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7일 열린 국민의힘 ‘제3차 전당대회 후보자 비전 발표회’에서 안철수 의원이 발언하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1위 후보가 사퇴하는 거 보셨습니까?”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에 출마한 안철수 의원이 되물었다. 예비경선(컷오프) 투표 시작을 하루 앞둔 2월7일, 일각에서 제기된 ‘중도 사퇴론’에 대한 답이었다.

나경원 전 의원의 불출마 선언 이후, 나 전 의원을 향하던 대통령실의 비판이 안철수 의원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2월5일 윤석열 대통령이 안 의원을 겨냥해 “국정 운영의 방해꾼이자 적”이라고 말한 사실이 알려진 게 직격탄이 됐다. 다음 날 안 의원은 “정국 구상을 위한 숨 고르기”를 이유로 일정을 중단했다. 곧바로 ‘중도 사퇴하는 거 아니냐’는 꼬리표가 붙었다.

유권자들은 지난해 3월 치러진 제20대 대통령 선거 때 안철수 의원의 행보를 기억한다. 안철수 당시 대선후보는 “(윤석열 후보 당선으로 인한) 정권교체는 적폐 교대일 뿐” “상대방을 떨어뜨리기 위해 무능한 후보를 뽑으면 1년이 지나 ‘그 사람을 뽑은 손가락 자르고 싶다’라고 할 것”이라며 완주 의사를 내비쳤다.

지난해 3월2일 진행된 마지막 대선후보 TV 토론회에서도 “안철수를 선택해달라”던 안 후보는, 다음 날 아침 돌연 윤석열 후보와의 단일화를 선언했다. 안 후보가 자진 사퇴하는 방식의 후보 단일화였다. 갑작스러운 단일화라는 선택지를 유권자에게 납득시키기 위한 명분이 필요했다. 당시 안 의원이 내세운 건 “더 좋은 정권교체”였다.

안철수 대선캠프에서 일했던 한 측근은 윤석열 후보와 단일화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새 정치, 개혁, 변화, 실용’ 등 선언적인 구호를 내세우기보다 이걸 현실화하는 게 가장 중요했다. 국민은 새 정치와 변화를 갈망하더라도, 직접 경험하지 못하면 금방 잊거나 실현 가능성에 의구심을 품는다. 안 의원은 기존 정치를 바꾸고, 새 정치를 현실화하겠다는 소명의식이 있기 때문에 단일화와 합당을 결의했다.” 단일화, 국민의힘과 합당을 통해 그간 안철수 의원이 강조했던 ‘새 정치’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2011년 정계에 등장한 안철수 의원은 당시 새 정치의 상징이었다. 2011년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 유력 주자였던 안 의원은 지지율이 낮던 박원순 무소속 후보에게 출마를 ‘양보’하면서 강력한 대선주자로 떠올랐다. 양당 구도에서 대변되지 않는 목소리와 새로운 정치에 대한 기대감이 안철수 의원으로 결집했다. 안 의원 스스로도 “놀랐다”라고 기억할 만한 ‘안철수 현상’이 만들어졌다.

2012·2021·2022년 선거 모두 단일화

안철수 의원에게 기성 정치와 다른 새 정치란 뭘까? 2021년 11월 발간된 안철수 의원과 진중권 교수의 대담집 〈선을 넘다〉에서 안 의원은 새 정치를 이렇게 정의했다. “부패한 정치가 아니고 공익을 위해 봉사하는 깨끗한 정치, 편 가르고 싸우기만 하는 게 아니라 실제 우리 사회가 가진 문제 해결에 집중하는 정치, 군림하는 정치가 아니라 국민을 진정으로 섬기고 도와주는 정치.” 새로운 이념과 대안을 제시하기보다는, 기존 양당 체제의 폐해가 ‘아닌 것’을 추구하는 방식이다. 지지 세력을 광범위하게 포섭할 순 있어도, 단단히 묶기는 어려운 조건이었다.

안철수 의원은 2013년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서울 노원구병)에서 승리해 국회에 입성한 뒤에는 진영을 넘나들며 정치적 공간을 모색했다. 안 의원이 이념적으로 선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2014년 당시 김한길 민주당 대표와 함께 새정치민주연합을 만들어 공동대표를 지냈지만 “당 안에서 변화와 혁신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라며 탈당했다.

2016년 안철수 의원은 국민의당을 창당하며 김한길·박주선·박지원·정동영·천정배 등 호남 다선·비문(문재인) 의원들과 손을 잡았다. ‘낡은 진보’와 결별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그가 호남의 기득권 정치와 결합하는 모순을 드러냈다는 비판을 받았다. 전직 국민의당 지도부의 한 관계자는 이를 두고 “안철수 의원은 새 정치 기치를 내세우며 창당하던 때만 빛났다. 그때 국민의 관심과 기대를 많이 받았는데, 창당 직후 민주당에서 밀려난 기성 정치와 타협하면서 스스로 새 정치를 오염시켰다”라고 말했다.

20대 대선 막판이던 지난해 3월3일 안철수 후보(오른쪽)는 사퇴하며 윤석열 후보 지지 선언을 했다.ⓒ시사IN 이명익

당시 호남은 국민의당을 선택했다. 국민의당은 2016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호남 지역 23석을 포함해 총 38석을 얻었다. 호남만의 선택은 아니었다. 제20대 총선에서 국민의당은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33.5%)에 이어 정당 득표 2위(26.74%, 비례 13석)를 차지했다. 안 의원 측은 이 결과를 두고 양강 구도를 바꾸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기 때문이라 분석하고 “3김(金) 이래 최대의 정치적 업적” “새 정치를 만드는 중간 과정에서 가장 좋은 성과”로 자평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시절을 제외하면 줄곧 양당 구도 바깥에 있던 안철수 의원은 단일화 요구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2012년 대통령 선거, 2017년 대통령 선거,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2022년 대통령 선거까지 잇따라 단일화와 독자 행보를 동시에 요구받았다. 2017년 대통령 선거를 제외하면 모두 단일화를 했지만, 안 의원이 지금까지 단일화의 승자가 된 적은 없다.

