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동안 경남 창원의 중소기업 10군데서 일한 천현우씨의 작업복. 용접 불꽃이 튄 부분에 구멍이 나 있다. ⓒ시사IN 신선영

‘익숙하지 않은 일에 사람을 투입한다. 안전모 등 보호 장구를 지급하지 않는다. 위험한 작업을 할 때 규정된 안전조치를 하지 않는다. 감시 인력이 현장에 없다.’

지난 4월22일 일어난 평택항 이선호씨 사망사고에서 나타난 문제점은, 실은 거의 모든 산업재해(산재)에서 반복되는 일이다. 사회적 논의는 매번 ‘처벌이 능사가 아니다’ 대 ‘원청이 책임져라’를 반복하는 데 그친다. 어쩌면 문제는 처벌 외에 다른 데도 있는 게 아닐까? ‘산재라는 질문’은 왜 해결되지 않는가?

〈시사IN〉은 중소기업에서 일하고 있거나 일해본 적 있는 청년 3명을 만났다. 사실 산재 사망자가 가장 많은 연령대는 60세 이상이다. 지난해 업무상 사고로 사망한 882명 중 18~34세는 73명으로 8.3%를 차지한다. 청년은 산재 피해자의 전형은 아니지만, 자신의 일터를 낯선 눈으로 볼 수 있고 변화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 존재다. 3명 모두 자신이 일했거나 일하는 공간에 대해 SNS나 칼럼, 책에서 ‘자기 언어’로 목소리를 낸다는 데 주목했다.

천현우씨(31)는 스물한 살에 첫 산재를 당했다. 대기업 하청업체에 출근한 첫날이었다. 내부가 400℃에 이르는 온장고를 열어 ‘수지’라는 뜨거운 액체가 든 40㎏짜리 깡통을 꺼내 옮긴 뒤 금속 틀에 쏟아붓는 일이 주어졌다. 당시 그의 몸무게는 55㎏에 불과했다. 처음엔 어떻게든 했지만 중간쯤 되자 힘이 빠졌다. 400℃나 되는 액체를 그대로 발목에 쏟아버렸다.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3도 화상(가장 높은 정도의 화상)’을 입었다.

‘우리를 하나의 생명으로 여겨줄까?’

사람들이 후다닥 뛰어왔다. 사장도 왔다. 천씨는 그때 본 사장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괜찮니?’ 이게 아니고 귀찮은 일 터졌다는 표정 있잖아요. ‘이 ×× 첫날부터 와서 사고 치네.’ 그런 표정으로 택시 타고 동네 의원에 저를 끌고 갔어요. 항생제 주사 한 방 맞고 끝났어요. 나머진 제가 자비로 치료했어요.”

4대 보험이니 산재보험이니 하는 말을 들어보긴 했다. 그러나 전문계고와 전문대학을 다니는 동안, 산재를 당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산업안전보건법도 배워본 적이 없었다. 천씨는 산재 처리를 받지 못했고, 사고 뒤에도 계속 풀타임으로 일했다. 화상 부위가 가렵지만 긁을 수 없어서 잠 못 드는 밤이 이어졌다. 지금도 발목이 울퉁불퉁하다.

천현우씨는 스물한 살, 첫 출근 날 3도 화상을 입는 산재를 당했다. ⓒ시사IN 신선영

“제가 본 가장 끔찍한 산재는 다른 하청업체에서 용접공으로 일할 때였어요. 넓은 철판에 후크를 걸어서 크레인으로 끌어올리는데, 뭐가 잘 안 맞는지 흔들리는 거예요. 안 되겠네 싶었을 땐 이미 늦었어요. 혼자서 그걸 조정하던 과장님 다리로 철판이 떨어져버렸어요. ‘으어어어’ 비명 소리가 들리고, 철판에 피가 쫙 튀었죠. 누구는 얼음을 들고 오가는데, ‘번거로운 일 터졌구나’ 하는 얼굴로 담배를 피우고 있는 사장님…. 그걸 보면서 뭘 느꼈겠어요. 우리를 목숨으로 봐줄까? 하나의 생명으로 여겨줄까? 아니, ‘내가 빵(감방) 갈 수도 있겠다, 손해를 볼 수도 있겠다’는 번거로움이 가장 먼저 묻어나요. 본인은 드러나지 않을 거라 생각하겠지만 너무 티가 나가지고.”

