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20일 당시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는 윤한홍 의원, 김용현 경호처장(왼쪽부터)과 함께 대통령실 용산 이전 기자회견에 직접 나섰다.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가 물려받은 건 세계 최고 수준의 가계부채와 국가부채 1100조원에 육박하는 장부다. 그렇다고 건전재정을 훼손할 수 없기 때문에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8월25일 2023년도 예산안 사전 브리핑).”

새 정부의 정책 우선순위와 재정 운용 기조를 가늠하는 바로미터는 첫 예산안이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이후 처음 편성한 2023년도 예산안을 8월30일 확정했다. 재정 운용 기조는 ‘허리띠 조이기’다. 지난 5년간 늘어난 나랏빚을 줄이고, 세계적인 경제위기에 대응하려는 조치라는 게 윤석열 정부의 설명이다.

그런데 예산안에 담은 정부의 ‘경제 메시지’는 금세 흔들렸다. 대통령실이 878억6300만원을 들여 영빈관을 건립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다. 영빈관 신축 계획은 기획재정부가 9월2일 국회에 제출한 ‘국유재산관리기금 2023년 예산안’ 자료에 포함돼 있었다. 기금은 국유재산을 처분하거나 관리하면서 생긴 수입금을 재원으로 한다. 공공청사, 관사를 짓거나 행정 수요에 대비한 땅을 사는 데 쓰인다.

자료를 보면, 영빈관 신축 사업 주체는 대통령비서실이었다. 사업 목적은 외빈 접견 및 각종 행사 지원, 장소는 대통령집무실 인근이었다. 사업 수혜자는 ‘국민’이며, 외빈 접견장 마련을 통한 국격 제고와 행사장 임차 예산 절감 등이 기대효과로 제시됐다. 사업 기간은 2년(2023~2024년)으로 내년에만 497억4600만원이 책정됐다. 짧은 기간 사업을 끝내기 위해 ‘설계시공 일괄입찰 방식’으로 추진하겠다는 계획도 담겼다.

대통령실이 영빈관을 새로 짓기로 한 이유는 대통령집무실 이전으로 청와대의 기존 영빈관을 사용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앞서 대통령실은 그동안 집무실 이전에 496억원 수준의 예산이 필요하다고 밝혀왔다. 다만 이는 대통령집무실 리모델링 등 이전을 위한 최소 비용이라, 다른 정부 부처 예산 306억9500만원을 추가로 끌어 쓰고 있었다. 앞으로도 관련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밖에 없어서 ‘예산 낭비’ 지적이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878억원 이상의 돈이 사실상 긴축재정을 추진하겠다며 편성한 예산안 속에 추가 투입된 사실이 확인됐다. 영빈관 신축 계획은 대통령실 이전에 따른 예산 낭비 논란 재점화와 함께 정부 재정정책 신뢰도에도 상처를 냈다.

대통령실은 논란이 불거진 다음 날 오후(9월16일)까지도 “용산 시대에 걸맞은 영빈관의 필요성에 대해 많은 국민이 공감할 것”이라며 추진 계획에 변화가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다 같은 날 저녁 8시30분 “국격에 걸맞은 행사 공간을 마련하고자 했으나, 이 같은 취지를 충분히 설명해드리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라며 계획을 철회했다.

철회를 결정했는데도 논란은 가라앉지 않는다. 불투명한 추진 경과에 대한 의혹은 더 커지고 있다. 기재부가 예산을 편성하고 국회에 제출할 때까지 대통령실은 영빈관 신축 계획을 외부에 밝히거나 논의를 공개적으로 진행하지 않았다. 예산안이 확정된 당일 국무회의를 주재한 한덕수 국무총리는 9월19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신문을 보고 알았다”라고 밝혔다. 대통령실 수석들도 전혀 몰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여당인 국민의힘 의원들도 처음 듣는 계획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878억원 넘는 예산이 반영된 경위를 총리도, 대통령실 핵심 참모들도, 국회에서 정부 예산안 심사를 지원할 여당도 모르고 있었다는 뜻이다.

9월19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한덕수 국무총리는 영빈관 신축 계획을 “신문을 보고 알았다”라고 답했다. ⓒ연합뉴스

“공론화 없이 추진되어선 안 되었다”

대통령실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영빈관 신축 계획은 경호처의 요구와 대통령비서실 협조로 추진됐다. 경호처는 외부 호텔이나 개방된 청와대 영빈관을 사용하면 경호 비용과 부담이 커진다고 주장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 청사로 이전한 대통령실은 리모델링 공사를 한 집무실과 국무회의장 등 주요 시설을 제외하고 국방부 시설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향후 외빈이 방문할 때를 대비해 영빈관을 지어야 한다’ ‘국격에 걸맞은 공간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고 한다.

소수의 대통령실 관계자 사이에 ‘실무적 논의’는 이뤄졌지만, 예산안이 확정될 때까지 ‘정무적 판단’은 없었다. 대통령실 이전에 따른 추가 비용 논란, 재정 기조와의 엇박자 등에 대한 고려가 없었다는 것이다. 경호처와 대통령비서실-기재부 사이에 영빈관 신축 예산 편성 논의는 8월 한 달 사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지지율 하락과 대통령실 및 정부 부처의 정책 혼선, 인사 문제 등으로 대통령실의 ‘정무 기능 부실’ 지적이 끊이지 않던 시점이다. 대통령실은 9월 초 추석 연휴 직전 대규모 인적 개편을 단행했지만, 비서관급 이하 실무진을 내보내거나 교체하는 데 그치면서 정무 기능 개선에 대한 의심을 완전히 걷어내지 못했다.

경호처와 대통령비서실이 관여한 대통령실 관련 공사는 계속해서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6월에는 대통령비서실이 소규모 신생 업체와 대통령집무실 리모델링 공사를 수의계약하면서 특혜 의혹이 불거졌다.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 공사는 김건희 여사가 코바나컨텐츠를 운영할 당시 전시를 후원한 업체가 맡아 논란이 됐다(〈시사IN〉 제777호 ‘3시간 만에 이뤄진 ‘대통령 관저 공사’ 계약’ 기사 참조). 업체를 검증한 곳이 경호처였다.

대통령실 관련 공사는 보안을 이유로 경호처와 대통령비서실 등 소수 관계자가 관여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대통령실 안팎에선 영빈관 신축 계획 철회 외에 의사결정 과정 및 업무 점검 등 추가 조치가 없다면 앞으로도 비슷한 사례가 반복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실 이전에 따른 전체 소요 예산과 집행 내용, 경위를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통령실 사정을 잘 아는 한 여권 관계자는 “영빈관 신축 계획은 공론화 없이 추진되어선 안 되었다. ‘격’은 공간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공간을 채우는 내용까지 갖춰져야 높아진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문상현 기자 다른기사 보기 moo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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