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22일 원청업체 ㈜동방 평택지사 사무실 앞에서 고 이선호씨의 1주기 추모식이 열렸다.ⓒ시사IN 윤무영

아침에 일찍 일어납니다. 아직도 눈이 일찍 떠져요. 새벽 5시 반이면 아침을 먹고 6시 반에 회사로 출발합니다. 회사에 가면 텔레비전을 켜는데, 하루 걸러 하루꼴로 뉴스가 나와요. 누가 어디서 일하다가 죽었다더라. 깔려 죽고 빠져 죽고 떨어져 죽었다더라. 언제쯤이면 그런 뉴스를 안 보게 될지. 근데요, 사고 났다는 소식만 있지 그 사업주가 구속됐다는 소식은 한 번도 못 들어봤습니다.

특히 기억나는 사고가 있어요. 작년에 여수에서 배에 붙은 따개비를 따다 죽은 정운이. 저도 여수에 갔습니다. 가서 이렇게 얘기했어요. “열여덟 살 정운이나 스물세 살 선호나, 어른들의 욕심 때문에 죽었다. 잠수부를 불러서 정당한 임금을 주고 해야 할 일을, 그 돈 좀 아껴먹겠다고 수영도 못하는 애를 바다에 밀어 넣어 죽인 거다.” 결과적으로 그렇지 않습니까. 돈 아끼려다 그런 거 아닙니까. 부자들, 돈 잘 버는 기업들, 좋습니다. 열심히 일하면 더 많이 버는 게 맞지요. 그런데 정말 그 돈이, 우리보다 더 열심히 일해서 번 돈 맞습니까? 정말 그렇습니까?

우리 애 사고 나기 한 달 전에 평택지사 사무실에 새로운 부장이 왔습니다. ‘회사가 어려운데 이렇게 많은 인력을 쓸 필요가 없다, 다 잘라라, 대신 여기가 바쁘면 저기 사람들이 좀 가서 도와주고, 저기가 바쁘면 여기 사람들이 가서 좀 도와줘라.’ 그 사람이 회사를 운영하는 방침이 이랬어요. 그러다 사고가 난 거예요. 사고가 난 컨테이너는 고장 난 불량 컨테이너였단 말입니다. 그런데 왜 그동안 사고가 안 났을까요. 그 컨테이너를 다뤄본 사람들만 그 일을 했거든요. 그 사람들은 컨테이너 안에 들어가서 허리를 숙이고 쓰레기를 주우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던 거예요. 그런데 그날 사람이 없어서 대신 보낸 우리 아들은 그걸 몰랐잖아요.

재판부는 연 매출 5000억원인 기업에 대해 사람 죽였으니 벌금 2000만원 내랍니다. 동방은 이것도 과하다며 항소를 했습니다만, 이게 처벌입니까? 1월27일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됐다는데 그래서 뭐가 달라졌습니까. 산재사고 유가족들이 춥디추운 한겨울에 한 달 가까이 단식해서, 그것도 차 떼고 포 떼서 겨우겨우 시행된 법. 그 이후로 사람이 덜 죽어 나갔습니까? 법 위반 1호로 걸렸다는 기업 대표가 제대로 처벌되는 겁니까?

며칠 전에 텔레비전에서 이런 뉴스도 봤어요. 전국경제인연합회인가, 대기업 사장님들이 대통령 당선자를 만나서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기업인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는 중대재해처벌법 좀 고쳐달라고. 부모가 자식을 잃는 슬픔보다 사장이 잠재적 범죄자 취급당하는 게 더 힘들까⋯. 자식 잃은 고통은요, 아무도 모릅니다.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가 없습니다. 사람이 숨을 쉬고 밥을 먹는다고 살아지는 게 아닙니다. 사람인지라 슬픔은 잊힌다지만 자식이 죽으면 정말로 미칩니다. 미쳐버립니다. 그 고통만큼 잠재적 범죄자 취급이 무서우면요, 안전시설에 더 투자를 하십시오. 사고 터지고 나서 대형 로펌 섭외할 돈, 그 돈으로 안전요원을 더 배치해주십시오.

대형 로펌 쓸 돈으로 안전요원을 배치하라

사고가 난 뒤에 회사 대표이사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합의금 금액을 부르더라고요. 저게 무슨 말인가 싶어서 멀뚱멀뚱 쳐다보다가 말했습니다. 대표님, 그 돈 안 받겠습니다. 그 돈, 제가 어떻게든 구해서 대표님한테 드릴 테니까 우리 선호 좀 살려주십시오. 제발 살려주십시오. (침묵) 그런데 이미 선호는 떠났지요. 어떻게 돌아오겠습니까.