한쪽 다리가 깔린 ‘과장님’은 산재 처리가 되었지만, 두 다리의 길이가 영영 안 맞게 되었다. 얼마 뒤 같은 업체에서 일하던 ‘옆 공정 형님’이 기계에 손가락이 끼어 뼈가 부러졌다. 그는 산재 처리 대신 유급휴가를 갔다. 직원이 스무 명 안 되는 회사에서 일어난 일이다.

9년 동안 경남 창원의 50인 미만 중소기업 10곳을 전전한 천씨는, 안 해본 일을 시키는 게 중소기업에서는 일상이라고 했다. “쿠팡이 30분 교육시킨다고 욕먹잖아요. 중소기업은 더 복잡한 일인데도 첫날에 바로 투입돼요. 현장에서 배우라는데, 가르쳐주긴 뭘 가르쳐줘요. 작업자들은 다 자기 일로 바쁜데. 이러면서 만날 실수하면 나오는 레퍼토리가 그거예요. ‘모르면 물어보라고!’(웃음)”

“안전 장구 안 챙겨주는 것도 일상”이라고 천씨는 말했다. “기업들이 웃긴 게요. 좀 손해가 나면 일단 현장직의 커피를 없애요. 면장갑을 이틀 쓰라고 해요. 마스크는 3일 쓰고. 헬멧도 사실은 남아돌아야 해요. 땅바닥에 몇 개 굴러다니면 좀 어때요? 근데 그 꼴을 못 봐요. 무조건 1인 1개예요. 무슨 몇십만 원짜리도 아닌데. 이거 하나만 있었어도 혹시 모르잖아요. 이선호님(평택항 사고 사망자)이 목만 조금 다치고 괜찮았을지.”

5월13일 평택항에서 일하다 숨진 고 이선호씨의 추모 문화제가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열렸다. ⓒ시사IN 조남진

안전교육은 어떨까. “조심하라고 말은 해요. 감시 인력은 없어요. 지게차 다루는 것도 무척 위험한 일인데, 자동차 운전면허만 있으면 그냥 시켜요. 최근에 지게차 운전자도 안전교육을 받도록 바뀌었는데 누가 그걸 체크해요? 근로감독관이 수시로 들락날락하는 것도 아니고. 아무도 안 보면 지금까지처럼 ‘야야 너 차 몰잖아, 지게차도 좀 몰아봐라’ 하는 식이겠죠.”

주로 대기업 사내하청에서 일한 천씨는 “원하청 사이에 동일노동·동일임금은 환상”이라고 말했다. “동일노동? 안 시켜줍니다. 우리는 한 라인에 두 시간씩 영화 〈모던 타임즈〉 찍는데 원청 정규직들은 30분 세팅하고 사무실 들어가요. 주식하거나 게임하거나 낮잠 자는 분도 있어요. 동일임금? 안 챙겨줍니다. 정규직은 가만히 있어도 임금이 올라요. 말도 안 돼요. 우리는 늘 최저시급에서 100~200원 더 받는데. 동일 안전? 안 지켜줍니다. 원청들은 일하다 문자 그대로 ‘좀 아니다’ 싶으면 작업 중지를 걸고 상황을 봐요. 우리가 작업 중지를 감히 건다고요?(웃음) 제가 ‘위험하다’고 하면 회사에서는 ‘일 안 한다’는 소리로 듣고 ‘너 나가’라고 해요.”

산재와 관련해 처벌 외에 이야기되는 해법이 노동조합이다. 노조가 있으면 안전을 요구하고 협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천씨는 그동안 다닌 기업에 노조가 있었느냐는 질문에 “중소기업 노조 말인가요? 없죠”라고 말했다. “(원청) 금속노조랑은 늘 마주치지만, 그 사람들이 매년 임금협상 할 때 우리의 처우나 안전은 한 10위권쯤에 넣어놔요. 자기 임금, 자기 처우, 자기 정년연장을 1~5순위에 쫙 깔아놓고 맨 마지막에 ‘얘들(하청) 정직원도 좀 뽑아주고, 위험하게 일하는데 안전도 조금 챙겨주라’는 정도? 요구를 안 하진 않는데 구색 맞추기 식이에요. 그래서 더 열받고.”

