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전당대회에 나선 이기인 청년 최고위원 후보, 김용태 최고위원 후보, 천하람 당대표 후보, 허은아 최고위원 후보(왼쪽부터)가 2월14일 부산 지하철 서면역에서 유세를 벌였다. ⓒ시사IN 신선영

3월8일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 대진표가 확정됐다. 나경원 전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무난히 김기현 후보 대 안철수 후보 양강으로 흐를 것 같던 구도에 균열이 생겼다. 컷오프(예비 경선) 발표를 8일 앞둔 2월2일 뒤늦게 출마를 선언한 천하람 후보가 황교안 후보와 함께 최종 경선 명단에 올랐다. 현역 중진 의원인 윤상현(4선)·조경태(5선) 후보가 탈락했다.

최고위원 예비 경선에선 ‘비윤(윤석열)’ 후보들이 약진했다. 윤석열 대통령과의 인연을 강조해온 ‘친윤(윤석열)’ 현역 의원 5명 중 3명이 낙마했다. 박성중·이만희·이용 후보가 떨어지고, 조수진·태영호 후보가 살아남았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후원회장을 맡은 후보 3명은 전원 생존했다. 김용태·허은아 최고위원 후보, 이기인 청년 최고위원 후보가 모두 본경선에 합류했다.

비윤 천하람·김용태·허은아·이기인 후보는 자신들을 ‘개혁 보수 4인방’으로 표방한다. 이들은 동시에 ‘이준석계’로 분류된다. 국민의힘 전남 순천갑 당협위원장인 천하람 후보는 이준석 전 대표 때 출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회에서 활동했다. 김용태·허은아 후보는 이준석 전 대표 체제에서 각각 청년 최고위원과 당 수석대변인을 지냈다. 이기인 후보는 2014년(새누리당)·2018년(바른미래당) 성남시의원, 2022년 경기도의원에 당선됐다. 대선 기간 성남FC 후원금 의혹과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 등을 제기했다.

2월14일 네 후보는 부산·울산·경남 합동연설회를 마치고 부산 지하철 서면역에서 동시 유세를 펼쳤다. 같은 날 김기현 후보는 부산 선거대책위원회 발대식을 찾아 당원들을 만났다. 이번 국민의힘 당 지도부 선거의 유권자는 ‘당원 100%’다. 당선을 위해선 당원들이 모인 곳을 찾는 게 유리하지 않을까. 천하람 캠프는 당심이 민심을 따를 것으로 보고, 지역별로 제각기 다른 방식의 유세를 펼치겠다는 계획이다.

3·8 국민의힘 전당대회 총선거인단 수는 약 84만명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천하람 캠프가 당심이 민심과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고 보는 이유다. 지역별로 살피면 수도권(37.79%)과 영남(39.67%)에 비슷하게 약 80%의 당원이 분포돼 있다. 연령별로 보면 60대 이상 당원(42.04%)이 가장 많다. 이어 40~50대(40.15%), 30대 이하(17.81%) 순이다. 천하람 캠프의 한 관계자는 “(선거운동은) 우리를 뽑아달라고 설득하는 거지, 당협에서 당원들을 동원하는 방식으로 우리 편 모으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2월14일 서면역에서 천하람 후보는 개찰구를 오가는 시민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국민의힘을 지지하지만, 계파 정치 하고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핵심 관계자)’이 권력 줄 세우는 거 마음에 안 드실 거다. 권력의 눈치가 아니라 국민과 부산 시민의 눈치를 보는 국민의힘으로 바꾸겠다. 겁나지만 소신대로 국민의힘이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천 후보가 연설을 마치자 지나가던 시민 30여 명이 발길을 멈추고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에 나선 황교안·천하람·김기현·안철수 후보(왼쪽부터)가 2월14일 부산에서 열린 ‘부산·울산·경남 합동연설회’에 참석했다. ⓒ시사IN 신선영