제가요, 다른 사람보다 하루에 1만원을 더 받았습니다. 반장수당이었어요. 근데 새로운 부장이 와서 반장수당도 다 날렸습니다. 나중에 그 부장한테 그랬어요. “네가, 반장수당도 깎았다 아이가. 너네는 회사가 어렵네 뭐네 해도 월급 똑같이 받잖아. 너 성과급 한번 깎아봐라. 먹고사니 못 사니 소리가 나오나 안 나오나. 그래 놓고 너네는 일당 받는 우리들한테서 밥값도 꼬불쳤다 아이가.”

이게 무슨 말이냐면요, 우리가 ○○인력하고 쓴 근로계약서를 보면 중식은 회사에서 제공한다고 써 있어요. 그게 계약조건이에요. 그런데 ○○인력에서는 우리 일당에서 식대 5000원씩을 떼다가 구내식당에 줬거든요. 그거 소송 걸었습니다. 주휴수당하고 월차수당하고 식대 돌려달라고. 난 못 받은 임금이니까.

선호요? 우리 선호는 이것저것 다 떼고 하루에 9만8000원 받았습니다. 선호가 자동차를 좋아했어요. 부두에서 일한 돈을 모아서 한 600만원 있었나 봐요. 친구들한테 들으니 그 돈으로 중고차를 살 거라고 그랬대요.

선호가 친구들하고 잘 어울렸어요. 금요일 날 일 마치고 오면 만날 “아빠, 내 안중 갔다 올게” 그래요. 안중읍이라고, 집 가까이에 있는 시내에요. “야 인마, 너는 안중에 꿀 발라놨냐” 핀잔을 줘도 듣는 둥 마는 둥 후다닥 비닐 점퍼를 걸쳐 입고 나가요. 가죽처럼 생겼는데, 나중에 보니까 비닐로 만든 옷이야. 그런 옷을 다 사 입고, 애지 애. 그 옷은 차마 못 버리겠더라고요. 오늘이 금요일이니까, 이따 그 옷 입고 시내에 나가서 친구들이랑 술 한잔 해야 되는데, 그래야 되는데 저렇게 사진 속에서 친구들한테 술잔을 받고 있으니.

4월22일 경기 평택시 서호추모공원에서 고 이선호씨의 1주기 제사가 진행됐다.ⓒ시사IN 윤무영

그날 옆에서 사고를 목격했던 친구도 어제 만났습니다. 고려인인데, 함께 일하던 고려인 사람들도 같이 왔어요. 동네 양꼬치 집에서 선호가 좋아하던 경장육사라는 메뉴를 시켜놓고 둘러앉았습니다. 다들 양복을 입고 왔기에 어색해서 “웬 양복을 다 입었냐” 하니까 러시아 문화가 그렇대요. 사람이 죽으면 1년 되는 날 양복을 입고 모여서 술 한잔씩 하고 부조를 한다더라고요. 봉투에 넣어서 온 사람도 있고 바쁘게 왔는지 그냥 손에 쥐여준 사람도 있고 외화 그대로 준 사람도 있고. 이게 그 사람들한테는 얼마나 큰돈이겠어요. 문화가 그렇다고 하니 안 받을 수도 없고 해서 받기는 받았어요. 쓰지는 못하겠고. 여기 양복 앞주머니에 넣어놨네요.

제가 죽어서 저승에 가면 과연 선호가 저를 용서해줄까요. ‘아부지, 왜 저를 거기에 데리고 갔어요?’ 하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요. 대답을 할 수가 있을까요. 돈의 소중함, 노동의 중요함을 가르쳐주고 싶었을 뿐인데. 사고 이후로 수면제를 먹고는 있는데 한번 깨면 다시는 못 잡니다.

저는요, 제 힘 닿는 데까지 끝까지 싸울 겁니다. 그래야 안 되겠습니까. 세상은 갑자기 바뀌지 않습니다. 세상이 서서히 바뀌기 위해서 누군가는 희생해야 하고 누군가는 피 흘려야 한다면, 제가 기꺼이 하겠습니다. 선호 장례식장에 찾아와서 제 손도 잡고 사진도 찍어갔던 분들, 그분들도 좀 나서주십시오. 도대체 왜 이 죽음을 못 멈추는 겁니까.

기자명 평택·나경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did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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