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19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를 직접 답사하고 있다. ⓒ국민의힘 제공

공간이 정국을 지배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의 ‘집무실 이사’ 선언이 새 정부의 1호 공약 취급을 받고 있다. 윤 당선자는 3월20일, 새 정부의 대통령 집무실을 서울시 용산구에 위치한 국방부 청사로 옮기겠다고 발표했다. 대선후보 시절 광화문으로 집무실을 옮기겠다고 공약한 적은 있지만, 용산으로 이전하겠다는 결정은 선거 종료 이전까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이날 윤 당선자는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라며 임기 시작과 동시에 국방부 청사에서 대통령 직무를 수행하겠다고 주장했다. 오로지 자신의 ‘결단’을 앞세운, 당선 후 첫 강행 돌파다. 윤 당선자는 “일단 청와대 경내로 들어가면 제왕적 권력의 상징인 청와대를 벗어나는 것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결단하지 않으면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라며 용산 이전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비현실적인 이전 비용 추계, 관저(한남동)와 집무실(국방부 청사)이 떨어져 있어 발생하는 교통 통제, 연쇄 이전에 따른 국방 공백 우려 등 각종 현실적인 제약이 반대 논리로 제기된다. 무엇보다 이전 완료 시점을 못 박았다는 점이 논란이다. “5월9일까지 이전 완료”라는 선언은 다가올 ‘윤석열 정부’의 리더십 구조를 보여주는 중요한 ‘열쇳말’이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둘러싸고 혼란스럽게 전개 중인 사건들은 윤석열 시대의 ‘첫인상’으로 다가온다. 이를 통해 그의 취임 이후 전개될 정치적 풍경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도 있다.

■ 거버넌스를 거부하는 리더십

‘청와대 이전’은 새로운 주장이 아니다. 김영삼 정부 때부터 청와대 이전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청와대의 지리적 특성은 한국 근현대사와 맞닿는다. 일제강점기에 조선 총독의 관저로 개발된 이후 줄곧 권력의 땅이었다. 청와대는 북쪽으로 북악산을 등지고 남쪽으로 경복궁 담벼락과 마주한 덕분에 방어(경호)가 용이한 지점이기도 하다. 군부독재 시절의 청와대 주인들은 민주화를 열망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멀찍이 떼어놓을 수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엔 시위 인파를 청와대로 가는 길목인 효자동·삼청동에서 틀어막았다. 경내 집무실이 분산되어 있어(본관과 비서들이 위치한 위민관 분리) 업무의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윤석열 당선자의 ‘이전 명분’은 그동안 시민사회에서 제기한 ‘권력자의 공간에 대한 비판’과 상당 부분 일치한다. 문재인 대통령도 대선후보 시절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공약한 바 있다. 당시 문재인 후보는 ‘촛불 시민들의 광장과 가까운 곳에서 대통령이 민심을 경청해야 한다’는 명분을 들었다. 구체적인 로드맵도 대선 과정에서 나왔다. 2017년 집권과 함께 이전 계획을 수립하고 2018년 예산을 편성한 뒤, 2019년에 이전하는 그림이었다.

문제는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추진하는 방식과 과정이다. 잠시 시계를 2017년으로 돌려 문재인 정부 초기에 집무실 이전이 불발된 과정을 복기해보자.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광화문으로 대통령 집무실을 이전하는 논의는 1년간 공전했다. 개헌 이슈가 우선되었기 때문이다. 청와대가 2018년 3월에 발표한 개헌안에는 대한민국 수도와 관련된 조항이 포함되어 있다. 수도를 법률로 정한다는 내용이다.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행정수도 이전은 헌법재판소에서 위헌판결을 받았다. 당시 헌법재판소는 ‘대한민국의 수도는 서울’을 ‘관습헌법’이라고 봤다. 만약 개헌이 이뤄지고 수도를 법률로 정하게 되면, 국회에서 수도 이전을 공식화할 수 있다. 그럼 굳이 광화문으로 대통령 집무실을 옮길 필요 없이 세종에 새 집무실을 설치하면 된다. 집무실을 서울(청와대)에서 서울(광화문)로 옮기는 사안은 자연스럽게 후순위로 밀렸다.

