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3일 행동 구독자 20여 명이 와이어 아티스트 좋아은경씨와 달력 철사를 분해하고 있다.ⓒ시사IN 조남진

새해 첫 주말에 하기 좋은 일은 뭘까? 지난해 달력을 처분하려다가 주저하며 내려놓았던 경험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종이로 분류하면 될 것 같지만 그리 간단하지 않다. 재활용 분리배출은 ‘제대로’ 하려면 꽤 번거롭거나 까다롭다. 달력만 해도 그렇다. 달력을 묶고 있는 철사 스프링을 분리하는 게 첫 번째 난관이라면, 종이도 다 같은 종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코팅 여부 등을 꼼꼼히 따져보면 사실은 재활용이 어려운 쓰레기인 경우가 더 많다.

버려진 철사를 이용해 작품을 만드는 와이어 아티스트 좋아은경(활동명)씨에게 연말연시는 재료를 수급하기 위한 최적의 시간이다. 동네마다 각기 다른 재활용 배출일에 맞춰 산책 동선을 짠다. 종이 배출함에는 제대로 분리되지 않은 철 지난 달력이 반드시 있었다. 도구는 철사나 전선을 구부리거나 절단하는 데 사용하는 플라이어(펜치)가 전부다. 철사 스프링 끝부분을 찾아 플라이어로 잡아 당겨주기만 하면 된다. 예상과 달리 철사가 저항 없이 스르륵 풀릴 때 ‘손맛’이 있다. 플라이어가 없다면 맨손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좋아은경씨는 그렇게 모인 철사를 구부리고 오므리며 기후위기와 관련된 메시지를 만들어 공유한다.

“‘희망은 숲과 산과 강이 자신들을 보호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일상적인 투쟁에 나선 사람들의 어깨동무 안에서 자라난다(아룬다티 로이)’는 문장을 읽고 한참을 멍하게 지냈어요. 우리는 우리가 지구를 지킨다고 말하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지구가 나와 우리를 지키고 있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12월3일 오후 서울 혁신파크 미래청 오픈스페이스에 행동 구독자 20여 명이 모였다. 좋아은경씨가 기후위기와 관련한 작품 활동을 하게 된 이유와 이야기를 나누고,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작품도 함께 봤다. 이날 모임의 준비물은 철 지난 달력. 참가자들은 각자 가져온 달력에서 철사를 분리하는 법을 배우기도 했다. 2022년 달력을 분해하며 2023년으로 갈 준비를 한 셈이다.

모임은 행동 구독 활동의 일환이다. 행동 구독은 〈시사IN〉과 사회적 협동조합 오늘의행동이 2022년 함께 진행한 ‘기후위기와 민주주의를 걱정하는 당신에게’ 캠페인이다.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또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작은 행동을 돕는 도구를 보내는 방식이다. 3600초·씨앗폭탄·사용하면·벌꿀호텔 등 행동 도구가 2022년 한 해 동안 행동 구독을 신청한 235명에게 격월로 배달됐다.

오늘의행동은 행동 구독자를 위해 1~2개월에 한 번씩 소규모 워크숍도 열었다. 행동 구독자를 대상으로 모집한 ‘지구를 그리는 동물들(지그동)’ 소모임은 6개월간 온·오프라인 활동을 통해 색칠공부 엽서를 만들었다. 지그동 멤버들이 엽서에 담길 이야기를 구성하고, 일러스트레이터 이정현씨가 그림 작업을 맡았다. 총 4장으로 구성된 색칠공부 엽서에는 ‘1943년 태어난 어린왕자가 가까운 미래에 다시 돌아온다면 지구는 어떤 모습일까’ 상상한 모습이 담겨 있다. 이 밖에도 냉장고를 대신할 채소 저장고를 만들면서 필수 가전품인 냉장고의 쓸모에 대해 토론하거나 깨진 그릇을 이어 붙이는 방법을 배우기도 했다.