비윤 후보 4명은 당내 ‘조직 표’를 확보하기에 불리하다. 애초 선거를 돕는 인원이 많지 않다. 네 후보를 지원하는 인원이 총 20명 정도다. 천하람 후보는 다른 당대표 후보들과 달리 선거사무소를 차리지 않고 필요할 때마다 공유 오피스를 사용한다. 2월13~14일 진행된 제주·부산 합동연설회 현장엔 김기현 후보 피켓을 든 당원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들은 연신 김기현 후보의 이름을 외쳤다. 허은아 후보는 제주에서 연설을 마친 뒤 “합동연설회 현장에 조직 표 있는 분들의 이름이 많이 불려서 기가 죽는 건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조직 표의 영향력, 얼마나 될까

국민의힘의 한 중진 의원은 당대표 선거에서 과거처럼 조직 표가 영향을 끼치기 어렵다고 말했다. “당원이나 국민이 옛날이랑 달라서 자기 나름의 판단이 분명히 있다. 안철수·천하람을 찍겠다는 사람한테 ‘이 사람아, 이번에는 김기현 찍어’ 한다고 찍겠나.” 그는 또한 천하람 후보의 등장으로 전당대회가 흥미로워졌다고도 덧붙였다. “천하람이 4등 안에 들어간 것만 해도 재밌는 일이다. 이준석은 박근혜 대통령 때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도 했고, 그동안의 정치활동이 많이 노출돼 있다. 천하람은 큰 선거에 데뷔한 지 이제 겨우 10일쯤 지났다.”

무엇이 다를까. 비윤 후보 4명은 ‘개혁 보수’를 내세우고 지역밀착형 공약을 선보였다. 지금까지는 정치적 노선이나 정책 방향이 다른 후보들과 선명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확실히 전선을 그은 건 ‘반(反)윤핵관’ 노선이다. 〈시사IN〉 취재진과 만난 이기인 후보는 ‘어떤 부분의 개혁을 중점에 두고 있느냐’는 질문에 “‘개혁 보수’ 후보가 오래전부터 있던 게 아니다. 나경원 전 의원-안철수 의원으로 이어지는 찍어내기에 대해서 행동해야겠다는 사람들이 모여 출마했다. 권력의 줄 세우기 문제를 강조하고 싶다”라고 답했다.

천하람 후보가 다른 후보들과 차별을 두는 것도 이 지점이다. “대통령과 당대표는 부부 관계, 운명 공동체다(김기현).”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위해 정말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안철수).” “윤 대통령의 승리를 위해 노력하겠다(황교안).” 세 당대표 후보는 2월15일 진행된 첫 TV 토론에서 앞다투어 윤석열 정부와의 호흡을 강조했다. 천하람 후보는 컷오프 전 ‘대통령의 공천 불개입’과 ‘공천 자격고사 의무화’를 공약했다. 대통령의 당무 개입을 차단하겠다는 의도다. 2월14일 부산 합동연설회에선 윤핵관을 임진왜란 당시 ‘원균’에 빗대고 “국민의힘을 윤핵관의 손에서 지켜내겠다”라고 강조하며 ‘반윤핵관’ 노선을 분명히 했다.

천하람 캠프의 다음 목표는 결선투표 진출이다. “국정 운영의 적”으로 지목된 안철수 후보 측은 비윤 이미지를 최소화하고, 김기현 대 안철수 양강 구도로 선거를 이끌려 한다. 안철수 후보는 당대표 선거를 “안철수와 김기현 두 사람 중에서 선택하는 선거”라고 규정한 뒤 양자 토론을 제안했다. 양강 구도에선 천하람 후보의 존재감이 사라진다. 천하람 후보는 안철수 후보에게 공세적으로 나섰다. 안 후보와 차이를 드러낼수록 윤핵관이 아닌 새로운 대안을 찾는 유권자의 표가 안 후보에서 천 후보 쪽으로 몰릴 거라고 보기 때문이다.