2019년 1월 유홍준 광화문대통령시대위원회 자문위원이 ‘대통령 집무실 이전 보류’를 발표했다.ⓒ연합뉴스

대통령이 발의한 헌법 개정안은 2018년 5월24일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정족수 미달로 ‘투표 불성립’ 처리되었다. 당시 여당(지금의 더불어민주당)은 과반에 미치지 못했다. 극심하게 대치하던 여야 정쟁도 원인이었지만, 임기 초 개헌을 책임 있게 추진하지 못한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비판이 이어졌다. 개헌이 불발된 이후 2018년 하반기부터 비로소 대통령 집무실 광화문 이전 논의가 활기를 띠었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자문위원을 맡은 ‘광화문대통령시대위원회’를 출범시켜 이전 논의를 이어가기로 했다. 취임 전 로드맵(3년 계획)대로라면 2020년에는 이전이 가능해 보였다. 그러나 2019년 1월4일 유홍준 자문위원은 “집무실을 광화문 청사로 이전할 경우, 집무실 이외의 주요 기능을 대체할 부지를 광화문 인근에서 찾을 수 없다”라며 공약 포기를 선언했다. 광화문대통령시대위원회는 정식 출범조차 못했다.

당시 정부는 “청와대 개방과 집무실의 광화문 이전은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이 마무리된 이후에 장기적 사업으로 검토하기로 했다”라며 청와대 이전을 다음 세대, 다음 정권으로 넘겼다. 대통령 경호실의 주장,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을 추진하는 서울시의 입장, 각 분야 전문가들의 자문과 유관기관의 협의 끝에 나온 결론이다. 대통령은 민주적 의사결정을 수용했고, 이에 따른 여론의 비판도 문 대통령이 직접 감당해야 했다.

공약을 구체화하고 정책을 현실화하는 과정에서 윤석열 당선자는 문재인 대통령과 차별성을 드러내려 한다. 윤 당선자가 내세우는 자신의 비교우위는 결단력과 추진력이다. 대선 과정에서도 그는 ‘국가 지도자가 직접 약속한 사안은 주변 반대에도 불구하고 실현시킨다’는 ‘강한 지도자상’을 부각하려 했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안철수 현 인수위원장과 합의한 야권 후보 단일화다. 보수 유권자들에게 야권 후보 단일화는 후보 간 결단과 합의로 신속하게 결론이 이뤄진 사례다. 이로서 윤 당선자는 단호한 결단을 통해 결과물을 낸다는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었다.

문재인 정부와의 차별성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정책, 문재인 대통령과는 다른 ‘결단력’을 보여줄 수 있는 사안이 바로 대통령 집무실 이전이다. 단 하루도 청와대에서 보낼 생각이 없다는 인식은 비합리적으로 보일 소지가 크다. 그러나 보수 유권자의 절대적 지지를 등에 업고 선거에서 당선된 윤 당선자는 ‘민주적’이라고 여기는 절차와 과정에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대통령 집무실의 구성, 비서실 편제, 집무 공간 이동은 입법기관(특히 국회의 더불어민주당)이 관여할 수 없는 영역이다. 이런 독자적인 권한 행사를 ‘위원회와 협의를 거치느라’ 결정이 늦어지는 것은 선거에서 보여준 자신의 정치적 스타일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 윤석열이라는 정치인은 행정을 수행해나가는 과정에서 ‘정치 엘리트의 결단’을 필수적 요소로 보는 것 같다. 윤 당선자의 여러 발언에 따르면, 그가 생각하는 대통령의 기능은 유능한 행정 엘리트를 선별(인재 등용)하는 것에 가깝다. 이 같은 관점에서 대통령 집무실 이전이라는 행정조치에 필요한 것은 ‘결단’이지 거버넌스(협치·시민참여)가 아니다.

