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한길 역할론’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국민의힘이 10월11일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참패한 이후부터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힘 지도부가 비상대책위원회로 바뀌거나 윤석열 대통령 중심의 신당이 창당된다면, 김한길 국민통합위원회(통합위) 위원장이 중책을 맡을 거라는 전망이다.
김한길 위원장은 부인했다. 10월23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신당 창당은 생각해본 일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다”라고 말했다. ‘총선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 생각한 것이 있느냐’라는 질문에는 답하지 않고 자리를 떴다. 이튿날, 총선 때 별도의 역할을 할 계획이 없다고 추가로 밝혔지만, 김 위원장을 향한 여권의 관심은 꺼지지 않는다.
10월17일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이 결정적이었다. 윤 대통령은 김한길 위원장과 김기현 대표 등 국민의힘 지도부, 주요 부처 장관이 함께한 만찬 회동에서 “통합위 활동과 정책 제언이 내게도 많은 통찰을 줬다고 확신한다” “우리나라에 있는 위원회 중 가장 열심히 일한 위원회가 아닌가”라고 김 위원장을 공개적으로 치켜세웠다.
2013년 야당 대표이던 김한길 위원장은 윤석열 당시 ‘국정원 대선개입 댓글 의혹사건’ 특별수사팀장을 지원하며 윤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김 위원장은 9월23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갈등이 생기고 나한테 조언을 구하면서 더 가까워졌다. (대선 출마 상의에 관한) 얘기를 안 했다면 거짓말이다”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정치 입문 초기부터 김 위원장이 정치적 조언을 해왔다는 의미다.
윤석열 대통령의 ‘정치적 조력자’ 역할은 현재진행형이다. 김 위원장은 앞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을) 한 달에 몇 번은 본다. 통합위 보고 사항만 들고 가는 건 아니다. 이런 얘기는 꼭 필요하겠구나 싶으면 말한다”라고 말했다. 김한길 위원장 측 관계자는 윤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각종 현안을 두고 의견을 나눈다고 강조했다. “신뢰는 자주 만나야 생긴다. (두 사람 사이에) 남다른 믿음이 있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김한길 위원장은 지난 대선 때 국민의힘 선거대책본부 외곽 기구인 새시대준비위원회 위원장을 맡으며 공식적으로 윤석열 당시 대선후보를 돕기 시작했다. 신지예 전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영입으로 논란이 일자 지난해 1월3일 위원장직을 사퇴했지만, 이후에도 바깥에서 선거를 도왔다. 당시 대선 TV 토론 준비에 관여했던 국민의힘 선대본부의 한 관계자는 “김한길 위원장이 토론 내용이나 태도에 대해 윤석열 후보에게 조언했다”라고 말했다.
“대통령의 생각에 영향을 끼치는 사람”
국민의힘의 대선 승리 이후, 김한길 위원장은 국무총리·대통령 비서실장 등 윤석열 정부의 요직 후보로 거론됐다. 당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한 관계자의 말이다. “김한길은 안 된다. 김한길은 우리 당 사람이 아니고 우리 당에 해를 끼치는 사람이다. 예를 들어 ‘어쩔 수 없이 국민의힘을 선택했다’ 같은 윤석열 대통령의 과거 발언은 김한길의 생각이다.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으로 거론되는 사람들은 수족이다. 대통령의 생각에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중요한데, 그게 김한길이다.”
김한길 위원장은 ‘국민의힘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당에 위험하다’라는 평가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김한길 위원장을 두고 곧잘 이런 비판이 나온다. 김한길 위원장의 뿌리가 민주당 쪽에 있기 때문이다. 김한길 위원장은 1996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권유로 정치(새정치국민회의 비례대표)를 시작해 민주당 계열 정당에서 대부분의 정치 경력을 쌓았다. 국회의원 4선(15·16·17·19대)을 하는 동안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민주당‧새정치민주연합 대표를 맡아 당을 이끌기도 했다.
김한길 위원장 측 인사들은 김 위원장이 정치 입문 직후부터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전폭적 신뢰를 받았다고 이야기한다. 김한길 위원장도 2008년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1997년 대선에서) 정치권에 막 들어온 초선의원한테 전권을 주다시피 했다. 그때 DJ는 누가 어떤 문제에 대해 말하면 ‘김한길 의원하고 이야기했어?’라고 했을 정도다”라고 말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이었던 박지원 전 국정원장은 10월24일 〈시사IN〉 유튜브 ‘정치왜그래’에서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김한길 위원장은 높은 사람의 귀를 붙드는 특별한 재주를 가지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김한길 위원장한테 귀를 잘 붙들렸다.” 김한길 위원장은 김대중 정부에서 청와대 정책기획수석비서관, 김대중 새천년민주당 총재 비서실장, 문화관광부 장관 등을 지냈다.

국민의힘 내부에선 총선에서 ‘김한길 역할론’이 현실화하면 보수 지지층의 반발로 당이 분열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김한길 위원장이 여러 차례 창당이나 정계 개편을 주도해온 것도 경계하는 지점이다. 김한길 위원장은 새천년민주당 탈당 후 열린우리당 창당(2003년), 중도개혁통합신당·대통합민주신당 창당(2007년), 민주당과 통합민주당 합당(2008년) 과정을 이끌었다. 2014년 민주당과 안철수 대표가 이끄는 새정치연합을 통합하면서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를 맡기도 했다. 2016년에는 안철수 의원과 탈당해 국민의당 창당을 주도했다.
김한길 위원장을 향한 윤석열 대통령의 신뢰는 단단해 보인다. 윤 대통령은 8월25일 통합위 1주년 성과 보고회에서 “전 부처가 통합위 자료를 정책에 반영하라”고 말했다. 두 달 후인 10월23일 보건복지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통합위의 제안(자살예방 상담전화 통합 운영)을 처음으로 정부 정책에 반영해 추진하기로 발표했다.
앞서의 김한길 위원장 측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김한길 위원장의 정치 경험을 신뢰한다고 주장했다. “지금 우리 당(국민의힘)은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이후 패닉에 빠졌다. 김한길 위원장은 김대중·노무현 등 여러 대통령을 모시면서 큰 선거에서 본인이 직접 기획하고 공천했던 경험이 많다. 당에 위기 상황이 오자 김한길 위원장의 경험을 당 내외에서 평가하고 있고, 그 연장선상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각별한 신뢰를 드러내고 있다.” 총선을 6개월 앞두고 국민의힘이 난관에 직면한 상황에서 김 위원장이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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