컷오프 때처럼 비윤 4인방이 본경선에서 활약할 수 있을까. 국민의힘의 한 관계자는 “이기인 후보가 컷오프를 통과한 게 그쪽엔 청신호다. 이기인 후보의 인지도가 매우 낮았는데, 11명 중 4명 안에 들었다. 책임당원 사이에서도 이 라인업이 통하는 세력이 있다는 얘기다. 4인방의 등장으로 전당대회가 흥행하면, 투표율이 올라갈 거다. 역대급 당원 규모 선거에서 이변이 일어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한 수도권 원외 당협위원장은 이변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준석 전 대표가 승리한 2021년 국민의힘 전당대회 때와 상황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2021년 전당대회를 앞두고 국민의힘이 받아든 성적표는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에서 내리 3연패였다. 당원들에게 대선 승리가 절박했고, ‘이준석’으로 상징되는 변화를 선택했다는 주장이다. “이준석 전 대표는 2022년 대선 때 일탈행위를 해서 당원들을 불안하게 했다. 정권을 가져온 뒤 치러지는 당대표 선거다. 당원들은 안정적으로 당을 이끌 사람을 찾는다. 지금 당원들이 김기현 후보가 좋아서 지지하는 게 아니다. 윤 대통령과의 궁합을 보는 거다.”

“후보가 천하람인지 이준석인지 헷갈린다”

이준석 전 대표는 비윤 후보 넷을 묶는 구심점이다. 이 전 대표는 온·오프라인에서 네 후보 지원에 적극 나섰다. 제주·부산 합동연설회에 일찍 도착해 당원들과 인사를 나눴다. 제주 4·3 유족 간담회, 부산 서면역 유세 때도 동행했다. 김기현 후보는 이 모습을 두고 “후보가 천하람인지 이준석인지 헷갈린다”라고 비꼬았다.

2월14일 부산에서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와 지지자들이 ‘천아용인’이라고 쓰인 피켓을 들고 있다.ⓒ시사IN 신선영

장성철 정치평론가는 “이준석이 전면에 나서면서 천하람이 가려져 있고, 천하람에게 집중도가 떨어진다. 이준석의 선거 전략은 김용태와 허은아를 최고위원에 입성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인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전당대회 흥행 자체가 이준석 전 대표의 목표라고 봤다. “당대표와 청년 최고위원은 어렵더라도, 최고위원 둘 중 하나라도 당선된다면 이 전 대표의 존재 이유를 입증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대통령의 시간이 흐를수록 이 전 대표의 공간이 넓어질 거다.”

〈시사IN〉은 천하람 후보에게 이준석 전 대표와의 차별점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천 후보는 이 전 대표와 달리 안정적으로 당 지도부를 이끌 수 있다고 답했다. “정치는 좋은 사람들이 ‘계파’가 아니라 좋은 ‘정파’를 만들어서 함께해야 한다. 지난 지도부가 과하게 공격적으로 비칠 수 있는 건 이준석 전 대표와 뜻을 같이하는 정파가 없었기 때문이다. 개혁 후보 네 명이 모두 당선되고, 내가 지명직 최고위원을 지명하면 최고위원회를 안정적인 다수 구도로 이끌어갈 수 있다. 이준석 대표 시절에 있었던 다툼이 훨씬 줄어들게 된다. 당대표에 취임하는 즉시 뜻을 같이하는 현역 의원 10명 이상을 확보해서 원내 정치도 훨씬 더 안정적으로 하겠다.”

천하람 후보는 본인을 ‘곽튜브’(유튜브 구독자 154만명인 ‘빠니보틀’ 채널에 출연하다 독립해서 구독자 138만명인 여행 유튜버로 성장함)라고 소개하며 “이준석 시즌2가 아니라, 이준석 전 대표를 능가하는 새로운 보수의 큰 재목이라는 걸 보여주겠다”라고 말했다. 천하람 후보가 당원과 국민에게 자신이 개혁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지닌 후보라고 설득할 시간이 3·8 전당대회까지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기자명 제주·부산 이은기 기자 다른기사 보기 yieu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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