■ ‘용산공원’이라는 시민 거버넌스

헌법이 보장하는 권한 내에서 대통령의 집무실과 비서진의 업무 공간을 재편하는 것은 국가 지도자로서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이번 용산 집무실 이전은 두 가지 측면에서 되짚어볼 문제가 있다. 첫째는 타이밍이다. 윤 당선자는 아직 행정 실권을 쥐고 있는 단계가 아니다. 취임 전까지 국가 예산을 자유롭게 활용하기 어렵기 때문에 현 정부에 이전 비용을 집행해달라고 요청해야 하는 처지다. 3월20일 윤 당선자는 집무실 이전 비용이 496억원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돈은 국가재정법상 예비타당성 조사 없이 집행 가능한 최대 금액(500억원 미만)에 불과하다. 김은혜 당선자 대변인도 3월21일 “합동참모본부 이전 비용은 (496억원이 아니라) 1200억원 정도 든다”라고 말을 바꾸었을 정도다(전날까지 기존 입주기관 이전 비용은 118억3500만원이라고 주장). 정확하지 않은 추계를 바탕으로 현 권력(문재인 정부)에 예산을 내놓으라고 주장하는 것부터 갈등이 불가피한 문제다. 인수위 기간에 당선자와 현직 대통령의 권력관계는 회색지대다.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 국방부 청사로 이전하는 문제는 현 시점 국군통수권자(문재인 대통령)에게 군의 이동을 요구하는 사안이다. 당연히 현 권력에게 부담으로 작용한다.

3월22일 서울 용산공원 장교숙소 5단지 전시공간을 찾은 시민들이 용산 일대 모형을 보고 있다.ⓒ연합뉴스

두 번째 문제는 용산이라는 공간의 특수성이다. 용산공원에 대한 시민사회의 거버넌스와 그 결과물을 정치권력이 침해한다는 문제로 이어진다. 윤 당선자의 집무실 이전 선언은 두 가지 거버넌스 사안에 영향을 미친다. 문재인 정부 당시 대통령 집무실 이전 논의를 광화문 재구조화(2022년 7월) 이후로 미루자는 결정, 그리고 용산공원을 어떻게 설계하고 구성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다. 첫 번째 결정은 정권이 바뀌면 초기화될 수 있는 사안이다. 애초에 ‘광화문대통령시대위원회’가 출범하지도 못했기 때문에 ‘청와대 유지’가 시민사회의 참여를 통한 사회적 합의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용산공원은 사정이 다르다. 공원을 구성하기로 한 결정, 구체적인 설계, 반환 일정을 놓고 수십 년간 사회적 합의가 축적된 공간이다. 관련 법(용산공원조성특별법)까지 별도 마련되어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용산공원은 시민참여의 상징과 같았다. 용산공원은 국내에서 유일한 ‘국가 도시공원’이다. 용산공원조성추진위원회는 용산공원법에 따라 기본 설계를 마치고 단계적으로 미군 점유지를 돌려받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다. 용산은 대도시 서울의 중심부라는 이유로 수많은 정치권력이 욕심을 냈던 공간이다. 20대 대선 기간에도 용산기지 반환 부지에 아파트를 지어 주택 공급량을 늘리자는 정치권의 주장이 심심찮게 제기되었을 정도다.

1990년부터 최근에 이르는 30여 년 동안, 용산이라는 ‘빈 땅’에 대한 다양한 욕망과 제안이 정치권을 통해 표출되었다. 녹지가 부족한 서울의 공간 현실을 감안해 공원화하기로 결정되었으나 이 또한 ‘비싼 집에 사는 이들만을 위한 조치’라는 반론에 부닥쳤다. 공원 대신 임대주택을 짓자는 주장도 나왔다. 이 모든 정치적 욕망과 지역의 요구가 제어되는 창구가 바로 용산공원조성추진위원회였다. 이 ‘거버넌스 창구’를 통해 다양한 이해관계가 부딪치고 합의하면서 민주적 의사결정의 틀을 구성해왔던 것이다.