그는 “중소기업에서 노조를 만든다? 회사가 나가라고 하죠. 가능하겠어요”라고 자조했다. “노조가 왜 힘이 있냐면, 내가 반항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대오를 이뤄서 지켜줘요. 근데 하청에서 반기를 들면 혼자 고립돼요. 연대가 안 돼요. 회사가 책임져주지 않으니, 주변 사람들도 개인한테 오롯이 책임을 떠넘겨버려요. ‘다친 네가 잘못이지. 조심 좀 하지 그랬어?’ 조심하라고 말만 하면 뭐해요. 안전한 환경을 조성해줘야죠. 우리는 조직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어요. 물리적으로 모이기도 힘들어요. 뭉쳐야 할 사람들은 뭉치지 못하고, 덜 뭉쳐도 될 사람들은 끈끈하게 대오를 이뤄서 자기 기득권을 지켜요. 양극화가 심해요.”

50인 미만 사업장은 중대재해처벌법(중대법)이 2024년부터 적용되는 것을 두고, 천씨는 “이미 안전한 대기업 직원들만 더 안전해졌어요”라고 말했다. “늘 이런 식이에요. ‘주 52시간’도 제일 과노동하는 곳에 제일 늦게 적용하잖아요. 우리는 늘 더 일해야 하고, 늘 위험에 노출되어 있어요. 정부가 비정규직으로 오래 일한 사람들을 불러가지고 허벅지를 꼬집어서라도 목소리를 내게 해야 돼요.”

ⓒ연합뉴스더불어민주당 이탄희 의원이 5월13일 국회 소통관에서 산업재해 사고를 줄이기 위한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안 발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유정주, 이수진(비례), 이탄희, 장경태 의원.

하인혜씨(31·가명)는 울산 석유화학공장의 직원 100명 규모 하청업체에서 안전관리자로 일한다. 이 업체는 플랜트 설비관리를 맡는데, 성격상 ‘건설업체’로 분류된다. “다단계 하청에 최저가 입찰로 돌아가다 보니 일을 최대한 싸게, 빨리 끝내고 싶어 하는 건 어디나 똑같아요. 예정된 공사기간보다 길어지면 그만큼 손해니까. 빨리 하려다 보면 안전조치에 ‘구멍’이 생겨요. 그나마 건설 쪽은 산재가 가장 많이 일어나는 영역이어서, 공사 규모가 얼마 이상이면 안전관리자를 몇 명 이상 투입해야 한다고 법에 정해져 있어요. 안전관리비도 따로 책정해서 반영하는 공식이 법에 있고요. 다른 산업은 이런 규정이 없어요.”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상 50인 미만 사업장은 안전관리자를 선임할 의무가 없다. 안전관리자와 별개로 지게차 작업처럼 위험한 일을 하는 경우, 이 과정을 책임지고 지휘할 ‘작업 지휘자’를 정해야 한다. 사람이 오가는 곳에서 지게차 작업을 하려면 신호수 같은 ‘유도자’도 지정해야 한다. 평택항에선 이 모든 게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안전인력을 고용할 의무나 이를 확인하는 절차가 부실해요. 이런 상황에서 심각한 산재가 날 확률은 낮으니, 모든 게 비용 문제가 되죠. 안전관리자만 해도 산업안전산업기사 같은 라이선스 있는 사람을 쓰려면 돈이 꽤 나가거든요.”

하씨는 중대법 통과 이후 업무 부담이 크게 늘었다고 했다. 공장 내부 안전규정이 강화된 반면, 안전관리자는 그만큼 충원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이 안전인력을 고용하고 안전비용을 투자할 수 있는 여력과 조건을 만드는 게 중요해요. 한국의 산업이 아무리 수직계열화되었다고 해도 하청업체가 독립적으로 책임질 부분도 분명히 있어요. 서울의 지식인이나 진보정당은 산재를 ‘불쌍한 노동자가 힘든 일을 하다 비극적으로 죽었다’ ‘구조적 문제다’라고만 보는 경향이 있어요. 이제는 그런 틀을 좀 넘어서서, 원하청 간에 안전비용을 어떻게 처리하고 이 비용이 제대로 쓰였는지 어떻게 확인할지, 전문성 있는 안전인력을 고용하고 이 사람이 작업자와 잘 소통하게 하려면 어떤 시스템이 필요한지, 중소기업이 안전교육을 잘 할 수 있게 관이나 시민사회가 어떻게 유도하고 판을 깔아줄지 면밀하게 검토하고 논의해야 해요. 중대법은 여러 퍼즐 조각 중 하나예요.”

