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한 학생이 실습 전 작성한 ‘장기 현장실습교육 협정서’는 현장에서 무의미했다. 사진은 사고 발생 일주일 뒤 농장의 모습. ⓒ시사IN 조남진

쏟아지는 비에도 농가는 분주했다. 6월23일, 화훼농가가 위치한 경기도 고양시 화정동은 일 강수량 99㎜를 기록했다. 배수로 작업을 하는 주변 농민의 소란과 달리 비닐하우스 안은 조용했다. 침묵이 이어지는 가운데 허브 화분을 포장하고 나르는 작업이 이뤄지고 있었다. 불과 사흘 전 사망사고가 발생한 곳임을 알 수 있는 흔적은 전혀 없었다. 사고 경위를 묻자 직원은 “당장 나가달라”고 말한 후 다시 일을 시작했다.

사고는 6월20일 오전 11시20분경 발생했다. 딱딱하게 굳은 흙을 잘게 부수고 비료와 섞는 기계인 상토혼합기에 30㎏짜리 비료를 붓던 대학생 A씨(20)가 기계 내부로 떨어졌다. 주변에 있던 다른 직원이 급하게 전원을 끄고 A씨를 꺼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절단기까지 동원한 소방서 구급대원들도 A씨를 꺼내는 데 애를 먹었다. 10여 분이 흐른 후 A씨는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사망했다. 6월30일 고양경찰서는 농장주를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입건했다. 상토혼합기를 다루기 위해 필요한 안전수칙 교육을 A씨에게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A씨는 전북 전주시에 위치한 국립한국농수산대학교(한농대) 화훼학과 2학년 학생이었다. ‘정예 농어업 인력 양성’을 목표로 하는 한농대는 농림축산식품부 소속 3년제 국립 전문대학이다. 한농대는 일명 ‘샌드위치 교육 시스템’이라는 독특한 학제를 운영한다. 1학년과 3학년은 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2학년은 두 학기 동안 타지로 나가 ‘장기 현장실습’을 받게 되어 있다. 2학년인 A씨 역시 지난 3월부터 실습생 신분으로 화훼농가에 현장실습을 나갔다. 한 화훼학과 동기생은 A씨가 평소부터 허브에 관심이 많았다며, “아무래도 그 농장이 허브를 많이 재배해서 거기로 간 것 같다”라고 말했다.

실습생 신분이었지만, 하는 일은 다른 농장 직원들과 차이가 없었다. A씨는 오전 8시30분부터 저녁 6시까지 일했다. 쉬는 시간은 오전과 오후에 각각 15분, 그리고 점심시간 1시간이 전부였다. 휴일은 토요일 하루뿐이었다. A씨가 농장에서 일하는 ‘명분’은 교육이었지만, 이곳에서 막상 교육을 위한 시간은 따로 마련되지 않았다. 실습 교육을 담당하도록 학교에서 임명받은 ‘현장 교수’는 다른 업무로 자주 외출을 했다(이 농장의 경우, 학교에서 임명한 ‘현장 교수’는 농장주였다). 주로 업무 지시를 내리는 것은 현장 교수의 가족들이었다. 매주 48시간씩 꼬박 일한 A씨가 농장에서 받은 월급은 80만원. 아침과 저녁 식비로 매달 주어진 10만원을 더해도 총 90만원에 불과했다. 최저임금에 한참 모자란 수준이다.

현장실습생 사망사고가 벌어진 경기도 고양시 한 화훼농가 비닐하우스. ⓒ시사IN 조남진

실습생 산재보험 가입률 52%에 그쳐

A씨는 산재보험에도 가입되어 있지 않았다. 2018년 고용노동부 고시 개정으로 현장실습생도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게 됐지만, 산재보험법상 상시근로자 5인 미만 농가는 의무가입 대상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한농대가 2020년 7월에 마련한 ‘장기 현장실습장 신청 안내’에는 실습장에서 산재보험에 가입할 것을 ‘의무’로 명시하고 있다. A씨가 일했던 농가 역시 이 안내문을 확인하고 실습장으로 등록했지만, 산재보험에는 가입하지 않았다. 한농대 관계자는 “가입 유도를 하기 위해 그런 안내문이 나갔지만, 학교 규정상 산재보험 가입이 의무화되어 있는 것은 아니었다”라고 해명했다. 한농대에 따르면 현재 실습생 중 산재보험에 가입한 학생은 52%에 불과하다.

