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16일 미얀마 카야주의 데모소 마을 인근 숲에 있는 베이스캠프에서 카레니국민방위군(KNDF) 대원들이 훈련을 받고 있다.ⓒAFP PHOTO

3월27일 ‘미얀마군의 날’은 1945년 일본군에 대항해 무장 저항을 시작한 날을 기념하며 제정되었다. 공교롭게도 1년 전 이날, 군부 쿠데타 이후 최악의 유혈 참사가 벌어졌다. 반(反)쿠데타 시위를 위해 거리에 나온 시민들을 군부가 무차별 진압하면서 하루 사망자가 100명에 육박했다. 미얀마 시민들은 3월27일을 ‘저항의 날’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다. 미얀마 상황은 여전히 극도의 혼란 속에 놓여 있다. 도시에서 기습 시위가 계속되는 가운데, 또 하나 심화되고 있는 저항운동은 시민방위군(PDF)의 무장투쟁이다. 특히 친주, 카야주, 카친주 등 소수민족 무장단체가 있는 국경지대에는 시민방위군과 군부 측의 교전이 격렬하게 벌어지고 있다. 이미 미얀마 군부의 공습과 폭격, 방화 등으로 민간인들이 죽거나 다쳤고, 수십만 명이 삶의 터전을 떠났다. 그러나 국경에서 벌어지는 탓에 실상이 구체적으로 기록되거나 해외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미얀마 국경지대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미얀마 언론인 중에는 쿠데타 이후 군부의 탄압을 피해 시민방위군을 따라 국경지대로 들어간 이들이 있다. 시민방위군과 함께 숙식하며 이들의 훈련부터 교전, 군부의 유혈 탄압 등 참상을 SNS로 알리는 일을 한다. 프리랜서 언론인인 아세인 씨도 그중 한 명이다. “정글에서 숨어 지내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음식과 구호 물품이 부족합니다. 집을 떠난 지 오래라 가족들이 그립습니다.” 2021년 말부터 올해 3월까지 미얀마 남부 카야주에서 그가 기록한 시민방위군의 이야기를 번역해 싣는다.

미얀마에서는 기자를 국가의 ‘네 번째 기둥’이라고 부른다. 입법·사법·행정이라는 국가권력을 감시하는 언론의 역할이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토대라는 의미다. 하지만 미얀마 언론 자유는 군부 쿠데타와 함께 심각한 위협에 직면했다. 양곤, 만달레이, 바고 등 대도시에서 취재하던 기자들이 군부의 체포와 살해 협박에 시달렸다. 이런 위기 속에서도 미얀마 기자들은 사명감을 가지고 진실을 보도하고자 했다. ‘현재 벌어지는 군부의 만행을 시민들에게 정확히 알려야 한다.’ 나를 포함한 언론인들은 지난 1년간 이런 마음이었다. 역사에 남을 시민혁명의 진실을 기록하기 위해 미얀마 기자들은 무장투쟁의 현장으로 직접 들어가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쿠데타가 일어나기 전엔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하던 학생이었다. 지난해 2월1일 이후 쿠데타 군부에 저항하기 위해 시민기자(CJ)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미얀마 MZ 세대가 무장투쟁의 길로 접어든 이유는 간단하다. 반쿠데타 시위를 이어가던 국민들에게 미얀마군이 반인륜적이고 무자비한 폭력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평화적인 시민불복종운동(CDM)으로도, 국제사회 호소로도 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국경 지역에서 벌어지는 시민방위군과 군부의 교전을 전하기 위해 소수민족 무장단체 지역인 카야주를 찾아갔던 이유다.

2월17일 미얀마 카야주의 모비에 지역에서 미얀마 군부와 시민방위군의 교전이 벌어졌다.ⓒ아세인 제공

주로 10대부터 30대 남성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카야주 시민방위군들은 소수민족 무장단체와 함께 군사훈련을 받고 있다. 대부분 도시 출신의 학생이거나 노동자들이었다. 이들 모두 군부 폭력이라는 불의에 항거하기 위해 집을 떠나 이곳으로 숨어들었다. 정확한 규모를 추산하기는 어렵지만 현지 언론은 수천 명이 미얀마 곳곳에서 시민방위군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카야주, 카렌주 그리고 북부 카친주를 중심으로 소수민족 무장조직이 시민군을 돕고 있다. 나의 경우 체류 기간은 매번 달랐지만, 때때로 이들과 카야주 최전방에서 밤을 새웠다. 교전이 벌어지는 최전방은 내가 지내는 곳으로부터 6㎞ 내에 있다.

군부가 교전을 벌이며 지나간 마을은

카야주는 2월16일부터 한 달 내내 교전과 공습이 이어지는 지역 중 하나다. 이른 아침, 군부는 군인 200여 명과 탱크 2대를 동원해 샨주와 카야주 경계에 있는 모비에 지역으로 쳐들어왔다. 군부의 중화기(화력이 강한 박격포 따위의 화기) 공격으로 민간인 여성 한 명이 다리에 심한 부상을 입었다. 이날 밤 8시, 직접 만든 사냥총과 소총으로 시민방위군이 반격했고 군부 쪽 군인 4명이 사망했다. 군부는 다시 중화기와 전투 헬기를 동원해 이튿날까지 해당 지역을 공격했다. 이로 인해 모비에 지역 시민방위군 12명이 사망하고 6명이 부상을 입었다.