그런 공간의 한 편을 갑자기 차기 대통령 예정자가 ‘권력의 공간’으로 활용하겠다고 선언했다. 윤석열 당선자는 추가 개발 없이 대통령 집무실과 비서실 등을 국방부 청사로 입주시키면 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지난 3월20일, 그가 직접 들고나온 조감도는 용산공원 개발계획을 일부 수정해야 가능한 그림이었다. 용산공원 부지에 대통령 관저를 새로 지을 경우 2012년부터 2020년까지 수립한 용산공원 기본 설계를 수정해야 할 가능성도 생긴다. 울타리 경계도 경호를 위해 다시 구획해야 한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은 단순히 통치자의 사무실을 옮기는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한 사회가 민주적 합의를 통해 장기 계획을 수립한 국토 공간을 권력이 편의에 따라 재편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윤석열 당선자는 “청와대를 국민께 돌려드린다” “용산공원 조성으로 시민과 함께하는 대통령실을 구현한다”라며 권력의 공간을 시민이 찾을 수 있는 휴식처로 전환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시민이 이러한 공간 분배 결정에 참여하는 통로는 막혀 있다. 청와대든 용산공원이든, 정치 엘리트의 결단을 통해 ‘제공되는 공간’에 불과하다. 이처럼 윤 당선자의 리더십, 이른바 ‘정치 엘리트의 결단에 의존하는 리더십’은 이후 다른 국가적 의제들에서 되풀이될 수 있다. 집무실 이전 문제를 둘러싼 윤 당선자의 행보가 차기 정부의 ‘예고편’으로 취급되는 이유다.

■ 지방선거 영향 저울질하는 여야

대통령 집무실을 취임 전까지 이전하겠다는 윤석열 당선자의 주장에 여론은 호의적이지 않다. 서던포스트알앤씨가 CBS의 의뢰로 실시한 대통령 집무실 찬반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3.6%가 이전에 반대한다고 답했다(3월22~23일 시행,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 대상,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 응답자 가운데 서울 거주민의 반대 비율은 56.1%에 달했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 대한 ‘속도조절론’도 제기되고 있으나, 윤 당선자의 강행 돌파 의지가 당내 반발을 누그러뜨리는 중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대통령 집무실을 옮기겠다고 발표한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시사IN 조남진

문재인 정부는 ‘안보 공백’을 이유로 취임 전 이전을 반대하고 있다. 미래 권력과 현 권력의 대립 구도가 불거지면서 대통령 집무실 이전 문제는 더 격렬한 정치적 논쟁으로 확장되고 있다. 여야 모두 용산 이전 문제가 지방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예의주시하고 있다. 재선을 노리는 오세훈 서울시장은 3월22일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윤석열 당선인에게 (집무실 이전을) 6개월~1년 정도 숙성기간을 거치자는 여론을 전달했다”라며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윤 당선자의 취임(5월10일) 직후 열리는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은 새 정부의 컨벤션 효과를 기대해왔다. 그러나 윤 당선자의 ‘결단형 리더십’을 우려하는 여론이 강할수록, 0.73%포인트라는 대선 표차는 지방선거, 특히 수도권 선거에서 국민의힘에게 악재가 될 수 있다. 3월23일, 윤 당선자와 가까운 한 국민의힘 인사는 “취임과 동시에 청와대를 개방하고, 사람들이 인스타그램에 청와대 사진을 찍어 올리기 시작하면 여론은 호의적으로 바뀔 것”이라며 낙관론을 펼쳤다. 그러나 수도권 여론이 부정적으로 변할수록, 단편적인 낙관론은 힘을 잃어갈 가능성이 크다. 일반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 청와대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정치 지도자의 결단이 도리어 정권 초기 ‘허니문’을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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