과로와 저임금은 한농대 현장실습생들에게는 만연한 일이었다. 한우학과 2학년 재학생인 B씨는 지난 5월 하루 최대 16시간까지 근무를 했다. 한우 사료로 먹이는 ‘라이그라스’를 수확하고, 수확한 땅에 모를 심기 위해 밭을 갈고 평탄화 작업을 해야 했다. “제일 바빴던 주에는 그나마 적게 일한 게 하루 12시간 수준이었어요. 새벽에 소 밥 주면서 일 시작해서, 밥 먹는 시간 제외하고 밤늦게까지 일만 한 거죠. 이렇게 일하고 매달 농장에서 60만원을 받았어요.” 평소에는 한 달에 4일이라도 쉬었지만, 5월에는 쉰 날이 아예 없었다고 B씨는 증언했다.

B씨가 실습 전에 작성한 ‘장기 현장실습교육 협정서’는 현장에서 무의미했다. 협정서 제3조 1항은 ‘현장실습은 주 5일 40시간을 원칙으로 한다. 다만, 실습생의 동의하에 농한기에는 조금 덜하고 농번기에는 조금 더 하도록 실습시간을 조정하여 실시할 수 있다’라고 규정했다. B씨는 연장 노동에 동의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애초에 현장 교수가 B씨에게 동의 여부를 물은 적도 없었다. 그럼에도 B씨는 학교에 이 사실을 알리지 못했다. “만약 현재 실습지를 떠나게 돼도, 다른 농장에서 저를 받아주지 않으면 저는 강제로 1년을 쉬어야 해요. 2학년 때 실습을 듣지 못하면 졸업할 수가 없으니까요.” B씨가 선택할 수 있었던 건 ‘얼른 끝내자’는 생각으로 버티는 것뿐이었다.

또 다른 2학년 C씨는 과로와 저임금에 지쳐 지방고용노동청에 직접 전화를 걸기까지 했다. 노동은 아침 8시부터 7시까지 매일 10시간씩 이어졌다. 그렇게 주 6일씩 일하며 C씨가 받은 임금은 50만원에 불과했다. “말만 실습이지, 그냥 노동이에요. 농장에서는 저를 ‘50만원짜리 노동자’ 취급하는 거죠.” C씨는 자신이 정말 노동자라면 현재 받고 있는 임금이 말이 안 된다고 느꼈다. 그렇게 지방고용노동청의 문을 두드렸지만, 막상 C씨는 ‘찍힐까 봐’ 두려워 정식 신고를 하지 못했다고 한다. “노동청 직원분이 신고하면 현장에 오셔서 조사하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전 졸업해야 하잖아요. 결국 신고 접수를 못했어요. 예전에 교수님께 힘들다고 말씀드렸을 때, ‘너네는 배우는 사람인데 감사한 줄 알아야 한다’라고 하셨거든요. 한 과에 실습생이 30~40명 수준인데 신고하면 누군지 다 알겠죠.”

