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20일 윤석열 당선자가 인수위 회견장에서 대통령 집무실 이전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

‘군의 심장’을 통째로 옮기는 일이다. 주어진 시간은 넉넉히 잡아도 3주. 확정된 계획안과 촘촘히 짠 로드맵 대신 속전속결이라는 주문만 붙었다. 대통령직에 당선된 차기 군통수권자가 공개적으로 내린 결정이었다. 현재의 군통수권자가 하루 만에 제동을 걸면서 초유의 사태는 숨 고르기에 들어갔지만 혼란의 씨앗은 이미 싹을 틔운 뒤였다. 불과 일주일(3월15~21일) 사이에 국방부를 둘러싸고 벌어진 일이다.

국방부에 현직 국회의원과 예비역 3성 장군이 출몰했다는 목격담이 들려온 건 3월15일 늦은 오후였다. 이들이 영내를 둘러보고 국방부 기획조정실장과 만나 보고를 받았다는 것이었다. 다음 날 군에서는 ‘VIP(대통령)가 국방부로 집무실을 옮긴다’는 내용, 그리고 국방부, 합동참모본부(합참) 등 각 부서들의 예상 이동 장소를 담은 정보들이 퍼졌다. 국방부와 합참이 이날 관련 회의를 열었고, 일부 부서에선 사무실 면적과 현황 파악 등이 이뤄지기도 했다. 조만간 이전 계획에 따라 사무실 철수가 시작될 것이라는 전망이 뒤따랐다.

이날 공유된 정보들과 국방부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국방부는 청사 전체를 비우고, 떠나는 부서들은 뿔뿔이 흩어져야 했다. 긴급 이전과 재배치 2단계로 나눠 국방부 장차관실과 기획조정실 등 핵심 부서는 합참 청사로 옮기고, 다른 50여 개 부서는 국방부 구청사로, 나머지 부서는 국방부 영내·외 부속 건물로 이동한다는 내용이었다. 부서들은 밀어내기식으로 이동할 것으로 보였다. 합참 일부 부서는 시설본부로 옮기고, 시설본부는 다시 구 방사청 건물로, 이 건물을 쓰는 부서는 기상청으로 밀려나는 방식이다. 추산된 이동 인원만 약 2900명. 주어진 시간은 3월 말, 늦어도 4월 첫째 주까지였다. 국방부 내부에선 “1950년 한국전쟁 이후 처음 있는 대규모 속도전”이라는 불만 섞인 우스갯소리가 나왔다.

3월15일 국방부를 방문한 현직 국회의원과 예비역 3성 장군은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과 김용현 전 합참 작전본부장이었다. 윤 의원과 김 전 본부장은 대통령 집무실 이전 업무를 총괄하는 ‘청와대 이전 태스크포스(TF)’를 맡아 업무를 주도하고 있다. 이들의 국방부 방문 직후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이라는 프로젝트가 급물살을 탔다. 다른 인수위원들(3월18일)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3월19일)가 차례로 국방부를 찾았다. 3월20일엔 윤 당선자가 기자회견으로 대통령 집무실 이전 계획을 공식 발표했다. 윤 당선자가 이날 직접 밝힌 이전 계획은 앞서 국방부 내부에서 돌았던 정보들과 같았다.

국방부에서 실무를 맡고 있는 복수의 영관급 장교들은 〈시사IN〉과의 전화 통화에서 “이전엔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 관련 내용을 들어보지 못했다”라고 밝혔다. 그들이 집무실 이전 관련 정보를 처음 들은 날은 3월14일이었다. 윤한홍 의원과 김용현 전 본부장이 국방부를 방문하기 바로 전날이다. 이날부터 일주일도 채 지나기 전에 윤 당선자가 대통령 집무실 이전 및 국방부·합참의 연쇄 이동이라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발표한 것이다.

496억원은 ‘이사비’에 불과하다

인수위 측은 대선 공약 수립 시기부터 국방부 이전안이 논의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3월22일 국방부가 국회 국방위원회에 제출한 현안 보고 자료를 보면, 인수위는 3월14일 처음으로 국방부에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을 전제로 국방부 본관동을 비울 수 있는 계획을 수립하라”고 요구했다. 이튿날인 3월15일엔 국방부 방문 계획과 함께 “민간 임차와 청사 신축 없이 최대한 기존 건물을 활용해 3월31일까지 이사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달라”는 요청을 전달했다. 〈시사IN〉 취재를 종합하면 당초 대통령 집무실 이전 후보지 1순위로 지목된 정부서울청사, 외교부 청사에서는 인수위 관계자들이 국방부를 방문한 이후부터 대책 마련, 이전 계획 수립 작업이 중단되었다. 정부 부처 안팎에서, 인수위가 국방부를 방문한 3월15일 전후로 대통령 집무실 이전 장소가 확정되었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3월15일 ‘청와대 이전 태스크포스’를 맡은 국민의힘 윤한홍 의원(왼쪽)과 김용현 전 합참 작전본부장이 국방부를 방문, 출입 절차를 위해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상명하복 문화에 익숙한 국방부로서는 ‘위에서 확정 지침이 하달되면 따를 수밖에 없다’라면서도 속도와 절차에 아쉬움을 표시하는 목소리가 크다. 차기 대통령과 국방부 모두에게 ‘초대형 프로젝트’이지만 실무적 고민은 터무니없이 부족하다는 강도 높은 비판도 나온다.