2022년 6월17일 서울 목운중학교 학생들이 오늘의행동과 함께 씨앗폭탄을 만들고 있다. ⓒ선재 제공

“일상 속 작은 실천이 도움이 될까요?”

그중에서도 가장 호응이 좋은 활동은 ‘씨앗폭탄’ 만들기였다. 행동 도구 중 하나였던 씨앗폭탄을 받아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만들어보는 시간이었다. 행동 구독자인 교사의 요청에 응해 씨앗폭탄 키트를 들고 오늘의행동 활동가들이 직접 경기도 평택시 죽백초등학교 ‘그림책 읽는 친구들’과 서울 목운중학교 ‘기후위기 대응 독서반’을 찾기도 했다.

흙 속에 야생화 씨앗 26종을 담아 폭탄 모양으로 빚은 씨앗폭탄은 게릴라 가드닝 활동을 돕는 행동 도구다. 도로변, 가로수, 아파트 앞 버려진 화단 등 방치된 공간에 던질 수 있도록 제작됐다. 땅과 흙이 매우 제한적인 도시에서 야생화(잡초)는 나무만큼이나 탄소 저감에 도움이 된다. 야생화가 뿌리내린 땅은 이내 부드러워지고 더 많은 미생물이 살 수 있는 흙으로 변한다. 잡초가 다른 식물들도 다시 뿌리내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 씨앗폭탄 워크숍을 이끈 김현아 정원활동가(마인드풀가드너스)는 “지구의 피부를 치유하기 위해 가장 먼저 들어오는 개척종이 바로 잡초”라고 말하기도 했다.

작은 행동의 소용과 필요는 자주 의심받는다. 기후위기에 관한 각종 데이터는 보는 이를 압도하곤 한다. 나아지는 부분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고, 모두가 합심해 나쁜 방향으로만 달려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미 너무 늦었다’거나 ‘돌이킬 수 없다’는 주장은 우리를 무기력에 빠뜨린다. 그린피스와 온꼼지 작가가 협업한 웹툰 〈기후변화 그림일기〉에는 “일상 속 작은 실천들이 기후변화 대응에 도움이 될까요?”라는 질문이 나온다. 주인공들은 이렇게 답한다.

“네, 당연하죠. 의심하지 말고 일상 속 실천을 계속 이어나가 주세요. 작은 절약이 모이면 큰 절약이 됩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실천이 있어요. 바로 기후위기에 대해 타인과 이야기하기입니다. 알고 있는 지식과 경험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뜻이 맞는 사람들과 크고 작은 실천을 함께할 수 있게 되면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고 그 합의가 모여 정치인들에게 메시지를 보낼 수 있게 될 거예요.”

 

청소년에게 2023 행동 도구를 보내드립니다

사회문제는 개인이 극복하기엔 너무 거대하고 막막합니다. 하지만 외면하거나 회피하기보다 자신의 삶 속에서 ‘내가 행동하고 있는 것’을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일은 모두의 행동으로 이어지는 단초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의행동 행동 도구는 내 삶을 들여다보는 것에서 출발하지만 ‘우리’가 함께 문제를 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로 이어집니다. 2022년 〈시사IN〉과 오늘의행동이 함께 진행한 공동 캠페인은 끝났지만, 오늘의행동은 2023년에도 행동 구독을 이어갑니다. 행동 구독비는 월 1만5000원으로, 기부금 영수증 발행이 가능합니다(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 참조 https://todaygoodaction.org).


이와 별개로 〈시사IN〉 청소년 독자 및 동아리, 모임 등에 행동 구독을 무료로 지원하고자 합니다. 지원을 원하시는 분들은 간단한 자기소개(모임 소개) 및 연락처를 기재해 1월20일(금)까지 book@sisain.kr로 보내주세요. 별도의 양식은 없으며, 선정된 분에게는 1월27일(금) 개별 통지하겠습니다.

기자명 장일호 기자 다른기사 보기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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