실습생이 ‘저렴한 노동력’으로 취급된 것은 최근 일이 아니다. 2012년 김수욱 건국대 교수 등이 발표한 ‘한국농수산대 장기 현장실습 개선방안 연구’ 논문에서도 현재 실습 중인 학생들의 불만 사항이 동일하게 등장한다. 당시 논문은 ‘현장 교수-실습생의 관계를 고용주-노동자의 관계로 인식하여 계획한 교육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는 사례’가 있으며, ‘현장실습의 중요성에 비해 농장 관리 측면에서 다소 소홀하게’ 다뤄진다고 분석했다. 이로 인해 한농대의 현장실습 시스템이 ‘값싼 노동력을 제공받기 위한 기회로만 여기는 경우 교육적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실습 과정에 참여한 현장 교수들과 교직원들도 학생들의 열악한 상황과 불만을 모르지 않았다. 올해 2월 학교에서 배포한 ‘현장 교수 교육자료’에는 지난 실습생들의 건의 사항 설문 결과가 적혀 있다. 이 설문에 따르면 응답자 49명 중 69%는 휴일·휴가 보장이 필요하다고 말했고, 51%는 실습비 인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과도한 노동시간으로 노동착취를 당했다는 건의도 26%에 달했다. A씨를 담당한 화훼농가의 현장 교수 역시 이 자료로 교육을 이수했다. 하지만 외부 연구자의 논문도, 내부 설문조사 결과와 교육도 실습 제도의 부조리를 바꾸진 못했다.

전북 전주시에 위치한 국립한국농수산대학교(한농대) 캠퍼스 전경. ⓒ국립한국농수산대학교 홍보자료 갈무리

“협정서라도 지켜달라”

교육을 책임지고 학생들을 대변해주어야 할 학교 교수들도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심지어 동의하지 않은 실습 내용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학생에게 보복을 암시하며 협박한 교수도 있었다. 무기는 ‘졸업’이었다. 축산학부에 재학 중인 D씨는 담당 교수에게 실습을 8개월만 하겠다고 말했다. 정규 교육과정에 따르면, 기본적으로 실습은 8개월로 종결되어야 한다. 그러나 다른 학과와 달리 축산학부는 계절학기 두 달을 더해 총 10개월 동안 실습을 하는 관행이 이어져왔다. 농가들은 저렴하게 실습생들을 더 오래 쓰기 원했고, 축산 계열 실습 시설이 부족했던 학교는 이러한 관행을 묵인해왔다고 축산학부 학생들은 말했다.

주 60시간가량 일하며 100만원 남짓한 임금을 받던 D씨는 계절학기(2개월 추가 근무)는 못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담당 교수는 D씨에게 “8개월 동안만 학생을 받을 바에야 외국인 쓰는 게 낫다”라며 실습 농가를 두둔했다. 그럼에도 D씨가 계절학기를 이수하지 않겠다고 하자, 담당 교수는 “나중에 네가 어떻게 졸업논문 쓰는지 내가 다 확인하겠다. 네가 알아서 잘 판단해라. 책임은 나중에 네가 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화훼학과 재학생 A씨의 사망 이후, 한농대는 서둘러 개선안을 내놓았다. 학교는 사고 다음 날부터 4일간 전국 모든 실습장(320개소)에 대해 긴급 안전점검을 실시했다. 더불어 “실습장 지정, 실습 운영, 안전교육 등 실습 교육 전반에 대해 면밀히 점검해 근본적인 재발방지 대책을 조속히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농대 관계자는 주요 재발방지 대책 중 하나로 신고 창구 운영을 제시했다. 근로시간 미준수 등 협약서 위반 사항을 학생들이 실시간으로 신고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재발방지 대책의 실효성에 대해선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지금까지도 학생들은 실습 이후 자신이 일한 실습장에 대해 평가할 수 있었다. 100점 만점 중 학과 교수가 60점, 실습생이 40점을 평가해 점수가 60점 미만이면 3년간 실습장에서 배제된다. 하지만 실제로 배제된 실습장은 극소수였다. 2021년 설문에서 학생들은 휴일·휴가 미보장 34건, 협정서 미준수 16건, 노동착취 13건을 제기했다. 그러나 실제로 실습장에서 배제된 농장은 3곳에 불과했다.

재학생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동일한 말을 했다. 다른 것은 차치하고 학교와 현장 교수, 실습생이 함께 서명한 협정서라도 지켜달라는 얘기다. 10년 전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재학생들은 동일한 질문을 다시금 학교에 던진다. 자신들이 단지 값싼 노동자인지, 교육받을 권리가 있는 실습생인지 말이다.

기자명 주하은 기자 다른기사 보기 ki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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