시민군과 군부의 교전은 주로 밤에 이루어졌다. 양측의 사상자가 늘어갔지만 무엇보다 문제는 군부가 교전을 벌이며 지나간 마을이 거의 쑥대밭이 된다는 것이었다. 2월18일 군부는 200여 채가 살고 있는 카야주 와리수플라잉 마을을 불태웠다. 1000여 명이 넘는 마을 주민들이 실향민 신세가 되었다. 2월23일 저녁에는 유치원·학교를 포함한 민간인 주택 7채와 오토바이 2대가 불에 타 없어졌다. 3월9일에는 전투가 끝날 무렵, 군부가 민간인 가옥 10채에 불을 질렀다.

무력투쟁에 나선 시민방위군의 교전 지침 중 하나는 ‘민간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것’이다. 반군부 진영의 임시정부인 민족통합정부(NUG)는 공격 대상에서 종교시설과 학교·병원을 제외하고 어떤 경우에도 여성과 어린이의 피해는 없어야 한다는 무장투쟁 원칙을 세웠다. 그러나 미얀마 군부는 ‘시민방위군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민간인을 향한 폭력을 정당화하고, 증거를 없애기 위해 방화를 저지른다는 의혹을 받는다. 미얀마 군부가 지난해 2월 이후 13개월간 미얀마 전역에서 6000채가 넘는 민간인 가옥을 불태웠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현지 매체 〈이라와디〉에 따르면, 친주 약 1000채, 마궤 지역 약 900채, 카야주 약 300채의 민간 가옥이 방화 피해를 봤다. 사가잉 지역에서는 3700채가량의 민간 가옥이 불에 탔는데 전체의 약 60%에 해당한다.

이 지역에서 발견된 시신 중에는 시민군 구조 활동을 벌이던 의료진도 다수 포함돼 있었다. 2월17일 모비에 교전 중 발견된 한 의사의 시신은 심하게 훼손된 상태였다. 군부의 민간인 공격을 의심할 수 있는 정황이었다. 지난해 말에도 카야주의 한 마을에서 비슷한 일이 있었다. 12월24일, 민간인 최소 35명이 불에 타 숨진 채 발견되었다. 쿠데타 이후 카야주 내에서 가장 많은 민간인이 학살된 사건으로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도 큰 충격을 주었다. 불에 탄 사건 장소에서 증거물로 발견된 것은 구호단체 ‘세이브더칠드런’ 직원의 면허증이었다. 시민불복종운동에 참여 중인 의료진들이 시신을 부검한 결과, 이들은 노인과 여성, 어린이였고 머리에는 총상과 가슴에 칼로 찔린 부상 자국이 있었다. 카야주 경찰은 소수민족 지역 주민을 향한 군경의 무자비한 구타와 살해, 총기 난사, 그리고 범행을 위장하기 위한 방화로 벌어진 참극이라고 조사 결과를 내놨다.

지난해 12월27일 미얀마 카야주의 프루소 마을 인근에서 차량들이 불에 탄 채 발견됐다.ⓒAP Photo

쿠데타 군부가 물러날 때까지

3월16일 미얀마 민족통합정부는 ‘군사위원회의 잔혹한 중대 범죄에 대한 보고서’라는 이름으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인권장관 아웅 묘 민은 ‘프루소 무소 제노사이드(지난해 12월24일 발생한 군부에 의한 민간인 집단학살 사건)’에 대해 오스트레일리아 법원에서 군사위원회가 심판을 받도록 하기 위해 관련 증거들을 수집 중이라고 말했다. 또한 국내외 인권단체들이 협력해 군부를 고소하기 위한 준비 단계에 있다. 이 사건과 관련해 군부 측은 시민방위군과 시민들 간에 벌어진 일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3월15일 유엔이 발표한 미얀마 군부 인권침해 관련 보고서는 이 사건을 거론하면서 “미얀마인들이 겪은 피해 중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카야주 주민들이 그날 어떻게 학살당했는지 진실을 밝힐 필요가 있다.

프루소 무소 사건이 발생한 지 3개월이 지났지만, 미얀마 전역에서 무차별 공습과 민간인 살해는 이어지고 있다. 3월2일 카야주 데모소 마을에서 불에 탄 시신 3구가 발견되었다. 데모소 지역의 시민저항군 카레니국민방위군(KNDF)은 군부의 소행이라고 발표했다. 3월8일 오후 12시30분경 군부의 중화기 발사로 인해 어린아이 4명과 이들의 아버지가 사고를 당했다. 이 가운데 7세, 10세, 12세 세 명의 아이가 즉사하고, 15세 여자아이와 아버지는 큰 부상을 입었다.

지금 미얀마 국경은 사실상 내전 상태다. 미얀마 저항의 날이 일어난 지 딱 1년 되던 3월27일, 민 아웅 흘라잉 총사령관은 “군부는 테러리스트 집단과 협상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을 끝까지 섬멸하겠다”라고 밝혔다. 또 소수민족 무장조직과 시민방위군을 ‘테러 집단’으로 규정했다. 카야주에서 지난 한 달간 벌어지는 사태를 보고 있자면, 과연 누가 테러를 저지르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시민군들의 상황은 열악하다. 어렵게 얻은 식량과 무기, 총알도 떨어져가고 있다. 집을 잃은 실향민들에겐 의료품과 식량 등 생필품이 절실하다. 무엇보다 교전이 장기화하면서 미얀마군, 시민군, 민간인 할 것 없이 사상자가 늘고 있다.

국경에서 벌어지는 참상을 전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다. 내가 만난 시민방위군은 불의에 항거하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쿠데타 군부가 물러날 때까지 저항할 것이라고 말한다. 나도 이 일을 계속해나갈 것이다.

기자명 아세인 (필명·미얀마 시민기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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