실제로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둘러싸고 불거진 ‘안보 공백’ 논란은 국방부 이전에 따라 예상되는 실무적인 문제에서 출발했다. 국방부가 이전 계획 수립 과정에서 우려한 사안 중 하나는 안보 전략 관련 시스템들의 이전, 업무 네트워크 연결 등이다. 각 부서들이 흩어지고 재배치되는 과정에서 군사 행정·작전과 유기적으로 연결된 시스템 및 네트워크들을 짧은 시간에 문제없이 재구축해야 한다. 평시에도 안보 태세에서는 찰나적인 중단 가능성도 용납되지 않는다. 이 같은 군과 안보 시스템의 특성상 면밀한 검토 없이 짧은 시간에 이전·재배치하는 것에는 위험부담이 크다.

비용 문제는 가늠조차 어렵다. 확정 계획안이 나오지 않아 현재로선 언제, 어떤 곳에서 청구서가 날아올지 정확히 알 수 없다. 3월20일 윤석열 당선자가 공개한 ‘이전비 496억원’은 사실상 국방부와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 사용되는 ‘이사비’에 불과하다. 바로 다음 날 인수위가 새롭게 “합참 청사 신축비에 1200억원이 필요하다”라고 밝힌 것처럼 실제 이전이 현실화할 경우 비용은 고무줄처럼 늘어날 수 있다. 현재 인수위, 국방부가 각각 추산한 이전 비용이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문제를 해소하려면, 제3의 기관에 연구용역을 부과해서 사업 타당성 및 비용을 추산하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국회 국방위 소속 의원실의 한 관계자는 “국방부가 공식적인 행정절차를 통해 예산을 확보하지도 못했는데 일단 실행부터 하겠다는 뜻이다. 집무실 이전을 반대하는 게 아니라 절차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국방부와 합참 안팎에선 이번 이전만으로 재배치 작업이 끝나지 않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과거부터 군 안팎에선 국방부와 합참을 서울이 아닌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는 논의가 이뤄져왔다. 이번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계기로 이 논의가 본격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인수위 측은 합참의 경우 단계적으로 수도방위사령부가 있는 경기도 남태령으로 옮기게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현재 합참은 남태령 B1 벙커를 전쟁지휘본부로 쓰고 있다. 한·미 연합훈련도 이곳에서 진행된다.

“국방부로의 이전은 기정사실이다”

국방부를 육해공 3군 본부가 있는 충남 계룡대로 옮겨야 한다는 주장도 예전부터 나왔다. 3군 본부는 이미 30여 년 전에 계룡대로 이전했다. 그러나 각 군의 행정·지휘·지원 역할을 맡고 있는 국방부는 서울에 있다. 다른 영관급 장교는 “국방부와 합참이 서울에 있는 건 ‘전시 수도권 사수’라는 상징성 때문이지만 그동안 이전을 두고 여러 가능성과 방안이 논의되어왔다. 이전을 감행한다면, 한국군 전반을 위한 장기 계획 수립 작업도 병행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번 논란은 인수위가 국방부를 ‘정부 부처’ 시각으로만 접근한 것이 근본 원인이라는 시각이, 군 안팎에서 나온다. 국방부는 정부조직법상 군부대가 아니라 중앙행정기관으로 분류된다. 정부 부처 관점에서 보면 용산의 국방부는 인수위가 물색한 이전 후보지 10여 곳 가운데 최선의 장소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의 최대 걸림돌인 보안·경호 문제 역시 이미 수십 년간 촘촘한 보안 인프라를 갖춰온 국방부로 옮기면 해소된다. 민간 임차 또는 청사 신축을 통해 옮겨야 하는 다른 후보지들과 비교해 이전 비용과 시간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 안보 기능의 양대 축인 ‘군정(군 작전에 필요한 군수지원과 인력 보충 등 살림을 담당)’과 ‘군령(군사작전 지휘)’은 각각 국방부와 합참으로 나뉘어 있다. 또 다른 국방위 소속 의원실의 한 관계자는 “한 울타리에서 군사시설로 연결되는 두 기관(국방부와 합참)의 특수성은 고려하지 않고 ‘합참은 그대로 두고 국방부만 움직이면 문제없다’는 식의 논리로는 이번 논란과 같은 부작용이 나올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는 윤석열 당선자의 대통령 집무실 이전 발표 다음 날인 3월21일 “안보 공백 우려가 있어서 집무실 이전을 위한 예비비를 제공하기 어렵다”라고 밝혔다. 국방부의 4월 초 이전 완료 계획은 사실상 무산됐다. 다만 청와대는 “안보 공백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자”라며 여지를 남겼다. 현재 조율 중인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당선자 간 회동을 통해 이전 계획이 재추진될 가능성이 있다. 윤석열 당선자는 “5월10일(취임식) 이후에도 청와대에 들어가지 않는다”라고 못 박고 국방부 청사로 이전 의지를 고수하고 있다. 인수위 측 관계자는 “국방부로의 이전은 기정사실이다. 로드맵을 구체화하고 있다. 취임 전이든 후든 예산이 통과되는 대로 최단시간에 옮길 수 있도록 준비 중이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문상현 기자 다른기사 보기 moo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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