이가 될 거다”라고 말했다.
김기현 후보는 낮은 지지율에서 시작해 선두 주자가 되었다. 2월22일 국민의힘 지지층을 대상으로 한 복수의 여론조사에서 김기현 후보는 오차범위 밖에서 지지율 1위를 기록했지만, 과반에 미치지 못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결선투표 없이 당선하려면 선두 자리를 지키면서 지지율을 올려야 한다. 후발 주자들은 김기현 후보가 ‘국민의힘 당대표가 되기에 적합한 후보인지’를 두고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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