대기업·공기업에서만 유효한 공정 담론

하씨는 근본적으로는 ‘공상 처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공상 처리’란 산재보험 대신 업체가 치료비를 처리하기로 노동자와 합의하는 것을 말한다. “손가락 다섯 개 중에 세 개가 잘리거나 다리가 절단되었거나 죽지 않는 이상, 웬만하면 공상 처리를 하려고 해요. 산재 처리를 해서 고용노동부가 감독 나오고 작업 중지나 시정조치 같은 행정처분을 내리면, 업체도 문제이지만 일용직 노동자도 일을 못하거든요. 하청에서 산재가 나면 원청이 3개월 입찰 정지나 퇴출 같은 페널티를 주기도 하고요.” 심지어 산재 발생이 파악된 사업장은 산재보험료도 오른다. 이를 ‘개별실적요율제’라고 한다. 산재 예방을 독려하는 취지의 제도이지만, 현실에선 산재 은폐의 유인이 된다. “사고 나면 119를 안 부르고 회사 봉고차에 태워서 병원에 보내요. 그래야 공상 처리가 되니까. 이렇게 해서 은폐되는 산재가 엄청나게 많아요. 하인리히 법칙이라고 있잖아요. 사망사고가 있기 전에 여러 비슷한 산재와 수많은 징후가 발생하는데, 그걸 최대한 양지로 끌고 와서 통계를 내고 대응법을 연구해야 산재도 풀려요.” 노사 모두에게 산재 처리를 지금보다 덜 부담스럽게 만들어서 ‘은폐의 고리’를 끊어내자는 제안이다.

교복 위에 작업복을 입은 허태준씨. 3년7개월간 현장실습생과 산업기능요원으로 근무했다. ⓒ허태준 제공

책 〈교복 위에 작업복을 입었다〉를 쓴 저자 허태준씨(24)는 직원이 150명인 부산의 한 황동밸브 제조업체에서 3년7개월간 현장실습생과 산업기능요원으로 근무했다. 설비 유지보수를 맡는 ‘공무팀’ 소속으로 일하면서 수첩에 그날그날 고친 기계와 처리한 사고들을 써 내려갔다. 불안감을 이겨내기 위해 한 일이었다. 그 시절 그는 산재 뉴스를 보기가 힘들었다고 했다. 자신의 이야기 같을수록 일부러 더 안 봤다. 다음 날 출근해야 하니까.

평택항 사고를 보고 그는 ‘억장이 무너졌다’고 했다. “왜 이렇게 안 바뀔까 생각해봤어요. 특별히 누가 나쁘거나 바보 같아서가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가 그런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를 너무 안 한 게 아닐까. 사무직의 어려움을 다룬 만화나 드라마는 많아요. 반면 세상에 공장이란 곳이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많을 거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그 감각을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을 거예요. 넘어지면 크게 다치거나 죽는 곳에서 일하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 ‘주장’은 반대되는 주장을 낳지만,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를 낳거든요. 학교폭력이나 페미니즘이 그랬던 것처럼, 쉬쉬하고 껄끄러워하고 말하면 큰일난다고 여겼던 이야기들, ‘나한테도 이런 일이 있었어’ 같은 이야기들이 좀 더 많이 세상에 나와야 한다고 믿어요. 마이스터고나 산업기능요원 경험이 자랑스럽다는 이야기도요. 그런 게 쌓여야 법이든 인식이든 태도든 변하지 않을까요.” 그는 산재에 대한 노동자와 사업주의 생각을 들으러 다니고 있다. 다음에 쓸 책의 주제라고 한다.

천현우씨는 또 다른 대기업 하청업체로 이직을 앞두고 있다. 원청에도 지원서를 넣었다. “요즘 공정 담론이 많이 나오는데, 공정이란 단어는 늘 대기업이나 공기업 직원, 공무원이 되기 위해 경쟁하는 룰에만 쓰여요. ‘나는 중소기업 못 들어갔는데 너는 들어갔다고? 공정하지 않아.’ 누가 이래요? 결국 높은 곳에만 공정이란 천칭을 들이대는 거예요. 사실 공정은 좀 더 다양하게 써야 하는 개념 아닌가요? 그냥 양복 입은 사람들하고 작업복 입은 사람들이 누구 하나 주눅 들지 않고 같이 출퇴근하면서 서로 존중해주는 거, 이거면 되는데. 작업복 입는 사람들은 지나치게 처절하게, 납작하게만 묘사돼요. 맨날 전태일이야. 전태일 열사가 자기처럼 몸에 불붙이라고 그렇게 했겠어요? 그게 아니잖아요. 다들 평등하게 자기 자부심과 전문성을 가지고 일할 환경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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