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기사는 제목만으로도 괴롭다. 최근에는 서울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보도를 접하고 그렇게 느꼈다. 이 끔찍한 사건은 지난 9월14일 일어났다. 31세 남성이 2년 넘게 스토킹해온 여성 역무원을 지하철 화장실에서 살해했다. 두 사람은 서울교통공사 2018년 입사 동기였고, 피의자는 스토킹 행위로 지난해 10월 직위해제 당한 상태였다. 피해자를 스토킹한 혐의 등으로 기소돼 재판받아온 남성은 1심 선고를 하루 앞두고 범행을 저질렀다.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벌어질 때마다 언론은 정의의 사도가 되거나, 또 다른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에선 서울교통공사의 미흡한 대처와 느슨한 법적 절차를 지적하는 보도가 전자에 해당한다. 여러 기사에 따르면 남성은 교통공사에서 직위해제 되었는데도 내부망을 통해 피해자의 근무지와 업무 시간, 집 주소까지 파악할 수 있었다. 그에 앞서 지난해 법원은 경찰이 신청한 남성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주거지가 일정하고 증거인멸·도주 우려가 없다는 이유였다. 지난해 10월과 올해 1월 두 차례 남성을 고소한 피해자는 결과적으로 어떤 보호도 받지 못한 채 목숨을 잃었다.
이번 사건을 다룬 몇몇 보도를 보면 교통공사나 법적 절차만 탓할 수 없다. 한국 사회가 지키지 못한 한 사람을 두고 여러 매체는 또 조회수 장사를 벌였다. 클릭 수를 높이기 위해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제목을 단 기사는 여전했다. 그 전형은 〈위키트리〉 기사 “머리에 ‘이것’ 쓰고 신당역 20대 여성 역무원 살해…충격적이다”이다. 범행 당시 남성은 위생모를 쓰고 있었다. 이 매체는 기사 제목에 굳이 ‘이것’이라는 단어를 붙여 뉴스 소비자의 호기심을 유발하는 방식으로 조회수를 노렸다. 거기다 ‘충격적’이라는 표현까지 더해 자극성을 높였다. 지금도 이런 제목을 다는 매체가 있다는 게 내겐 더 충격적이다.
범죄 보도가 조회수 확보 수단이어선 안 돼
노골적으로 보이진 않지만, 피의자 주변인의 반응을 기사화하는 것도 자극적인 보도 방식이다. 〈헤럴드경제〉의 ‘[단독] ‘신당역 살해범’ 대학 동기 “여학생과 문제없었는데, 상상 못했다”’가 그런 유형이다. ‘대학 시절 피의자의 교우관계가 원만했다’는 평가는 지금 범행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 보도를 그대로 베낀 〈인사이트〉는 기사 제목을 “‘신당역 살인범’의 대학 동기가 폭로한 ‘상상도 못할’ 전주환의 학창 시절”로 달았다. 평범한 사람이 흉악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식의 극적 효과를 의도해 뉴스 소비자의 시선을 끌려고 한 것이다.
범죄 보도가 조회수 확보 수단이 돼선 안 된다. 피해자가 존재하는 사건이고, 조회수를 노리는 보도 방식이 2차 가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조회수가 아니라 피해자(유가족) 보호와 사회적 의미에 초점을 맞춰 신중하게 보도해야 한다. 사건의 발생과 심각성을 알리는 데 그치지 않고, 사건이 남긴 숙제를 짚으며 궁극적으로 또 다른 범죄를 막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다.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발생 열흘 만에 서울교통공사 사장이 피해자와 유족, 시민들에게 공식 사과했다.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고도 했다. 사과와 재발 방지 대책 마련, 몇몇 매체도 지금 당장 해야 할 일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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