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마지막 날, 광주 전일빌딩을 들렀다. 빌딩 꼭대기에서 바로 앞에 있는 옛 전남도청이 다 보였다. 붉은 글씨로 ‘5·18 최후항쟁지! 옛 전남도청’이라고 쓰인 건물 앞 광장에서 아이들이 자전거나 보드를 타고 있었다. 전일빌딩에서 마주한 ‘그날들’의 모습과 겹쳐져, 42년 전에는 상상할 수 없던 일상에 가닿았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단 한 가지만 빼고.
전일빌딩은 ‘북한군 개입설’이 왜 틀렸는지 공들여 반박하고 있었다. 빈약한 근거로 펼치는 주장에 실소가 나왔지만, 그냥 두면 쉽게 퍼지는 게 가짜뉴스다. 결국 이렇게까지 에너지를 써가며 진지하게 공박해야 하는 현실을 목격하니 좀 아찔했다. ‘진실은 힘이 세다’ 같은 말이, 실상은 그렇지 않기에 당위적 차원에서 유통되는 게 아닌지 의심까지 들었다.
며칠 후 ‘전일빌딩’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일이 생겼다. 5월5일 윤석열 대통령비서실 비서관급 1차 인선이 발표됐다. 기사를 마감하던 중이라 4쪽짜리 보도자료를 대충 훑어보다 순간, 멈췄다. 세 번째 장에 이시원이라는 이름이 있었다. ‘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의 수사·기소·공판 담당을 했던 그 이시원 검사가 신임 정부의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1급)으로 임명됐다.
증거 조작이라는 희대의 뉴스에도, 2014년 이시원 검사는 정직 1개월 징계만 받았다. 검찰은 국정원 요원과 민간인 협조자만 기소했다(〈시사IN〉 제766호 “이시원 검사는 진짜 ‘간첩 조작’ 몰랐을까” 기사 참조). 검사가 아니었어도 이렇게 끝났을지 당시에도 자주 생각했다. ‘제보자가 준 가짜 자료를 검증하지 않고 보도한 언론인’이라고 가정하면 쉬운 일이다. 형사처분과 억대 소송이 따라붙었을 테다. 그러나 그는 ‘속았다’라는 말로 넘어갔고 문재인 정부 들어 검찰을 떠났다. 2022년 5월 공직으로 돌아왔다.
한 달 뒤 이번엔 ‘유우성 보복기소 사건’을 담당한 이두봉 검사장이 승진했다. 일련의 상황이 ‘검찰은 틀리지 않았다. 간첩 혐의를 증명하지 못했을 뿐이다’라는 조직적 외침으로 들린다. 무고한 사람을 간첩으로 조작하고 보복했던 국가권력이 틀렸다는 단순한 사실은 언제까지 싸워야 진실이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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