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대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의 모습.ⓒ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 대통령실 이전 계획을 처음 공개했을 때, 내심 반가웠다. 대통령이 스스로 구중궁궐을 떠나 ‘함께 일하는 공무원’이 되겠다고 한 것이 아닌가. 생략과 과장이 섞인 계획, 얼짱 각도로 그려진 새 대통령실 조감도를 보고 의구심이 솟구쳤지만 취지에는 공감했다.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라는 윤 대통령의 말은 흥미로웠다. 대통령이 제왕적이 되는 이유는 문화·시스템 못지않게 공간의 역할도 크다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나오고 있었다. 청와대에는 ‘임금이 거처하는 곳’이란 개념이 적용된 본관 등 대통령 한 사람을 위한 권위적 공간이 있다. 대통령과 주변인들 의식은 개인 차원의 영역이지만, 그로 인한 영향은 개인으로 끝나지 않는다.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는 말은, 세련되진 않아도 ‘제왕적 대통령제 종식’과 ‘소통 강화’라는 목표에 힘을 실었다. 윤 대통령의 구상대로라면, 앞선 정부들이 청와대 안팎으로 올려온 담을 단번에 부수는 획기적 변화가 될 터였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의 ‘의미 있는 시도’는 이번 정부의 대표적인 리스크 중 하나가 되었다. ‘공간’ 이전을 위한 급조된 계획이 각종 부작용을 만들고 있다면, 대통령실과 여당이 보이는 ‘의식’은 벽을 쌓는다. 대통령의 말실수와 인사 난맥상, 정책 혼선에는 침묵한다. ‘소통의 상징’이었던 출근길 문답(도어스테핑)에선 질의응답 총량을 줄이고 민감한 현안에는 답변하지 않는다. 문제 제기와 지적에는 강경 대응하고, 야당과는 취임 5개월이 지나도록 만나지 않는다. 한 울타리 안에서 다른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배신자’ 낙인을 찍는다. 대통령을 왕으로 만들고 겹겹의 담을 세운다. 용산 대통령실은 새로운 구중궁궐이 되고 있다. 

순수한 물리법칙이 아닌 인간의 행위와 의식이 개입하는 현실 세계에선 일방적인 원인과 결과, 지배와 종속 관계는 없다. 공간과 의식의 관계도 다르지 않다. 특정 공간이 고정적이고 결정적인 이미지와 의식을 만들지 않는다. 공간이 의식에 영향을 미칠 순 있지만 결국 공간을 만들고 의미를 부여하는 건 사람이다. 돌이켜보면 청와대라는 공간이 역대 대통령의 의식을 지배한 일은 없었다. 공간을 옮겼으니 이제는 탓할 곳도 없다. 

기자명 문상현 기자 다른기사 보기 moo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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