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에는 분명히 귀천이 있고, 우리는 천하게 비춰지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삶을 살게 된 것 같아요. 저희같이 허드렛일 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세상의 시각은 그렇잖아요. 우리가 아무리 자부심이 있은들 무엇 하겠냐는 거예요.”
근래 가장 인상 깊었던 인터뷰를 꼽을 때, 지난해 여름 이홍구씨와의 강렬한 만남을 떠올린다. 그는 ‘서울대 청소노동자 사망사건’의 유족이다. 2021년 6월 서울대 기숙사에서 일하는 50대 여성 청소노동자가 휴게실에서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고인이 사망 직전까지 고된 일에 시달리던 정황과 함께 업무와 무관한 필기시험을 요구받았던 사실이 드러나며 시민들의 분노를 크게 샀다. 남편 이홍구씨 역시 서울대의 시설관리 노동자였다.
“못사는 사람을 더 쥐어짜야 그 부를 유지할 수 있는 정글과 같은 세상이 돼버린 거죠. 저는 그렇게 안 살아보고 싶어요. 제가 한국에 올 때 폐지라도 주워서 행복하게 살고 싶은 게 꿈이었던 것처럼 많이 갖지 않아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는 그런 삶을 살고 싶습니다(‘직업으로 우리의 삶을 속단하는 당신들에게’, 씨리얼).”
부부는 해외에 나가 가난한 이들을 돕는 삶을 오랜 기간 살다 왔다. 귀국을 한 뒤 자식에게 손 벌리기 싫어 본인이 먼저 서울대의 기계노동자가 되었고, 나중에 아내에게도 미화 일을 권했다고 한다. 담담하게 풀어낸 이야기에는 지금껏 바깥으로 꺼내지 않았던 고민과 통찰이 짙게 배어 있었다. 인터뷰 영상 발행 뒤 SNS에서 “인문학 강의 한 편을 들은 기분” “최근에 본 모든 영상 중 가장 마음을 울리는 영상”이라는 반응이 잇따랐다.
‘삼프로TV’의 성공으로부터 정작 배워야 할 것
우리는 누군가 자신만의 템포로 차분히 내면의 이야기를 꺼낼 때 귀를 기울이게 된다. 타인의 삶에 대한 이해는 보통 거기에서 시작된다. 당시 사건과 관련해 많은 보도가 쏟아졌는데, 이런 이야기는 처음이었다. 인터뷰하기 전에 찾아본 기사에서는 유족과 고인의 삶이 단편적으로만 보였다. 이홍구씨의 인터뷰 역시 ‘억울하다’는 정도의 감정을 전달한 것이 전부였다.
뉴스를 읽을 필요 없다는 말을 잔뜩 써놓은 〈뉴스 다이어트〉라는 책에 이런 대목이 있다. 저자의 지인들은 훌륭하면서 도덕적이기까지 해서 저널리스트라는 직업을 선택했지만, 늘 본인의 실력보다 못한 결과물을 내놓는다는 것이다. 깊이 사고할 ‘시간’과 복잡한 사안을 설득력 있게 설명할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실은 내 동료들도 그렇다. 이 인터뷰가 깊은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었던 건 인터뷰어가 뛰어났기 때문이 아니다. 기존 보도 중에 그런 내용과 분위기를 담아내기 적합한 그릇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내가 몸담고 있는 ‘씨리얼’은 길이와 형식에서 자유로운 매체다. 나는 필요한 뉴스가 더 잘 들리도록, 중요한 맥락이 더 잘 드러나도록 만들고 다듬어 내보이는 일이 지금 내가 하는 일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뉴스 생산자들에게 더 다양한 형태의 콘텐츠를 만들 기회가 주어지는 것. 언론의 신뢰 회복은 거기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믿는다. 이미 ‘삼프로TV’ 등의 성공으로 지적된 바다. 다만 그들로부터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그들의 성공을 동경하면서도 ‘돈 되는 뉴스’에만 초점을 맞추고 정작 배워야 할 것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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