2017년 대선에서 안철수 의원은 국민의당 후보로 처음 대통령 선거를 완주했다. 당시 안철수 후보 캠프 측은 안 후보가 탄핵과 정권교체에 찬성하지만, 문재인 후보를 찍을 수 없는 유권자층의 표를 흡수할 거라고 분석했다. 결과는 문재인·홍준표 후보에 이어 3위로 낙선이었다. 이후 그는 국민의당 당대표에 출마하며 ‘극중주의(중도를 극도의 신념을 가지고 행동에 옮기는 것)’라는 생소한 가치를 표방했다. 진보와 거리를 두고 당의 정체성을 중도 보수의 대안으로 설정했다.

호남이 국민의당에 등을 돌렸다. 한 전직 호남 지역 국민의당 의원은 당시 안 의원이 성급히 결정했다고 말했다. “2017년 대선 때 국민의당을 향한 호남의 지지가 민주당으로 이동했지만, 여전히 국민의당에 대한 호남의 애정이 남아 있었다. 그걸 잘 지키면서 서서히 외연을 확장했어야 하는데 내부 반발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바른정당과 합당을 추진했다. 남아 있는 호남 출신 의원들은 호남에서 지지가 빠져나가는 게 눈에 보였다. 결국 안철수 대표와 틀어졌고 국민의당이 한순간에 소멸했다.”

2018년, 국민의당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 국면 때 새누리당에서 이탈한 바른정당과 합당해 바른미래당을 창당했다. ‘개혁 보수’와 ‘합리적 중도’의 기치를 내걸었지만 안철수계·유승민계·손학규계가 내분을 겪으며 당은 공중분해되었다. 2022년 대선에서 안철수 의원은 호남을 찾아 과거 바른정당과 합당한 것에 대해 사과했지만, 결과적으로 대선 이후 또 다른 보수정당인 국민의힘과 합당했다.

“지금은 담력이 실력일 때”

안철수 의원은 이러한 결정이 ‘말 바꾸기’라고 보긴 어렵다고 주장한다. 안철수-진중권 대담집 〈선을 넘다〉에서 안철수 의원은 ‘정치에서의 중도’란 “변화하는 상황에 따라 적절한 지점을 끊임없이 찾으려 노력하는 과정”이라고 규정했다. 지켜보는 사람들의 생각은 다르다. 국민의당 국회의원이었던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지금껏 안철수 의원의 행보를 보면 정치적으로 일관성이 없다. 그 과정에서 주변에 있던 많은 사람을 실망하게 했다”라고 말했다.

안철수 의원은 이번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나경원 전 의원의 불출마 선언 이후,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최근 ‘비윤(윤석열)’의 구심점이 된 안철수 후보의 위치가 애매해졌다. 안철수 의원의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핵심 관계자)의 지휘자는 장제원 의원으로 본다” “윤안(윤석열 대통령과 안철수 의원) 연대” 발언 이후, 대통령실과 당 지도부는 전당대회에 대통령을 끌어들이지 말고 ‘윤핵관’ ‘간신배’ 등의 언급을 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안 의원은 경고를 받아들였다. 반면 ‘이준석계’ 천하람 후보는 ‘대통령의 공천 불개입’ ‘공천 자격고사 의무화’ 등 투명한 공천 시스템 도입과 윤핵관의 퇴진을 적극적으로 요구하며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나경원 전 의원은 2월7일 ‘친윤(윤석열)’ 김기현 후보와 사실상 연대를 선언하며 김 후보에게 힘을 보탰다.

2월7일 김기현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왼쪽)와 나경원 전 의원이 기자들과 만났다. ⓒ시사IN 이명익

다시 안철수 의원에게 시선이 집중된다. 안 의원에겐 이 상황을 돌파하고 선거를 ‘완주할 것’이라는 확신을 줘야 하는 과제가 남았다. 앞의 호남 지역 전직 국민의당 의원은 “(최근 높은 지지율은) 그간 안철수 의원의 정치 행보를 다 지켜보고 나온 지지율”이라고 말했다. “안철수 의원은 인지도가 높고 20~30% 중도층의 지지를 편하게 흡수할 수 있는 정치세력이다. 지금부터 국민과 당원들은 안철수 의원의 실력을 보려고 할 거다. 버티기만 해도, 패배하더라도 당내에서 정치적 입지를 확보할 수 있다. 이미 한 번 굽히면서 실기했다. ‘나에 대한 대통령의 호불호와 상관없이, 나는 국민통합정부 공동창업자다. 함께 쓴 단일화 공동선언문이 있지 않냐’라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 지금은 담력이 실력일 때다.”

안철수 당대표 후보 캠프는 윤석열 대통령·윤핵관 언급 등을 최대한 피하고 안 후보가 총선 승리 적임자라는 점을 강조하겠다는 전략이다. 안철수 캠프 측 한 관계자는 “당원들은 네거티브가 아니라 당대표가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느냐를 묻는다. 싸우기보다 어떻게 정당을 개혁하고, 우리의 정책과 메시지를 잘 전달할지에 집중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이은기 기자 다른기사 보기 yieu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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